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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환 글 모음 13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5.24. 18:01:47   조회: 363   추천: 12
    여명문학:

    김재환 글 모음 33편
    ☆★☆★☆★☆★☆★☆★☆★☆★☆★☆★☆★☆★
    《1》
    그래도 다케시마 (竹島 獨島)는 일본 땅

    김재환

    거대한 야산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성난 괴물은 삽시간에 모든 걸 집어 삼켰다.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도 아니었다.
    자연현상의 괴력, 일본 대지진의 후폭풍 해일 - 쓰나미의 위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카메라의 리얼리티에 그저 치를 떨 뿐이었다.
    문명의 이기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린 그 어떤 공포영화의 연출된 영상도
    그 앞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계속하는 TV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
    우두커니 넋을 놓고 있었다.

    지난 3월 11일 오후, 일본 동북부 일대 142?38 지점에서 일어난 9.0의
    강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과 붕괴로 이어진
    대재앙을 보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인간이 자연을 경시하고 만들어낸
    문명 앞에 굴복하고 파괴됨을, 사후 안전장치 부재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자연과 문명이 충돌한 대재앙의 괴력 앞에 속수무책인 냉정한 현실에 만감의 교차와 번민에 짓눌려 답답할 뿐이었다.
    이웃나라 일본이 선조들이 지은 죄 때문에 천벌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얄궂은 일일까?
    그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70대 이상, 일본 식민통치를 경험한 세대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핍박받은 아시아인들 대부분도 그랬을 것이다.

    "업보야, 업보!"

    방풍림과 제방을 순식간에 밀어붙이며 돌진하는 엄청난 해일,
    들판의 비닐하우스와 자동차, 선박, 센다이 국제공항에 계류해 있던 비행기,
    건물과 마을, 도시를 한순간에 집어 삼켜버리는 괴물은 공포와 경악 그 이상이었다.
    그 앞에선 모든 게 그저 한 조각 휴지였고 흩날리는 낙엽이었다.
    헬리콥터에서 촬영된 생생한 영상이기에 더욱 리얼했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그 후유증이
    오랫동안 심각하게 일본을 짓누를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우방 선진국들이 발 빠르게 구조대를 급파하고
    구난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구호품과 이재민을 돕기 위한 기부, 모금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정 많은 우리 한민족은 이웃사촌으로서 일본 돕기의 선봉에 나섰다.
    대한적십자사, 욘사마(배용준)를 비롯한 한류스타들과 각계각층이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한류스타들은 일본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으니 이해가 된다.
    앞으로 인기 관리 때문에 수익자부담원칙 같은 경제논리로
    그들의 숭고한 뜻을 흠집 내기는 싫다.
    서민이 상상하기도 힘든 몇 억씩,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진정 기상이변과 수해, 폭설, 구제역으로 만신창이가 된 농어민들에게
    얼마만큼 성금을 냈을까?
    씁쓸하고 착잡하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공영방송 KBS가 자선음악회 등 성금모금을
    선동하고 주도하는 일이 영 개운치 않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엔 반일감정이 짙게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식민지 피해의식과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사과나, 과거사 정리가 없는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이니 말이다.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구호성금을 밭는 손이 부끄러울 것이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20년 동안 줄곧 무언의 시위를 해온
    정신대 열세 살 소녀 윤??님은 지금 여든 노객이시다.
    원한이 맺혀 사리(舍利)가 되었음직한 그녀는 지난 16일 수요일엔
    시위를 중단하고, 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했다는
    보도를 보며 가슴이 저미는 전율을 느끼고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나 고매한 인격과 영롱한 영혼의 소유자이신가?
    독도영유권, 역사왜곡교과서 편찬, 정신대 보상 등 미묘한 문제만 나오면
    “침묵은 금이다” 로 일관한 일본대사 무사마사토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려본다.
    그저 말로만 감사하다고 했을까?
    역시 한민족은 일본인보다 높은 이상과 영혼을 가진 자애롭고 숭고한
    가치관을 가진 민족으로 인식했을까?
    아니면 밸도 오기도 없는 조센징으로 얕잡아 보았을까?

    천 년 전 동북아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후예,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화산폭발에 기인한다.
    일본의 영산 후지산 화산폭발이 다가왔음을 지질학자, 미래학자들이
    예고하고 있으며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학자는 강진과 기상변화에 의거 일본열도의 침몰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후지산 폭발과 일본열도의 침몰은 일본의 멸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백두산이 폭발한다 해도 대한민국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멸망하기 전, 일본은 과거사를 명쾌하게, 사무라이답게 대한국민에게
    진정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 역사왜곡문제도 전면 수정하여 올바른 역사관을 후손들에게 물려 줘야한다.
    선대(先代)들처럼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늘이 두 눈 부릅뜨고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대일본 지진이 다 수습되고 정국이 안정되면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일본은 뻔뻔스럽게 다케시마가 저희 땅이라고 생떼를 쓰며 우길 것이다.
    ☆★☆★☆★☆★☆★☆★☆★☆★☆★☆★☆★☆★
    《2》
    그래도 독도를 탐내는가

    거대한 야산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성난 괴물은 삽시간에 모든 걸 집어삼켰다.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도 아니었다.
    자연현상의 괴력, 일본 대지진의 후폭풍 해일 쓰나미의 위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카메라의 리얼리티에 그저 치를 떨 뿐이었다.
    문명의 이기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린 그 어떤 공포영화의 연출된
    영상도 그 앞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계속하는 TV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
    우두커니 넋을 놓고 있었다.
    지난 3월 11일 오후, 일본 동북부 일대 142×38 지점에서 일어난
    9.0의 강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과
    붕괴로 이어진 대재앙을 보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인간이 자연을 경시하고 만들어낸
    문명 앞에 굴복하고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사후 안전장치 부재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자연과 문명이 충돌한 대재앙의 괴력 앞에
    속수무책인 냉정한 현실에 만감이 교차하고 번민에 짓눌려 답답할 뿐이었다.
    이웃나라 일본이 선조들이 지은 죄 때문에 천벌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얄궂은 일일까?
    그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70대 이상, 일본 식민통치를 경험한 세대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핍박받은 아시아인들 대부분도 그랬을 것이다.
    “업보야, 업보!”
    방풍림과 제방을 순식간에 밀어붙이며 돌진하는 엄청난 해일,
    들판의 비닐하우스와 자동차, 선박, 센다이 국제공항에 계류해 있던
    비행기, 건물과 마을, 도시를 한순간에 집어삼켜버리는 괴물은
    공포와 경악 그 이상이었다.
    그 앞에선 모든 게 그저 한 조각 휴지였고 흩날리는 낙엽이었다.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생생한 영상이기에 더욱 리얼했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그 후유증이
    오랫동안 심각하게 일본을 짓누를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우방선진국들이 발 빠르게 구조대를 급파하고
    구난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구호품과 이재민을 돕기 위한 기부, 모금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정 많은 우리 한민족은 이웃사촌으로서 일본 돕기의 선봉에 나섰다.
    대한적십자사, 욘사마(배용준)를 비롯한 한류스타들과 각계각층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한류스타들은 일본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으니 이해가 된다.
    앞으로 인기 관리 때문에 수익자부담원칙 같은 경제논리로 그들의
    숭고한 뜻을 흠집내기는 싫다.
    서민이 상상하기도 힘든 몇억씩,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진정 기상이변과 수해, 폭설, 구제역으로 만신창이가 된
    농어민들에게 얼마만큼 성금을 냈을까?
    씁쓸하고 착잡하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공영방송 KBS가 자선음악회 등 성금모금을
    선동하고 주도하는 일이 영 개운치 않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엔 반일감정이 짙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식민지 피해의식과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사과나, 과거사
    정리가 없는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니 말이다.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구호성금을 받는 손이 부끄러울 것이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20년 동안 줄곧 무언의 시위를
    해온 정신대 열세 살 소녀 윤○○님은 지금 여든 노객이다.
    원한이 맺혀 사리舍利가 되었음 직한 그녀는 지난 16일 수요일엔 시위를
    중단하고, 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했다는
    보도를 보며 가슴이 저미는 전율을 느끼고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나 고매한 인격과 영롱한 영혼의 소유자인가?
    독도영유권, 역사왜곡교과서 편찬, 정신대 보상 등 미묘한 문제만 나오면
    “침묵은 금이다.”로일관한 일본대사 무사마사토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려본다.
    그저 말로만 감사하다고 했을까? 역시 한민족은 일본인보다 높은 이상과
    영혼, 자애롭고 숭고한 가치관을 가진 민족으로 인식했을까?
    아니면 밸도 오기도 없는 조센징으로 얕잡아 보았을까?
    천 년 전 동북아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후예,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화산폭발에 기인한다.
    일본의 영산 후지산 화산폭발이 다가 왔음을 지질학자, 미래학자들이
    예고하고 있으며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학자는 강진과 기상변화에 의거 일본열도의 침몰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후지산 폭발과 일본열도의 침몰은 일본의 멸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백두산이 폭발한다 해도 대한민국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멸망하기 전, 일본은 과거사를 명쾌하게, 사무라이답게 대한민국에게
    진정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도 전면 수정하여 올바른 역사관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선대先代들처럼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늘이 두 눈 부릅뜨고 내려다보고 있지 않는가.
    대일본 지진이 다 수습되고 정국이 안정되면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일본은 또 뻔뻔스럽게 다케시마가 저희 땅이라고 생떼를 쓰며
    우길 것이다.

