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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의섭 시 모음 25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9.08.10. 23:37:13   조회: 138   추천: 1
    여명문학:

    윤의섭 시 모음 25편
    ☆★☆★☆★☆★☆★☆★☆★☆★☆★☆★☆★☆★
    《1》
    6월의 묵상

    윤의섭

    열하 熱夏의 일기예보 목소리 낭랑한데
    북상하는 계절 없이 아카시아 동시에 피고
    6월 신록이 대숲의 음기를 드높이네

    백화제방 민주사회는 자유와 풍요 만끽하고
    수천만 내외국인이 인천공항을 들락날락
    금수강산 문화예술 진수성찬 즐기는데

    공산 3인의 허망한 꿈을 깨버린 70년 역사여
    타의에 의한 민족의 분열은 아직도 냉전
    대한민국 찬란함은 북의 개방을 기다리네.
    ☆★☆★☆★☆★☆★☆★☆★☆★☆★☆★☆★☆★
    《2》
    6월의 산과 들

    윤의섭

    푸른 파도 출렁이듯 녹음 진 야산들이
    가까이는 향기롭고 멀리는 상쾌하네

    봉울봉울 산봉우리가 시야에 펼쳐지니
    가까이는 뱁새 소리 멀리는 뻐꾸기 소리

    가물가물 먼 산은 시샘하는 듯
    뜬구름에 몸을 가려 감추려 하네

    사이사이 황금빛은 보리밭이고
    자주꽃 반짝임은 감자밭일세

    농부 쉬는 참에 막걸릿잔 돌리며
    풍년 부채 늘어나니 그것이 걱정이요.
    ☆★☆★☆★☆★☆★☆★☆★☆★☆★☆★☆★☆★
    《3》
    계류

    윤의섭

    속삭임의 소리를
    시샘하던 장마로
    절정을 이루는 숲의 명성

    장마에 밀려온 계곡의 돌들
    흙탕물이 미처 씻기지 않은
    수줍은 얼굴로 흐르는 물에 기댄다

    둥글둥글 박힌 돌들이
    시비하지 않고 받아 줌은
    세어진 물살을 막아주는
    버팀 돌이 되기 때문이리.
    ☆★☆★☆★☆★☆★☆★☆★☆★☆★☆★☆★☆★
    《4》
    꽃 바다

    윤의섭

    봄에
    꽃들이 북상하였다
    어느 초년병은
    봉오리도 터뜨리지 못하고 숨져갔다
    꽃상여 되어 숨져갔다

    꽃잔을 건배한 나비떼들이 취한 채
    밤새워 시국을 토론한다 사생활을
    게워낸다 고운 날개까지 묻혀가며
    욕설도 내뱉다가 도시 변두리
    퀘퀘한 방 한 칸에 살아도 꽃 몇만 송이 피울 만
    큼은
    거뜬히 씨 내리게 할 수 있다고 즐거워하다가
    끝내 잠들지 못하고 맞이한 아침
    제 갈 길로 서둘러 떠나다가

    어느 나비는
    한 톨의 꽃가루도 심어놓지 못하고 숨져갔다
    꽃잎처럼 떨어져 숨져갔다
    내년에는 꽃바다 넘실댈는지

    한반도에
    꽃들이 북상하였다
    ☆★☆★☆★☆★☆★☆★☆★☆★☆★☆★☆★☆★
    《5》
    꽃밭에서

    윤의섭

    6월의 꽃은 탐스러워요
    풍만한 여름의 참멋을 내며
    색조와 풍미를 자랑하지요

    흙 속의 진실을 빨아올린
    찔레꽃
    떠오르는 보름달 정의의
    장미꽃

    꽃향기 아름다워
    숲을 찾은 가인이여!
    땅속의 백골 잊은 지 67년
    2대에 미치는 그 흔적 미풍은 알지요.
    ☆★☆★☆★☆★☆★☆★☆★☆★☆★☆★☆★☆★
    《6》
    꽃의 탄생

    윤의섭

    불면이란 밤새 벽을 쌓는 일이다
    감금, 꺼지지 않는 가로등처럼 뜬눈으로 견디는
    밤과 새벽 사이의 생매장
    길 잃은 바람이 어제의 그 바람이 같은 자리를 배회하고
    고양이 울음은 있는 힘을 다해 어둠을 찢는다
    이 터널은 출구가 없다

