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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시 모음 30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4.10.07. 21:32:55   조회: 963   추천: 183
    여명문학:

    김영화 시 모음 30편
    ☆★☆★☆★☆★☆★☆★☆★☆★☆★☆★☆★☆★
    《1》
    3월의 아픔

    김영화


    아이들은 늘
    이별을 슬퍼하며 운다

    다시 만나니 슬퍼하지 말라 하면
    눈치만 힐끔힐끔 보던 아이마저
    슬픔을 만끽한다.

    그 투명한 늪에 빠진 나는
    그대로 투명한 별이 되어
    하늘을 난다.

    3월!
    또다시 그리움으로
    아이들을 안으려 달려가면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 익힌 망각의 솜씨로
    눈을 가늘게 뜨며 낯설게 도망간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3월의 아픔
    ☆★☆★☆★☆★☆★☆★☆★☆★☆★☆★☆★☆★
    《2》
    5월 분노의 하늘아래
    김영화

    바보인 당신!
    새벽 미명에
    남의 집에 허락도 안 받고 들어 온 손님들이
    온 집안을 쓰레기통 뒤지듯 파헤치는데
    그 옆에 순순히 앉아서,

    순진한건가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

    조국의 부름도 아닌데
    그렇게 순순히 끌려가시다니…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나에게
    아무 죄도 없이 떳떳하다고요?
    조사만 받고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 말고 있으라고요?

    마음이 저려 옵니다.
    그러나,
    포로된 나라에서 감옥에 갇힌 다니엘은
    열린 창문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며
    큰 소리로 기도 했대요.
    사방이 막혀 흑암에 쌓여 있지만


    하늘문은 열렸으니까요.
    마침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머리털하나 건드리지 않고 살려 주셨잖
    아요?
    당신!
    우리의 억울함을 주님은 아십니다.
    고통도 기쁨도 다 지나가는 것이라면
    그 믿음 하나로 아직껏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누가 당신께 돌을 던져도
    누가 당신을 짓밟으려해도
    들풀처럼 견디십시오.

    오월의 항쟁이 귓가에 마구 외쳐대는
    분노의 하늘아래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파아란 싹을 틔워낸 저 오월의 나무들처럼………
    ☆★☆★☆★☆★☆★☆★☆★☆★☆★☆★☆★☆★
    《3》
    마이산에서

    김영화

    힘들더라
    마이산 오르는 길

    마음 한 번 비우듯
    돌 한 개 쌓던 영혼인가?
    헉헉대는 하늘 아래
    가볍더라
    호롱호롱 산 새 한 마리

    왼 손 모르게
    오른 손이 지은 죄
    저 돌탑만큼 많아

    새가 되고 싶지만
    내 몸은 너무 무거워

    오른손 알게
    왼손이 지은 죄
    저 봉우리만큼 높아
    나는 새가 될 수 없다
    ☆★☆★☆★☆★☆★☆★☆★☆★☆★☆★☆★☆★
    《4》
    가을 마이산의 아침

    김영화

    청아한 새소리에 잠을 깬다
    밤새 내린 낙엽 비 탓일까?
    오색단풍 속옷마저 벗어버린 나무들이
    부끄러운 듯
    아침안개를 홑이불 삼아
    눈부신 나신을 감춘다.

    그리고
    아주 오랜 동안 그래왔듯
    허겁지겁 달려오면서
    숲 속 다람쥐도 못 보고
    반짝이는 강물도 못보고
    아름다운 여인이 춤추는 발을
    바라볼 틈이 없었음에
    잠시
    깊은 사색에 빠져본다.

    벌써 해가 중천에 솟았나보다.
    짖궂은 만추의 햇살이
    기어코 아침안개를 걷어낸다.
    ☆★☆★☆★☆★☆★☆★☆★☆★☆★☆★☆★☆★
    《5》
    가을 산을 내려오며

    김영화

    해질 녘, 하산 길은

    오랜 산의 오름으로 인해
    신께 경배하지 못한
    화해의 시간이다.

