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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시 모음 28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04.03.12. 22:46:29   조회: 4579   추천: 304
    여명문학:

    이해인 시 모음
    ★★★★★★★★★★★★★★★★★★★★
    반지

    이해인

    약속의 사슬로
    나를 묶는다

    조금씩 신음하며
    닳아 가는 너

    난초 같은 나의 세월
    몰래 넘겨보며

    가늘게 한숨쉬는
    사랑의 무게

    말없이 인사 건네며
    시간을 감는다
    나의 반려는

    잠든 넋을 깨우는
    약속의 사슬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

    손 시린 나목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에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
    꽃 멀 미

    이해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
    아름다운 순간들

    이해인

    마주한 친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노을 사이로, 해 뜨는 아침 사이로..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메꾸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날아다닌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잡아 흔들며, 때로는 텅빈 운동장을 돌며,
    바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운 바람을 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
    아무래도 나는

    이해인

    누구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이렇듯 나 자신만을 챙겼음을
    다시 알았을 때 나는 참 외롭다.
    많은 이유로 아프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 곁을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비켜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참 부끄럽다.
    ★★★★★★★★★★★★★★★★★★★★
    부를 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이해인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말을 감추어 둔
    한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옹졸함을
    나의 이기심과 허영심과 약점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감싸 안는 친구야
    하지만 꼭 필요할 땐
    눈물나도록 아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실한 친구야
    내가 아플 때엔 제일 먼저 달려오고
    슬플 일이 있을 때엔 함께 울어 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엔 나보다 더 기뻐 해주는
    고마운 친구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너는 또 하나의 나임을 알게된다...
    ★★★★★★★★★★★★★★★★★★★★
    황홀한 고백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
    바다새

    이해인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
    살아 있는 날은

    이해인

    마른 향내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아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
    해바라기 연가

    이해인

    내 생애가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은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
    고독을 위한 의자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 내가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
    가을 편지

    이해인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
    꽃밭에 서면

    이해인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 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 속의 잘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꽃들의 죄 없는 웃음소리
    붉게 타오르는
    꽃밭에 서면
    ★★★★★★★★★★★★★★★★★★★★
    제비꽃 연가

    이해인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 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 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
    풀꽃의 노래

    이해인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 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
    다시 바다에서

    이해인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환희의 눈물 속에
    내가 만났던 바다

    짜디짠 소금물로
    나의 부패를 막고
    내가 잠든 밤에도
    파도로 밀려와
    작고 좁은 내 영혼의 그릇을
    어머니로 채워주던 바다

    침묵으로 출렁이는
    그 속 깊은 말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기도를
    오늘도 다시 듣네

    낮게 누워서도
    높은 하늘 가득 담아
    하늘의 편지를 읽어주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게 영원을 약속하는
    푸른 사제 푸른 시인을
    나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네
    ★★★★★★★★★★★★★★★★★★★★
    별을 보며

    이해인

    고개가 아프도록
    별을 올려다본 날은
    꿈에도 별을 봅니다.

    반짝이는 별을 보면
    반짝이는 기쁨이
    내 마음의 하늘에도
    쏟아져 내립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혼자일 줄 아는 별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는 별
    나도 별처럼 살고 싶습니다.

    얼굴은 작게 보여도
    마음은 크고 넉넉한 별
    먼 제까지 많은 이를 비추어 주는
    나의 하늘 친구 별

    나도 날마다
    별처럼 고운 마음
    반짝이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
    가을 노래

    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면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
    어머니의 섬

    이해인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께 깊어 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 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
    단추를 달듯

    이해인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고 있는
    나의 손등 위에
    배시시 웃고 있는 고운 햇살

    오늘이라는 새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듯
    제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
    눈 물

    이해인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 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
    코스모스

    이해인

    바람이
    가을을 데리고 온
    작은 언덕길엔
    코스모스
    코스모스
    분홍 빛 하얀 빛
    웃음의 물결
    가느다란 몸매에 하늘을 담고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녀들

    푸른 줄기마다
    가을의 꿈 적시며
    해맑게 웃는다

    코스모스
    코스모스
    바람이 분다
    ★★★★★★★★★★★★★★★★★★★★
    우산이 되어

    이해인

    우산도 받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
    문 밖에 울고 있다

    누구의 설움이
    비되어 오나
    피해도 젖어오는
    무수한 빗방울

    땅 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 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
    사랑
    이해인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워진다는 것을.
    ★★★★★★★★★★★★★★★★★★★★
    아침의 향기