    어떤 기다림은 질병이다
    간절한 소식은 끝내 오지 않거나 이미 왔다 가버리는 것

    그러니 너는 얼마나 아름답단 말인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서야 겨우 잠이 든다
    어떤 묘혈은 땅 속을 흘러 다닌다는데
    머리맡에 꽃향기가 묻어 있다
    첫 매화가 피었다고 한다
    ☆★☆★☆★☆★☆★☆★☆★☆★☆★☆★☆★☆★
    《7》
    낙엽이 흩뿌리는 거리에서

    윤의섭

    그리움의 언어를
    가슴에 품고
    단풍잎 찬란함에
    잠시 서성이니
    일진광풍이
    낙엽을 흩뿌리네

    이룬 일 못 이룬 일
    마음이 교차하며
    그리움의 마음을
    흔들어대니
    무심한 낙엽은
    저 홀로 굴러가네.
    ☆★☆★☆★☆★☆★☆★☆★☆★☆★☆★☆★☆★
    《8》
    눈을 뜨는 매일 아침

    윤의섭

    눈을 뜨는 매일 아침
    삶의 환희
    또 하루를 선물받았다

    가족 간의 사랑
    이웃과의 인사
    나를 알아 주는 벗을 찾고
    경이로움을 지닌
    대지와 바다
    하늘과 별을 보고

    이생에서
    하루뿐인
    오늘의 깨달음을 찾는다

    내일에 가서
    오늘 같은 경험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자.
    ☆★☆★☆★☆★☆★☆★☆★☆★☆★☆★☆★☆★
    《9》
    물 향기 수련(睡蓮)

    윤의섭

    필봉의 그림자가 맑은 물에 드리울 때
    물향기 수목원의 수련이 피면
    나무 사이 숨어든 아침 햇살이 수평 위를 핥는다

    명주실 느린 듯 김이 피어오르고
    개구리가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들면
    입질하던 붕어가 물결치며 숨는다

    진흙에는 겸손의 뿌리를 박고
    물 속의 줄기는 단련으로 떠받드니
    연잎을 펴고 잠자든 수련이 방긋이 눈을 뜬다.

    ☆★☆★☆★☆★☆★☆★☆★☆★☆★☆★☆★☆★
    《10》
    물안개

    윤의섭

    물 위에 피어나는 물안개
    강둑에서 바라보니
    먼 산의 윤곽이 어슴푸레하네

    비가 내리던 물소리
    강 위에 남아있어

    그 여운 잔잔히 물풀을 맴돈다

    물 위에서 물 속으로
    잠기고 떠오르며
    오리가 좋아하는 물안개가 흐르네

    못다 한 욕심에
    마음은 집에 두고
    몸만 나온 강둑에서 물안개를 바라보네.
    ☆★☆★☆★☆★☆★☆★☆★☆★☆★☆★☆★☆★
    《11》
    미연

    윤의섭

    눈 내리는 풍경을 담았지만 눈 밖으로 꺼낼 수 없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날 눈의 점자를 읽었지
    차가운데 포근한 적막은 처음부터 늙었고
    눈 사이로 서성이는 겨울나무 마녀 따위는 동화일 뿐이듯

    너는 없었지 오래된 일이지
    벤치는 그대로였고 나는 유일한 등장인물이었고
    대사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쓰인 침묵

    이야기 끝까지 들어봐
    어떤 특이점은 바이올린 현이 튕길 때처럼 폭발한다는데
    그렇게 갑자기 눈이 그쳤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무너지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엔딩

    눈을 바라보지만 너는 읽지 못해서
    이야기는 지어지고
    이야기는 미리 살아본 예언쯤이고

    부록을 사는 중이다
    작가의 생애까지 가봐야 하지만
    어느 날엔가 누군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연혁이란 무서운 것이다
    ☆★☆★☆★☆★☆★☆★☆★☆★☆★☆★☆★☆★
    《12》
    미장센

    윤의섭

    꿈속에서
    공원 벤치에 앉은 아이의 뒷머리가 있었다
    꿈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이였는데
    왜 거기 앉아있었을까

    허름한 골목
    폐타이어 화분에 핀 채송화를 슬쩍 스쳐가는 바람은
    불어야만 했던 것이다 단역배우처럼
    서툰 벽화는 꼭 서툴러야 했고
    담장 위를 걷던 고양이에겐 기억나지도 않을 오후겠지만