    출처 : 김재환 《금물결 은물결》중에서
    ☆★☆★☆★☆★☆★☆★☆★☆★☆★☆★☆★☆★
    《3》
    금물결 은물결(金銀波)

    조종간操縱杆 계기판 너머 프로펠러 아래로 은물결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오드리 헵번이 기웃거리며 눈요기하던 <티파니>보석점
    진열대보다 더 눈부시다.
    긴 장마 끝 오랜만에 아침 날기[飛行]를 한다.
    윈도를 스치는 발아래 8월의 산하山河는 푸르다 못해 거무죽죽하다.
    바람에 흐르며 스치는 목화솜 뭉게구름은 갓난아기 뺨처럼
    보드랍고 포근하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동트는 호수에 한 가닥 바람이 스친다.
    은물결은 크고 빠르게 출렁대며 반짝인다.
    한 여름밤 은하수 속에서 현란히 춤추는 별무리들의
    댄스파티장처럼 황홀하다.
    아침 은물결은 차분한 설렘의 희망이다. 보름 전후 청아한 달밤,
    달빛에 어리는 강변의 은물결은 처연한 외로움이다.
    어슴푸레한 달빛과 산 그림자가 신비로운 분위기로 우리의 추억을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힌다.
    저녁놀 붉게 타는 해 질 녘 비행은 내게 또 다른 서러움을 준다.
    강물 위에 금물결은 휘황찬란한 왕의 금관처럼 눈부시게 찰랑댄다.
    호화로움 뒤편엔 서러운 연민의 회한이 괸다.
    강물은 서서히, 때론 쏜살같이 흐른다.
    그의 의지意志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길고 혹은 짧은 여행을 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말없이 조용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금물결 은물결金銀波은 내 아호雅號 은파銀波와 성인 김金을
    우리말로 푼 이름인데 아름답고, 다분히 로맨틱하고 낭만적이며
    감성적인 단어다.
    해·낮·남성·강함을 상징하는 金(쇠김, 성김), 달·밤·
    여성·연약·아름다운 무드와 뉘앙스를 살포시 내는 銀(은은). 波
    (물결파)는 움직임과 감쌈, 포용과 변화를 갈구하는 언어라
    좋아하는 단어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큰집에서 얹혀 살던 감수성 예민했던 열 살 남짓
    하던 때, 지독히 외로웠을 때, 비단 강[錦江] 강가에서 소매고
    소 꼴베며 아침저녁으로 보던 강물의 반짝임.
    쓸쓸함이 뭔가도 모르면서 센티멘털한 소년은 그렇게 이름을 지었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렀건만 버리지 못하는, 전혀 싫증나지 않는 닉네임이다.
    물은 저 스스로 결을 일지 못한다.
    바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셈과 약함, 방향에 따라 모양새를 만든다.
    햇빛이냐 달빛이냐에 따라 금물결이 되고 은물결이 되기도 한다.
    빛의 명암과 강도에 따라 맵시가 결정되고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세상 모든 일은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없음을,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고여 있는 잔잔한 호수와 흐르는 강여울의 반짝임은 사춘기 소녀와
    소년의 모습이다.
    금물결 은물결은 계절, 시간, 때, 장소, 주위의 자연적 조건에 따라
    느낌과 뉘앙스가 다르다.
    느끼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천차만별 색깔이 눈에 보이고 느껴진다.
    한때, 높고 빛나는 이상과 목표의 푯대를 찾아 정열을 불사르고
    혼신을 다했던 일들이 욕심과 아집이었던 것을 이상과 현실의
    부조리 속에 나와 생각이 다른 자들을 증오하고 불신한 내 허물을
    뉘 탓이라 원망하랴.
    비록 지나온 내 삶이 만족스럽진 못했어도 내 아호 ‘은파’,
    금물결 은물결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게, 은은하게 빛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남고 싶다.
    그저 미세한 바람에 물결치는 아침 호숫가 파랑波浪처럼,
    저녁노을 붉게 타는 황금색 물결처럼, 멋과 맛을 즐기며 살아가리라.
    고독에 휘감겨 한축寒縮을 느끼듯 외로운 달밤에 어슴푸레 이는
    은물결처럼 추하지 않고 우아하게, 요란치 않고 고결하게, 화려함보다
    소박하게 살아가련다.
    늘 금 물결 은물결의 작지만 강렬한 반짝임을 멈추지 않으면서…….
    ≪수필과비평≫ 2009년 9/10월호(103호) 게재

    출처 : 김재환 《금물결 은물결》중에서
    ☆★☆★☆★☆★☆★☆★☆★☆★☆★☆★☆★☆★
    《4》
    김초롱 이초롱

    김재환

    나는 눈부신 은발을 휘날리는 순백의 김초롱입니다.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리차드 기어>처럼 잘 생기고
    우수 깃든 매력이 넘친다고 칭찬을 해 줍니다.
    주인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지만 괜히 내가 우쭐합니다.
    내 동갑내기 동반자는 이초롱입니다.
    <샤론 스톤>처럼 매혹적이고 섹시하지요.

    나는 7년 전, 2003년 생후 2개월 만에 지금의 동반자와 낯설고
    물 선 첩첩산중 이곳 산골짝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달랑 혈통확인서와 출생증명서만 가지고 말입니다.
    울며불며 부모 형제와 영원한 생이별을 하고 제 고향 진도(珍島)를 떠났습니다.
    이웃집에 살던 이초롱이와 함께여서 조금은 덜 외로웠는지도 모른답니다.
    나의 주인께서는 저에게 <김초롱>, 같이 온 동무에겐 <이초롱>이라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해풍에 실린 갯내가 몸에 배고 따듯한 남쪽에서, 왕으로 모시는 주인나리의
    승용차에 실려 5시간의 긴 여행 끝에 온 천지가 눈에 파묻힌
    동화 속 나라 같았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끝자락이었습니다.

    새로 모시는 나의 태양, 금물결 은물결님은 적막강산 숲 속에서 안주인과
    두 분이 살고 계십니다.
    띄엄띄엄 서울에 사는 자녀분들과 내외분 친구들이 드문드문 찾아올 뿐입니다.
    그리고 심심찮게 우편배달부와 택배차량이 드나들어 우리가 소리 높여
    발성연습을 하게 합니다.

    인적이 뜸한, 조용하다 못해 고독한 귀양살이를 하는 절해고도와 같습니다.
    양지바른 집 앞 현관 옆에 거의 1급 호텔 수준으로 저희들의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마을과 멀리 떨어져 심심한 것을 빼고는 눈앞에 펼쳐지는 산과 강,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젖떼고 까칠한 사료만 먹다가 좋은 고기반찬과 부드럽고 영양가 높은
    고품질 먹이, 깨끗하고 맑은 물을 주시니 금상첨화입니다.
    저희는 쇠창살 우리 속에 갇혀 살다가 목걸이만 찬 채로 자유스러우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무럭무럭 컸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며 앞산 계곡과 뒷산을
    오르내리며 호연지기를 길렀습니다.
    다람쥐, 꿩, 토끼, 노루 등 산짐승들과도 만납니다.
    그런데 멧돼지 가족을 만나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치기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곳으로 온지 두 달 뒤 꽃샘추위가 시새움하던 2월 잔설이 가득한 날,
    주인나리는 출근하시고 안주인께서도 출타하시어 우리 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을 때였어요.

    쌀쌀한 겨울날 찬바람만 불어와 너무도 적적했었습니다.
    산새도 다람쥐도 놀러오지 않았습니다.
    아침나절 새참 무렵 앞산 매봉으로 토끼사냥을 갔었지요.
    한 마리를 잡아 맛있는 부위로 시장기를 때우고, 머리통과 네 다리를 물고
    첫 사냥의 기쁨을 즐기며, 전장에서 전리품을 얻은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지요.
    생애 첫 사냥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짝꿍은 해질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지 뭡니까?

    “네 짝은 어디 있니?”

    안주인이 물어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곧이어 주인어른이 퇴근하시고 이 초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밖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토생원(兎生員)만 물고 오다 이초롱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냥 갔다 온 곳을 바라보며 슬프게 울었습니다.
    두 달간 살 비비며 함께 뛰놀았고 동향(同鄕)인 실향민으로써 그동안 깊은
    정이 들었지요.
    눈치 빠른 주인님은 나를 데리고 내가 바라보고 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냅다 뛰었지요. 가시덤불을 헤치며 한참을 달리니 내 짝의
    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토끼 올무에 목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얀 목털은 한 올 빠지지 않고 억새풀과 석양빛에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추위와 몇 시간 동안 홀로 공포에 떨었을 텐데 참으로
    의젓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있었습니다.
    우리 종족 순수혈통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였으면 저는 짝꿍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냥 나는 내 짝꿍에게 홀딱 반하게 되었답니다.

