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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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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선미 시 모음 열 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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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4.10.07. 21:31:48 조회: 1324 추천: 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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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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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미 시 모음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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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한선미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우물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네
꽁꽁 동여맨
멍 자국 선명하게
그렇게 서 있었네
가슴을 부여잡고
흐릿하게 서 있는 여자의 눈 속에
내가 서 있네
그림자를 따라서
거울 속에 들어가 보면
정작 거울은 없지
☆★☆★☆★☆★☆★☆★☆★☆★☆★☆★
나무와 숲
한선미
심호흡을 하고
숲을 봐
바로 눈앞만 생각하다가는
중요한 걸 놓치고 말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숲은 나무가 없으면 안 돼
숲을 보라는 건
포장하길 좋아하는
달변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
크게 멀리 보라는 건
바로 앞 중요한 걸 버리는
어리석음이지
☆★☆★☆★☆★☆★☆★☆★☆★☆★☆★
소리
한선미
조용히 눈을 감고
눈을 감고
그러고도 한참을
묵묵히 견뎌내면
낯설지 않은
저 밑바닥에서
품었다가 터지는
한 줄기 빛
☆★☆★☆★☆★☆★☆★☆★☆★☆★☆★
주검 앞에 서서
한선미
한 사람이 죽었다
주검을 가운데 두고
둘러선 사람 사람들
주검 향해
손가락질하는
표정 없는 얼굴들 사이
죽어가는 얼굴
눈빛이
십자가에 걸려있는
그 남자
☆★☆★☆★☆★☆★☆★☆★☆★☆★☆★
립스틱
한선미
화장대 앞에 앉은 여자 립스틱 하나 집어 든다
와인에 취한 립스틱을 여자는 장난처럼
천천히 아주 서서히 입술로 가져간다
스윽 스으윽 거칠게 그어버린다
그때마다 거울은 여자의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여자는 손으로 립스틱을 문질러버린다
노려보는 여자의 태도에 거부하거나
맞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립스틱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온 몸을 웅크려본다
감시하던 여자의 손에 발버둥치는
립스틱이 들어올려지고
여자의 행동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잔인하게 좀 더 강하게
☆★☆★☆★☆★☆★☆★☆★☆★☆★☆★
비상을 꿈꾸다
한선미
흐르던 비가 창에 앉으면 눈물이 스며든다
끌어내려 할수록 점점이 박혀
물결무늬가 된다
슬픈 곡조의 노래가 된다
남자는 25층 꼭대기에 산다
그 곳을 지난다면 베란다에
나와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는 남자의 등은 오히려 분명하다
남자는 처음부터 등이 그랬다
가려운 모양이다 손을 등으로 가져간다
형광등이 움찔거린다
남자의 손에서 끈적거리는 미세한 굉음
레코드판이 돌아간다 남자의 등도
따라서 일어선다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걸어간다
굉음이 수직으로 떨어진다
순간 남자의 등이 활짝 펴지며
움직임이 빨라진다
아득히 보이지 않는다
☆★☆★☆★☆★☆★☆★☆★☆★☆★☆★
어머니
한선미
자궁으로부터 추방당한
내동댕이쳐진 인간
뻘건 몸뚱이 가린다
자궁을 탈출했노라고
강하게
모체를 부정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울음
돌아가고 싶다
나체였던 에덴으로
아. 어머니
2005. 1. 4
☆★☆★☆★☆★☆★☆★☆★☆★☆★☆★
겨울
한선미
겨울이다
얼어터진 노인들 야위어진 얼굴에서
거칠어진 손등에서
쩍
갈라진 겨울은
늘어만 가는 청구서에도
꽁꽁 얼었다
겨울은
왜 이토록
얼어 터져야
하는 걸까
깜깜
한 줄 소식 없는 봄
그래서 더욱 목이 터지는
☆★☆★☆★☆★☆★☆★☆★☆★☆★☆★
사랑
한선미
하나. 환자를 사랑하는 가족들
환자에게 먹이면 큰 일 난다고
어쩔 수 없다며 참아야 한다고
환자와 씨름하며 음식을 주지 않는다
혹여 몰래 먹고 탈나지 않을까
조바심 내며 옆을 떠나지도 못 한다
둘. 환자를 사랑하는 가족들
오래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며
간절하게 음식을 바라는 환자에게
맛있는 음식을 권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과 함께
셋.
환자는 말이 없다
☆★☆★☆★☆★☆★☆★☆★☆★☆★☆★
주남저수지
한선미
수면에서
머리 위에서
힘차게 퍼득이는
철새떼가
움직임이 없다
날개가 없다
기다림의 무게가
핏빛으로 스며들고
저수지 아래
깊숙하게
깊숙하게 뿌리 내려
시커멓게 섬이 되었다
☆★☆★☆★☆★☆★☆★☆★☆★☆★☆★
늪에 빠지다
한선미
습한 기운이 감돌면 소리가 난다
낮고도 간절하게 발걸음을 불러 세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옷자락이 움직이고
머리카락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한발짝 한발짝 내딛는다
조금씩 조금씩 발목이 조여오고
가슴이 조여오고
머리밑이 쭈뼛해진다
목을 움직이기가 힘이 들면서
발가락 손가락의 마디가 굳어지고
감각이 무디어져 간다
귀속이 웅웅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기를 계속한다
머릿속이 서서히
하얗게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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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미 프로필
197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남
한국 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창원대 평생교육원 문창과 수료
현 학원 강사 창원시 거주
E-mail : ksunmi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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