    이해인

    아침마다 소나무 향기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솔잎처럼
    예리한 지혜와
    푸른 향기로 나의 사랑이
    변함없기를...
    찬물에 세수하다 말고
    비누향기 속에 풀리는
    나의 아침에게 인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온유하게 녹아서
    누군가에게 향기를 묻히는
    정다운 벗이기를...
    평화의 노래이기를...
    ★★★★★★★★★★★★★★★★★★★★
    친구에게

    이해인

    부를 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 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말을 감추어 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 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옹졸함을
    나의 이기심과 허영심과 약점들을
    비난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감싸 안는 친구야
    하지만 꼭 필요할 땐
    눈물나도록 아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실한 친구야

    내가 아플 때엔
    제일 먼저 달려오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엔
    함께 울어 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엔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고마운 친구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너는 또 하나의 나임을 알게 된다.

    너를 통해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
    참을성 많고 한결같은 우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본다.
    늘 기도해 주는 너를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나도 너에게 끝까지
    성실한 벗이 되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해 본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못해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며
    오랜 세월 함께 견뎌 온 우리의 우정을
    감사하고 자축하며
    오늘은 한 잔의 차를 나누자
    우리를 벗이라 불러 주신 주님께
    정답게 손잡고 함께 갈 때까지

    우리의 우정을 더 소중하게 가꾸어 가자.
    아름답고 튼튼한 사랑의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춤추며 지나가게 하자.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좋은 벗이 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행복한 이웃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벗이 되자.
    이름을 부르면 어느새 내 안에서
    푸른 가을 하늘로 열리는
    그리운 친구야...
    ★★★★★★★★★★★★★★★★★★★★
    가을 편지

    이해인

    그 푸른 하늘에
    당신을 향해 쓰고 싶은 말들이
    오늘은 단풍잎으로 타버립니다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
    손짓을 하면
    나도 잘 익은 과일로
    떨어지고 싶습니다

    당신 손안에

    호수에 하늘이 뜨면
    흐르는 더운피로
    유서처럼 간절한 시를 씁니다

    당신의 크신 손이
    우주에 불을 놓아
    타는 단풍잎
    흰 무명옷의 슬픔들을
    다림질하는 가을

    은총의 베틀 앞에
    긴 밤을 밝히며
    결 고운 사랑을 짜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옛적부터 타던 사랑
    오늘은 빨갛게 익어
    터질 듯한 감홍시
    참 고마운 아픔이여

    이름 없이 떠난 이들의
    이름 없는 꿈들이
    들국화로 피어난 가을 무덤가
    흙의 향기에 취해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이름 없이 행복한 당신의 내가
    가난하게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입니까

    감사합니다, 당신이여
    호수에 가득 하늘이 차듯
    가을엔 새파란 바람이고 싶음을
    휘파람 부는 바람이고 싶음을
    감사합니다

    당신 한 분 뵈옵기 위해
    수 없는 이별을 고하며 걸어온 길

    가을은 언제나
    이별을 가르치는 친구입니다

    이별의 창을 또 하나 열면
    가까운 당신

    가을에 혼자서 바치는
    낙엽 빛 기도
    삶의 전부를 은총이게 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의 매일을
    기쁨의 은방울로 쩔렁이는 당신
    당신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가을엔 들꽃이고 싶습니다
    말로는 다 못할 사랑에
    몸을 떠는 꽃

    빈 마음 가득히 하늘을 채워
    이웃과 나누면 기도가 되는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파란 들꽃이고 싶습니다

    유리처럼 잘 닦인 마음밖엔
    가진 게 없습니다

    이 가을엔 내가
    당신을 위해 부서진
    진주 빛 눈물
    당신의 이름 하나 가슴에 꽂고
    전부를 드리겠다 약속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잡기 어려운 이여
    나는 이제 당신 앞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끼 낀 바위처럼
    정답고 든든한 나의 사랑이여
    당신 이름이 묻어 오는 가을 기슭엔
    수 만 개의 흰 국화가 떨고 있습니다

    화려한 슬픔의 꽃술을 달고
    하나의 꽃으로 내가 흔들립니다

    당신을 위하여
    소리 없이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싶은

    누구나 한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살아온 날을 고마와하며
    떠날 채비에
    눈을 씻는 계절
    모두에게 용서를 빌고
    약속의 땅으로 뛰어가고 싶습니다