    모든 창조의 영혼으로부터
    자유하는
    평화의 시간이다

    밤새도록 살아있을
    빛의 아름다움을 보는
    자비의 시간이다.

    고요한 황무지 너머 더욱 고요한
    바다의 침묵을 건너다보는
    겸손의 시간이다.

    분노의 늪에서 꿈틀거리는
    카인을 잠재우는
    용서의 시간이다

    가을, 하산 길은
    또 다른 산행을 준비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
    《6》
    간병일기(4)
    -임종-

    홀로 남겨진
    안타까운 세월이
    너무 길까 걱정했습니다 .

    흰옷을 입혀라.

    그러나
    운명을 거부하고싶은 이별이
    이토록 빨리
    현실로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
    ......

    힘들게 유언하려 하지 마세요
    질펀하게 풀어놓을 가난의 기억도
    죽도록 미워했던 형제의 기억도

    사랑할게요

    세상의 완성 위에
    마침표로 가시는 아버지.

    ☆★☆★☆★☆★☆★☆★☆★☆★☆★☆★☆★☆★
    《7》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김영화

    2등도 안돼.
    내가 아니면 안돼
    안전 불감증 환자처럼 가속 페달을 밟아대며
    풀 섶에 이슬방울도
    잔잔히 피어있는 들국화도
    바라다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별빛 쏟아지는 용담호수를 바라다볼 마음도,
    그리고
    덧없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포효하듯 울부짖는 한 여인을
    안아줄 여유도 없는
    가난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세모마음이든 네모얼굴이든
    변덕스럽지 않은 진실함
    힘겨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견디어내는 참을성
    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냐며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심으려는
    늘 푸른 소나무 같이 한결같은 그대를 사랑합니다.

    의리를 배신한 친구보다는
    공동의 선을 선택한 선배를 따르겠다며
    고통도, 아픔도 함께 하다
    골목길 후미진 곳에 숨어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던
    한 청년의 가을 들녘처럼 겸손한 마음을 사랑합니다.

    미망의 운명이 하 기구한데
    정부보조금으로 살게 해준 은혜가 감사하여
    허리에 디스크밴드를 동여맨 채
    앞치마를 입고 봉사의 현장을 찾는
    머리가 허연 할머니의 수수한 마음을 사랑합니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장갑 없는 맨손에 겨울바람이 스치고
    버스를 기다리는 승강장엔
    고된 삶의 무게만큼
    두고 온 자식들을 깊이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의 심지를 깊이 묻어둔
    등불처럼 따뜻한 그 여인의 마음을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글씨 안 쓰니까 좋겠다.”고 투덜거리고
    “‘어머나’같은 노래는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좋은데요?”하며
    하루 종일 흥얼거리는
    초등학교 1학년 우리 반 아이들의
    첫눈처럼 순결한 마음을 사랑합니다.

    누구나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걸 믿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 것 같아
    외롭지 않은 새벽입니다.
    ☆★☆★☆★☆★☆★☆★☆★☆★☆★☆★☆★☆★
    《8》
    그리운 아버지

    김영화

    불효막심하게도
    홀로 남겨진
    안타까운 세월이
    너무 길까 걱정했습니다
    .
    희-인 오-옷을 입혀라

    그러나,
    운명을 거부하고 싶은 이별이
    이토록 빨리
    현실로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
    아버지
    힘들게 유언하려 하지 마세요
    질펀하게 풀어놓을 가난의 추억도
    죽도록 미워했던 형제의 아픔도

    사랑할게요.

    세상의 완성위에
    마침표로 가신 아버지
    ☆★☆★☆★☆★☆★☆★☆★☆★☆★☆★☆★☆★
    《9》
    그리운 아버지

    김영화

    어느 여성합창대회 날
    그리운 아버지, 당신을 뵈었어요.

