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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 2020. 05. 27.
     내 누이
    글쓴이: 변재구  날짜: 2005.11.07. 17:37:27   추천: 103
    변재구:




    내 누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생업에 여념이 없으신 어머님을 대신해서
    한동안 누이는 등하교를 나와 함께 했었다.
    가끔은 수업 시간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교실 안을 몰래 들여다보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몇 학년 몇 반 누구냐"며 꾸중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죄 아닌 죄로 고갤 떨구던 누이의 모습에
    격하게 항의한 적도 있었다.
    "누나 때문에 부끄러워 죽겠다."

    수업 시간에 홀로 나를 기다리며
    멀찌감치 그네에 앉아 있는 누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친구들은 킬킬거리며 빈정댔다.
    "00이 누나래, 덩치는 커도 까막눈이래."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께 따졌다.
    "누나 때문에 부끄러 죽겠다. 낼부터 혼자 학교 갈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이는 못난 동생을 위해
    비가 오면 내 위주로 우산을 받쳐주었고,
    어쩌다 덩치 큰 녀석이 나를 괴롭히면
    겁도 없이 대들어 지켜주곤 했다.
    하지만 나는 하교 때마다 누나를 떨구기 위해
    친구들과 도망치듯 집으로 내달았고,
    나를 놓치고 허둥대는 누이를
    재미 삼아 킬킬거리며
    몰래 친구 집에 숨어서 지켜보곤 했었다.

    나를 놓친 날은
    동생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며
    어머님께 호되게 꾸중 맞는 날이기도 했다.
    더구나 나는 능청맞게도
    "누나가 혼자 먼저 갔다"며 속이는 바람에
    누이는 변명 한 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덤터기를 쓰곤 했다.
    누나에게 있어 나와 함께 등교하는 것은
    당신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기에
    애써 변명을 삼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그 약점을 알고 있었고.....



    그야말로 내게 어머니와 같았던 누이가,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철저히 희생당했던 누이가,
    어깨 너머로 겨우 한글만 깨친 무던했던 누이가,
    한번도 부모님께 불평 한마디 없었던 누이가,
    어제 첫 사위를 보았다.

    누이는 오래 전에 자형과 사별했고,
    또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심한 정서적 불안정을 겪고 있다.
    한마디로 희로애락을 자기 맘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장애자다.
    지금 그 누이가 양가 부모 석에 시누이와 함께 앉아서
    첫 딸의 결혼식을
    평소와 같이 무던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비록 누이가 정서적 장애를 겪고는 있다지만
    지금 딸을 시집 보내는 시점에서
    과연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표현 못할 벅찬 감동일까.
    아니면 마지못해 치러야할 숙제처럼
    그저 불편하게 자릴 지키고만 있을까.
    누나의 무심한 표정이
    내 가슴을 깊게 저미고 있었다.



    누나는 날 위해 철저히 자기 자신을 희생했는데
    난 기껏 조카의 결혼 당일에
    겨우 축의금 몇 푼으로 여기에 앉아 있다.
    자형도 없기에 미리 와서 거들어야 마땅하지만
    이래 장성한 지금까지도
    난 누나에게 해줄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누나가 힘겹게 모아 놓은 피땀 어린 돈을
    뻔뻔스럽게 빌려 쓰고 있을 따름이다.

    식이 진행되면서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에게 인사하는 순서가 되었다.
    누이 앞에 선 조카사위가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장애를 겪는 누이를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꾸려왔던 조카를
    사랑으로 감싸주길 바란다는 당부를 미리 했었는데...
    질서는 오히려 내게
    사랑스런 조카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었다.

    지금 그 조카사위가
    누이를 향해 거침없이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얼굴에 미소조차 없는 장모를 향해
    그는 진정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내 마음으로부터의 통곡을 참지 못하고
    격한 감정을 진정시키기에만 급급했다....
    그래... 끝까지 나는 누나를 위해
    숨겨진 내 감정까지 감출 정도로
    약게만 살아온 것이다.
    비겁하게 지금에서야 숨어서
    홀로 통곡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누이에게는 조카의 공백이 깊이 자리할 것이다.
    그래 그 공백은
    지금부터 내가 짊어져야 할 내 짐이다.
    오래 전에 내가 누이에게 지워줬던 짐에 비하면
    겨우 이자도 되지 않겠지만...

    어제 새 출발을 한 새신랑 신부에게 축복을 보내며
    진심으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마음 모아 빌어본다.
    아니 솔직한 심정은
    누나에게서 조카의 공백이
    더 이상 상흔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래... 끝까지 나는
    누나에게 있서 비겁하기만 했다...


    글: 쉬리 변재구
    곡: Stay with my heart /Sophie Zel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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