    낙엽 타는 밤마다
    죽음이 향기로운 가을
    당신을 위하여
    연기로 피는 남은 생애
    살펴 주십시오

    죽은 이들이 나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는
    가을엔 당신께 편지를 쓰겠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직은 마지막이 아닌
    편지를 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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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7 주명옥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9.08.10.28732
    236 최봄샘 시 모음 50편 김용호2019.08.10.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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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 최영애 시 모음 35편 김용호2019.07.25.2726
    225 주일례 시 모음 31편* 김용호2019.07.25.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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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3 안광수 시 모음 61편 김용호2019.07.25.2935
    222 박종영 시 모음 71편 김용호2019.07.25.2826
    221 박남준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9.07.25.2989
    220 정용철시모음 21편 김용호2019.06.01.3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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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안국훈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8.05.24.73131
    170 임영준 시 모음 61편 김용호2018.05.24.58212
    169 안성란 시 모음 40편 김용호2018.05.24.59514
    168 남궁선순 글 모음 5편 김용호2018.05.24.4306
    167 윤재석 글 모음 14편 김용호2018.05.24.44415
    166 임두환 글 모음 14편 김용호2018.05.24.48812
    165 송영수 글 모음 4편 김용호2018.05.24.42916
    164 신팔복 글 모음 18편 김용호2018.05.24.46710
    163 한숙자 글 모음 23편 김용호2018.05.24.45811
    162 김상영 글 모음 8편 김용호2018.05.24.38515
    161 임숙현 시 모음 70편 김용호2018.04.22.219714
    160 조경희 시 모음 6편 김용호2018.04.22.70515
    159 배혜경 시 모음 17편 김용호2018.04.22.64916
    158 최영복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8.04.22.71448
    157 양광모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8.02.25.118328
    156 배은미 시 모음 21편 김용호2018.02.25.7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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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김홍성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8.02.07.8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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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정재영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7.12.26.7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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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김수향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7.09.02.91537
    117 조미경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7.02.05.103950
    116 이필종 시모음 35편 김용호2016.12.13.141865
    115 이점순 시 모음 75편 김용호2015.12.31.2751114
    114 전근표 시 모음 85편 김용호2015.06.12.266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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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12월시모음 73편 김용호2014.12.07.1770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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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오태인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1.10.1382261
    102 박경리 시 모음 70편 김용호2014.11.01.1731352
    101 이효녕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4.11.01.1363399
    100 오세영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1.01.2353457
    99 이정록 시 모음 27편 김용호2014.10.23.1876102
    98 이은상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23.1297244
    97 정채봉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4.10.23.2115149
    96 성진명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0.23.1267269
    95 우덕희 시 모음 22편 김용호2014.10.23.1582144
    94 황인숙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4.10.23.1245239
    93 곽재규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0.23.1509227
    92 이병주 시 모음 50편 김용호2014.10.07.1321148
    91 오세철 시 모음 87편 김용호2014.10.07.1811298
    90 김동원 시 모음 79편 김용호2014.10.07.1033117
    89 구연배 시 모음 40편 김용호2014.10.07.1231273
    88 김영화 시 모음 30편 김용호2014.10.07.1240206
    87 선미숙 시 모음 70편 김용호2014.10.07.1296183
    86 이병율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0.07.158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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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고은 시 모음 59편 김용호2005.08.20.4189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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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기형도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8.20.2607360
    48 피천득 시 모음 23편 김용호2005.07.29.3928531
    47 양현주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6.18.2583349
    46 이육사 시 모음 17편 김용호2005.03.12.4374277
    45 박병순 시 모음 20편 양력 김용호2005.01.31.3001366
    44 이현옥 시 모음 85편 김용호2005.01.25.2704282
    43 김소월 시 모음 31편 김용호 2005.01.05.7222334
    42 김춘수 시 모음 25편 김용호 2005.01.05.3344238
    41 김영랑 시 모음 25편 김용호 2005.01.05.2970221
    40 이형기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3225235
    39 김수영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442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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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양현근 시 모음 21편 김용호 2004.12.29.2467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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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고정희 시 모음 38편 김용호 2004.02.10.3163496
    6 서정주 시 모음 41편 김용호 2004.02.09.3129466
    5 노천명 시 모음 23편 김용호 2004.02.08.2329421
    4 정지용 시 모음 24편 김용호 2004.02.08.2219353
    3 김현승 시 모음 35편 김용호 2004.02.03.5542546
    2 주옥같은시어모음 김용호 2004.02.03.2954414
    1 여명 문학 회칙  여명문학2004.01.25.19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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