    주인어른은 강철로 된 올무를 절단할 공구를 가져다 무사히
    이초롱이를 구출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각각 목걸이에 쇠줄을 차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한 주인어른의 불가피한 선택임을 이해하지만
    자유를 잃은 우리는 정말 싫었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살이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씨 착한 주인어른은 이따금 우리를 데리고 뒷산 호랑이바위에 가서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보여주고, 금강과 이 지역 진안고원의 설화와
    역사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죽도폭포나 시냇가에 데리고 가서 맑은 물에 목욕도 시켜주고, 강가 푸른
    잔디밭에서 운동도 시켜주셨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1년 반이 되자 주인께서는 우리에게 합방을 시켜주었습니다.
    얼마나 목매게 그리던 바람이었는지 모릅니다.
    몹시 설레고 황홀했습니다.

    결혼 2개월 뒤 우리는 사랑의 결실인 5남매를 낳았고, 마침내
    우리는 어버이가 되었지요.
    날씨가 몹시 추운 날 밤이라 출산 중 자식 하나는 슬프게도 잃었습니다.
    2남 2녀는 건강하고 튼실하게 잘 자랐습니다.
    주인께서는 사내에겐 <금초롱> 계집애에겐 <은초롱>이란 예쁜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몇 달 뒤 남매를 서울 사시는 주인어른 친구에게 이사를 보내고
    <금초롱>, <은초롱> 남매와 2대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매년 5~6남매를 낳아 키우고 분가시키며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따금 우리의 야성을 잃지 말라고 사냥을 시키며 노루와 너구리 등
    산짐승을 잡을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간혹 긴 시간 해외출타를 하실 때면 아랫마을 이장에게 우리들의
    먹이를 부탁하여 배를 곯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한 해 반전이었지요. 셋째 자식들인 <봄 향기> <가을바람>이 큰 사고를 쳤습니다.
    그 해 겨울이 시작되는 2007년 11월 13일 20시 30분경 이었습니다.
    안주인께서는 서울 자녀들 집에 가시고 바깥주인은 출근 중이었습니다.
    정년퇴임이 달포 남짓 남은 때였습니다.

    텅 빈 숲 속 집의 주인이 되니 마냥 우리들 세상이었습니다.
    첫눈이 제법 바람에 흩날리며 쌓이고 있었습니다.
    매일처럼 놀러오던 숲 속의 동무들도, 하늘을 나는 친구들도 눈보라 때문인지
    오지 않아 적적하고 무료했습니다.
    멍에를 메지 않은 <봄 향기와 가을바람>은 신들린 무당처럼 신나게
    첫눈을 만끽하며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주인께서 열두 시간이 지나서야 비탈진 눈길을 헤치며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주인께서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는데 셋째 애들이 반가움에 넘쳐,
    매일 그러하듯 주인에게 엉겨 붙어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스무 개 계단 중 두 계단을 남기고 주인은 우리 애들을 밟지 않으려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주인님의 잘 생긴 이마와 콧잔등에서는 시뻘건 피가 범벅이었습니다.
    돌부리에 정통으로 얼굴을 다쳐 눈 쌓인 돌계단에는 홍매 화가
    여러 송이 피었습니다.
    피는 멈추지 않고 엄청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능지 처참 감이었습니다.
    불안과 초조에 간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가야하는데 눈길이라 위험하고, 주인께서는
    약주도 몇 잔 드신 것 같았습니다.
    119를 불러야 하는데 퍽 난감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은
    주인님은 <봄 향기, 가을바람>에게 처음으로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냅다 혼쭐이 빠진 그 애들은 그 시간 이후 우리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요.
    후우,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마음씨 고운 주인님은 이튿날 “회초리질을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아이들을 다시 풀어 주었습니다.

    주인님은 그 이튿날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이마와 인중, 콧잔등에
    영광의 퇴직훈장, 사성장군(四星將軍)이 되었습니다.
    달포가 지나도 계급장은 더 뚜렷하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퇴임식 관계로 주인님의 얼굴화장 하시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내가 한없이 송구스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근무처에서 고객과 아랫사람들 보기에 얼마나 부끄럽고 불편하셨겠습니까.
    분명 술을 많이 드셔서 그랬을 거라고 비아냥과 오해도 받았을 겁니다.
    내가 일일이 해명해 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두 해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상흔의 별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매일아침 먹을거리를 가져다 줄 때마다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 죽기 전에 상흔이 없어지기를 매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도합니다.
    지난 삼복더위엔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고급 야만 보신족(補身族)들은 우리 진돗개를 제일로 알아준다고 귀동냥으로
    들었거든요. 다행이 삼복더위를 무사히 넘겨 성년이 된 내 자식들이
    당분간 무사할 테니까요.

    나는 행운아인 것 같습니다.
    선량한 주인 내외를 잘 만나 좋은 환경 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부귀를
    누리는 삶이니까요.
    우리 가족을 풀어 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나친 욕심일까요?

    우리는 야성이 발동하여 아랫마을의 개와 닭, 온갖 작물들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숲 속에서 알을 품는 꿩과, 고라니, 노루, 다람쥐, 토끼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을 테니까요.
    그들은 온갖 날짐승과 더불어 외롭고 심심할 때 동무가 되어준 정다운 이웃이며
    친구들입니다.
    나의 본연의 임무인 외딴집을 잘 지키고, 멧돼지나 노루, 고라니가
    작물에 손대지 못하도록 지킴이 역할을 철저히 해야겠지요.
    주인내외분께 충성을 다하여 사랑받아 내 가족의 평안과 강녕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웃 임실지역의 전설 오수의견의 충직을 실천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지천명을 넘겨 이순이 가까운 나이에, 지나온 내 짧지 않은 삶을 되돌아보며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처서가 지났으니 곧 주변은 단풍으로 물들겠지요.
    계절의 변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 또 눈보라 휘날리는 하얀 계절은
    어김없이 올 테고, 그때 난 또 이곳에 처음 온 날과 올무사건,
    주인나리 사성장군 사건을 추억하며 픽 쓴웃음을 지을 것 같습니다.
    ☆★☆★☆★☆★☆★☆★☆★☆★☆★☆★☆★☆★
    《5》
    꽃 피네 꽃 지네

