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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봄샘 시 모음 9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4.10.07. 21:32:02   조회: 887   추천: 138
    여명문학:

    최봄샘 시 모음 9편
    ☆★☆★☆★☆★☆★☆★☆★☆★☆★☆★☆★☆★
    겨울나기 2

    최봄샘

    문풍지를 바른다
    틈새마다 스며들어
    찔러 대는 바람에도
    오늘은
    imp 폭풍에 삭으러 들고

    아랫목에 묻어 둔불씨 하나
    다독 다독이며 문풍지를 바른다
    동상 같은 짐꾼들
    쭈그린 모퉁이마다
    힘 찬 심장 소리 담아
    누구인가 실어 보내는 노래
    봄은 멀지 않다네
    봄은 그리 멀지 않다네
    ☆★☆★☆★☆★☆★☆★☆★☆★☆★☆★☆★☆★
    막내딸 입학식 날에

    최봄샘

    불 하나 더 밝혀 놓고
    지켜보아야 할 손바닥만한 모습
    새 책가방 어루만지며 기다리던 날
    헤집어진 가슴 다독이며 오늘은
    그 작은 코에 조금 더 큰 멍에를
    바꿔 끼워 주었다

    32년전 그 날
    개나리 진달래 서둘러 달려 올 때
    뻐꾸기 노래 소리 어린 잠깨 우니
    하얀 수건 가슴에 달아 주던 우리 엄마
    그렇게 날 바라보셨지
    바다 만한 학교 마당 허연 서릿발을
    붕어빵 같은 두 발로 밟고 가던 계집아이
    아직도 운동장 한 가운데서
    노느라 바쁜 그 계집아이를
    흰눈 내린 머리카락 빗으며 지켜 주신다
    지금 내가 따라가고 있는 저편 길목에서
    ☆★☆★☆★☆★☆★☆★☆★☆★☆★☆★☆★☆★
    비워 내기

    최봄샘

    진공 유리 상자 안
    혼자이다
    그리도 입안을 찌르던
    한마디 말마저 뽑아 버린다

    부러진 초침을 헤아리며
    너를 기다리는 것
    나를 갉아 허기지게 했지만
    한 톨 자존심 마저 바스러뜨린다

    비로써
    떨리는 평온
    바람 한 점일지 않는
    배반이 감미롭다
    ☆★☆★☆★☆★☆★☆★☆★☆★☆★☆★☆★☆★
    새장 속의 작은 새

    최봄샘

    눈물도 태워 버리던
    전성기의 노래들
    지금 허공에 묶인 채 녹슬고
    굳게 잠겨진 몸 바라보며
    갉아 먹히는 가슴
    점점 굳어 버리는 날개에
    그냥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살점 뜯기는 고문

    쪼아야 할 것을 쪼지 못한 채
    세월의 볼모에 잡혀
    무디어 가는 부리
    새벽을 단단히 싸고 있는
    껍질만 쪼아댄다
    ☆★☆★☆★☆★☆★☆★☆★☆★☆★☆★☆★☆★
    여자 40세

    최봄샘

    오랜지빛 립스틱 바르고
    시리워지는 강가에 서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치맛자락을 흔드는 소금 바람

    울안에 가두었던 이름들
    안부를 물어 보며
    갈색 향에 취할 수 있는
    한 잔 여유 속에서도 문득 젖어 오는
    푸른 깃발의 아우성

    날카로운 본능마저도 느슨해지는
    늦여름 햇발 아래
    아직은 설익은 열매들
    가지마다 흔들리는데
    조심조심 디디고 가야 할 계절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얼굴로 다가오는
    당신이 있다
    ☆★☆★☆★☆★☆★☆★☆★☆★☆★☆★☆★☆★
    연습

    최봄샘

    오늘도 바라본다
    붉은 아지랑이 저편
    아직 높기만 한 봉우리

    꿈속에서도 곤두박질 치던
    나의 목걸이는
    명동 거리 한 복판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더 작아지지 않는 몸
    바늘구멍에 디민다
    비곗살 빼야 한다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

    그저 연습에 지쳐 버린
    시계 바늘마저도 어둠을 안고
    비틀거리는데 그림자처럼 찾아오는
    하얀 속삭임이여
    ☆★☆★☆★☆★☆★☆★☆★☆★☆★☆★☆★☆★
    연필

    최봄샘

    체중이 줄어듭니다
    뾰족한 성깔도 무디어 가느라
    그토록 검은 핏물 흘릴 때는 빈혈마저
    슬픔의 퇴로를 차단합니다

    또깎입니다
    짧아지는 내 키만 큼씩 오그라드는 명줄
    뼈 속 깊은 곳에선 머언 숲 속의
    푸르던 전설이 꿈틀거립니다

    어느 모퉁이에 버려져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모멸 덩어리 이 몸뚱이 버려짐의 그림자를
    베고 누워 눈을 감은 채 오직 작아지는
    기쁨을 생각하지요

    마침내 달콤한 어둠에 손 흔들며 흙으로
    돌아가는 날 꿈속 그리던 님의 품에 안기리니

    고향은 언제나 내 심지 속에 별이 되어
    반짝 입니다
    ☆★☆★☆★☆★☆★☆★☆★☆★☆★☆★☆★☆★
    日出

    최봄샘

    끈적끈적
    피부에 묻어 나는
    하룻밤 흔적 지우며
    잘 포장된 미련
    겨드랑에 숨긴 채
    흑암의 자식들
    젖은 몸 구부려
    떨고 있구나

    밤새 허연 이빨 깨물며
    이 세상
    모든 먹물 다 마시느라
    허공을 쥐어뜯으며
    뒤틀리던 바다는
    지금
    옥동자를 낳는다
    ☆★☆★☆★☆★☆★☆★☆★☆★☆★☆★☆★☆★
    촛불

    최봄샘

    종말을 향한
    화려한 출발
    산화라는 살과 뼈
    향내에 질식하는
    음모의 싹들
    태워 버린 검은 베일의
    허물만 굳어 있다

    종점은 언제나
    완전한 어둠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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