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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시 모음 9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05.10.16. 14:03:33   조회: 3054   추천: 288
    여명문학:

    함석헌 시 모음 9편
    ☆★☆★☆★☆★☆★☆★☆★☆★☆★☆★☆★☆★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천리 길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면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세상이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뿐이야라고 믿어 주는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예" 보다도
    "아니오" 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어
    진실로 충언해 주는 그 한사람을!
    ☆★☆★☆★☆★☆★☆★☆★☆★☆★☆★☆★☆★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현

    만리 길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함석헌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 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
    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
    삶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

    함석헌

    맹꽁이의 음악 너 못 들었구나.
    구더기의 춤 너 못 보았구나.
    살무사와 악수 너 못해보았구나.

    파리에게는 똥이 향기롭고
    박테리아에게는 햇빛이 무서운 거다.

    도둑놈의 도둑질처럼 참 행동이 어디 있느냐?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처럼 속임 없는 말이 어디 있느냐?
    거지의 빌어먹음처럼 점잖은 것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정치가의 정의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고,
    군인의 애국보다 한층 더 믿을 만한 것이고
    종교가의 설교보다 비길 수 없이 거룩한 것이다.
    ☆★☆★☆★☆★☆★☆★☆★☆★☆★☆★☆★☆★
    오늘

    함석헌

    여기 흰 날이 왔도다
    낭비하자 말지어다

    영원에서 이 날은 나왔고
    영원으로 밤이면 돌아간다

    이날을 미리 본 눈이 없고
    보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여기 흰 날이 왔도다
    낭비하지 말지어다.
    ☆★☆★☆★☆★☆★☆★☆★☆★☆★☆★☆★☆★
    진리

    함석헌

    진리는 슬퍼,
    파랗게 슬퍼.
    분주한 일 다 마치고
    떠들던 손님 다 보내고
    사람이 다 자고
    새도 자고 쥐도 죽은 밤
    티끌이 다 가라앉고
    구름 다 달아나고
    높이 드러나는 파란하늘
    깜박깜박하는 파란 별
    아슬하게 올려다볼 때 같이,
    진리의 얼굴 마주 대하면
    파랗게 슬퍼.

    진리는 슬퍼,
    파랗게 슬퍼.
    엉클어진 넝쿨 다 헤치고
    우는 시냇물 그대로 남겨두고
    험한 골짜기를 건너
    위태로운 바위를 더듬어
    무르익은 산과를 내버리고
    어지러이 피는 꽃밭도 뒤에 두고
    나무도 없고 풀도 없는 높은 봉에
    하늘 쓰고 돌 위에 앉아
    포구의 그림자도 없이
    망망하게 열린 파아란 바다
    끝없이 일고 꺼지는 파란 물결
    아득하게 바라볼 때 같이,
    진리의 눈동자 건너다보면
    파랗게 슬퍼
    ☆★☆★☆★☆★☆★☆★☆★☆★☆★☆★☆★☆★
    참외를 사는 계집

    함석헌

    꽃 쓰러진 배꼽 달고 줄기 달린 꼭지 쓴 줄을
    배꼽 줄 떨어진 날부터 먹어 알아온 참외를
    "이 참왼 꼭지에 갈수록 더 달다" 하는
    "참외 참외" 하며 말 파는 사내 말 곧이 사
    대가리 같은 박참외를
    한 입 또 한 입 싱겁게 다 먹었구나

    남의 말 믿고 맛을 따라
    내 혀 도리어 의심하는 어리석은 계집
    먹다 남은 쓰디쓴 꼭지 공중에 내던진 후
    입 닦고 손 떨고 멋없이 구름 보고 서니
    배는 풍랑 맞고 파선한 뱃잔등 같고
    빈 주머니만 그 위에 맥없이 목을 매고 달려
    지나가는 초가을 바람에 흔들 또 흔들.
    ☆★☆★☆★☆★☆★☆★☆★☆★☆★☆★☆★☆★
    하나님

    함석헌

    몰랐네
    뭐 모른지도 모른
    내 가슴에 대드는 계심이었네

    몰라서 겪었네
    어림없이 겪어보니
    찢어지게 벅찬 힘의 누름이었네

    벅차서 떨었네
    떨다 생각하니
    야릇한 지혜의 뚫음이었네

    하도 야릇해 가만히 만졌네
    만지다 꼭 쥐어보니
    따뜻한 사랑의 뛰놂이었네

    따뜻한 그 사랑에 안겼네
    푹 안겼던 꿈 깨어 우러르니
    영광 그득한 빛의 타오름이었네

    그득 찬 빛에 녹아버렸네
    텅 비인 빈탕에 맘대로 노니니
    거룩한 아버지와 하나됨이었네

    모르겠네 내 오히려 모를 일이네
    벅참인지 그득 참인지 겉 빔인지 속 빔인지
    나 모르는 내 얼 빠져든 계심이네
    ☆★☆★☆★☆★☆★☆★☆★☆★☆★☆★☆★☆★
    할미꽃

    함석헌

    얼음도 아니 녹아 피는 향기 갸륵커늘
    고개 숙고 털옷 입어 숨기잠 웬 뜻인고
    깊은 속 붉은 맘 찾는 임만 볼까 함이네.

    가뜩이 덧없는 봄 채 오지 못한 적에
    잠시 영화 안 누리고 질러감 웬일인고
    동풍에 백발이 날아 더욱 눈물겹고나

    얼음과 싸우던 뜻 아는 이 하나 없고
    덧없는 한때 영화 다투는 꼴 가엾어서
    흰 머리 풀어 흔들고 허허 웃는 노장부

    백화요란(百花요亂) 계집년들 봄꿈 깰 줄 모르건만
    서리 치는 가을 심판 어이 멀다 할 것이냐
    막대로 하늘 가리켜 부르짖는 예언자

    동풍 비에 머리 푸는 즐풍목우(櫛風沐雨) 저 사내야
    세상이 너 모른다 슬피 한숨 짓는 거냐
    온 세상 다 모른대도 눈물질 난 아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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