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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시 모음 59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05.08.20. 19:03:48   조회: 3550   추천: 523
    여명문학:

    고은 시 모음 59편
    ☆★☆★☆★☆★☆★☆★☆★☆★☆★☆★☆★☆★
    가랑잎

    고은

    우리가 감히 가랑잎 하나에도
    아무런 가책 없겠는가
    분단 권세야
    야 이놈아
    이제 그만 멎어버려라
    산등성이 바람 친다
    누이야
    네가 있구나
    몇 천 년의 누이야
    ☆★☆★☆★☆★☆★☆★☆★☆★☆★☆★☆★☆★
    가사메댁

    고은

    새터 두희봉이 마누라 가사메댁은
    울음소리 청승맞기로 으뜸이어요
    남원 운봉 지리산 물소리 받아왔다지요
    그 울음소리 옆에서는
    절구통도 절구공이도 따라 울게 되어요
    한규 할아버지의 꼬부랑 자당께서
    그 좁쌀여우 뒷호강하더니
    여든여섯에 세상 떠났는데
    고씨네 사촌 육촌 팔촌 아낙 가운데
    울음소리 하나 변변한 것 없어서
    한규 할아버지 끌끌 혀를 찼지요
    할 수 살 수 없이
    가사메댁 보리 한 말 주고 사다가 울었어요
    그 울음소리
    그 사설 풀어나가는 울음소리 판소리
    꼬부랑 자당 한평생을
    산등성이 기어오르다가 내려오다가
    갖은 양념 청승고개 다 떨어 엮어 내려가는데
    그 울음소리 판소리
    큰 초상 난 집 마당 한번 오젓 짭짤하구나
    ☆★☆★☆★☆★☆★☆★☆★☆★☆★☆★☆★☆★
    거름 내는 날

    고은

    내 앞에서 자란 자식
    벌써 코밑에 잔털 난 자식
    쇳내 나는 이놈 데리고
    경운기 함께 탄다
    아랫뜸 지나
    꽤나 먼 길 거름을 낸다
    갓난이때 잘도 보채던 놈이
    이제는 입이 굼떠
    별반 성난 듯이 말도 없다
    이놈하고 가다가
    상묵이네 논 둔치에서
    까딱 엎어질 뻔했다가도
    용케 경운기 손잡이 잘 휘어 잡았다
    추운 날도 느린 새는 느리게 난다
    사뭇 점잖다
    우리 짚뭇은 다 들여가고
    다른 집 짚벼눌이 더러 논에 있다
    올해는 객토 못하는 대신
    여름내 만든 퇴비거름
    맛있는 거름
    논에 내니
    논 좀 보아라
    논이 헤헤 입 벌리고 좋아한다
    남의 논들이야
    너무 일직 방정떤다 할지 모르나
    우리 논이 좋아하니
    나도 내 자식도 함께 좋구나
    하늘이야 높아서 소 닭 보듯 하고
    다섯 번 거름 실어내면
    한나절이 넘어서
    거름냄새 퀴퀴 쩐 몸으로
    비로소 내 자식 입을 연다
    아버지
    내년 절충못자리는 내가 할께요
    어느덧 덧없구나 내 자식이 자식 아니다
    나와 내 자식 이 들판에서 비로소 나란히 형제다
    어서 가자 가서 술 한잔 주고받자
    ☆★☆★☆★☆★☆★☆★☆★☆★☆★☆★☆★☆★
    걸레

    고은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 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
    곡비(哭婢)

    고은

    조선시대 양반 녀석들 딱한 것들
    폼잡기로는 따를 자 없었다
    그것들 우는 일조차 천한 일로 여겼것다
    슬픔조차도 뒤에 감추고 에헴에헴 했것다
    그래서 제 애비 죽은 마당에도
    아이 아이 곡이나 한두 번 하는둥마는둥
    하루내내 슬피 우는 건 그 대신 우는 노비였것다

    오늘의 지배층 소위 오적 육적 칠적 역시
    슬픔도 뭣도 모르고 살면서 분부를 내리것다
    울음 따위는 개에게도 주지 말아라
    그런 건 이른바 민중에게나 던져주어라
    그 민중이나 울고불고 아이고 대고 할 일이다
    그런 천박한 일 귀찮은 일은 내 알 바 아니야

    하기야 슬픔이 본질적인 것이 되지 않을 때
    울음이 말단이나 노동자에게만 머물 때
    그런 것들이 다만 천박한 것으로만 보일 때
    시인아 너야말로 그 민중과 함께
    민중의 울음을 우는 천한 곡비이거라 곡비이거라
    감옥의 무기수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내 인생을 노래해 주시오
    그 말씀 잊어버릴 때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 아니다
    ☆★☆★☆★☆★☆★☆★☆★☆★☆★☆★☆★☆★
    교상기도(橋上祈禱)

    고은

    오래, 새벽을 거닐어 간다.
    안개 속에 나오는
    다리위를.

    잠든 한강(漢江)이 안개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안개처럼 여의도(汝矣島)로 사라져간다.
    안개에는 많은 그림자가 들어 있나니,
    내가 돌 하나로 던진다.

    한 점의 물소리가 나면
    이어서 모여드는 고요,
    환도(還都) 후
    누이가 이곳에서 빠진 소리였다.
    세월이 씻기어 적어진 그 소리로야 아

    더 흐르면
    안남을 그 소리로야
    비로소 이곳이었나 보다
    졸음을 깨우는 누이의 울음이듯이,
    새벽은 말하지 않는다.

    드디어 와,
    누이는 와서 내 앞에 비 맞은 빛같이야
    빛나게 그치어 있다.
    옛 시절의 약속에 못견디우 듯
    우는 입술.

    그러나 새벽이어
    더 뚜렷이도 다가드는
    내 누이의 낯선 모습을 아느냐.

    오래, 안개에 새인
    새벽 등불이 이제 보이면
    누이는 또 가버리나,
    안개 속에 눈감기는 어둠이 되나.
    이제는 어느 때인가

    다리 위에서야
    다리 아래의 강위에
    솟아 오는 깊음을 보는
    내 소름으로
    자는 바람은 일어나,
    누이는 멀어져 간다.

    잠든 한강(漢江)의 안개 속에서
    떠는 나의 눈은
    얼마나 졸음을 새어왔느냐.
    다리 위에서 나는 이제 쓰러지며
    나를 사로잡는 누이여
    나의 기도를 너는 다 앗아간다.
    새벽은 말하지 않느냐.
    ☆★☆★☆★☆★☆★☆★☆★☆★☆★☆★☆★☆★
    국도(國道)

    고은

    지나 왔다.
    아무도 만난 일이 없다.
    이따금 형석(螢石)빛 습기(濕氣) 속으로
    젖은 개똥벌레를 만나고
    먼 바다에서 십이음(十二音)의 배들이 죽어서 불빛이 된다.
    기다리는 것은 미지(未知)의 친척(親戚)들,
    그러나 그들을 만난 일이 없다.
    차라리 잠든 세상에서 잠들지 않은 절도가 된다.
    이 밤 세 시(時)와 네 시(時) 사이를
    마시던 술잔은 그대로 놓여 있는 주택(住宅)을 찾는다.
    그리고 임자가 바뀔 개량종자(改良種子)의 밭들을 찾는다.
    이제 나는 찾았다. 온갖 절교(絶交)의 정적(靜寂)을

    그리고 지나왔다. 아무도 만난 일이 없다.
    밤 네 시(時)의 국도(國道)에는
    여름철의 말 끝들이 남아 있다.
    `까' `요' `다' `요'……
    어둠 속에서 의문부(疑問符)가 없어지고
    전해진 뜻이 없어진 채 남아서 빛나고 있다.
    지나왔다. 수레가 지나간 뒤,
    말오줌 자국이 적셔진 곳을.
    그리하여 가장 취할 진정제(鎭靜劑)를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주어서 던졌다.
    어떤 뜻밖의 언덕에 가까스로 명중(命中)했느냐,
    바다가 내 흉터를 모조리 빼앗아 갈 때,
    아직 새벽은 멀고 말끝들이 남아 있다.

    이윽고 바다가 죽은 어부(漁夫)들을 부른다.
    새벽이다. `까' `요' `다' `요'
    나는 지친 모자를 벗어 간조(干潮)의 머리카락을 뿌린다.
    새벽 배는 비어 있을 뿐,
    지나왔다. 배들이 죽었다. 나는 말끝처럼 하얗게 죽으리라.
    ☆★☆★☆★☆★☆★☆★☆★☆★☆★☆★☆★☆★
    귀성(歸省)

    고은

    고향길이야 순하디 순하게 굽어서
    누가 그냥 끌러둔 말없는 광목띠와도 같지요
    산천초목을 마구 뚫고 난 사차선 저쪽으로
    요샛사람 지방도로 느린 버스로 가며 철들고
    고속도로 달리며 저마다 급한 사람 되지요
    고향길이야 이곳저곳 지나는 데마다 정들어
    또 더러는 빈 논 한 배미에 밀리기도 하고
    또 더러는 파릇파릇 겨울 배추 밭두렁을 비껴서
    서로 오손도손 나눠 먹고 사양하기도 하며 굽이치지요
    삼천리 강산 고생보다는 너무 작은 땅에서
    오래도록 씨 뿌리고 거두는 대대의 겸허함이여
    자투리 땅 한 조각이라도 크나큰 나라로 삼아
    겨우 내 몸 하나 경운기길로 털털 감돌아 날 저물지요
    어느새 땅거미는 어둑어둑 널리는데
    이 나라에서 왜 내 고향만이 고향인가요
    재 넘어가는 길에는 실바람 어느 설움에도
    불현듯 어버이 계셔야 해요 그리운 내 동생들 달려오지요
    ☆★☆★☆★☆★☆★☆★☆★☆★☆★☆★☆★☆★
    그 할머니