    퇴직교사들이
    당신들의 살아온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손풍금을 가슴에 안고도
    봄날의 향기에 흠뻑 취한 뻐꾸기처럼
    바알갛게 상기된 얼굴로
    날아갈 듯 은빛 청춘을 노래하던 그 모습
    바로
    생전의 아버지, 당신이었어요

    세상의 완성 위에
    마침표가 되는 인간
    그리운 아버지. 당신 모습이었어요.
    ☆★☆★☆★☆★☆★☆★☆★☆★☆★☆★☆★☆★
    《10》
    금식을 하며

    김영화

    아침 햇살에 굳게 빗장 걸린
    마음 문을 들여다보니
    내 눈이 근심으로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인하여 이글거린다.

    탐욕에 배부른 저 항아리
    냄새나는 강과 산이
    그 속에 기어 들어가
    병든 짐승처럼 헐떡인다.

    피 흘림을 심문하는 간절함이여
    부끄러워 빗장 걸고 숨었더니
    그리하여
    뱃속에 가득 들어찬 것들
    다 토해내는구나.

    숲도 절벽도
    구름 위로 날아가는 새도
    물도 섬도 지나가는 배도 들어내어
    내 모든 원수가
    내 발 아래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니
    이윽고
    흉악의 결박을 풀고
    심히 떨며 홀연히 물러가는 도다.

    아, 영혼의 자유함이여!

    ☆★☆★☆★☆★☆★☆★☆★☆★☆★☆★☆★☆★
    《11》
    기다리는 마음

    김영화

    초승달의 설레임을
    숙우에 부어놓고
    티 없는 고독의 기다림을 즐긴다.

    눈가에서 시작한
    그리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조차 성급함일까?

    어둠은
    그의 무게만큼이나 큰 발로
    하얀 별들을 떨어뜨린다.

    마지막 고요 한 조각마저
    청자빛 다관에 부어놓고
    흔들리는 은총의 홍포를
    두 손으로 덮는다.
    ☆★☆★☆★☆★☆★☆★☆★☆★☆★☆★☆★☆★
    《12》
    길 그리고 길

    김영화

    위선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한다

    가난하다고 하지나 말지

    사람들은
    부자들을 욕하고 미워하면서
    부자가 되려고 바둥거린다

    욕이나 말지

    나도 사람이다
    ☆★☆★☆★☆★☆★☆★☆★☆★☆★☆★☆★☆★
    《13》
    나 당신

    김영화

    이리 와요.
    아무도 몰래
    담장아래서 울고 있는 그대

    어젯밤, 나도
    얼굴 없는 목소리가 비수되어
    내 가슴을 난도질하는 바람에
    억울함에 한 잠도 못 잤다오.

    그대 눈에는
    내가,
    감미로운 낭만으로
    자신감에 가득 찬
    당당한 멋쟁이로 보일지 몰라도

    속지 마세요,
    그대.
    나는 다만 가면을 쓰고 있을 뿐

    나도 그대처럼, 늘
    외롭고
    슬프고
    방황하고
    놀라고
    그리고 추운 사람이라오.
    하여, 나는 두렵다오
    그대가 날 안아주지 않을까봐.

    그대가 가장 잘 아는 사람
    나는 곧 울고 있는 당신이라오.

    ☆★☆★☆★☆★☆★☆★☆★☆★☆★☆★☆★☆★
    《14》
    담장 밖의 이야기
    김영화

    전주 태조로를 휘돌아 올라가 본
    동산에 뜬 음력 칠월 열여드레 달은
    아직 휘영청 밝았어요.
    우리 아줌마 셋은
    굽이굽이 도심 속을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걸으며
    화석처럼 굳어버린 사랑 이야기를 꺼내어
    서로의 가슴과 가슴으로 보듬었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듯
    첼로의 선율을 따라 빨려 들어간
    어느 고즈넉한 산사 같은 찻집에선
    잃어버린 옛사랑의 향기를 맡듯


    ……
    우린 시공을 잠시 잃어버렸어요.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기우는 달그 림자가 아쉬어
    덕진 연못으로 달려갔어요.
    연잎사이에 꽃송이가 보일 때마다
    뽀뽀한 번 하자고 했다며
    남편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부끄럼 없이 끄집어내는
    귀여운 아줌마의 닭살 섞인 너스레가
    초가을 저녁
    연못에 뜬 달처럼 외로워 보인 이유는 어인일일까요?

