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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기 시 모음 15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05.01.05. 14:07:41   조회: 2860   추천: 226
    여명문학:

    이형기 시 모음 15편
    ☆★☆★☆★☆★☆★☆★☆★☆★☆★☆★☆★☆★
    《1》
    강가에서

    이형기

    물을 따라
    자꾸 흐를라 치면

    네가 사는 바다 밑에
    이르리라고

    풀잎 따서
    작은 그리움 하나

    편지하듯 이렇게
    띄워 보낸다.
    ☆★☆★☆★☆★☆★☆★☆★☆★☆★☆★☆★☆★
    《2》
    귀로(歸路)

    이형기

    이제는 나도 옷깃을 여미자
    마을에는 등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복된 저녁상을 받고 앉았을 게다

    지금은
    이 언덕길을 내려가는 시간,
    한오큼 내 각혈의
    선명한 빛깔 우에 바람이 불고
    지는 가랑잎처럼
    나는 이대로 외로워서 좋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 말없이 울고 간
    내 마음 숲 속 길에

    가을이 온다
    내 팔에 안기기에는 너무나 벅찬
    숭엄(崇嚴)한 가을이
    아무데서나 나를 향하여 밀려든다.
    ☆★☆★☆★☆★☆★☆★☆★☆★☆★☆★☆★☆★
    《3》
    그 해 겨울의 눈

    이형기

    그 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 중 바다에 내렸다

    희뿌옇게 한밤 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딧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으로 어지럽게 흩날렸다

    눈송이는 바다에 녹지 않았다
    녹기 전에 또 다른 송이가 떨어졌다
    사라짐과 나타남
    나타남과 사라짐이 함께 돌아가는
    무성 영화 시대의 환상의 필름

    덧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확인하는 드라마
    클라이막스 밖에 없는 화면들이
    관객 없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한밤 중 바다에 내린
    그 해 겨울의 눈
    그것은 꽃보다 화려한 낭비였다
    ☆★☆★☆★☆★☆★☆★☆★☆★☆★☆★☆★☆★
    《4》
    그대

    이형기

    1.
    머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참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손목을 쥔 채
    그냥 더워 오는 우리들의 체온......

    내 손바닥에
    점 찍힌 하나의 슬픔이 있을 때
    벌판을 적시는 강물처럼
    폭 넓은 슬픔으로 오히려
    다사로운 그대.

    2.
    이만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가 그대를 부른다
    그대가 또한 나를 부른다.

    멀어질 수도 없는
    가까와질 수도 없는
    이 엄연한 사랑의 거리 앞에서
    나의 울음은 참회와 같다.

    3.
    제야의 촛불처럼
    나 혼자
    황홀히 켜졌다간
    꺼져 버리고 싶다.

    외로움이란
    내가 그대에게
    그대가 나에게
    서로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것이다.
    ☆★☆★☆★☆★☆★☆★☆★☆★☆★☆★☆★☆★
    《5》


    이형기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그 저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
    ☆★☆★☆★☆★☆★☆★☆★☆★☆★☆★☆★☆★
    《6》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형기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세기 전의 해적선이 바다를 누빈다.
    나뭇잎만큼 많은 돛을 달고
    그 어떤 격랑도 지울 수 없는
    벌레 먹은 항적(抗跡)

    나뭇잎을 다시 들여다보면
    나무가 뿌리채
    그 밑바닥에 침몰해 있다.
    파들파들 떨리는 단말마의
    손짓
    잎사귀들이
    ☆★☆★☆★☆★☆★☆★☆★☆★☆★☆★☆★☆★
    《7》
    낙 화

    이형기

    가야 할 때를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 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8》
    들길

    이형기

    고향은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
    혼자 걸어가는
    들길의 의미

    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 보아라
    백지에 가득 차는
    선의 의미

    아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모르는 그 절망을
    비로소 무엇인가 깨닫는 심정이
    왜 이처럼 가볍고 서글픈가.

    편히 쉰다는 것
    누워서 높이 울어 흡족한
    꽃 그늘
    그 무한한 안정에 싸여
    들길을 간다.
    ☆★☆★☆★☆★☆★☆★☆★☆★☆★☆★☆★☆★
    《9》

    이형기


    寂寞江山(적막 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 자리
    타지 않는 日暮(일모).....
    텅 빈 내 꿈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正座(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 강산
    그저 이렇게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 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淸明(청명)과 不安(불안)
    期待(기대)와 虛無(허무)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린다
    아 이 적막 강산에 살고 싶어라
    ☆★☆★☆★☆★☆★☆★☆★☆★☆★☆★☆★☆★
    《10》
    비 오는 날

    이형기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노을도 갈앉는
    저녁 하늘에
    눈 먼 우화는 끝났다더라
    한 색 보라로 칠을 하고
    길 아닌 천리를
    더듬어 가면

    푸른 꿈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꽃잎 지거라
    꽃잎 지거라

    산 넘어 산 넘어서 네가 오듯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
    《11》


    이형기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鎭座)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감고
    방심무한(放心無限)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激怒)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깎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 어린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어룽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
    《12》
    초상정사草上精思

    이형기

    풀밭에 호올로 눈을 감으면
    아무래도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다.