    고은


    몇해 전 겨울이었지요 앞산 골짜기에서
    울음소리 훌쩍훌쩍 들렸습니다
    다가가서 우는 할머니 달래었습니다
    남의 집 식모살이라 울 데도 없어
    여기 나와서 혼자 우는 것이었지요
    바로 어제가 세상 떠난 그 양반 제삿날이라
    메 한 사발 올리지 못하고 밤을 새워서
    오늘 아침 울음으로나 잠깐 제사 지내는 것이지요
    나야 별소리로 더 달랠 수 있다지만
    우는 할머니 따라 내 설움으로 함께 울었습니다
    ☆★☆★☆★☆★☆★☆★☆★☆★☆★☆★☆★☆★


    고은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
    깽매기 소리

    고은

    가을걷이 끝나고도
    삼동네 풍장 칠 일 없어요
    반장 고갑룡이는
    제 집 뒷방에 둔
    깽매기 징 장고들이 궁금해서
    그것들 꺼내다 늘어놓고
    먼지도 털어주고
    잿물 찍어 쇠 닦아주기도 하다가
    어디 한 번 소리 내봐라 하고
    오래오래 소리 못낸 깽매기 냅다 쳐보니
    그 소리 동네에 다 들려
    아닌 밤중에 이 무슨 깽매기 소린가
    도깨비 양반 장난인가
    죽은 칠성이 혼백 돌아와 신명나는가
    그렇지 젊어서 죽은 칠성이
    깽매기 자진모리 한 번 눈 지그시 감고 신들렸지
    얼쑤 어깨죽지 뛰놀았지
    무논갈이 소 모가지 고단하듯 고단한 세월 신들렸지
    ☆★☆★☆★☆★☆★☆★☆★☆★☆★☆★☆★☆★


    고은

    봄이 왔다 해도
    봄이 와서 갔다 해도
    욧골이나 황골 산시골에는
    꽃 하나 없네
    그 흔해빠진 목련도 벚꽃도 없네

    다행이야 남새밭에 노란 장다리꽃 있네
    이 얼마나 넘치는 기쁨이냐
    산모퉁이 돌자
    아 거기에 산싸리꽃 무더기 피어 있네
    그러고 보니 밭 묵은 데
    눈꼽 같은 냉이꽃 자욱하게 피어 있네
    암 피어 있네 피어 있네

    우리 산시골 꽃 구경이야 이로써 족하구말구
    꽃도 쓸 만한 건 다 뽑혀 갔네
    서울로 서울로
    이 나라 산천에서 뽑혀 갔네

    어디 꽃뿐인가
    여자뿐인가
    면사무소 마당 큰 나무 몇 그루
    그놈들도
    88올림픽에 어디에 뽑혀 가려고
    밑둥 돌려놓았다네

    봄이 와서 갔다 해도
    허허 꽃 하나 없네
    텔레비젼만 있네
    텔레비젼만 있네
    ☆★☆★☆★☆★☆★☆★☆★☆★☆★☆★☆★☆★
    나무의 앞

    고은

    보아라 사람의 뒷모습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저것이 신의 모습인가

    나무 한 그루에도
    저렇게 앞과 뒤 있다
    반드시 햇빛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남쪽과 북쪽 때문이 아니라
    그 앞모습으로 나무를 만나고
    그 뒷모습으로 헤어져
    나무 한 그루 그리워하노라면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일지라도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바람에 잎새 더 흔들어대고
    내년의 잎새

    더욱 눈부시게 푸르러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여름 다하여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단풍
    사람과 사람 사이
    어떤 절교로도
    아무도 끊어버릴 수 없는 단풍
    거기 있어라
    ☆★☆★☆★☆★☆★☆★☆★☆★☆★☆★☆★☆★
    나의 추억

    고은

    나는 세 살 때부터 늙었다
    어떤 놈은 피리를 불고 다녔다
    어떤 놈은 북을 쳤다

    어떤 놈은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는 동안
    밤 강물이 흘렀다

    나는 열 살 때도 늙어버렸다
    오두막에도 평화가 없는 시절
    가을벌레들아
    가을벌레들아
    밤새도록 나는 네 동무였다

    항상 젊은 영혼을 꿈꾸며 노예를 꿈꾸며
    ☆★☆★☆★☆★☆★☆★☆★☆★☆★☆★☆★☆★
    난초 앞에서

    고은

    무지가 난초처럼 조용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무지는 반드시 행위로 나타난다

    이윽고 오늘 아침 난초꽃이 피어났다
    괜히
    밖에서 백합꽃도 피었다
    긴 장마 동안
    아무런 꽃도 필 수 없다가

    오 무지여 암흑의 행위여 가거라
    이 꽃들에게
    할 말이 없을 때가
    얼마나 영광인가
    ☆★☆★☆★☆★☆★☆★☆★☆★☆★☆★☆★☆★
    내 아내의 농업(農業)

    고은

    이미 날이 저문다.
    시장기 든 해거름의 일꾼들이 돌아온다.
    어떤 장님도 눈을 뜨게 한다.
    풀밭에서 몰고 온 이웃집 목우(牧牛)는
    긴 입안이 가득하게 헛새김질을
    한다. 제 주인의 잘못을 오래오래 걱정할 때도 있다.
    청과물(靑果物) 장에 짐을 부리고 온 내 만혼(晩婚)의 처음,
    아직 아내는 들에서 오지 않았다.
    나는 미농(美濃)무우로 담은 깍두기와 찬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홍차(紅茶)를 마실 것이다.
    첫딸의 이름은 아내의 허리에 달아 두려 한다.
    러시아의 부칭(父稱)을 넣지 않으련다.
    이제 바다는 만조(滿潮)일 것이다.
    아내의 수건 벗은 새벽머리로부터 이 세계는 어두워 온다.
    이윽고 그네가 먼 들길을 건너올 때, 우리나라의
    별똥이 그 위에 흐른다.
    나는 아무 뜻도 없는 소망(所望)을 뒤늦게 표현한다.
    아내의 손발이 얼마나 텄을까.
    오늘 장에서 신(神) 같은 크리임을 사 왔다.
    이제 내가 찾을 아내 의 가슴은 죄송한 내실(內室)에 있다.
    오직 입을 다물고 해산(解産)을 기다릴 뿐, 아내의 농업(農業)은
    어디로 떠날 수 없도록 교목(喬木)을 섬긴다.
    저 멀리 미혼(未婚)의 기적(汽笛)소리가 들린다.
    이제 내 아내는 한쪽 귀를 떨며 작은 문을 연다.
    그네의 모습은 내가 끝없이 반기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바다는 만조(滿潮)일 것이다.
    ☆★☆★☆★☆★☆★☆★☆★☆★☆★☆★☆★☆★
    눈길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들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써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
    다시 오늘

    고은

    어제를 반성하기보다
    오늘을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죽음일 따름
    아 짐승들은 자유롭구나
    반성 없는 그들의 하루하루와 함께
    우리는
    오늘을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오늘 나는 무엇인가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구나
    반성이 없는 것과
    반성이 있는 것 사이
    그 질곡의 배회에 맴도는
    나는 무엇인가

    벌써 아침해의 찬란한 빛은 낡아
    얼어붙은 것을 다 녹이지 못하고
    다시 얼기 시작하는 저녁이
    저쪽에서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오늘을 때려 죽이리라
    나는 무엇인가
    내가 몽둥이이기 전에
    내가 벼락이기 전에
    내일을 잉태한 몸으로
    꽝 꽝 언 땅을 걸어간다
    찬 별빛이 나로 하여금 반짝반짝 빛난다

    아 그동안 오늘이 너무 컸다
    ☆★☆★☆★☆★☆★☆★☆★☆★☆★☆★☆★☆★
    대동강 앞에서

    고은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잠 못 이룬 밤 지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리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릿벌을 바라본다.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 되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거처를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그때까지는
    시퍼렇게 살아날 민족의 엄연한 씨앗이리라.

    오늘 아침 평양 대동강가에 있다.

    옛 시인 강물을 이별의 눈물로 노래했건만
    오늘 나는 강 건너 바라보며
    두고 온 한강의 날들을 오롯이 생각한다.

    서해 남바다 거기
    전혀 다른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한다.

    해가 솟아오른다.

    찢어진 두 동강 땅의 밤 헤치고
    신 새벽 어둠 뚫고
    동트는 아픔이었다.

    이윽고 저 건너 불끈 솟아오른
    가멸찬 부챗살 햇살 찬란하게 퍼져간다.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지난 세월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이었고
    서로 다른 노래 부르며
    나뉘어졌고 싸웠다
    그 시절 증오 속에서 500만의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 시절 강산의 모든 곳 초토였고
    여기저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가 천지하고 있었다

    싸우던 전선이 그대로 피범벅 휴전선이었다
    총구멍 맞댄 철책은
    서로 적과 적으로 담이 되고
    울이 되어
    그 울 안에 하루하루 길들어져 갔다
    그리하여 둘이 둘인 줄도 몰랐다
    절반인 줄도 몰랐다


    둘은 셋으로 넷으로 더 나뉘어지는 줄도 몰라야 했다
    아 장벽의 세월 술은 달디달더라

    그러나 이대로 시멘트로 굳어버릴 수 없다


    이대로 멈춰
    시대의 뒷전을 헤맬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였다
    천년 조국
    하나의 말로 말하였다
    사랑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였다
    하나의 심장이었고
    어리석음까지도 하나의 지혜였다
    지난 세월 분단 반세기는 골짜기인 것
    그 골짜기 메워
    하나의 조국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무엇하러 여기와 있는가
    아침 대동강 강물에는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내일이 흘러가리라
    그동안 서로 다른 것 분명할진대
    먼저 같은 것 찾아내는 만남이어야 한다
    큰 역사 마당 한가운데
    작은 다른 것들을 달래는 만남의 정성이어야 한다

    얼마나 끊어진 목숨의 허방이었더냐
    흩어진 원혼들의 흔적이더냐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의 민족이란
    지난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온갖 오류
    온갖 야만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전혀 새로운 민족의 세상을
    우르르 모여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새로운 통일인 것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눈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 얼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 송이 꽃 들고 돌아간다
    ☆★☆★☆★☆★☆★☆★☆★☆★☆★☆★☆★☆★
    대보름 뒤