    그래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잊을 수 있다는 기적으로
    밥이 넘어가는 것이다
    그토록 사소한 종말들

    악몽을 꿨는데 아이의 뒷머리가 또 놓여있었다
    채송화는 시들어 죽었고
    그 곁으로 바름은 여전히 불어야만 했다
    산 너머에선 천둥치며 비구름이 몰려오고

    나는 얼마나 잠깐 화창했던 생물이었던 걸까
    비가 오기까지 나는 벤치에 앉아 있다
    ☆★☆★☆★☆★☆★☆★☆★☆★☆★☆★☆★☆★
    《13》
    바람의 냄새

    윤의섭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아봐라
    어느 성소를 지나오며 품었던 곰팡내와
    오랜 세월 거듭 부활하며 얻은 무덤 냄새를
    달콤한 장미 향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에 머금었던 아직 따뜻한 미련까지
    바람에게선 사라져 간 냄새도 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그녀의 머리 내음
    숲을 빠져나오다 문득 햇살에 잘려 나간 벤치의 추억
    연붉은 노을 휩싸인 저녁
    내 옆에 앉아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어깨를 안아주던 바람이
    망각의 강에 침몰해 있던 깨진 냄새 한 조각을 끄집어낸다
    이게 무언지 알겠느냐는 듯이
    바람을 안고 다니던 멸망한 도시의 축축한 정원과
    꽃잎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이제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전혀 가 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가
    그런 알지도 못하는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에도
    도무지 이 바람이 전해 준 한 조각 내음의 발원지를 알 수 없다
    먼 혹성에 천년 전 피었던 풀꽃 향이거나
    다 잊은 줄 알았던 누군가의 살내거나
    길을 나서는 바람의 뒷자락에선 말라붙은 낙엽 냄새가 흩날렸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제 봄이 오기 전까지
    저 바람은 빙벽 속에 자신만의 제국을 묻은 채 다시 죽을 것이다
    ☆★☆★☆★☆★☆★☆★☆★☆★☆★☆★☆★☆★
    《14》
    바람의 뼈

    윤의섭

    바람결 한가운데서 적요의 염기서열은 재배치된다

    어떤 뼈가 박혀 있길래
    저리 미친 피리인가

    들꽃의 음은 천 갈래로 비산한다
    돌의 비명은 꼬리뼈쯤에서 새어 나온다
    현수막을 찢으면서는 처음 듣는 母語를 내뱉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음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후에는 공중에 뼈를 묻을지라도
    후미진 골목에 입을 댄 채 쓰러지더라도

    저 각골의 역사에 인간의 사랑이 속해 있다
    그러니까 모든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가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열은 생각처럼 슬픈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풍경은 바람의 뼈를 분다
    來世에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한없이 스산하여 망연하여 그리움이라든지 애달픔이라든지
    그런 음계에 이르면 오히려 내 뼈가 깎이고 말겠지만

    한 사람의 귓불을 스쳐오는 소리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음성을 전해주는 바람 소리
    그대와 나 사이에 인간의 말을 웅얼거리며 가로놓인 뼈의 소리

    저것은 가장 아픈 악기다
    온 몸에 구멍 아닌 구멍이 뚫린 채
    떠나가거나 속이 텅 비어야 가득해지는
    ☆★☆★☆★☆★☆★☆★☆★☆★☆★☆★☆★☆★
    《15》
    부메랑

    윤의섭

    날아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베니아 합판을 잘라 바람꽃을 향해 날리면
    흩날리는 꽃잎처럼 휘날려올 줄 알았다
    떨어진 자리로 주우러 가면
    들판에 죽은 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그것은 내 품안으로 돌아와야 했다
    상처를 내기 위해 아무리 힘껏 던져도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어느 누구에게 던져도
    끝내 제 생애의 가슴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걸
    어느새 태양까지 날아갔다가
    하늘을 한바퀴 돌아 내가 날렸던 게 분명히 아닌
    날개짓으로
    기다림 속 한세월 흐른 뒤에 돌아오는 부메랑에선
    그게 다아 헛것이었어 하고 허공 가르는 소리 날 텐데
    가끔 꿈속에서는 내 코끝을 스치는 부메랑이
    바람꽃 스산한 들판으로 돌아가는 걸 본다
    ☆★☆★☆★☆★☆★☆★☆★☆★☆★☆★☆★☆★
    《16》
    사몽似夢