    뜨락 한 모퉁이에서는 할미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여 제자리를 지킨다.
    올해 고로쇠나무는 지구 온난화 탓인지 제 목숨을 보전하려
    는 것인지 수액을 무척 아끼면서 병아리 눈물만큼만 준다.
    제일 먼저 움이 돋은 난초는 제법 자랐고, 튤립도 땅을 박차고
    빠끔히 하늘을 쳐다본다.
    이슬비가 보약처럼 내린다.
    초우初雨다.
    벚꽃은 눈부시게 사나흘을 피려고 일 년을 인고했고 산 벚꽃은
    수채화처럼 온 산을 점으로 찍는다.
    진분홍 진달래꽃과 샛노란 개나리꽃은 원색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해님에게 윙크를 한다.
    청초한 배꽃은 눈부시게 소복단장을 하고, 무릉도원 복숭아꽃은
    요염한 자태로 벌 나비를 유혹한다.
    시샘이나 하는 듯 자두나무와 살구나무도 서둘러 백의의 천사가 된다.
    화단에선 이름 값이나 하려는 듯 금낭화의 모습이 화려하다.
    논에서는 자운영 꽃이 붉게 빛나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숲에선 온갖 새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봄을 찬미한다.
    산과 들에는 철쭉꽃이 피고 정원에는 라일락꽃이 눈과 코를 마비시키며
    순진하고 가녀린 소녀의 마음을 홀린다.
    보라색 등나무 꽃은 치렁치렁 열아홉 큰애기 댕기마냥 늘어지고
    창백한 박 덩이 같은 수국과 귀티 나는 작약이 의젓하다.
    나른한 4월이 가고 있다.
    앞산의 층층나무가 소박한 부챗살 같은 하얀 꽃을 피우고 산비탈
    언덕 위의 찔레꽃과 아까시 꽃 향기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담벼락 너머엔 빨간 넝쿨 장미꽃과 백장미, 흑장미가 자존심
    대결을 하느라 한 치 양보가 없다.
    봉황새만이 앉는다는 장독대 뒤 오동나무의 진한 남보라색 꽃이 귀족답다.
    모란꽃은 시원한 바람결에 졸음에 겨운지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때죽나무는 은방울꽃처럼 앙증맞게 작은 초롱을 만들었다.
    박달나무는 또 다른 흰 도라지꽃을 피웠다.
    들판엔 온갖 야생화가지천으로 피어나 계절을 충만하게 살찌운다.
    5월이 가고 있다.
    지금 서해안 어느 바닷가엔 핏빛보다 붉은 해당화가 떼 지어 피어
    있을 게다.
    하늘이 낮고 습기가 많은 여름날이 오면 외로운 싸리 꽃과
    청초한 도라지꽃이 동무를 할 것이며, 산골짝 적막한 계곡의
    산나리꽃은 외롭게 홀로 서서 인기척을 기다린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을 닮은 자귀나무 꽃은 무지개 색으로
    현란함의 극치를 이룬다.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고 마는 연약한 나팔꽃, 장마 속에 피고
    지는 은은하고 끈질긴 무궁화, 기린처럼 큰 키를 자랑하는 도도한
    접시꽃, 막내 이모가 손톱에 곱게 물들여주던 봉선화, 화무십일홍을
    비웃으며 석 달 열흘이나 꽃을 피우는 백일홍, 화단에서는 해당화보
    다 더 붉은 칸나가 정염을 토한다.
    고매한 글라디올러스는 단아함을 뽐낸다.
    흙탕물 속에서 품위를 지키는 연꽃은 이 세상 온갖 번뇌를
    품에 안고 삼라만상을 정화시키고 의연히 제자리를 지킨다.
    바람결위로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떼 지어 날면 작열하는 태양 빛도
    슬그머니 높아 가는 푸른 하늘 속으로 연기처럼 빨려들어 간다.
    여름[雨]은 그렇게 갈 것이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태양의 아들 해바라기 꽃이 즐거워할 때,
    이효석의 하얀 소금밭인 메밀꽃은 오히려 처연한 자태를 보일 것이다.
    달밤에 보이는 언덕배기 달맞이꽃과 초가지붕의 박꽃은 청승스럽고,
    샐비어꽃은 에스파냐의 집시처럼 정염의 불을 지필 것이다.
    토방 아래선 귀뚜라미가 계절의 변화를 알리려고 한 통의 엽서를
    부쳐온다.
    모든 꽃들의 잔치가 끝날 무렵, 서릿발이 내릴 때 고고한 국화는
    자태를 선보인다.
    철새는 날아가고 또 날아오고 그리도 무성했던 잎 새들은 작별을 고한다.
    가을[葉]은 그렇게 갈 것이다.
    산록에 서설이 내리고 문풍지가 북풍에 시릴 때 상고대에는 지상최고의
    아름다운 꽃, 수만 개의 눈꽃이 핀다.
    나무 위에, 마른 풀포기 위에, 바위 위에……. 흰 모시적삼처럼 희고
    고운 눈꽃이 세태에찌들고 병든 우리 가슴속에 피어 아낌없는 평안을 준다.
    겨울[雪]은 그렇게 깊어 갈 것이다.
    또다시 봄은 어김없이 올 테고 돌아오는 해에도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또, 또……. 몇 번이나 꽃이 피고 지고 윤회하는
    이 꽃들과 이름 모를 다른 꽃들의 삶을 볼 것인지.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 데도 순서가 있는데 올해는 그 순서가
    서서히 파괴되고 있다.
    자연의 순리가 무너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이리라.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환경파괴의 중지와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경고하는 것 같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 메시지를 보내 왔다.
    시방 지구촌 여기저기서 경고의 신호탄이 터지고 있지 않는가?

    출처 : 김재환 《금물결 은물결》수필집 중에서
    ☆★☆★☆★☆★☆★☆★☆★☆★☆★☆★☆★☆★
    《6》
    내비게이션(Navigation)

    김재환

    진땀이 난다.
    대체로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겁 안 먹고 침착히 대처하는 편인 내가 별일이다.
    한 시간 가까이 길 잃은 어린양이 되어 헤매고 있다.
    깊은 아마존 정글도 아니고 낮선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도 아닌데 말이다.
    서산에 남은 해의 길이도 서너 뼘밖에 되지 않는다.
    머지않아 어둠이 내릴 것이다. 모험심과 역마살 끼가 다분하다는 소리를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처럼 초조하고 긴장되며 불안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밤길도 아닌 대낮에 이게 무슨 꼴인지 알 수가 없다.

    주인을 잘 못 만난 자동차는 괴로울 것이다.
    쓸데없이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방랑벽이 있는 사람을
    파트너로 만났을 때 말이다. 계획된 일정에 따라 여행을 하다가도
    호기심이 당기는 곳이면 주저 없이 핸들을 돌린다.
    자동차 트렁크엔 텐트와 배낭, 취사도구를 포함한 등산장비는 항상
    출동을 기다리는 119소방관처럼 비상 대기하고 있다.

    운전을 처음 시작한 건 스물두 살 때 설악동에서였다.
    한때 오토바이에 홀려 전국을 구석구석 이 잡듯 헤매고 다니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10여 년간이었다.
    바람은 무릎 속을 파고들어 오토바이를 더 탈 수 없게 했다.
    ‘스즈키’와 10년간 20만 Km를 같이 달렸다.

    이름도 귀여운 포니(Pony)와 6년간 25만 Km, 날렵한 에스페로와
    12년 36만Km를 동행했었다. 지금은 산타페와 7년간 16만Km를 같이 걷고 있다.
    비행거리를 제외하더라도 97만Km를 넘겼으니, 100만Km 돌파기록도
    이제 눈앞에 와 있다.

    지구 둘레 24바퀴를 넘게 좌충우돌 훑었으니 동반자들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다.
    길눈이 밝은 편인 나는 지금까지 내비게이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동안 수많은 낮선 여행길에도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았었다.
    가끔 속도위반 범칙금 통지서는 받았지만…….
    사실 비행을 할 때도 G, P, S를 별로 사용치 않는다.

    어제부터 이틀간 신라 천년고도 경주시 보문 관광단지 안에 있는 콩코드호텔에서,
    <수필과 비평> 2009 하계세미나가 있었다.
    교수님과 문우 몇 분을 모시고 참가하게 되었다.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 문학상시상식, 문학 강연, 디너파티, 놀이마당,
    이튿날 문학기행 순으로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이슥한 자정 가까운 밤까지 이어진 첫째 날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전국에서 모인 400여 문인들은 삼삼오오 끼리끼리 2차로 날밤을 새다시피 했다.

    경주에 올 때마다 떨떠름한 기분이다. 경주김씨의 분파인 사천(泗川)
    김가지만 나는 경주김씨인 김춘추와 김해김씨 김유신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외세인 당나라 세력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루지만, 옛 광활한 고구려 고토를 잃고 찬란한 백제문화를 말살한 과오는
    결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 숨쉬는 우리나라 역사는 신라의 역사뿐인 반쪽 역사여서 서글프다.
    시방 경주에서는 허구로 역사를 덧칠하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촬영되고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우리는 왜곡된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둘째 날 문학기행을 마치고 끝마무리가 되었다. 졸림을 참으며 귀갓길에 올랐다.
    피로에 지친 교수님과 선배 문우님은 깊은 꿈에 빠지고, 한 선배 문우님께선
    운전하는 나의 졸음을 막아주려고 판소리 창으로 배려를 해 주셨다.
    대구시에 들어선 뒤, “아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긴급 사고가 발생했다.
    요 근래 새로 바뀐 88고속도로 진입로를 놓쳐버린 것이다.
    대구시는 엄청난 아파트 숲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도심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갈팡질팡 헤매다보니 영락없는 촌뜨기가 되었다.
    내비게이션이 절실히 필요했다. 동행한 교수님과 선배님들께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다.
    나 역시 자존심을 확 구겨버렸으니 내 자신을 내가 용서 할 수 없었다.

    반항아 기질이 다분했던 사춘기엔 근엄하고 말이 적으신 아버지는
    내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했었다.
    학식과 경륜이 높은 아버지이셨지만,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아온 탓으로
    잔정이 들지 않아 가깝고 먼 분이셨다.
    별 말이 없이 냉랭한 그런 관계였다.
    자상한 어머니가 도움이 되셨지만 진정한 길잡이는 되지 못했다.
    방황과 질곡의 늪을 허우적거릴 때 큰형 같은 아홉 살 위 외삼촌은
    내게 구원이었다.
    출중하게 똑똑했던 외숙은 인생의 황금기 꽃다운 서른아홉 불혹을 눈앞에 두고
    나를 버리고 무릉도원을 찾아 긴 여행길을 떠나셨다.
    그 뒤 나는 무리에서 흩어진 길일은 철새였다.
    큰형님 같던 외삼촌을 무척 그리워했었다.
    어렵고 힘들 때, 미로를 헤맬 때, 망설이고 주춤거릴 때 길잡이가 되어주던
    외삼촌을 그리워했다.
    내 스스로 헤치며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였다.
    울고 싶도록 가슴의 옹이가 아릴 때, 응어리진 한을 풀어놓아 개운함에
    몸서리치는 환희와 희열을 함께 만끽 할 수 있는 그런 네비게이션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나에게 내비게이션이 진즉 있었다면, 내 젊은 날 방황의 길목에서 서성일 때,
    고비마다 올바른 길의 인도를 받아 순탄한 대로를 질주하였으리라.
    지금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었을 것이다.