    고은

    고향에는 밤이 있다
    한없이 환한 대보름 뒤의 달밤이 있다
    잠 깨어 뒷간에 간다
    벌써 요강 넘쳐서
    바깥으로 나가 뒷간에 간다
    자지러지게 환한 밤
    건너마을 수동이네 헛간 위
    지붕 못 걷히게 얹어둔 헌 쟁기까지 보이는 밤
    참수리가 공중에서 먼 데까지 보듯이
    병아리 보듯이
    멀리 멀리 바위배기 상여집까지 보이는 밤
    보름 쇠고 치던 징소리
    아직도 귀에 쟁쟁
    가슴 설레어 천리길 나서고 싶다
    과부 자식 아니랄까
    소문난 건달 창섭이 오줌 싸고 진저리치며
    그 길로 휘영청 나서고 싶다
    곰아 곰아 너 숨었거든
    발바닥만 핥지 말고 너도 나와 성큼 나서 보아라
    환한 달밤 아쉬워 어찌 잠자누 잠만 처자누
    ☆★☆★☆★☆★☆★☆★☆★☆★☆★☆★☆★☆★
    대보름날

    고은

    정월 대보름날 단단히 추운 날
    식전부터 바쁜 아낙네
    밥손님 올 줄 알고
    미리 오곡밥
    질경이나물 한 가지
    사립짝 언저리 확 위에 내다 놓는다
    이윽고 환갑 거지 회오리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령 늘어놓으려 하다가
    오곡밥 넣어가지고 그냥 간다
    삼백예순 날 오늘만 하여라 동냥자루 불룩하구나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이 동네 갈 것 없네 다 돌았네
    자 우리도 개보름 쇠세 하더니
    마른 삭정이 꺾어다 불 놓고
    그 불에 몸 녹이며
    이 집 저 집 밥덩어리 꺼내 먹으며
    두 거지 밥 한 입 가득히 웃다가 목메인다
    어느새 까치 동무들 알고 와서 그 부근 얼쩡댄다
    ☆★☆★☆★☆★☆★☆★☆★☆★☆★☆★☆★☆★
    대장경(大藏經)

    고은

    한반도야 한 이삼백년만 가라앉아라
    바다 밖에 없도록
    아무리 찾아보아도
    푸른 바다 밖에 없도록
    그리하여 이 강산을
    대장경 원목으로 소금에 절였다가
    한 이삼백년 뒤에 떠오르게 하라
    하늘의 일월성진이야
    그대로 지긋지긋하게 두고
    한반도의 온갖 힘을 죽여서
    빈 땅으로 떠오르게 하라
    거기에 새로 나라를 세우고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말하게 하라
    삭지 않은 대장경을 남기게 하라
    한반도야. 그냥 이대로는 안되겠구나
    그냥 이대로는
    풀 한 포기조차 나지 않겠구나
    한반도야 한반도야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온갖 것 제대로 제대로 살게 하라
    ☆★☆★☆★☆★☆★☆★☆★☆★☆★☆★☆★☆★
    동고티 무덤

    고은

    입춘 무렵 보리밭 하나는 신명나 푸르지만
    중뜸 아이들 쇠정지 아이들 대여섯이
    어디 갈 데 있나
    걸핏하면 동고티 큰 무덤
    매련퉁이 무덤에 가서
    자치기도 하고 개씨름도 하다가
    한두 놈은 끝내 울기 십상이지 십상이구말구
    그런지라 그 무덤 배겨나지 못해서
    이제는 잔디밥 다 벗겨져 벌거숭이 되고 말았지
    갈뫼 조송덕이 영감네
    할아버지라나 증조할아버지라나
    그 할아버지 금슬 좋게 합장한 무덤인데
    송덕이 영감 간도로 떠나버리자
    누구 하나 돌보지 않는
    길가에 나앉은 상팔자 되었네
    아이들이야 뭘 아나
    그저 하루하루 닳아빠지는 무덤에서 까불어댈밖에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그 무덤 속에서 하얀 수염 할아버지 할머니 일어나서
    이놈들아
    우리가 고단하다 다른 데 가 놀아라
    산 사람하고 죽은 사람하고 너무 가까워도 안 좋느니라
    이 꿈 꾼 봉식이가 글쎄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그냥 약탕관 두고 숨 꼴칵 거두고 말았지 산 무덤이었나?
    ☆★☆★☆★☆★☆★☆★☆★☆★☆★☆★☆★☆★
    들꽃

    고은

    들에 가 들꽃 보면 영락없지요
    우리 겨레 은은한 품성 영락없지요
    들꽃 몇천 가지 다 은은히 단색이지요
    망초꽃 이 세상꽃
    이것으로 한반도 꾸며놓고 살고지고요
    금낭초 앵초꽃
    해 질 무렵 원추리꽃
    산들바람 가을에는 구절초 피지요
    저 멀리 들국화 피어나지요
    이런 꽃 피고지고 복이지요
    이런 꽃 피고지고 우리 겨레 복이지요
    들에 나가 들꽃 보면 영락없지요
    ☆★☆★☆★☆★☆★☆★☆★☆★☆★☆★☆★☆★
    딸그마니네

    고은

    갈뫼 딸그마니네집
    딸 셋 낳고
    덕순이
    복순이
    길순이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가 되었구나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
    딸만 낳는 년 내쫓아야 한다고
    산후 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 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
    삭은 울바자 따 쓰러뜨리고 나서야
    엉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
    그러나 딸그마니네 집 고추장맛 하나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는 법 배우러 온다지
    그 집 알뜰살뜰 장독대
    고추장독 뚜껑에
    늦가을 하늘 채우던 고추잠자리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 있네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
    딸그마니 어머니하고 함께 담는다고
    동네 아낙들 물 길러 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받네
    그러던 어느 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다가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
    아이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
    세상에는 그런 년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


    고은

    땀 흘리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하물며 방금 벤 풀냄새의 진리이랴

    사랑하는 그대가 말했지
    땀을 흘리고 나면
    실컷 울고 난 것보다 더 새롭다고
    이 세상이 새롭다고
    ☆★☆★☆★☆★☆★☆★☆★☆★☆★☆★☆★☆★
    모 심는 날

    고은

    못자리하고 본잎 나왔을 때 비닐 걷고 모판 바람 쏘일 때
    모 쪄다가 모내기할 때 그 모 무럭무럭 자라나는 한더위 때
    이윽고 황금물결 이루어 가을걷이 다가올 때 나락 벨 때
    이 논농사로 먹은 것 없고 입은 것 없고 누릴 것 없이도
    농사꾼은 능히 하늘에 있고 땅속 깊이 스며서 에렐루 상사디야
    온갖 걱정 두고도 이토록 아비 어미 된 기쁨 어디 가랴

    볍씨 담가 이렛동안 불려서 조심조심 방 아랫목에 싹 틔우며
    이것이 어찌 태어나 쌀 되랴 했건만 보온못자리 잎새 나왔다
    5월 들어 비닐 걷으니 파란 모 바깥 세상에 나왔다
    이 기쁨으로 지내다가 마정리 중터 삼모네와 삼모네 큰집
    치욱이네와 용술이 처가집해서 네 집이나 같은 날 모 심는 날이구나

    모 심는 날이래야 이제는 사람 열 여섯 열 아홉 놉 얻지 않고
    그저 이앙기 한 대가 모 모가지까지 꽂으면 되는 세상
    그것도 한나절이면 웬만한 논배미야 진작 모내기 끝나 버린다
    중터 사람들의 논도 버드실들이고 가죽우물골의 논도
    내리 부암리 삼암리 논도 다 버드실들을 이루고 있구나
    엣따 버드실들 넓은 들 한천의 물이 갈라서 두 개로구나
    이쪽 저쪽 대번에 모 심은 논으로 바꾸어서 살아났구나

    긴 겨울 내내 흙 바닥으로 잘도 견디어 내고
    이제 모 심고 모 자라야 제 할 일 하는 나라가 아니냐
    송화가루 날리는데 영농자금 뒤늦게 찔끔 나와 보아야
    서로 급하니 누구 하나 한몫으로 가져가도 성에 안 찬다
    재산세 5천 원 되어야 일반자금 타낼 수 있는데
    당최 농협이란 데가 병같이 쓰고 약같이 쓴 데가 돼 놓아서
    농촌이 차 타고 바라보면 아무 일 없이 잘 되는 듯 하건만
    정작 아무개야 단 하루 세끼 살아 보아라 석탄 백탄 다 탄단다

    삼암리 진태는 군대 가서 배운 운전기술로 트럭 타니
    진태 하나 보고 몇 십 년 수절한 진태 어머니 땡감 같은 어머니
    어느덧 흰머리 양귀비 물들여서 뻔지르 검지만
    몸은 옛 몸 아니라 거동도 수월할 때가 드물고말고
    논 닷 마지기 모 심으니 마침 밥 때라 밥 이어 나르고 있다
    삼대 며느리 잘 들어앉아야지 오사바사한 년 아니고 말이지
    삼대는 고사하고 진태가 돌아와 어서 장가나 들어야 할텐데
    장가가던 머리로 떡 두꺼비 같은 손자놈 하나 얼뚱아기 하나
    평생 허전했던 품에 안고 두둥실 두둥실 떠나가 봐야 할텐데
    ☆★☆★☆★☆★☆★☆★☆★☆★☆★☆★☆★☆★
    묘지송(墓地頌)

    고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 자손은 차례차례로 오리라.
    지난 밤 모든 벌레 울음 뒤에 하나만 남고 얼마나 밤을 어둡게 하였던가.
    가을 아침, 재보(財寶)인 이슬을 말리며 그대들은 잔다.
    햇빛이 더 멀리서 내려와 잔디 끝은 희게 바래고
    올 이른 봄의 할미꽃 자리 가까이 며칠만의 산국화가 모여 피어 있구나.