    ☆★☆★☆★☆★☆★☆★☆★☆★☆★☆★☆★☆★
    《15》
    더욱 낮은 곳으로
    김영화
    당신!
    몇 장 남지 않은 캘린더가
    더욱 더 내 마음을 바쁘게 합니다.
    인생은 아쉬움의 연속이라고 했던가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 왔건만
    문득문득 뒤돌아 볼 때마다
    진한 아쉬움에 조용히 한숨 집니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어느새 10월이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봄에 피어나 한여름을 보냈던 나뭇잎들도
    이제는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여름내 땀 흘린 농부의 마음을 담아
    들녘도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진정 풍성한 가을이 우리 앞에 와 있건만
    흐르는 세월 앞에 무기력한 우리의 마음은
    뻥 뚫린 가슴만큼이나 허해집니다.

    마지막에 피는 꽃의 향기가 더 진하다고 합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죄인들의 낙엽이 되신 예수님처럼
    가을, 나뭇잎들도 단풍으로 마지막의 아름다움을 뿜어내지요
    지금 우리의 9월이
    지금 우리의 10월이
    9월을 보내는 나뭇잎처럼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으로 땅을 덮고
    그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겸손한 낙엽이 되어야하겠지요
    9월은
    가는 시간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가는 세월과 친해지라고 합니다.

    ☆★☆★☆★☆★☆★☆★☆★☆★☆★☆★☆★☆★
    《16》
    마이산에서

    김영화

    힘들더라
    마이산 오르는 길

    헉헉대는 하늘아래
    가볍더라,
    호롱호롱 산 새 한 마리

    왼 손 모르게
    오른 손이 지은 죄
    저 돌탑만큼 높아

    새가 되고 싶지만
    내 몸은 너무 무거워

    오른 손 알게
    왼손이 지은 죄
    저 산봉우리만큼 높아

    나는 새가 될 수 없다

    속죄하듯 오르는
    힘들더라,
    마이산 오르는 길
    ☆★☆★☆★☆★☆★☆★☆★☆★☆★☆★☆★☆★
    《17》
    백두산을 오르며

    김영화


    멀리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마치 흰 눈이 내린 듯
    하얀 자작나무 나뭇가지들
    하늘로 곧게 뻗은 미끈한 흰 나무들이
    고개를 들어야 저만큼
    작은 이파리들이 보인다.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사냥꾼에게 쫒기는 사슴처럼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세월을 비웃기나 하듯
    땅위의 나무들은 미동도 없는데
    가지 끝 푸른 이파리들만
    저희들끼리 바람에 재잘거린다.

    속살을 애무하듯
    비 오는 백두산을 천천히 오른다
    길은 빗속에서도 아이들 소풍 길처럼 어여쁘다

    산 아래에서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 속으로
    초록 구릉은 끝 간 곳이 없다.
    능선은 부드럽게 흐르다가
    한 순간 급한 주름이 잡혀있고,
    주름 속에는 실개천 같은 빗물이 흐르다가
    다시 꽃들이 흐르다가
    빗물과 함께 또다시 꽃들이 흐른다

    꽃이 흐르는지
    바람이 흐르는지
    산이 흐르는지
    내가 흐르는지……

    꽃들을 핑계로 잠시 서서
    호흡을 고른다.
    찰나의 짧은 생을
    영롱한 빛으로 표현한 저 꽃들 앞에서
    오욕칠정에 찌든 내 모습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꽃들은 짙은 안개 속에 더욱 애틋하고
    비바람은 사선으로 내리달린다.
    동행한 초등아이와 함께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한 채
    꽃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저기,
    천지가 있으니
    고독한 순례자처럼
    또 지팡이를 들고 묵묵히 산을 오른다.
    ☆★☆★☆★☆★☆★☆★☆★☆★☆★☆★☆★☆★
    《18》
    생명 있음에

    김영화

    눈만 뜨면 우리는
    탐욕의 눈을 번득이며 먹고 또 먹어댔다.
    입만 벌리면 우리는
    쓰레기, 또 찌꺼기들을 토해내곤 했었다.
    우리의 죄악은 마침내
    하늘의 창을 열고야 말았으니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네 가족도 아닌데
    우리는 분노의 강을 헤쳐 나왔다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덮어주지 못하고
    감싸주지 못한
    회칠한 무덤 같은 우린데 ....