    눈이 흐리고, 순발력이 떨어지며, 길을 좀 잃었다고 초조와 불안에 가슴조이고,
    진땀이 나는 걸 보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더니 나이 탓인가 보다.
    아직도 젊다고, 건강하다고 자신하며 살아 왔는데 오만과 착각이었나 보다.
    하기야 옛날 같으면 곰방대를 물고 상노인 대접을 받는 환갑나이가 아닌가.
    이제 천하무적 나에게도 내비게이션이 필요한 때가 되었나보다.
    집에 가면 바로 운전 도우미 내비게이션을 채용해야겠다.
    ☆★☆★☆★☆★☆★☆★☆★☆★☆★☆★☆★☆★
    《7》
    달구벌 하늘에 빛난 별

    나에게 대구란 곳은 멀고도 가까운, 밉고도 미워할 수 없는
    애증 어린 야릇한 도시다.
    10대 후반 어느 백일장에서 입상이란 끄나풀로 만나 2년 남짓
    편지를 주고받으며 젊음과 사랑, 인생관, 삶과 예술, 영호남의 정치적
    갈등과 반목, 개똥철학을 논했던 경남 창녕이 고향인 L. 그녀는
    영남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는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새벽연기처럼
    가냘프고 파르스름한 빛이 도는 창백한 애였다.
    어느 날 캠퍼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치기만 했던
    대구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대구시에 진입하자 아주 오래전 기억이, 가느다란 빗방울이
    내리던 늦가을 오후가 오버랩되었다.
    며칠 전 7월 15일 밤의 열기는 감자도 삶아 익힐만 했다.
    불의 고장 달구벌은 한낮의 폭염에 녹아내린 지열과, 전국에서 모인
    사백여 명의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으로, 차분함이 실종된 흥분과 설렘의 마당이었다.
    5년 전 팔공산 등산 이후 실로 오랜만에 찾은 것이다.
    대구 프린스호텔 별관 리젠시 홀은 제8회 수필의 날 및 전국 수필가
    교류대회 행사장이었다.
    저명한 원로 수필가들을 지척에서 뵐 수 있었고, 사회자의 수필처럼
    간결한 진행과, 수필낭송, 기악연주, 성악, 수필특강, 주최 측 ‘
    수필세계’의 짜임새 있고 정성 어린 준비로 맵시나고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몇 분 외에는 글과 책으로만 만나다 직접 모습을 뵈니 크나큰 기쁨이었다.
    다들 지나친 화려함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고
    단아하며 고매한 모습에서 높고 깊은 품격을 느끼며 흠모와 존경심이
    우러났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수필인 일부만 참석하였지만
    가히 대한민국 수필가의 얼굴로선 한 치의 손색이 없었다.
    또 하나의 기쁨은, 수필가로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좋은 수필을
    우리에게 남겨준 이응백 전 서울대 교수님의 노익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청년 시절들은 그분의 감동적인 강의를 지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여든여섯의 노구를 이끌고 구부러진 허리를 부축 받으며, 친교의 시간에
    머리칼 허연 문우님들과 열창하시는 모습과 환한 표정이 어찌나
    평온하고 맑은지, 황혼의 그림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름끼치는 숙연함에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슬렀다.
    ≪현대문학≫지 출신 수필가들의 노래 <얼굴>은 금아 피천득
    선생을 추모하고 기리는 의도는 의미 깊었으나 <단>의
    베스트셀러 작가 K의 기행奇行이 눈에 거슬렸다.
    부경문학회의 친교의 시간 진행자의 경박함도 기품 있는 수필인의 날
    행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제 1일 수필의 날 행사 후 뭔가 허전해 문우 몇 분들과 ‘ㅆ’ 발음을
    못하는 대구 능금만큼 아름다운 여인과 문학과 인생, 현 정권, 세상살이를
    오징어 씹듯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자정을 한참 넘기고 눈을 붙였다.
    제 2일 산상문학회도 값지고 좋았지만, 시간을 할애하여 폐회 전,
    유명 원로 수필가와 중진과 신인 지역별 문학회별로 열다섯
    파트 정도로 나누고, 20~30명씩 한 그룹으로 묶어 주제를 정하고 대화와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필인들은 여러 방면으로 출중한 기와 능력을 갖췄음을 알 수 있었다.
    노래, 춤, 악기연주, 낭송, 진행, 전문가가 아닌데도 수필인
    스스로 혼신을 다하여 전국적인 대회를 깔끔하고 매끄럽게
    경제적으로 치르고 있었다.
    이 외에도 보이지 않는 수만 가지의 재주를 지니고 있으리라.
    수필인들의 위대한 힘의 원천, 숨은 저력은 아마
    수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수필인은 달구벌 위, 팔공산자락 위, 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별들이다.
    400여 개의 크고 작은 별들이 광채를 낸 수필의 날을 기점으로,
    수필의 앞날이 결코 지나온 날처럼 그늘이 아님을 깨우쳐 주었다.
    나도 언제쯤 저 별무리 중 어느 한 귀퉁이에 작지만 푸른 별이 되어
    희미하게나마 빛날 수 있을까.

    2008 ≪행촌수필≫ 겨울호(14) 게재

    출처 : 김재환 《금물결 은물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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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나무

    김재환

    이른 새벽 누가 창문을 두드린다.
    여명을 알리는 봄의 여신이겠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서재의 창호지가 살핏 하게 호수의 파문처럼 번진다.
    읽던 책을 접어두고 동이 트는 뜨락으로 새벽을 마중 나갔다.

    정원의 나무에도 뜰 안의 화초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활짝 피기를 몇 번이나 망설이던 매원(梅園)의 매실나무 꽃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오랜만에 설중매를 만나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한참을 그냥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달빛 아래에서야 제격임을 알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어딘가.
    정원등을 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마음을 달빛 아래 설중매 감상으로 모아갔다.
    뒤란 장독에도 앙증맞게 동그라미를 그린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장독대 뒤 대나무는 일제히 나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4월 중순, 한참 봄이 농익을 때다.
    음력 3월초다.
    때 아닌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렸을까.
    기온은 영하를 가리킨다.
    이곳 산막(山幕)으로 거처를 옮긴지 10년째지만 올해같이 변덕스런
    날씨는 처음이다.
    봄을 여는 산수유 꽃과 매화는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특히 매화는 꽃망울을 맺고 접기를 서너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매화꽃을 시샘하는지 눈과 찬바람을 동반한 영하의 날씨가 훼방꾼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후의 조짐을 진즉부터 경고하고 있지 않았던가?

    산이 섬세하고 물이 명징한 이곳이 좋아 대덕산 산록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헝클어진 머리와 지쳐 쇠약해진 가슴을 추스르고, 자연과 동무하며
    내 조그만 기쁨을 찾으려고 산중한인(山中閑人)이 되었다.
    조그맣고 허름한 산막을 지었다.
    선비 근처에도 못간 주제에 선비 흉내라도 내려는 양 사군자를 주변 경관에
    어울리게 심고 가꿨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편 정원엔 기상이 서린 국화 몇 포기, 이상향 개혁의지를
    꿈꾸다 꺾인 인백(仁伯) 정여립(鄭汝立)의 원혼이 서린 천반산(天盤山)을 향한
    남쪽 정원엔 난초 몇 포기, 저녁노을과 새벽달이 처연한 서쪽 한마기기
    비탈진 밭뙈기엔 청 홍매 쉰 그루를 심었다.
    검 붉은색 호랑이 바위 앞, 집 뒤란 북쪽은 기개 높은 대나무의 자리였다.
    하늘을 뚫는 왕대라 불리는 청죽, 검정색과 자주색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오죽, 조릿대 산죽, 화살이나 붓대로 이용되는 시누대(식대)를 대여섯
    그루씩 뒤섞어 심었다.
    이젠 제법 자라 대숲을 이루고 있다.
    비가 갠 뒤 바람결에 살을 부비는 소리도 좋다.
    아침이면 이름 모를 산새들의 속삭임은 오묘했다.
    달빛아래 취객의 비틀거림 같은 흔들림도 좋기만 했다.
    대숲 바람소리가 아닌 바람의 대숲소리가 명징한 사유와 청량한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처연한 추억과 연민마저 되살려 주기도 했다.

    대나무의 쓰임새는 각양각색이다.
    소쿠리, 바구니, 삼태기, 통발, 대자리, 조릿대 등 여러 생활용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부채와 죽부인을 만들어 삼복더위를 다스리기도 했었다.
    악사(樂士)에겐 훌륭한 악기가 되었고, 낚시꾼에겐 훌륭한 낚싯대가 되었으며,
    간짓대와 감장지로도 변신했었다. 생명줄을 끊는 화살로도 사용되었고,
    전쟁터에선 훌륭하나 잔인한 무기인 죽창(竹槍)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5월이 되면 죽순은 단단한 땅을 헤집고 하늘을 향해 힘찬 용틀임을 한다.
    기(氣)와 세(勢)에 따라 튼실하고 혹은 가냘프게, 아침이슬을 마시며
    하늘을 뚫을 양, 로켓이 치솟듯 솟아오른다.
    일주일이면 하늘 길 오르기를 포기한다.
    구들장도 뚫는다는 대나무 뿌리, 휘어진 마디마디에서 인생 역경과
    굽이굽이 애절한 사연의 흔적을 발견한다.