    그대들이 지켰던 것은 비슷비슷하게 사라지고 몇 군데의 묘비(墓碑)는 놀라면서 산다.
    그대들이 살았던 이 세상에는 그대의 뼈가 까마귀 깃처럼 운다 하더라도
    이 가을 진정한 슬픈 일은 아니리라.
    오직 살아 있는 남자(男子)에게만
    가을은 집없는 산길을 헤매이게 한다.

    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제일(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
    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옛날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잘못인지 노랑나비가 낮게 날아가며
    이 가을 한 무덤 위에서 자꾸만 저 하늘에 뒤가 있다고 일러 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은 곧 오리라.
    ☆★☆★☆★☆★☆★☆★☆★☆★☆★☆★☆★☆★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소백산맥)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正義(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벼를 털며

    고은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허깨비가 아니다
    지은 가을 곡식 엄숙함이여
    벼 눕혀 말리면 안 된다 해도
    쌀에 싸라기 있고
    밥맛이 가신다 해도
    아서라 볏단 세우기에 어디 일손 남아 돌더냐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논두렁에는
    콩도 팥도 심지만 피가 성했다
    때마침 찬바람에 벼 잘 말라
    한 번 뒤집어 둔 다음
    일찌감치 벼 타작하니
    쉴 데 없는 마음 하나가 논 하나가 된다
    탈곡기 먼지 속에서
    늙어가는 안식구 일손 좋아
    오직 두 눈만 뻥 뚫려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 큰놈도
    거드는 솜씨 제법 건실하여서
    하루해 질 무렵까지는
    어둑발에 방아달 논 한 배미 다 털겠다
    이 세상은 무슨 일로도 다른 세상 아니다
    벌써 저녁 바람 찬 기운이 사납다
    이 세상은 우리 세상 우리 자식이 아니더냐
    된 일에 된 몸 쉬는 것도
    건너마을 어른 지나는 참이라
    벌써 다 터는가
    우선 한 배미지요
    쌀 좋겠네
    편히 건너가시지요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 먹어도
    말 한마디에는 언제나 오늘이 어린아이같다
    옛날 옛적 타작에는 개상 탯돌이다가
    옛날에는 홑태질로
    하루내내 훑어내다가
    이제는 탈곡기에 벼 털


    벼 한 가마 한 가마 곳간에 부리니
    곳간 문 열면 웃음 울음 가득하다
    며칠 지나 모진 공판장에 내볼지라도
    오늘 흐뭇흐뭇한 바 어이할 줄 모른다
    이 세상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허깨비가 아니다
    ☆★☆★☆★☆★☆★☆★☆★☆★☆★☆★☆★☆★
    부활(復活)

    고은

    동해(東海) 창망(蒼茫)하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은 잠자라.
    우리 동해(東海) 기슭의 몇 군데에
    서로 부서지면서 모인 게껍질들아
    지난밤에는 흰 구름의 울음을 울더니
    오늘 아침 해돋이 붉은 햇빛으로
    저마다 뼈 속의 살과
    두어 개의 눈을 얻어서,
    모든 외로운 거품을 내보내고
    동해(東海) 기슭을 일제히 기어 나가라.
    게들아 게들아 기어 나가라.
    그리하여 동해(東海) 깊은 바다 밑바닥에 들어가서
    가장 무서운 암초(暗礁)들을 물어뜯어라.
    또한 그리하여 아픈 바다는
    빛나는 아픔의 물결, 진노(震怒)하는 물결과
    서로 조각조각 사랑하는 물결로 물결쳐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도 깨어나서
    모든 뼈에 살이 싸이고
    떠난 넋들아 몸에 돌아오라.
    가을에 어린 것들과 늙은 것이 돌아가듯 돌아오라.
    동해(東海) 기슭 삼척(三陟) 주문진(注文津) 낙산사(洛山寺)에
    널린 오징어들아
    다시 눈부신 물오징어로 헤엄쳐서
    너희들의 자유와 슬기의 관능으로
    울릉도(鬱陵島) 독도(獨島) 근해(近海) 해조음(海潮音)의 햇빛을 받아라.
    이 나라의 죽은 것들아
    죽어서 집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들아
    저마다 가엾게 살아나서
    동해(東海) 기슭을 달밤의 모래알들로 사랑하고
    너희들은 백의민족(白衣民族) 인산인해(人山人海)의 춤으로 춤추어라.
    동해(東海) 창망(蒼茫)하라. 북과 쇠북아 울어라.
    ☆★☆★☆★☆★☆★☆★☆★☆★☆★☆★☆★☆★
    북악호랑이타령

    고은

    백 년 전까지는요
    북악 인왕에 호랑이가 불쑥 나타났지요
    대궐의 가여운 상궁아씨들도
    호랑이 울음소리 들었다지요
    아이구 무서워라 호랑이었지요
    보아요 북악 바위바위 얼마나 뛰어나요
    거기에 와 앞발 내디디면
    멋지고 멋진 호랑이었지요
    우리나라 통 큰 시악시 쩍 반했지요

    예부터 허튼 수작 관상에는 호식상이 있었지요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는 상이 그것이지요
    한양 4대문 밖 변방에서
    걸핏하면 어린아이 물어 가는
    그런 고얀 놈 없지 않았지요
    쯔쯔 더러는 인수봉 스님도 하나 물어갔지요
    ☆★☆★☆★☆★☆★☆★☆★☆★☆★☆★☆★☆★
    뼈 이야기

    고은

    산등성이마다 언덕마다 부랴사랴 밭머리마다
    땅 가물에도 원두 부쳐먹던 사람들 죽어 묻혔구나
    하루내내 뻐꾸기 소리 듣는 구멍 하나 뚫리지 않았건만
    순하디 순한 무덤들이여 살던 곳에서 죽은 복이여

    허나 어찌 이런 복으로만 이 땅이 저승이겠는가
    돌아보건대 너와 나 소나기같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왜놈들 총칼 게다짝 버리고 떠나간 뒤에 대고
    당장 새 세상 좋은 세상 열어 장고 치려 하였건만
    어언 40년 바람 잘 날 없이 우리 무엇을 하였는가

    하나로도 모자란 땅덩이 두 놈으로 딱 갈라서서
    서로 때려 죽이고 쏴 죽이고 가시철망 울 치고
    그 따위만 백 번 옳다고 무섭게도 헛되었구나
    이 막된 미움 가지고는 천 년인들 열리는 문 없음이여
    산 것들 지나새나 이 골이니 무덤인들 오죽하였겠느냐

    이제 우리에게 숙연히 머리 들어 할 일인즉
    남과 북쪽 오로지 원수였던 젊은이들 무덤을
    따로따로 섬길 것 아니라 내 편이 아니라
    저 팔월의 휴전선 비무장지대 풀밭에 합장하여
    그 위에 마음껏 해와 달 별들 다니게 하고
    산 사람 죽은 사람이 온 겨레로 뭉쳐 애끊이어라

    아직도 이 땅에는 제대로 거두지 못한 뼈 있고
    풋나기 인민군의 뼈 학도병의 뼈 버려져 있다면
    어디 그뿐인가 온갖 사연으로 죽어간 목숨들이여
    그것 하나하나 캐어다 그들도 함께 묻어서
    보아라 이제 이 커다란 만인총이 비로소 하나이겠구나
    이 하나 이 한 세상 이룩하기 얼마만인가
    또한 어디 이뿐인가 해방 이래 40년 가 버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 끌려간 동포
    만주땅 중국땅 버마 자바땅 비율빈 충승열도
    왜놈의 구주탄광 아오모리탄광 또 어디어디
    그런 곳 풀더미 속에 땅 속에 묻힌 뼈 한 도막인들
    단 한도막도 남기지 않고 샅샅이 찾아다가
    우리 7천만 품안에 모시고 실컷 깨쳐야 하리라

    내 어버이 무덤 한 쌍 소중하기 그지 없거니와
    이 겨례로 태어나 이 겨례 치욕으로 죽은 바
    원통하고 절통하였던 동포들의 삶과 죽음이
    어찌 내 아버지 아니던가 어머니 아니던가
    이날 이때 우리 무엇을 하였던가 말았던가
    겨례의 엄한 뼈 타국땅 구석에 그냥 버려두고
    우리가 어디에 겨례인가 만 번 거짓 아닌가

    보아라 산 사람이여 너와 나 살아 있음이 여기로구나
    먼저 비명으로는 명으로든 죽은 겨례붙이 마음삼고
    그들의 뼈를 이 땅의 정든 산천초목으로 더불어서
    온 겨례 하나로 일어선 그 날이 아기같이 오너라
    그 날이 씩씩한 총각같이 오너라 시악시같이 오너라
    삼천리 강산 번쩍 들어올려 우리 바이없는 자자손손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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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방

    고은

    사랑방에는 전설이 있다
    전설이 살아 있다
    죽은 사람도 살아나 오늘이다
    사랑방에는 옛과 오늘이 한 또래이다
    택시에는 유언비어가 있다
    그러므로 택시에는 진실이 있다
    사랑방에는 역사가 있다
    고려사절요 따위
    이조실록 따위보다
    훨씬 자유로운 역사가 있다
    사랑방에는 영웅이 있다
    택시에는 장영자 무슨자 있다
    사랑방에는 지배자가 아니라
    백성의 꿈이 있다
    사랑방에는 내일이 있다
    전하고 전해져서
    이윽고 일제히 일어나는
    울창한 숲이 있다
    선방에는 노승이 있다
    노승과 노승의 부재가 하나이다
    룸살롱에는 요지경이 돈다
    영동에는 과연 육체가 있다
    영동에는 강북의 수표가 있다
    사랑방에는 호롱불이 있다
    발고랑내 땀내 찌들고
    돼지기름 먹은 목침이 있고
    빈대자국 요란하지만
    거기에는 기나긴 인내가 있다
    우리가 고려조선
    역대로 견디어 온 된장이 있다
    사랑방에는 백성의
    이런저런 하잘나위 얘기가 있다
    별난 뻥이 아니라
    이웃마을 물쌈 얘기가 있다
    내일 고된 일 앞두고
    밤새는 줄 모르는 얘기가 있다
    ☆★☆★☆★☆★☆★☆★☆★☆★☆★☆★☆★☆★
    사치(奢侈)