    나, 유대인도
    너, 이방인도
    숨을 헐떡일 겨를도 없이
    진흙더미 속이라도
    생명 있음에 감사하며
    손에 손을 잡고
    탐욕의 찌꺼기들을 씻어 내린다
    ☆★☆★☆★☆★☆★☆★☆★☆★☆★☆★☆★☆★
    《19》
    손주 탄생

    김영화

    빨간 덩쿨 장미가 담을 넘어 기웃대며
    생글대는 계절

    ‘고추도 크고 매우 건강합니다
    울엄니, 할머니 되신걸 축하드려요!‘
    아들의 목소리는 상기되었다

    하얀 포에 팔뚝만한 생명체
    다소곳이 눈을 감고 잠든 천사
    고운 이마와 눈매 그리고 코
    오물대는 입
    형언하기 힘든
    작고 앙증맞은 손과 발
    눈물이 난다

    '수고했다. 이쁘구나' !
    며느리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이때처럼 진솔할까
    어쩌면 저렇게 깨끗할까?

    이마를 찡그리더니 ,
    응애! 응애! 고고한 울음
    허 허 허, 저놈 봐
    울음 소리가 힘차네
    그래, 감찬아!
    그렇게 이 세상을 호령하렴.
    ☆★☆★☆★☆★☆★☆★☆★☆★☆★☆★☆★☆★
    《20》
    슬픈 피서
    김영화
    나는 오늘도
    경남 거제 외도로 꽃구경을 가는 인파와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기는 인파와
    꽉 막힌 피서길 고속도로위의 서 있는 차량들과
    고속도로 휴게소의 돈 먹는 인파와 함께
    교도소로 피서를 떠난다.

    그곳에는 비록
    빵빵한 에어컨은 없어도
    얼굴만 봐도 냉기가 팍팍 도는
    표정 없는 교도관들이
    나를 오싹하게 만든다.

    그곳에는 비록
    아름다운 꽃밭도 없고
    시원한 바닷길을 가르는 유람선은 없어도
    바깥세상의 온기를 맡으려
    유리벽에 손바닥을 대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는 남편의 얼굴이
    나를 슬프도록 썰렁하게 만든다.

    나는 오늘
    두근거리는 8분의 피서를 마치고
    회색빛 0.5평 밖을 빠져 나와
    아무도 없는 도심의 인파속을
    양산도 받지 않고
    무섭도록 외로운 피서를 즐긴다.
    ☆★☆★☆★☆★☆★☆★☆★☆★☆★☆★☆★☆★
    《21》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 영결식장에서-

    김영화

    굽이굽이 살아온 날이 그러했듯이
    지나온 이야기들이 그러했듯이
    아버지,
    참으로 많은 꽃들의 행렬입니다.

    여기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도
    사도를 같이 걷던 동료도
    ☆★☆★☆★☆★☆★☆★☆★☆★☆★☆★☆★☆★
    《22》

    안개꽃

    김영화

    그대
    눈부신 햇빛 받아
    빛나는 장미라면
    난 그저
    빛나지 않아도 좋소

    그저
    나로 인하여
    그대가 더욱 아름다워진다면

    그대 축복 속에 스며드는
    잔잔한 안개이고 싶소

    먼 훗날
    부름 받은 목숨 다해
    그대와 나 함께 묶여 시든다면
    그대로 인하여 빛났던 안개였노라
    속삭일 것이외다
    ☆★☆★☆★☆★☆★☆★☆★☆★☆★☆★☆★☆★
    《23》
    엄마

    김영화

    무어라
    텅빈 세상에 외쳐대야
    아들은
    메아리 되어 달려올까?