    큰할아버지 집 뒷동산엔 커다란 대숲이 있었다.
    묵향 그윽한 큰할아버지 사랑방에는 열두 폭 병풍이 성벽처럼 진을 치고 있었다.
    달빛어린 으슥한 대숲 속에 집채 만 한 호랑이가 보름달을 향해 포효하는
    한 폭의 그림이 단연 압권(壓卷)이었다.
    낚싯대로 사용할 대나무를 자르고 싶어도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으르렁거릴 것 같은 두려움에 가까이 갈 수 없었던 금단의 성역,
    그 대숲을 잊을 수 없다.

    고향 금강(錦江)은 우기가 되면 며칠씩 붉은 흙탕물로 넘실거렸다.
    한국 전쟁 뒤 황폐해진 벌거벗은 산 탓이었으리라.
    강변의 버드나무는 물 속에 며칠씩 잠겨 있었다.
    키 큰 미루나무는 목을 내밀고 당당히 거센 강물과 맞서고 있었다.
    장마가 그치고 강물이 줄어들면 강변은 처참한 전장(戰場)이 되었고,
    늘씬한 포플러는 전사자가 되었다.
    그러나 질식사했을 것 같던 버드나무는 나 보란듯이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람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지만 등급과 서열이 있나보다.
    기분 좋은 향기와 훌륭한 식견, 고매한 인품, 자애심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런 사람들은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부와 권력 등 고위직 앞에서 갖은 아부와 그것도
    모자라 읍소(泣訴)하는 꼴 볼견이 이 시대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좁쌀 인간들이 큰절을 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한나절이 지나고 어스름이 다가와도 대나무는 허리를 펴지 않는다.
    그들은 임금 앞에 엎드린 신하들의 모습이다.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죄인의 모양새다.
    내 나이 이순이 되도록 누구한테 이처럼 오랫동안 큰절을 받아본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나 또한 어느 누구에게 경의 어린 큰절을 한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없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없었다.
    젊은 시절 대나무 같은 삶이 필요했건만 우직한 소처럼 소나무 같은
    삶을 살아왔다.
    시류에 영합하지 못하는 외고집 때문에 부러지고 꺾이고 짓밟히며 살아온
    지난날이 통탄스럽다.
    대나무처럼 때에 따라 올곧고 강인하면서도 머리를 굽혀 조아릴 줄 아는
    지혜도 모르는 바보 미련 곰탱이였다.
    때늦은 회한만 한 아름이다.

    허리 굽히지 않은 소나무는 여러 갈래 가지가 무참히 부러져 있다.
    오늘밤이 지나면 어김없는 내일이 올 것이다.
    태양은 또다시 떠오를 게고 햇빛은 봄눈을 녹일 것이다.
    대나무는 아픈 허리를 펴고 하늘을 향할 것이다.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꼿꼿이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개를 켤 것이다.
    인생도 이러하리라.
    이제 남은 세월 소나무가 아닌 대나무 같은 삶을 살리라.
    성격개조가 어려워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나잇살이나 훔친 사람이
    이제와 무슨 노망기가 들었느냐고 비웃음을 받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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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된서리

    김재환

    한나절 내내 창가에서 서성이며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제 삶의 깊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잎새들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것이다.
    감잎, 은행잎, 목련 잎은 색색의 나비가 되어 춤을 춘다.
    한 줄기 찬바람이 드세게 휘몰아친다.
    어제까지만 해도 중후한 장년의 모습을 뽐내던 목련 이파리들이 눈보라가 된다.
    핏빛 단풍잎과 알록달록 주황색 감잎은 햇빛에 반짝이며
    그룹 스카이다이빙을 한다.
    한 무리 빨강나비 떼와 노랑나비 떼가 연못위에 빙그르 살포시 내려앉는다.
    여린 동심원의 파문이 인다.
    산마루 나목 사이로 강열한 부챗살 햇발이 내리꽂는다.
    우윳빛 서릿발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하루살이보다 짧은 삶을 마감한다.
    우수수 나뭇잎은 눈보라가 되어 흩날린다.
    추풍 낙엽 이라더니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가 보다.

    어젯밤 때 이른 불청객, 강추위가 번개처럼 찾아왔다.
    된바람 된서리와 어깨동무하고 밤손님처럼 찾아왔다.
    무서리를 앞세워 오는 예년과는 달라 만물을 기겁케 했다.
    호호 시린 하얀 서릿발이 주변 산야를 온통 홑이불로 덮었다.
    하늘과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기세 등등 영토 확장에 두 눈이 먼 무법자,
    칡넝쿨은 전쟁터 패잔병처럼 처참하게 망가졌다.
    어린 시절 자주 듣던 ‘밤새 안녕’이란 말처럼 하룻밤 사이에 삶아 데쳐진
    고구마 줄기를 보면서 서리의 위력에 경악했다.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며, 나에게 그런 능력을 주십사 기도한 일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픽 씁쓸한 웃음이 스친다.

    뜨락 목련나무는 옹골차고 기세 당당히 젊음을 뽐내고 있다.
    큰 가지마다 잎들의 세력이 달랐다.
    햇빛과 바람의 사랑을 덜 받은 쪽 가지의 잎은, 건너편 가지의 잎보다 늦되고
    보잘 것이 없었다.
    초록의 변신도 며칠간의 시차를 두며 진행되었다.
    올된 잎이 먼저 변색을 한다.

    경기전(慶基殿) 초로의 은행나무는 한 달 내내 황금어의(黃金御衣)로
    눈부시건만, 연못가 은행나무는 문실문실 자랐으나 단 사흘밖에 노란 잎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 해 동안 제 삶의 흔적을, 제 뿌리에 수북이 쌓아놓고 벌거벗은
    몸뚱이를 삭풍에 내 맡긴 채 서러워 흐느끼고 있다.
    생의 길이를 다 채우지 못한 원망어린 눈빛이다.
    해마다 홍시와 곶감을 넘쳐나게 주던 감나무는 날벼락을 맞고,
    무녀리 눈치 보듯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긴 휴면을 준비 할 것이다.
    감을 딴 뒤 몇 알의 까치밥만 남겨둔 감나무엔 서리에 데쳐버린
    시뻘건 감들이 햇빛에 말갛게 반짝인다.
    본의 아닌 자선사업가가 되었다. 산새, 산짐승들은 달콤한 별식을 즐기며
    길고 긴 설한풍을 이겨낼 것이다.
    베풀고 나눔을 실천하라는 자연의 뜻이리라.

    김장을 기다리는 배추포기는 새하얀 서리 속에서, 진초록 제복을 입고
    열병식을 하는 의장대 병사마냥 멋스럽고 단정하다.
    뜰 안 국화는 보란듯이 햇볕에 온몸을 내 맡긴 채 마지막 향기를 뿜는다.
    벌떼를 초대하여 파티를 벌이고 있다.
    뒤란 대숲에선 대나무들이 바람에 살을 비벼대며 초록빛깔 휘파람을 분다.
    달빛 처연한 이슥한 밤이 오면 산새들을 불러들여 외로움을 달래며 지샐 것이다.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는 득도한 고승이 되어 의젓이 독야청청 사위(四圍)를 지킨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망가진 나목을 보며 비웃는다.
    그러나 비웃는 그들도 벌거벗은 나무들이 보이지 않게 숨어서 은밀히
    옷을 벗을 뿐이다.
    낙엽수는 제 옷을 벗을 때엔 나보란 듯이 당당하고 시원스레 벗는다.

    지난해 끝자락에 된서리가 나에게 또 찾아 왔었다.
    된서리에 나뭇잎 지듯 교통사고로 셋째 동생 내외와 영원한 생이별을 하고,
    가혹한 시련을 견디고 있었다.
    두 달 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넷째 동생은 심장마비로 나와의
    인연의 끈을 놓아 버렸다.
    나이 쉰을 눈앞에 두고 눈보라 속으로 한 송이 눈꽃이 되어 녹아 버렸다.
    얼떨결에 어린 다섯 조카의 양부가 되었다. 복이 넘쳐서일까.
    아니면 박복한 탓일까.