    고은

    어린 시절, 고향 바닷가에서 자주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빨랫줄은 너무 무거웠고 빨래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오랜 병(病)은
    착한 우단 저고리의 누님께 옮겨갔습니다.
    아주 그 오동(梧桐)꽃의 폐장(肺臟)에 묻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누님은 이름 부를 남자가 없었고
    오직 `하느님!' `하느님!'만을 불렀습니다.
    저는 파리한 채, 누님의 혈맥(血脈)은 갈대밭의 애내로 울렸습니다.
    이듬해 봄이 뒤뜰에서 살다 떠나면
    어쩌다 늦게 피는 꽃에 봄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름 한동안 저는 흙을 파먹고 울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렸고 마을 뒤 넓은 간석농지(干潟農地)는 홍수에 잠겼습니다.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왔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찬 세면(洗面) 물에 제 푸른 이마 주름이 떠오르고
    그 수량(水量)을 피해 가을에는 하늘이 서서 우는 듯했습니다.
    멀리 기적(汽笛)소리는 확실하고 그 뒤에 가을은 깊었습니다.
    모조리 벗은 나무에 몇 잎새만 붙어 있을 때,
    누님은 그 잎새들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맑은 뜰 그 땅 밑에서 뿌리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더 푸르기 때문에 제 눈 빠는 버릇이 자고
    그러나 어디선가 제 행선지(行先地)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누님께서 기침을 시작한 뒤 저는 급격하게 적막하였습니다.
    차라리 제 턱을 치켜들어 보아도
    다만 제 발등은 노쇠(老衰)로 복수(復讐)받았습니다.
    마침내 제가 참을 수 없게 누님은 피를 쏟았습니다.
    한 아름의 치마폭으로 고히는 그것을 껴안았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누님의 깊은 부끄러움을.

    그리고 그 동정(童貞) 안에 내숙(內宿)한 조석(潮汐)을.
    그 뒤로 저의 잠은 누님의 잠이었습니다.
    누님의 내실(內室)에는 어떤 고막(鼓膜)이 가득 찼고
    저는 문 밖에서 순한 밤을 한 발자국씩 쓸었습니다.
    누님께서 우단 저고리를 갈아입던 날,
    저는 누님의 황홀한 시간을 더해서
    겨울 바닷가를 헤매이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듬해 봄의 음력(陰曆), 안개 묻은 빨랫줄을 가리키며
    누님의 흰 손은 떨어지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울지 않고 그의 흰 도자(陶磁) 베개 가까이 누워
    얼마만큼 그의 혼을 따라가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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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

    고은

    이상하다.
    언제나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그렇게도 익숙하건만……
    늙은 떡깔나무는 외면한 채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듯하고
    길은 부유(腐乳) 냄새가
    이제까지 모여 있다가 흩어지는구나.

    이상하다.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어가면
    내 발등은 먼저 간 자취로 떨리는구나.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가면
    외딴 곽새가 V자(字) 가지에서 날라 가 버릴 뿐이다.

    어느 날 일몰(日沒)이 늦었다.
    나의 산길에는 그때까지 아침 이슬이 마르지 않고 있다.
    자꾸 둘레를 돌아다보면서
    이윽고 부락암호(部落暗號)로 불러 보았다.
    저 앞에서 누가 반말로 대꾸한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줄 어떻게 알겠느냐.

    이상하다. 언제나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이 산길은 간조(干潮) 바다까지 보다 멀고
    먼 예리고 고개까지도 닿아 있다.
    비록 다른 길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 산길을 버릴 수 없구나.
    왜냐하면, 여기서 누구인가 낯선 면모(面貌)를 만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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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만이 할머니

    고은

    중뜸 간지랑나무 목백일홍 나무에
    느지감치 분홍꽃 덩어리 피어난 여름
    첫물 모기에 어린 살 물리며 듣던 이야기
    옛날옛적 이야기

    옛날옛적 한 마을에 늙은 홀어머니 모시고
    단둘이 사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철종 때인지 고종 때인지 어느 때일 까닭도 없이
    어느 이야기나 다 옛날옛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두리넓적 얼금뱅이 삼만이 할머니
    눈 펑펑 내리는 날
    한없는 날
    화롯불 삭아서 방안이 썰렁해도
    옛날옛적 노총각 이야기
    그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명주실꾸리 이야기

    옛날옛적 한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는데
    그만 강도들에게 제 누나가 업혀갔는데
    그 겨를에도 명주실꾸리에 실 매고 간 누나 찾아
    명주실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갔더니
    이윽고 어느 우물 열 길 드리워져서
    그 우물 밑으로 내려가 바윗장 들추었더니
    아 그곳은 별천지라
    이 세상은 엄동설한인데 그곳에는 복사꽃 핀 별천지라
    내일이면 청사초롱 초례청 차려
    강도 우두머리의 마누라 될 누나 찾아서
    에그머니나 어서 돌아가야지
    누나 업고 산 넘고 물 건너 돌아와
    누나는 이웃마을 총각한테 시집 가고
    아우는 건넛마을 달덩이 같은 큰애기한테 장가 들어
    잘 먹고 잘 살아서 백여든다섯 살까지 갔다는 이야기
    어찌도 그리 쩍쩍 늘어붙는 입담인지
    우리들 어린아이들
    산머루 눈동자에 온갖 세상 다 보여주고는 걷어갔지
    그 할머니 죽을 때도 이야기하려고 그랬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죽었다지
    아무리 입 닫아드려도 도로 벌어졌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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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밀회(密會)

    고은

    또다시 나는 새벽마다 무덤에 가야 한다.
    나와 함께 삼나무 묘판(苗板)을 만들고
    내 세수하는 물과 마실 물을 떠다 주고
    기꺼이 먼 심부름도 해 준 애의 무덤에 가야 한다.

    무덤은 질투(嫉妬)의 바다가 일어나는 언덕에 있고
    어제 다친 발을 나는 거기 가서 벗어야 한다.
    내 약속과 돌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새벽 돌길은 매우 험하다.

    그 무덤 가에서 벌써 연인(戀人)은 기다린다.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냥
    새벽 바다에서 온 바람을 치마에 받고 있다.
    오오 그렇게도 단정한 연인(戀人)아.

    새벽마다 만나도 항상 바다는 그대 앞에 깨어 있고,
    그렇게도 단정하게 자고 난 연인(戀人)아.
    그대가 무덤 가에서 미안한듯 내 품 안을 밀고
    어디선가 첫 숫꿩 울음소리가 무덤을 깨우며 지나간다.

    그러나 무덤은 나더러 아직 길이 멀다고
    오래 있다가 오라고 부탁한다.
    오오 새벽에 만나는 바다와
    나의 심부름꾼 무덤과
    나의 잉태한 연인(戀人)아.

    이제 마지막 별들이 찔끔찔끔 서두르고 있을 때
    나는 바다로부터 솟아난 비(碑)가 되고
    차라리 연인(戀人)은 무덤에게 맡겨야 한다.
    곧 말들이 모여 바쁜 꼬리로 나올 것이다.

    새벽 연인(戀人)아, 그대의 마을 일을 오늘 하루만 도울 수 없다.
    나는 이사장(理事長)네 배에 몇 백관(百貫)의 햇빛을 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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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길

    고은

    어머니
    푸성귀 잉꼬리 장수로 데친 비름나물 몇 줌이나
    콩밭김치거리 열무 몇 단 팔아서
    어머니의 아들 새벽길 이슬차며 떠날 때
    서울 가서 으리으리 잘되라고
    주먹밥 노잣돈 주신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떠난 뒤
    천년이나 영검없이 빤짝거리는
    북두칠성 흰 머리에 이고
    찬물 한 그릇에 정들도록 빌고 빈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은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일제 삼십육년의 서울
    또다시 쪽바리 이십년의 한강 끝에
    썩은 호박 해가 집니다
    아니 양코쟁이 삼십여년에 하우스뽀이 늙고 병들었습니다
    술 마시면 수많은 전생 세상 가지고
    언제나 새로 태어난 가슴
    다음날은 그 가슴에 구멍 뚫려
    뚫린 구멍에 지난날 새벽길 환히 보입니다
    어머니
    언제까지나 서낭당 마루에 서서
    떠나는 아들 바라보시는 어머니 환히 보입니다
    이제 그만 눈물 같은 집으로 들어가세요
    이제 그만 어머니의 아들
    해로써 달로써 손꼽아 기다리지 마세요
    눈보라뿐이었습니다
    비바람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술주정뱅이입니다
    천 사람의 권리 몽땅 먹은 권세
    만 사람의 돈벌이 다 삼킨 부자
    단추 하나 누르면
    누구요 하는 열두대문집 아니어요
    어머니의 아들은
    밤마다 발길로

    채이는 술주정뱅이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한 마리 이백만원하는 금붕어 없더라도
    바깥 경치 돌고도는 응접실 없더라도
    문둥이 눈썹 다 빠지더라도
    어머니의 아들 마흔살 되어
    어느날 술잔 꽉 쥐어 깨어버리고
    새 세상 같은 붉은 피 흘렸습니다
    가슴팍도 이마빡도 들이받아 피흘렸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술주정뱅이로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천년을 기다려 온 그날
    긴긴 세월 오백년으로 오십년으로
    아니 남과 북 허리 잘려
    총구멍 맞댄 세월
    이놈도 저놈도 앞잡이 세월에
    그날이 오리라고
    꼭 오리라고 기다려 온 그날 다 지워버렸습니다
    어머니
    한 핏줄 서로 부둥켜 안을 그날
    가슴마다 가슴마다 해 뜨는 그날이
    언제냐고 묻지 마세요
    어머니
    술주정뱅이 어머니의 아들 이제야 싸움터로 떠납니다
    싸워서 죽을 싸움터로 떠납니다
    새벽길 찬 바람 속에
    두 주먹 불끈 쥐어 어머니의 주먹밥 만들었어요
    가슴에 원한 서려
    어머니의 노잣돈 가득합니다
    오늘 하루가 어머니의 오랜 세월입니다
    먼동 찢어 새벽길 떠나며
    날선 칼로 몸뚱이 되어
    싸워서 그날을 등에 지고 오렵니다
    피묻은 깃발 날리며
    찢어진 깃발 날리며