    연못에 구름이 스쳐가듯이
    언젠가 내 작은 가슴을 고이 스쳐간
    서러운 그림자가 있었나 보다.

    마치 스스로의 더운 입김에
    모란이 뚝뚝 져버린 듯이
    한없이 나를 울리나 보다.

    누구였기에
    누구였기에
    아아 진정 누구였기에......

    풀밭에 호올로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단 한 번 만난 사람을
    아무래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
    《13》
    코스모스

    이형기

    자꾸만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 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 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고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 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어둠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호올로 달래며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가에
    나의 가슴이 파랗게 부서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라
    ☆★☆★☆★☆★☆★☆★☆★☆★☆★☆★☆★☆★
    《14》
    폭포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 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을.

    나의 자랑은 자멸이다.
    무수한 복안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
    《15》
    호수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했던 청춘이
    어느덧 잎지는 이 호수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는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가는 바람에도
    불고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 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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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강해산 시 모음 60편 김용호2014.11.10.1621180
    92 이시영 시 모음 35편 김용호2014.11.10.1312195
    91 안현심 시 모음 21편 김용호2014.11.10.1073182
    90 신동엽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1.10.1669330
    89 오태인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1.10.1145235
    88 박경리 시 모음 70편 김용호2014.11.01.1424246
    87 이효녕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4.11.01.1069332
    86 오세영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1.01.1520318
    85 이정록 시 모음 27편 김용호2014.10.23.162991
    84 이은상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23.1048223
    83 정채봉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4.10.23.1667131
    82 성진명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0.23.1031169
    81 우덕희 시 모음 22편 김용호2014.10.23.1395136
    80 황인숙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4.10.23.1057224
    79 곽재규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0.23.1212193
    78 이병주 시 모음 50편 김용호2014.10.07.1101131
    77 오세철 시 모음 87편 김용호2014.10.07.1199271
    76 김동원 시 모음 79편 김용호2014.10.07.850104
    75 구연배 시 모음 36편 김용호2014.10.07.1014243
    74 김영화 시 모음 30편 김용호2014.10.07.983184
    73 선미숙 시 모음 40편 김용호2014.10.07.872158
    72 이병율 시 모음 43편 김용호2014.10.07.1251209
    71 박현숙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07.878170
    70 이승하 시 모음 16편 김용호2014.10.07.833152
    69 김옥자 시 모음 열편 김용호2014.10.07.995153
    68 최봄샘 시 모음 9편 김용호2014.10.07.899138
    67 김명우 시 모음 열 다섯편 김용호2014.10.07.1045244
    66 한선미 시 모음 열 한편 김용호2014.10.07.879208
    65 김예성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0.07.868204
    64 전병윤 시 모음 81편 김용호2014.10.07.937357
    63 김성우 시 모음 열 두 편 김용호2014.10.07.909247
    62 김옥준 시 모음 75편 김용호2014.10.07.1001127
    61 마종기 시 모음 38편 김용호2014.10.07.1275315
    60 심성보 시 모음 20편 김용호2014.10.07.1014187
    59 박재삼 시 모음 27편 김용호2014.10.07.1232170
    58 반칠환 시 모음 20편 김용호2014.10.07.1226312
    57 황지우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4.10.07.1314179
    56 조지훈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4.10.07.2256319
    55 임 보 시 모음 김용호2014.07.05.1674330
    54 이생진 시 모음 37편 김용호2014.07.05.2045230
    53 이양우 시 모음 48편 김용호2014.07.05.2904203
    52 허소라 시 모음 열편 김용호2014.03.01.1873209
    51 이운룡 시 모음 34편 [1]김용호2014.03.01.2050338
    50 허호석 시 모음 23편 김용호2014.03.01.1701171
    49 김지향 시 모음 61 ∼ 131까지 김용호2014.03.01.1897154
    48 김지향 시 모음 1 ∼ 60편 김용호2014.03.01.1789295
    47 강은교 시 모음 40편 김용호2006.08.09.6519724
    46 천상병 시 모음 20편 김용호2006.08.09.5755559
    45 나희덕 시 모음 30편 김용호2006.08.09.5108642
    44 박두진 시 모음 37편 김용호2006.08.09.5795662
    43 홍윤숙 시 모음 23편 김용호2006.05.27.4092683
    42 이외수 시 모음 34편 김용호2006.04.22.2475355
    41 함석헌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10.16.3089292
    40 김수미 시 모음 41편 김용호2005.10.16.2425254
    39 노래가 된 시 34편 김용호2005.10.16.2837261
    38 고은 시 모음 59편 김용호2005.08.20.359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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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이육사 시 모음 17편 김용호2005.03.12.4063264
    31 박병순 시 모음 20편 양력 김용호2005.01.31.272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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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김수영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3978276
    24 신석정 시 모음 65편 김용호 2005.01.05.2344270
    23 윤동주 시모음 스무편 김용호 2004.12.29.298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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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허영자 시 모음 18편 김용호 2004.12.29.1951256
    20 황금찬 시 모음 34편 김용호 2004.12.29.2026300
    19 양현근 시 모음 21편 김용호 2004.12.29.1975315
    18 김지하 시 모음 52편 김용호 2004.12.29.214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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