    윤의섭

    늘 다른 얼굴로 나타나지만 너라는 것이 분명한 선몽
    노을이라는
    해몽이 불가능한 꿈처럼

    돌아갈 힘을 남겨놓지 않아서 이길 수 있는 거야*

    어젯밤에도 너는 꿈속에 미리 들어와 앉아 있었다
    너를 또 꾸고 있으므로 나는 또 진 것이다

    그만이라니 전력을 다해 기억으로 떨어져 나온 게 기억이야

    텅 빈 꿈을 꾸기 위해선 텅 빈 꿈을 꾸어야 한다

    그래도 해몽하자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불길한 일이 생길 조짐도 보이지만
    같은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을 때까지 불길은 미루어질 겁니다
    아름다운 겁니다 잊지 못한다는 것은
    꿈에 담근 한쪽 발을 빼내지 마세요

    노을은 낮의 꿈일까 밤의 꿈일까
    네가 나는 조금 늦게 들어온 걸까
    ☆★☆★☆★☆★☆★☆★☆★☆★☆★☆★☆★☆★
    《17》
    설국

    윤의섭

    눈 내리는 아침에 인적이 없다
    다만 남쪽 하늘로부터 따스한 온기가 간신히 느껴진다
    내 곤두선 살갗만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 밖에 떠 있는
    항성을 기억할 뿐이다
    오래도록 눈 속으로 사라진 지상은 떠오르지 않아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눈길 나고 눈 언덕 돋는
    움직이는 마을 따라 떠돌다보면
    내게도 녹아버릴 리 없는 빙하기가 도래할까
    설원에 낯선 문자가 써 있어
    가까이 가보니 허리 부러진 무지개였다
    좀 전까지도 누군가와 생소한 얘기를 나누던 것 같았지만 단지
    눈 쌓여 희뿌연 허벅지 살을 드러낸 안개나무 한 그루
    앙가슴에 녹아 내리던 물방울 다시 얼어붙는 중이다
    가지런한 발자국이 나무 밑에서 끊어졌다
    눈 그치고 여전히 인적은 없다
    ☆★☆★☆★☆★☆★☆★☆★☆★☆★☆★☆★☆★
    《18》
    세 작

    윤의섭

    더 이상 우려낼 게 없다
    물갈이 몇 번 모든 향기가 사라진다
    오늘도 후줄근하게 헹궈져 잠을 청한다
    꿈이라도 쥐어 짜낼 수 있을지 몰라
    연거푸 물먹고 허우적거리는 내게서
    차츰 빠져나가는 지난날의 향기들
    바짝바짝 우려내는 마른 날의 향기들
    내게서 멀리 떠나갔지만 이젠
    너무 가까이 와버린 쓸쓸한 무취
    아무 맛도 없는
    퉁퉁 불은 몸뚱이를 뜯어 먹힐 수밖에
    그래도 주전자 속을 두둥실 떠다니며
    더 이상 줄 게 없는 내 향기 살던 방에
    마지막으로 한차례의 뜨거운 폭포 같은 물을 쏟아 주오
    희미한 너무나 희미한 살맛 찾아 오르게
    ☆★☆★☆★☆★☆★☆★☆★☆★☆★☆★☆★☆★
    《19》
    스산

    윤의섭

    몰락은 모두 서사적인데 나는 그런 예에 속해 있다
    사태를 파악할 틈도 없이 절정에 오른
    단풍 고도의 새 노을 따위가 동류항에 묶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시계를 믿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의 내일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계를 아무래도 몰락은 일회성이어야 했다
    하루는 우수수 떨어진 국화잎을 보다 떨어져서도 가지런히 생전의 꽃송이를 따라
    원을 그린 섬뜩한 미련을 보다
    한없이 스산해지는 것이었다 죽은 뒤에도 남은 기억이란
    다만 몰락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는 것인데 지옥이 최후의 단위라면
    언제 어디서부터라는 신의 좌표를 찾아 헤맬 수밖에
    아프라면 아프지요 곧 끝나버릴 일은 대개 극단으로 치닫지요
    붕괴 중인 가을의 노란 발음 나는 그런 예의 일종이다
    지평에 닿는 모든 길이 좁아지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에게는 소실점이며
    끝장부터 거꾸로 읽어야 하는 책이며
    몰락은 모두 수직적인데 낙엽도 하관도 유성도 사라져
    사라져 가고 몰락과 소멸 사이는 스산하다
    그나마 감정이므로 인간적인
    ☆★☆★☆★☆★☆★☆★☆★☆★☆★☆★☆★☆★
    《20》
    슬픈 득도