    다친 다리 싸매고 그날을 지고 오렵니다
    그날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날이 모든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 아닙니다
    젊은 날 보리방아 찧을 적마다
    쭉정이 젖통 출렁거리던 설움
    어머니의 아들 죽어서
    그 젖 달라고 울부짖으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늙은 아들 싸움으로 죽어서
    오천년 역사의 그날 꼭 이루렵니다.
    ☆★☆★☆★☆★☆★☆★☆★☆★☆★☆★☆★☆★
    새싹

    고은

    씨 뿌렸더니
    여기
    여기
    저기 좀 보소

    어제는 누가 흙으로 돌아가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태어나
    이 세상 만년 파릇파릇 새싹이구려

    결국 여기서는
    나에게까지
    나에게까지
    급한 물에 떠내려온 나에게까지
    곡식 익은 뒤의 추위 가운데
    사랑밖에 없다

    저기 저기 좀 보소
    ☆★☆★☆★☆★☆★☆★☆★☆★☆★☆★☆★☆★
    서시

    고은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
    소와 함께

    고은

    며칠 동안 건너 마을 객토 품 파느라고 너를 돌보지 못했다
    바람도 불던 바람이 내 피붙이 같아서 덜 춥고
    여물도 주던 사람이 주어야 네가 편하지
    내가 말린 꼴 수북히 주고 더운 뜨물 퍼주니
    너는 더없이 흡족해서 꼬리깨나 휘두르는구나
    이랴 띨띨 밥 먹은 뒤 바깥 말뚝에 매어 두니
    소가 웃는다더니 바로 네가 좋아하는 것 알겠다
    외양간 쳐내어 쇠똥무더기 검불에 섞었다
    네 집 뒤쪽은 샛바람 막게 두툼두툼 떼적 치고
    남쪽으로는 비닐창 달아내어 볕조각 들게 했다
    따뜻한 날이라 송아지 두 놈 까불대며 다니며
    무우말랭이 널어 둔 멍석 밟고 마구 논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잠자리 깨끗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동안 네 엉덩이 누룽지깨나 덕지덕지로구나
    마른 똥 긁어 떼어내니 이놈 봐라 곧게 서 있다
    송아지 두 놈 논 쪽으로 먼저 나간 김에
    에따 너도 나도 개천 둔덕으로 놀러 나가자
    외양간에만 죽치고 서서 새김질 거듭하다가
    이렇게 마음 탁 터놓고 나오니 너 좋고 나도 좋다
    바람에 한 번 멋지게 감긴다 무슨 회오리바람이냐
    나와 너 단짝 동무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뜬다
    얼씨구 양지쪽으로 조금씩 돋은 풀도 반갑다
    이런 풀은 뜯지 말아라 네 새끼 송아지들 장난질한다
    나도 너도 흐뭇한 것 하나도 하나가 아니다
    햇볕 실컷 쪼여라 바람 쏘여라 바깥도 집안 아니냐
    내 너를 두고 말한다 소만한 덕 어디 있느냐
    견디기로

    는 사람 중에 백범이다 못 견디기로는 임꺽정이다
    가자 오랫만에 나온 바깥 기쁨 몽땅 가지고 돌아가자
    ☆★☆★☆★☆★☆★☆★☆★☆★☆★☆★☆★☆★
    속(續) 눈길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은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편력(遍歷)하고 와,
    여기 있는 꿈나라를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고요한 눈 쌓이는 소리,
    세상은 지금 기도(祈禱)의 끝이노라.
    지나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平和)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신(神)의 모습들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오는 하늘은 오랜 믿음이 차고
    내리는 눈 사이로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 귀를 뜨노라.
    나는 기도하지 않노라.
    나의 마음은 이 끝나는 기도(祈禱)를
    지키고 있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전세계(全世界)를 돌아다니고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으로서
    쌓이는 미래(未來)의 이 눈빛 앞에
    나의 마음을 어둠으로 덮노라.
    ☆★☆★☆★☆★☆★☆★☆★☆★☆★☆★☆★☆★
    썰매

    고은

    칼바람 분다 저 건너 땅이 운다 달려가자
    얼어붙은 얼음놈들아
    아직 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네가 물이 되면
    우리는 아울러 빠져죽는다
    봄이 온단다
    저 건너 땅이 운다 달려가자
    칼바람 불어닥쳐도
    건너가면 한잔술 볼바심할 데 있다
    굳은 손 욱신욱신 녹여줄 봄이 온단다
    어느 연놈 우리가 빠져죽기 원하느냐
    어느 연놈 늘어붙어
    우리가 다 얼어붙기를 원하느냐
    저 건너 가면 있다
    기다리는 순이가 있다
    일송정 노래 부르는 아내가 있다
    털벙거지 동만주 독립군의 넋이 있다
    네가 낳을 누렁이 새끼 있다
    봄이 온단다
    두 팔 벌려서 해 뜨는 자유가 있다
    봄이 온단다
    달려가자
    주저앉으면 얼어붙는다
    봄이 오면 그냥 가라앉는다
    칼바람 분다 달려가자
    칼바람 채찍 맞으며
    죽도록 달려가자
    이 강을 건너가면 봄이 온단다
    ☆★☆★☆★☆★☆★☆★☆★☆★☆★☆★☆★☆★
    아리랑 영감

    고은

    박판술 영감이 지나가면
    우리는 육자배기가 지나간다고 했지
    그가 논두렁에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육자배기가 뻗어 있다고 했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에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 동지섣달이 뻗어 있다고 했지
    육자배기하고
    동지섣달하고 그렇게도 잘 부르더니
    그 늙은 홀아비 판술 영감은
    죽기 이틀 전에도
    병든 몸 끌고 토방에 나와
    한바탕 진도아리랑 불러댔지
    죽 한 사발 끓여줄 사람도 없어서
    혼자 기어나와 죽 끓여먹고 간장 먹고 앓은 영감
    그러던 그 영감 토방에 나왔으니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저 영감 살아날라나보다 힘차다 했는데
    다음 다음날로
    그만 힘차게 이 세상 후딱 떠나버렸지
    동네사람들 새로 짠 가마니 두어 장 내다가
    둘둘 말아
    남생이언덕 바람 속에
    홀아비 송장 묻으며
    이구동성으로 날 좀 보소 불러주었지
    그 뒤 괜히 바람 치는 밤이면
    남생이언덕 평토장한 무덤에서
    그 영감 육자배기도 진도아리랑도 들린다 했지
    생전보다 더 기막히게 부르는 진도아리랑 들린다 했지
    ☆★☆★☆★☆★☆★☆★☆★☆★☆★☆★☆★☆★
    어둠과 더불어

    고은

    만권(萬卷) 책이 눈을 감았다.
    술 취한 새벽 세시!
    내 방의 어둠만으로 살 수 없다.
    문을 열자
    문을 열자
    모든 어둠놈들이 들어와서
    어떤 먹 그믐밤 개구리 운다.
    문을 열자
    문을 열자
    모든 어둠놈들이 들어와서
    벙어리귀신 가슴앓이.
    새벽 세시 몇분!
    내 방의 어둠만으로 살 수 없다.
    관음보살(觀音菩薩), 나에게 천수천안(千手千眼) 어둠 놈들을 보내다오.
    ☆★☆★☆★☆★☆★☆★☆★☆★☆★☆★☆★☆★
    어린 잠

    고은

    가만
    가만
    귀 기울여 보세요
    어느 놈의 천하장사도 못당할 힘으로
    우리 어린것들 잠자는 숨소리에
    큰 벼랑 무너지는 괌소리 들려요

    아가
    아가
    네가 옳아요

    어린것들 깨어나면
    임진강 스무나루 이쪽저쪽 오가는 배에
    고려 뱃노래 물도 울려 온몸에 들려요
    ☆★☆★☆★☆★☆★☆★☆★☆★☆★☆★☆★☆★
    어머니

    고은

    하루 내내 뼈도 없고 뉘도 없는 만경강 갯벌에 가서
    그 아득한 따라지 갯벌 나문재 찾아 발목 빠지다가 오니
    북두칠성 푹 가라앉은 신새벽이구나 단내 나는구나
    곤한 몸 누일 데 없이 보리쌀 아시 방아 찧어야지
    도굿대 솟아 캄캄한 허공 치고 내려 찧어 땅 뚫는구나
    비오는 땀방울 보리쌀에 뚝뚝 떨어져 간 맞추니
    에라 만수 그 밥맛에 어린것 쑥 자라나겠구나
    여기말고 어디메 복받치는 목숨 따로 부지하겠는가
    이 땅의 한 아낙의 목숨이 어찌 만 목숨 살리지 않겠는가
    충청도 장항에서 흐린 물 느린 물 건너
    삐그덕 가마 타고 시집 온 이래 그 고생길 이래
    된장 간장 한 단지 갖추지 못한 시집살이에 몸담아
    첫 아들 낳은 뒤 이틀만에 그놈의 보리방아 찧어
    두벌 김매는 논에 광주리 밥 해서 이고 나가니
    산후 피 펑펑 쏟아 말못할 속곳 다섯 벌 빨아야 했다
    그러나 바지랑대 걸음걸이 한번 씨원씨원해서
    보라 동부새바람 따위 일으켜 벌써 저만큼 가고 있구나
    갖가지 일에 노래 하나 부르지 못하고 보리 고개 봄 다 가고
    여름 밭 그대로 두면 범의 새끼 열 마리 기르는 폭 아닌가
    우거진 풀 가운데서 가난 가운데서 그놈의 일 가운데서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찌 나의 어머니인가
    ☆★☆★☆★☆★☆★☆★☆★☆★☆★☆★☆★☆★
    오늘의 썰물