    그러나
    곧게 다문 입술에
    혀를 차든, 침을 뱉든
    이젠 침묵을 거역하긴 싫다.

    차라리 그리운 마음으로 눈감으면
    찬란한 옛 그림자의 환상으로
    행복하다

    모두 다 빼앗겨
    쭈그러진 알몸으로
    세월의 나래 접으니
    남아있는 부스러기 한 조각

    아,
    외롭다
    ☆★☆★☆★☆★☆★☆★☆★☆★☆★☆★☆★☆★
    《24》
    여호와 이레
    김영화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날
    안양 교도소 담벼락 밑에서 올려다본 괴로운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만
    결코 기억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창세기 22장 1절로 14절 말씀으로
    고통의 8월을 한방에 날려보냅니다

    100세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귀한 아들을
    바치라 하신 하나님,
    그러나
    내 아들,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을 어떻게 바치라하십니까?
    라고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았지요.
    번제나무와 불과 칼을 들고
    아들 이삭과 동행하는 순종의 아버지 아브라함.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사랑하는 아들아, 네 아들 이삭에게 칼을 대지 말아라
    그 귀한 믿음 하나님이 아시고
    수풀과 숫양을 번제로 준비하셨지요
    여호와 이레!
    준비하신 하나님!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준비하신
    고마우신 하나님!
    나의 눈물의 기도를 번제로 받으소서
    여호와 닛시!

    ☆★☆★☆★☆★☆★☆★☆★☆★☆★☆★☆★☆★
    《25》
    인천 소래포구에서
    김영화

    “내일로 방 뺍니다.”
    담당교도관의 음성은 사뭇 고조되어 있었어요.

    무작정
    소래포구로 향하는 우린
    꽉 막힌 도로에서도
    영혼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서서히 서서히
    인파 속으로 빠져 들어갔어요.

    아픈 기억들일랑
    두 번 다시 나를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멀리멀리
    갈매기 나래 위에 실려 보내고
    선택된 미래만이
    정지된 고깃배 깃발에 휘날리니

    서러움의 눈물로 반짝이는
    은빛 물결 위에
    새로운 하늘이 춤추며 내려와
    또 다른 서곡을 통보합니다.

    ☆★☆★☆★☆★☆★☆★☆★☆★☆★☆★☆★☆★
    《26》
    추운 여름

    김영화


    비 비람이 무섭게 부는
    어느 여름 밤,
    친구는
    다 지어놓은 농사가 걱정이라며
    하룻밤 함께 지내자고 붙잡는 손을
    한사코 뿌리치며
    훌훌 떠나가 버렸다.

    전력 사용량이 사상 최고라고
    어제도 그랬고
    또,
    그 전 날도 그랬고
    아마 벌써 며칠째 그런 것 같다.

    적당히 비가 내려주고
    뜨거운 태양이 잘도 비춰 주어
    금년 농사는 대풍이 예상된다고
    배우 같은 방송인은
    잘도 떠들어댄다.

    가까운 날 다시 오마하고
    떠났던 친구는
    한번쯤 올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한 여름인데
    나는 참 춥다.
    ☆★☆★☆★☆★☆★☆★☆★☆★☆★☆★☆★☆★
    《27》
    편지 1
    -보내는 마음

    김영화


    선생님!
    누구나 이 세상 끝나는 날엔
    떠나고 남는 자들의 아쉬움에
    마음 아파하지만
    유난히도 금년에는
    보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
    일렁이는 마른 가지들처럼 애잔합니다

    제 나이 불혹을 훠얼씬 넘겼음에도
    때로는 응석으로
    때로는 투정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다가갔으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어루만져주시고
    등 토닥거려주신
    당신은 사랑이셨습니다.