    윤의섭

    마당엔 아침 햇살이 한 솟국 담겼다
    밤새 꿈속에선 들판을 달렸는데
    다가갈수록 멀어지던 지평선이 마당에 누워 있다

    이곳에 와본 기억이 나지 않느냐
    꽤 오래 묵은 목소리 설핏 지나간다
    방금 까지 새가 앉았다 날아갔는지
    마른 나뭇가지 떨고 있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떨고 있는 나뭇가지
    나와 홀로 마주 선 저 독경
    하루 종일 거니는 마당은 왜 이다지 슬픈가
    나는 햇살에 잘 말라간다

    이곳에 와본 기억이 나지 않느냐
    밤새 꿈속에선 들판을 달렸는데
    마당엔 죽은 지평선이 쓰러져 있다
    ☆★☆★☆★☆★☆★☆★☆★☆★☆★☆★☆★☆★
    《21》
    오래된 숲

    윤의섭

    마당엔 대추나무 잘린 밑둥이 남아 있다
    일천구백구십일년십일월 나뭇가지에서 무리져 날아
    오른 새떼는
    노을 지는 바다로 향했고
    그대는 엽서 한 장을 보내고 외항선 타러 떠났다
    서녘이 한 개 별빛에 사그라지는 여명 속에
    화들짝 불타오를 때였던가
    그대는 더 이상 늙어가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서녘으로 퍼진 나이테는 몇 줄에서 멈췄나
    밑둥에 앉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새떼를 떠올린다
    나무 솟았던 하늘엔 환상통처럼 바람이 울며 가고
    그대여 밑둥에 닿은 내 등뼈를 타고 나무는 여전히
    숲을 이룬다
    ☆★☆★☆★☆★☆★☆★☆★☆★☆★☆★☆★☆★
    《22》
    우후강산(雨後靑山)

    윤의섭

    검은 구름 멀리 희미해지고
    앞산의 뜬구름이 가벼운 듯 움직이네

    골짜기에 박혔든 안개도 흩어지고
    목욕을 끝낸 나무들이 술렁이내

    고개 넘어 불어오는 청풍이 자리 할듯
    산비탈 바위들을 간지럽히네

    자루이고 장터로 향하는 아낙들 같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이고 있네

    풍우에 젖어버린 세상의 흙탕물
    옥류로 씻어내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
    《23》
    잔설의 계절

    윤의섭

    봄이 오는 듯 순한 날씨에
    잔설 틈에서 생명의 요정이 솟아오른다

    백두대간 동쪽에는 폭설이 짓궂어
    지붕을 무너트리고 인명을 앗아가네

    금강산 이산가족 만남의 설렘도 잠시이고
    기약 없는 헤어짐을 강요하는 우수광대여

    60년 눈물 흘린 꼬부랑 할매의 지팡이
    또다시 헤어지는 반역의 이산 연극

    숯같이 검어진 움푹 팬 가슴 팍을
    누구에게 보일까
    잔설아 녹기 전에 너는 보아두거라.
    ☆★☆★☆★☆★☆★☆★☆★☆★☆★☆★☆★☆★
    《24》
    저녁식사 풍경

    윤의섭

    어금니 반쯤은 빠지고
    남은 이도 흔들리기 때문에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와드득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아버지
    맛있는데 맛있는 건데
    허탈하게 말하며, 그 총각무같이
    씁쓸한 웃음을
    흐흐흐 흐흐흐
    며느리는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다가
    잠시 입맛을 잃었고
    아버지는 왜 안 먹냐며
    자꾸 권했다
    맛있어, 먹어봐 먹어
    흐흐흐 흐흐흐

    우린 간신히 밥숟가락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음식의 氣만 빨아먹는 귀신같이
    헛것을 먹고 있는 아버지의 웃음
    어느새 그에게도 죽음의 힘이 스몄구나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아무도 우겨 넣은 밥을 넘기지 못했다
    ☆★☆★☆★☆★☆★☆★☆★☆★☆★☆★☆★☆★
    《25》
    弔 鐘