    고은

    우리는 기억하리라
    이 세상을 폭풍우로 두들겨패야 할 때가 있다
    이 세상을 성난 해일로 덮쳐야 할 때가 있다
    비록 흰 거품 물고 물러서지만
    오늘의 썰물로 오늘을 버리지 말자
    오늘이야말로 과거와 미래의 엄연한 실재 아니냐
    우리는 기억하리라
    기억해 자식에게 전하리라
    오 끝없는 파도의 민족이여
    그러나 이 세상을 한밤중 우는 아이로 달랠 때가 있다
    역사가 아버지가 아니라 내 자식일 때가 있다
    오늘을 내 자식으로
    멀어져 가는 썰물의 파도소리로 잠재우건만
    그뿐 아니라 이 세상을 온몸으로 참회할 때가 있다
    참회란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한 일을 끝내 해내는 데 있지 않느냐
    지금 우리에게 할 일이 있다
    우리는 파도치면서 젊은 밀물로 돌아오리라
    우리들의 생존 몇 천 년이 오늘이 되어
    바다 전체로 온 누리로
    우리들의 밤을 하나하나 드높은 별빛으로 기억하리라
    ☆★☆★☆★☆★☆★☆★☆★☆★☆★☆★☆★☆★
    우물

    고은

    그 집 안에는 우물이 있어요
    열 길도 넘는 우물이 있어요
    그윽한 분례네 집
    분례 어머니 박꽃처럼 환한 분례 어머니하고
    어린 분례하고 옥잠화하고
    단 두 식구 살고 있어요
    젊은 과수댁이라
    말 한 마디도 삼가고
    한여름 등물도 한 적 없어요
    그 분례 어머니가
    열 길 우물에 묵직한 두레박 내려뜨려
    길어 올린 검푸른 물
    그 물의 고요와 그 무서움
    심부름 가서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온몸 떨려요 두근두근대어요
    ☆★☆★☆★☆★☆★☆★☆★☆★☆★☆★☆★☆★
    이 만조滿潮에 노래하다

    고은

    제주 만조(濟州滿潮)여, 그대는 떠나는 배를
    조금만 늦게 떠나게 하고
    어제 밤배들을 돌아오게 한다.
    어떻게 지킬 약속을 실어오는지,
    한 척의 거룻배도 삐걱거리며 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만조(滿潮)여, 그대는 한 물새가 조상(弔喪)할 것을 조상(弔喪)하게 한다.
    돛받이에 다친 어부는 키 잡은 손을 풀고
    온갖 그물코에 별들을 걸어야 한다.
    잠깐이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여인이 낳을 것이다.
    오늘까지 살아온 자는 그대 앞에 있고,
    언젠가 오랜 땅보다도 오랜 바다를 소망하리라.

    만조(滿潮)여, 누군들 그대 앞에 한낱 어린 길손이리라.
    그러나 만조(滿潮)여,
    그대가 이 마을을 가득하게 할 때
    산지포(山地浦) 노인의 지는 숨은 빨리 지고
    새 갓난애와 별똥이 탄생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자도 오는 자도
    그대가 이 마을을 가득하게 할 때인지라
    먼 곳으로부터 썰물 때는 서두를 수 없으리라.
    저 북쪽 바다에는 동정녀(童貞女)의 어화(漁火)를 수놓게 하고
    한 물결만큼 바람을 쉬게 해도 물결은 찬란한 살로 일렁인다.
    만조(滿潮)여, 고기떼는 좀 남아서 자지 않을 것이고,
    여러 물새들은 제 날개를 재워야 한다.

    제주 만조(濟州滿潮)여, 이제 그대가 이 마을을 떠나려 할 때,
    저 어둔 바다는 새끼아지와 소라를 키우지 않고
    잠시 신(神)을 키우지 않으리라.
    이미 돌아온 배는 비어 있으나
    어느 작은 갑판 위에 인기척이 남고
    마지막 배가 죄없이 돌아온다.
    만조(滿潮)여, 저들 어부(漁夫)에게 목 축일 술을 허락하라.

    그리하여 이 마을은 조심스럽게 썰물을 기다리게 하라.
    모든 것은 가득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떠오른다.
    밤은 깊다. 그러나 만조(滿潮)여,
    오늘 이 마을 일은 다 끝났다.
    저 북쪽 바다는 더 넓어질 것이고
    그러나 제주만조(濟州滿潮)여, 오늘밤 꼭 떠나갈 배를 내일 떠나게 하라.
    ☆★☆★☆★☆★☆★☆★☆★☆★☆★☆★☆★☆★
    인당수

    고은

    흰 구름 달려가는 북소리 울려라
    몽구미나루 세찬 물결
    너와바윗장 뜯어내어라
    이팔청춘 아가씨야
    인당수 짙푸르더라
    아비 눈 뜨는 공양미 삼백석
    그런 놈의 공양미 아니어라
    목구멍 거미줄 걷어내고
    하얀 이밥 한 그릇의 꿈이어라
    매야 매야
    성날수록 네 발톱 감추어라
    아리따운 아가씨야
    쌀 삼백석에 몸 던진 아가씨야
    네 몸이 저승이어라
    네 몸이 용궁이어라
    네 몸이 바다 위 연꽃이어라
    네 몸이 매 떠오른 하늘이어라
    네 몸이 아비의 눈이어라
    새 세상 가득찬 새 눈이어라
    싸우는 아가씨야
    몸 하나로 죽어서
    쌀과 임금과 싸우는 아가씨야
    치마폭 쓰고 해진 바다에
    네 몸 던져
    네 몸이 뭉구미나루 북소리여라
    소용돌이치는 싸낙배기 물결이어라
    그 물결 속의 끝없는 조기떼여라
    온 백성 연장 들고 달려가는 싸움터여라
    매야 매야
    이팔청춘 물귀신 된 아가씨야
    수령방백 모가지 할퀴는 아가씨야
    ☆★☆★☆★☆★☆★☆★☆★☆★☆★☆★☆★☆★
    저녁 논길

    고은

    벌써 별 하나 떠 이 세상이 우주이구나
    마른 풀냄새 한철인 마을에도
    아껴 쓰는 전등불빛 여기저기 돋아난다
    나는 돌아가는 저녁 논길을 외오 걸으면서
    달겨드는 밤 물것 이따금 쫓고
    한편으로는 엊그제 흙에 묻힌 남동이 영감을 생각한다
    죽음이 산 사람의 마음을 깊게 하는지
    나도 그 영감 생시보다는 손톱만치 달라져야겠구나
    어둠에 더욱 정든 논 두루 돌아다 보아라
    지난 해보다 도열병 성해서 얼마나 품도 애도 더 먹었는지
    여든 여덟 번이나 손이 가는 농사가 1년농사 아니냐
    아무리 쌀 농사 헛되고 빚지는 가을이건만
    가을은 가을답게 부지깽이도 덤벙대도록 바쁘다
    진정코 여기서 떠날 줄 모르고 놀 줄 몰랐다
    살아 보면 세월은 사람에게 큰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가장 작은 것이다
    돌아가는 길 저녁 논길이 오늘따라 으리으리하게 조용하구나
    가물에도 뒷장마에도 병충해에도 실컷 커서
    말없이 이삭 팬 벼가 우리에게 어른이 아니고 무어냐
    어서 가자 가서 매흙냄새 나는 이 몸으로
    내 새끼 한 번 겨드랑 받쳐 번쩍 어둠 속에
    들어올렸다 넉넉잡고 한 나라로 내려놓자꾸나
    ☆★☆★☆★☆★☆★☆★☆★☆★☆★☆★☆★☆★
    저녁 숲길에서

    고은

    어느 날보다도 일찍 미자르 별이 뜨고 나는 일을 마쳤다.
    내 말이 방풍지대(防風地帶) 너머로 달려 가서
    해산(解散)하는 메밀밭을 버려 놓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끌고 사과하러 가야 한다.
    그러나, 한두 번 잘못하는 일은 아름다움일까.
    내가 가는 것은 뜻밖의 슬픔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밭 주인네 집은 숲 저쪽의 오지(奧地)에 있다.
    버린 메밀밭은 저문 뒤에 더욱 역력하구나.
    나는 따라 오는 말더러 핀잔을 주지 않고
    오직 숲길로 접어 들자 말했을 뿐이다.
    `이제 다 왔다. 네가 좀더 겸손해지면
    나도 또한 겸손해지리라.'

    우리가 숲으로 들어가자 누가 뒤에서 일어서는 것 같다.
    자꾸 돌아다보아도 말 꼬리에 채이는 것은 어둠이다.
    저녁 숲길은 밭 주인의 자취가 가득하고
    나는 탄주(彈奏)하는 주인에게 할 말을 연거푸 연습해 본다.
    `잘못했습니다. 제 말은 운 뒤 몹시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나 화를 낼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밭 주인의 막내딸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상하구나, 내 사과하는 손길이 굳어진다.
    아무래도 그 애의 혀에 이끼가 끼고 곧 죽으리라.
    나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집을 하직(下直)하였다.
    그 숲 속의 집에서 너무나 멀리까지 야채(野菜) 썩은 냄새가 따라온다.
    내 걸음은 훨씬 더디고 말 얼굴이 슬픔을 뿌리친다.

    어서 나는 바시해협(海峽) 쪽으로 늙은 말과 돌아가야 한다.
    오던 길이 아니었다. 내 눈은 오던 길을 사납게 찾는다.
    그러나 낯선 길에서 마음이 쭈뼛쭈뼛 모지는구나.
    말도 유가족(遺家族) 오여사(吳女史) 흉내를 내며 따라 온다.
    어디선가, 개울물 소리가 혼자 중얼거리고
    단 한 번 죽을 까치가 별빛처럼 운다.