    뒤돌아보면 내 생애에 몇 번의 된서리를 맞는 고비가 있었다.
    스무 살 때, 얼굴도 기억되지 않는 큰 고모부가 좌익 고급간부였다는
    이유로 파이로트 꿈을 이루려 다른 길 마다하고 입교했던 공군사관학교에서
    퇴교를 당했다. 연좌제란 악법이 서슬 퍼렇게 활개를 치며 나를 꽁꽁 묶고 있었다.
    그때 항공대학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처참한 좌절을 씹으며 방황과 분노를 삭이느라 내 젊은 날은 고통과
    반항으로 얼룩진 나날이었다.
    내 나이 지천명을 맞으며 산자수려한 내 고향 진안고원에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의 아픔과 정인들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몰민들은 도시로 떠나갔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전주시에 임시로 살던 집을 처분하고 귀향을 꿈꾸었다.
    북극 빙산이 다 녹아 해수면이 아무리 상승한다 해도 묻히지 않을,
    내 소년시절 잡다한 추억이 서려있는 대덕산 산록에 초막을 지었다.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몇 년 전, Y지점 책임자로 이동하게 되었다.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중간 책임자 K(여)팀장의 금융사고가 발각되었다.
    평생 오점인 징계와 마지막 진급,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으며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에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타의에 의해 삶의 항로가 뒤바뀌곤 한다.
    자신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만나는 분수령과 전환점이 되곤 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바람이란 타인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마이산 상공을 흐르는 비구름이 빗방울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질 때,
    남풍에 의해 북쪽으로 날려 떨어지면 금강을 만나 낙화암 삼천궁녀와
    속삭이며 서해로 흘러가고, 북풍에 몸이 날리면 남쪽에 떨어져 아기자기한
    섬진강 따라 화개장터를 구경하며 남해로 간다.
    사람의 운명도 그러하리라.
    나뭇잎 역시 무서리를 맞으면 오랫동안 단풍을 보여주지만, 때 이른
    된서리를 맞으면 요절해야한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우리 인간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운명은 의지만으로 헤쳐 나갈 수 없나보다.

    우리의 삶도 나뭇잎이리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외부 충격에 의해 고통을 받고, 때로는
    목숨을 내 놓아야한다.
    서리는 모든 걸 소멸시키는 게 아니다.
    길고 평안한 안식을 줄뿐이다.
    목련 나무 가지 끝에 가녀린 잎사귀 하나 아등바등
    바람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
    《10》
    바람을 가르며 날으리

    김재환

    오랜만에 고향으로 어머니를 뵈러간다. 오늘은 하늘 길로 간다.

    테이크 오프! C-H 601 조디악(ZODIAC)은 활주로를 박차고
    70마일로 3차원의 세계로 진입한다. 순식간 고도는 500피트에 도달한다.
    비행장 계류장의 경비행기들이 핸드폰만큼 작아져 있다.

    날씨는 피아골 계곡, 가을 물처럼 맑고 투명하다.
    옅은 안개를 가녀린 서풍이 떠밀어낸다.
    코발트빛 하늘은 최상의 가을 날씨다.
    두부모마냥 가지런히 잘 정돈된 도시위 상공을 질러 날아오른다.
    서서히 파워스틱을 당겨 90마일로 가속을 해, 고도를 3,500피트에 고정 시킨다.
    지금 나는 고향 하늘위로 방향타를 수정한다.

    기수는 동쪽으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이따금 부드러운 뭉게구름을 만난다. 솜이불 속보다 더 포근한
    구름 속을 뚫고 유영한다.
    고향과 어머니를 보고 싶은 속내를 눈치 챈 듯, 뒤바람이 비행기를 밀어 도와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줄기의 산세는 기세고 수려하다.
    사이사이 골짜기로 흐르는 시냇물과 신작로는 먹이를 찾아 꿈틀대는
    뱀처럼 구불구불 선명하게 빛난다.

    산 산, 높낮이를 달리하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거대한 줄기를 이루며
    발아래 스쳐간다.
    진안고원이 달려와 가슴에 안긴다.
    우뚝 선 주산主山 운장산이 왼쪽에서 요염한 자태로 유혹한다.
    명산 마이산이 앙증스럽게 다가온다.
    울창한 숲 속의 나무들은 잎을 곧 놓으려는지 붉게 타고 있다.
    노랑 빨강 연초록이 잘 어울려 내 피로한 눈망울에 생기를 돋운다.

    저 멀리 상상의 영물靈物, 거대한 용龍 모양새의 호수가 햇빛에 반짝이며
    금물결이 인다. 산 사이사이 손바닥 넓이의 벌판은 누렇게 벼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시커먼 차광 천으로 덮인 인삼포와 대조를 이룬다.
    읍내 시가지가 올망졸망 안쓰럽다.

    꽤나 넓은 벌판 금강 상류, 천천天川과 구량천이 모여 죽도를 만들고
    학천鶴川이 가세하여 수동 들을 이룬다.
    내 아린 유년시절 삶의 찌꺼기가 녹아 있는 곳이다. 옛 집터와 학교,
    뛰놀던 강변과 마을 골목길은 시퍼런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고
    반백 년 옛날로 데려다 놓는다.

    무심한 강바람은 유년의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어 추억케 한다.
    날 궂을 때 들려오는 기적 소리에 기차를 보려고 올랐던 함정산
    꼭대기가 내 눈높이와 같다.
    어머니는 그 산중턱에 계신다.
    호수 속에 어른거리는 우리 마을 터와 논밭을 보면서, 비행기를 수면 위로
    고도를 낮춘다.
    그리움과 애절함을 한 아름 담아 큰절을 올린다.
    가슴이 시려온다.
    지난해 아카시아 향기 속으로 보내드린 어머니.
    저 멀리 대덕산의 곱디고운 단풍을 보시며 양지 녘에 평안이 잠들어 계신다.

    곧게 뻗은 새로 난 30번 국도 위로 자동차들이 개미떼처럼 줄을 잇는다.
    주말을 맞아 호반 드라이브를 하는 관광객이리라.
    호수에 비치는 산 그림자가 파문에 일렁인다.
    한강다리 만큼이나 긴 다리 끝, 꼭지바위 아래 날렵하게 서 있는
    3층 8각 망향각望鄕閣이 뿔뿔이 흩어진 수몰민의 슬픈 정한을 들려주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날 호숫가 풍광은 참 아름답다.
    아름다움 밑바닥엔 고향 잃은 1만 5천 명의 통한과 비애가 서려있다.
    맑고 질 좋은 물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사람들은 물에 쫓겨난 수몰민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댐 안 물위를 무심한 한 무리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닌다.

    수백 년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을 일구고 뿌리내려 문화의 꽃을 피우던 곳,
    수장水葬되어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메아리도 없다.
    물결만이 말없이 대답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 아름다움도 지상에 내려가 보면 평범하고 하잘것없다.
    높은 곳을 멀리서 보면 멋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높은 곳에서 사물을 볼 때, 크고 넓고 멀리 보인다.
    망원경으로 밤하늘별을 헤아릴 때의 현란한 아름다움은 찬란함이다.
    가까이서 볼 때면 일정부문 세밀하게 보일진 몰라도 전체를 볼 수 없다.
    예쁘고 아름다울 리 없다.

    나이 오십을 갓 넘기고 귀밑머리의 흰 머리카락을 뽑기 위해 돋보기를 쓰고
    거울 앞에 선 일이 있었다.
    이마에 파인 주름은 깊고 긴 계곡이었다.
    얼굴에는 숭숭한 땀구멍이 개펄 게 구멍 같아 화들짝 놀라 질겁하여,
    한 올 흰 머리칼은 뽑지도 못하고 돋보기를 벗어버린 일이 있었다.
    늘 보아온 얼굴은 타인이 되어 싫다 못해 혐오스러웠다.
    현미경적 사고는 과학적이다.
    망원경적 사고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눈높이를 같이하여 보아야 가장 올바르게 볼 수 있다.
    좌우상하, 때론 엇비스듬히도 보아야 한다. 위, 아래, 멀리, 가까이서 볼 때는
    개인의 주관이 큰 작용을 한다.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더 넓은 세계를 보듯, 이른 아침 나는 새가
    더 많은 먹잇감을 발견하듯, 더 빨리 더 높이 날아오르리라.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의 눈으로 남들의 아프고
    쓰린 곳을 들여다보며, 사랑과 애정으로 보듬어 주고, 때론 작고
    하찮은 것도 놓치지 않고 삶의 지침으로 삼아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가기를
    가르쳐 준 어머니.

    망원경의 눈으로 높은 곳에서 멀리 보면서 꿈과 이상을 펼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준 어머니. 그러나 꺼벙한 나는 그렇게
    알차게 살지 못했다.
    때늦은 후회다.
    하오의 햇살이 사위어 간다. 스쳐 날아본 고향의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다.
    하늘이 아무리 좋아도 이곳에선 살 수 없다.
    땅위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대지의 품 영원한 어머니다.

    세상 끝과 끝을 나는 비행기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도 언젠가는
    공항이나 항구로 돌아와야 한다.
    노을이 시작된다.
    야간비행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탄 보라매로선 불가능하다.

    생텍쥐페리는 사하라 사막 위를 밤 비행을 하며 수많은 별들과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늘의 별들과 무슨 얘기를 하며 깊은 모래밭에 쉬고 있을까.

    바람과 구름 안개는 비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노을 쫓아갈 길 서두르는 나에게 맞바람이 붙잡아 끌어당긴다.
    어머니가 심심하다며 좀 더 놀다 가라고 부른다.