    윤의섭

    그를 이장한다
    땅기운이 오래 스민 뼈는
    살아 있던 날들을 기억하는지
    따스한 뼈 사이사이 오장육부의 텅 빈 흔적

    어릴 적 사경을 헤매고 있던 내게
    그가 왔었다고 했다
    내 몸 뼈마디까지 만지더니
    병을 고쳐주고 갔다지만
    병을 앓았다는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내 죽어 가는 몸에 스쳐간 손길
    잠들어 가는 혼을 깨우러 온
    멀고 먼 곳으로부터의 여정

    그를 이장한다
    텅 빈 몸뚱이가
    텅 빈 무덤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또 병이 도져 그가 오면
    얼굴이나 보려 했는데
    이제 누가 나를 살릴 수 있을까
    마지막 삽 다지는 소리가
    새로 오른 봉분에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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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허소라 시 모음 열편 김용호2014.03.01.1895210
    65 이운룡 시 모음 34편 [1]김용호2014.03.01.2231339
    64 허호석 시 모음 23편 김용호2014.03.01.1734172
    63 김지향 시 모음 61 ∼ 131까지 김용호2014.03.01.1919154
    62 김지향 시 모음 1 ∼ 60편 김용호2014.03.01.1814296
    61 강은교 시 모음 40편 김용호2006.08.09.6640725
    60 천상병 시 모음 20편 김용호2006.08.09.5795562
    59 나희덕 시 모음 30편 김용호2006.08.09.5174645
    58 박두진 시 모음 37편 김용호2006.08.09.5883663
    57 홍윤숙 시 모음 23편 김용호2006.05.27.4138690
    56 이외수 시 모음 34편 김용호2006.04.22.2515374
    55 함석헌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10.16.3131292
    54 김수미 시 모음 41편 김용호2005.10.16.2459258
    53 노래가 된 시 34편 김용호2005.10.16.2878265
    52 고은 시 모음 59편 김용호2005.08.20.3726525
    51 김용택 시 모음 29편 김용호2005.08.20.2671373
    50 김후란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08.20.2184244
    49 기형도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8.20.2348301
    48 피천득 시 모음 23편 [1]김용호2005.07.29.3454450
    47 양현주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6.18.2392338
    46 이육사 시 모음 17편 김용호2005.03.12.4123265
    45 박병순 시 모음 20편 양력 김용호2005.01.31.2761339
    44 이현옥 시 모음 85편 김용호2005.01.25.2383269
    43 김소월 시 모음 31편 [2] 김용호 2005.01.05.6875322
    42 김춘수 시 모음 25편 김용호 2005.01.05.3092227
    41 김영랑 시 모음 25편 김용호 2005.01.05.2720210
    40 이형기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2951227
    39 김수영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4043279
    38 신석정 시 모음 65편 김용호 2005.01.05.2453272
    37 윤동주 시모음 스무편 김용호 2004.12.29.3067233
    36 천양희 시 모음 77편 김용호 2004.12.29.2144283
    35 허영자 시 모음 18편 김용호 2004.12.29.1974257
    34 황금찬 시 모음 34편 김용호 2004.12.29.2088306
    33 양현근 시 모음 21편 김용호 2004.12.29.2003317
    32 김지하 시 모음 52편 김용호 2004.12.29.2189341
    31 박인환 시 모음 17편 김용호 2004.12.29.1928320
    30 유안진 시 모음 22편 김용호 2004.12.29.2173288
    29 노향림 시 모음 20편 김용호 2004.12.29.2000349
    28 홍수희시모음 70편 김용호 2004.07.07.2509367
    27 조병화님 시모음 22편 김용호 2004.07.02.286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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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서정윤 시 모음 26편 김용호 2004.03.12.2598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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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박노해 시 모음/15편 김용호 2004.03.12.261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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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정두리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4.03.12.2918213
    18 도종환 시 모음 40편 [1] 김용호 2004.03.12.3020387
    17 정호승 시 모음 39편 김용호 2004.03.12.2515364
    16 유치환 시 모음 45편 김용호 2004.03.12.3234391
    15 한용운님시모음/15편 김용호 2004.03.12.2670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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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안도현님시모음/20편 김용호 2004.03.12.415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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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서정주 시 모음 41편 김용호 2004.02.09.2647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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