    `이제 다 왔다. 밭 주인 딸은 곧 죽으리라.'
    내가 겨우 들리도록 말하자 말은 엉덩이를 낮춘다.
    이 세상일은 죽음과 닿아 있고
    우리들이 사과하고 오는 길에도 닿아 있다.
    저녁 숲 속은 어둠이 바다 흑조(黑潮)로부터 돌아온다.
    또한 그애의 죽음이 몇 번인가 숨바꼭질도 하는구나.

    어느 날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나는 잘못을 사과하였다.
    우리가 돌아오는 길은 밭 주인네 집에서 멀어지고
    이상하구나, 내일 일들이 많은 지류(支流)가 되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갑자기 영전(靈前)에 선 것 같이 말은 느끼고
    오늘밤에 제 마굿간에서 함께 자기를 바란다.
    어서 가자. 집에서 누가 손을 씻는 소리가 나고 그 위에서 미자르 별이 기다린다.
    ☆★☆★☆★☆★☆★☆★☆★☆★☆★☆★☆★☆★
    천은사운(泉隱寺韻)

    고은

    그이들끼리
    살데.

    골짜구니 아래도 그 위에도
    그들의 얼얼이 떠서
    바람으로 들리데.

    그이들은
    밤 솔바람소리,

    바위보아
    비인 산 허리.

    가을이 오데.

    바위를 골라
    나앉아 우는 추녀 끝
    뜰에 떨어지는 풍경소리에,

    그이들끼리
    살데.

    그이들은 늙데.

    돌아와 한번 잊은제
    도로 가고 싶은 그이들의 얼 바람 진
    산허리.

    그이들은
    살데.
    ☆★☆★☆★☆★☆★☆★☆★☆★☆★☆★☆★☆★
    해연풍(海軟風)

    고은

    옛노래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노래만 남아 있다.
    저녁 풀밭이 말라서 비린 풀 냄새가 일어나고
    처음부터 말떼는 조심스럽게 돌아온다.
    여러 산들은 제가끔 노을을 받아 혹은 가깝고 혹은 멀다.
    또한 마을처녀가 밭에서 숨지는 햇살을 가장 넓은 등에 받고
    이 고장에서 자라 이 고장에서 시집갈 일밖에는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어제의 뭉게구름이 그토록 아름다왔을지라도
    그 구름은 오늘 바라볼 수 없으며 벌은 날아가다 죽는다.
    이 땅에 묻힌 옛피가 하루하루를 그들에게 가르치며……
    아직 밭 일꾼과 귀 작은 소떼와 처녀들이 돌아오지 않은 채
    화북(禾北) 마을의 갈치배는 희미꾸레한 돛을 올리고
    제 마음에 따라 다른 바다를, 그러나 한마음으로 떠난다.
    옛노래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노래만 남아 있으며,
    바다는 좀더 북쪽 별 나타날 곳으로 기울었는지
    성산포(城山浦) 우도(牛島)배와 마주친 배들은 나비처럼 떠나간다.
    그러나 먼 상하이는 밝을 것이고 서쪽 바다의 지평선엔
    가까스로 돌아오는 애월(涯月)배들이 날카롭게 솟아 있고,
    지는 해를 등지며 때로 바다는 오늘같이 인자하구나.
    저 저녁 바다로 떠나지 않고 밭에서 돌아온 자여, 맞이하라.
    비로소 해연풍(海軟風)은 노는 애들과 그대 적막한 가슴 앞을 적시고
    이 고장의 질긴 협죽도(夾竹桃)꽃들을 마지막에 적시리라.
    어느 돌담 앞에나 옛 노래인양 감태 잎새와 소라 껍데기가 있어도
    가장 풍요한 빈 손으로 이 땅을 떠나지 않게 하고

    저 깊은 밤 바다 위에서는 이미 별이 빛나기 시작하며
    어여쁜 갈치 아씨가 잡혀 하느님처럼 실려 오리라.
    밤은 알리라. 더구나 저 바다의 밤은 알고 있으리라.
    어제는 사시나무였고 오늘은 마른 살 가죽에서 저물고
    비로소 해연풍(海軟風)은 아득한 밤배 불빛을 씻어 오리라.
    ☆★☆★☆★☆★☆★☆★☆★☆★☆★☆★☆★☆★
    햇볕

    고은

    어쩔 줄 모르겠구나
    침을 삼키고
    불행을 삼키자
    9사상 반 평짜리 북창 감방에
    고귀한 손님이 오신다
    과장 순시가 아니라
    저녁 무렵 한동안의 햇볕
    접고 접은 딱지만하게 햇볕이 오신다
    환장하겠다 첫사랑
    거기에 손바닥 놓아본다
    수줍은 발벗어 발가락을 쪼인다
    그러다가 엎드려
    비종교적으로 마른 얼굴 대고 있으면
    햇볕 조각은 덧없이 미끄러진다
    쇠창살 넘어 손님은 덧없이 떠난 뒤
    방안은 몇 곱으로 춥다 어둡다
    육군교도소 특감은 암실이다
    햇볕 없이 히히 웃었다
    하루는 송장 넣은 관이었고
    하루는 전혀 바다였다
    용하도다 거기서 사람들 몇이 살아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돛단배 하나 없는 바다이기도 하구나
    ☆★☆★☆★☆★☆★☆★☆★☆★☆★☆★☆★☆★
    허허벌판

    고은

    가자.
    허허벌판 잠자러 가자.
    온 길 삼천리(三千里)
    서러운 약수삼천리(弱水三千里)
    어느 세상에 꽃 하나 보랴.
    뉘엿뉘엿 해 지면
    나온 새 까막까치도 돌아간다.
    가자.
    하늘 아래 억겁(億劫) 그믐이로다.
    잠 못 이룬 별들이라면
    내 가문 가슴에 재워주마.
    피리젓대 무엇하랴
    한 마디 가락 아직도 남았다면
    부는 바람에 버리고 가자.
    가자.
    가자.
    허허벌판 잠자러 가자.
    참다운 이 이 땅의 벙어리로다.
    백도라지야 백도라지야
    너 어느 세상에 피어있느냐.
    만(萬) 원혼(怨魂) 잠든 벌판
    허허벌판 잠자러 가자.
    ☆★☆★☆★☆★☆★☆★☆★☆★☆★☆★☆★☆★
    호박꽃

    고은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나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 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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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최명운 시 모음 31편 김용호2018.02.07.33611
    100 김홍성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8.02.07.36110
    99 서동안 시 모음 19편 김용호2018.02.07.3119
    98 조은주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8.02.05.3379
    97 장석주 시 모음 31편 김용호2018.02.05.3279
    96 임우성 시 모음 49편 김용호2018.02.05.3169
    95 박재성 시 모음 51편 김용호2018.02.05.30810
    94 전덕기 시 모음 23편 김용호2018.02.05.2639
    93 0 김용호2018.02.05.28412
    92 차영일 시 모음 26편 김용호2018.02.05.30210
    91 한정원 시 모음 20편 김용호2018.02.05.2979
    90 박희종 시 모음 22편 김용호2018.02.05.3569
    89 최규영 시 모음 17편 김용호2018.02.05.2619
    88 이정순 시 모음 30편 김용호2018.01.19.48315
    87 최한식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8.01.19.50814
    86 이경순 시 모음 22편 김용호2018.01.19.4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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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조미하 시 모음 20편 김용호2018.01.19.4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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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정재영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7.12.26.58417
    79 도지현 시 모음 82편 김용호2017.11.20.112520
    78 10월시 모음 45편 김용호2017.09.17.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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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조미경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7.02.05.84040
    73 이필종 시모음 21편 김용호2016.12.13.101449
    72 이점순 시 모음 75편 김용호2015.12.31.2450100
    71 전근표 시 모음 85편 김용호2015.06.12.2185201
    70 최학 시 모음 10편 김용호2015.06.12.1431107
    69 임경숙 시 모음 90편 김용호2015.02.15.1770303
    68 임경숙 시 모음 53편 김용호2015.01.25.1684169
    67 12월시모음 73편 김용호2014.12.07.15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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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복효근 시 모음 60편 김용호2014.11.10.1648299
    64 강해산 시 모음 60편 김용호2014.11.10.1599179
    63 이시영 시 모음 35편 김용호2014.11.10.1280194
    62 안현심 시 모음 21편 김용호2014.11.10.1046181
    61 신동엽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1.10.1644329
    60 오태인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1.10.1116233
    59 박경리 시 모음 70편 김용호2014.11.01.1397245
    58 이효녕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4.11.01.1042331
    57 오세영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1.01.1494317
    56 이정록 시 모음 27편 김용호2014.10.23.160090
    55 이은상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23.1019220
    54 정채봉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4.10.23.1640130
    53 성진명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0.23.992168
    52 우덕희 시 모음 22편 김용호2014.10.23.1357135
    51 황인숙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4.10.23.1035220
    50 곽재규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0.23.1190190
    49 이병주 시 모음 50편 김용호2014.10.07.1071130
    48 오세철 시 모음 87편 김용호2014.10.07.1170270
    47 김동원 시 모음 79편 김용호2014.10.07.827103
    46 구연배 시 모음 36편 김용호2014.10.07.993242
    45 김영화 시 모음 30편 김용호2014.10.07.962183
    44 선미숙 시 모음 40편 김용호2014.10.07.850157
    43 이병율 시 모음 43편 김용호2014.10.07.1224208
    42 박현숙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07.857170
    41 이승하 시 모음 16편 김용호2014.10.07.816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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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양현근 시 모음 21편 김용호 2004.12.29.1951313
    -11 김지하 시 모음 52편 김용호 2004.12.29.2115335
    -12 박인환 시 모음 17편 김용호 2004.12.29.1790316
    -13 유안진 시 모음 22편 김용호 2004.12.29.2124280
    -14 노향림 시 모음 20편 김용호 2004.12.29.194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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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김현승 시 모음 35편 김용호 2004.02.03.4223512
    -41 주옥같은시어모음 김용호 2004.02.03.2258390
    -42 여명 문학 회칙  여명문학2004.01.25.196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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