    넓은 운동장에서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뒹굴고
    아이들 책걸상마다 스승님의 자상함이 묻어 있으며
    후배들 책상마다 선배님의 향기가 살아 숨쉬니
    아!
    어쩌면 좋아요.
    당신이 안 계신 빈들에서
    한동안 그리움에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선생님!
    타오르는 열정으로
    식지 않는 사랑으로
    아무 댓가없이 뿌린 당신의 정성
    보람은 밝은 태양이 되리니
    부디
    한 자루 작은 촛불로
    제 마음 지켜 주소서
    ☆★☆★☆★☆★☆★☆★☆★☆★☆★☆★☆★☆★
    《28》
    편지 2
    -가을, 운일암 반일암에서

    김영화

    친구야!
    가을, 운일암 반일암은
    여름을 시치미 떼듯 적막하다
    언제 죽도록 물 몸살을 앓았냐는 듯
    청아한 소프라노로 노래한다

    마치
    홀로 당당한척 서 있는 바위위의 정자
    비웃기라도 하듯
    외로움의 끝이 어딘지 모른 채
    마냥 즐겁게
    흘러, 흘러가기만 한다.

    삶에 지친 여인처럼
    성급하게 떨어진 한 잎 낙엽
    버려진 듯 그리움이 뒹구는구나

    ☆★☆★☆★☆★☆★☆★☆★☆★☆★☆★☆★☆★
    《29》
    편지 3
    -진홍 가슴 새

    김영화

    여보

    아들 때문에
    며칠 밤을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모습
    나에게 들킨 줄 모르셨죠?

    가시면류관에 찔려
    얼굴이 피로 뒤범벅된 사람위에 앉은
    새 한 마리가 있었대요

    작은 부리로
    가시 한 개를 뽑으니
    새의 깃털에 피가 튀겼고
    그렇게 가시를 다 뽑다 보니
    하얗던 새는 어느새
    진홍빛 새가 되었다네요.

    그런데, 여보!
    그 새가 새끼를 낳았는데
    가슴 부분의 털이 진홍색인
    아기 새가 나왔대요

    어젯 밤
    뒤틀린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아들을 보고
    젊은 날의 당신을 보았지요.
    ☆★☆★☆★☆★☆★☆★☆★☆★☆★☆★☆★☆★
    《30》
    행복과 시험지

    김영화

    아버지 술 마시고 들어오시는 날
    그 날이
    우리는 가장 행복했다.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행복의 앞치마를 입고
    우리는
    가난한 자유를 기다렸다.

    어설프지만
    어색하지만
    우리의 공연을 보신 아버지는
    참으로 오랜만에
    어린 우리들의 아빠가 되었다.

    이만하면 100점인데…….

    화려한 단어를 능숙하게 나열해도
    행복에 허기진 우리 자식들 앞에
    내 답안지는
    언제나 0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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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천상병 시 모음 20편 김용호2006.08.09.5737558
    59 나희덕 시 모음 30편 김용호2006.08.09.5081640
    58 박두진 시 모음 37편 김용호2006.08.09.5764658
    57 홍윤숙 시 모음 23편 김용호2006.05.27.4074680
    56 이외수 시 모음 34편 김용호2006.04.22.2451354
    55 함석헌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10.16.3070289
    54 김수미 시 모음 41편 김용호2005.10.16.2404253
    53 노래가 된 시 34편 김용호2005.10.16.2817260
    52 고은 시 모음 59편 김용호2005.08.20.3556523
    51 김용택 시 모음 29편 김용호2005.08.20.2616369
    50 김후란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08.20.2126243
    49 기형도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8.20.2219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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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시습 시 모음 65편 김용호 2004.02.24.2376446
    8 박목월 시 모음 30편 김용호 2004.02.24.2043245
    7 고정희 시 모음 38편 김용호 2004.02.10.2153478
    6 서정주 시 모음 41편 김용호 2004.02.09.24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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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지용 시 모음 24편 김용호 2004.02.08.191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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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옥같은시어모음 김용호 2004.02.03.2258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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