    이담엔 밤 비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종으로 바꿔 타고,
    어머니와 고향과 밤별과 숱한 이야기 나누다 이슥한 새벽에 떠나야겠다.
    ☆★☆★☆★☆★☆★☆★☆★☆★☆★☆★☆★☆★
    《11》
    별은 내 가슴 깊은 곳에

    김재환

    귀뚜라미는 잠도 없나보다.
    달도 없는 삼경인데 지칠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노랠 부른다.
    하기야 낮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미들에게 기가 꺾여서일까, 아니면 야행성이라 그런가?
    뜰 안 풀 섶에서 들려오는 쉴 새 없는 그들만의 합창과
    수다가 싫지 않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귀뚜라미들도 소리가 제각각이다.
    ‘아! 오늘이 입추고 칠월칠석이구나.’ 시간 개념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일 년 만 한 마리의 새처럼 자유인이 되어 보자던 지난해 말의 퇴임 때
    스스로 한 약속에 벌써 익숙해져있나 보다.
    이제 반년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이렇게 세월이 빠르다는 걸 다시 또 실감한다.

    창 밖에서 방충망을 넘어 불어오는 한여름 밤의 푸른 공기가 알싸하다.
    방안에서 듣는 귀뚜라미의 연주소리보다 뜨락에서 듣는 울음소리가
    더 좋을 것 같아 밖으로 나섰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은 우수와 여운이 깃든 목소리로 내 영혼을 호수의 깊은
    바닥까지 가라앉힌다.

    여름밤하늘은 유난히 맑고 깊다.
    88서울올림픽 폐회식 때 휘황찬란하게 명멸하며 반짝이다 사라지던,
    관중석 수 만 개의 불빛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다.
    크고 작고, 밝고 흐리고, 파랗고 희고 노랗고, 개밥바라기는 하늘 한복판에서
    황금빛 어의(御依)를 뽐낸다.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굵고 선명하게 내리 뻗은 미리내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은물결로 가득 찼다.
    산 능선으로 둘러싸인 밤하늘은 커다란 호수, 영락없는 천지(天池)다.
    스카이라인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멀리 발아래 강여울에선 조잘대는 물소리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실려와 귀를 간질인다.
    이따금 반딧불은 반짝이며 저속으로 야간비행을 한다.

    어릴 때 그리하였듯 평상에 누우려니 어느새 밤이슬에 촉촉이 젖어있다.
    두 팔을 깍지 끼고 누워 하늘을 본다.
    무수한 별무리들이 제각각 반짝인다.
    숱한 여름밤에 뒤섞인 기억의 파편들이 꼬리를 물며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이따금 별똥별은 하늘을 가로질러 산 너머 남쪽 그 어느 곳으로 고속비행을 하며
    추락한다. 유성이 떨어진 이름 모를 그곳은 네로황제가 다스리던
    로마처럼 불바다가 되어 새로움을 잉태할 것이다.
    J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정년을 맞으신 K교수님은 나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셨다.
    선생님은 한여름 밤이면 나를 학교 동산으로 불러내 위인들의 이야기와,
    그리스신화에 얽힌 하늘의 별자리 등을 들려주시곤 하던 큰형 같은 분이셨다.

    학교에는 예쁜 동산이 있었다. 일제 때 신사(神祠)가 있던 곳이었는데,
    광복 후 아름답게 숲을 꾸며 놓아 여름철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된
    야외수업장소였다.
    한여름은 매미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돌베개를 베고 바닥에 나란히 누워 하늘의 별을 헤며 허황한 꿈을 꾸곤 했었다.
    은하수 북쪽의 작은곰자리에 속한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리스신화에 얽힌
    다섯 개의 별이 모인 W자 모양의 카시오페이아자리와, 국자모양의 일곱 개의 별
    큰곰자리의 북두칠성이 일직선을 이루며 돌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북극성은 남십자성과 함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뱃사람의 길잡이가 되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항법기준이 된다는 사실도 들었다.
    신비하고 오묘한 별과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들은 내게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별밤의 신비한 아름다움은 차라리 쓸쓸함과 가슴 시린 아픔이었다.
    내 전생의 별은 어느 것일까?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데…….

    몇 해 전, 서울과 오사카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여장부, 꾀복쟁이 친구 복주가
    초등학교 동창회에 처음 참석했었다.
    120명 동기동창 중 미모가 출중하고 당당한 재력가로 변신해 있었다.

    오늘처럼 별이 찬란히 빛나는 밤이었다. 동창회를 마치고 내 산막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머리칼이 허연 중년의 옛 동무들은 열네 살 소년소녀가 되었다.
    남겨두었던 40여년의 지나간 이야기로 여름밤을 지새웠다.
    그녀는 별빛과 풀벌레소리, 바람소리에 흠뻑 도취되어 흐느끼고 있었다.
    40여 년간 별과 달,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자연을 잊고, 오로지 부와 명예를 쫒아
    살아온 자신이 초라해서 미칠 것 같다며, 즉시 땅을 구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이웃의 임야를 어렵사리 구해 주었고, 그 친구는 거금을 투자하여
    전원주택을 지었다.
    한 달에 두세 번 내려와 채소도 가꾸고 책도 읽으며 산책을 하고,
    별과 바람, 안개와 풀벌레를 동무하다 쉬어가곤 한다.
    그녀도 이제 삶의 멋과 의미를 깨달은 보살이 된 걸까?


    여름밤 별자리는 북극성을 축으로 조금씩 자리를 변경하고 있다.
    은하수는 아까보다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눈보라가 달리는 차창에 돌진해 부딪치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며 내게로
    쏟아져 내린다.
    유리그릇이 잘게 깨지고 부서져 수만 개의 파편이 되듯 별은 내 가슴에 달려와
    박힌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환희와 희열에 몸서리가 쳐진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아픔을 느낀다.
    우리도 언젠가는 여름밤 별무리들을 보며 꿈꾸었던 저 하늘의 어느 한 별이
    되어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꿈꾸며 그리던 나의 별은 어느 별일까?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가슴 깊고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
    《12》
    보물 제1호

    김재환

    내가 가장 아끼는 소중한 게 하나 있다.
    국어사전도 아니요 불경이나 성경도 아니다.
    또한 명상록도 아니고 섹스피어 전집이나 백범일지도 아니다.
    백과사전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내 낡은 서가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숱한 보좌관들 속에 파묻혀 있다.
    주변엔 수많은 후배들의 경호를 받으며 VIP대접을 받는다.
    매끈하고 잘생긴 것도 아니다.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끼고, 내 손때와
    눈총에 시달려 닳고 닳아 각설이의 누더기 차림새다.
    그는 나와 반 백년 넘게 동고동락을 같이한 영원한 동지이며 길동무다.

    삼바리듬이 끈적거리는 리우의 축제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전라(全裸)에 가까운 풍만한 팔등신 몸매를 자랑하는 늘씬한 무희(舞姬)들의
    율동과, 타악기의 리듬이 저절로 어깨춤이 들썩거리고 온몸을 비틀게 한다.
    빤질빤질 윤나는 검은 피부의 건강미가 우윳빛 살결과 뒤엉켜 요동을 친다.
    화려한 몸치장과 네온 불빛에 넋이 빠진다.
    스무 시간의 긴 비행 끝에 축구와 삼바에 살고 죽는, 남미 브라질
    리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코발트빛 눈부신 남태평양 산호해(珊瑚海)를 지나 양, 사슴, 말들이 뛰노는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 ‘그레이스 켈리‘의 깔끔한 맵시처럼 산뜻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끼고 순백의 요트는
    파도를 헤치며 바람 속으로 미끄러졌다.

    만년설을 머리에 인, 케냐 킬리만자로. 명화 <아웃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신비한 사랑, 마사이마라국립공원,
    수만 마리의 홍학 떼와 동행하는 꿈결 같은 아름다운 비행, 세렝게티국립공원과
    빅토리아폭포의 천둥소리도 듣는다.

    센 강 미라보 다리 밑에서 '이브 몽땅‘의 샹송 <고엽>을 허밍한다.
    휘황찬란한 샹제리제 거리를 걸으며 에펠탑과 만난다.
    개선문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악수를 한다. ’프랑스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회억한다.
    루브르박물관과 노트르담성당을 빼놓을 수 없지.


    콜로라도강과 그랜드캐니언의 주황색신비에 매료된다.
    인디언 나바호족의 슬픈 역사를 기억한다.
    로키를 넘어 유장한 미시시피와도 만난다. 호랑이처럼 우렁차게 포효하는
    나이아가라폭포, 무지개 이슬을 가슴 시리도록 흡족하게 맞는다.

    만년설의 고향, 지구촌의 꼭짓 점,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산을 넘는다.
    부다가야 왕국의 왕자자리를 마다하고 고행과 수행으로 득도한
    ‘석가모니’ 부처를 알현하고 자비의 깨달음을 얻는다.
    벵골초원에선 내 나라에서 사라진지 까마득한 백두산 호랑이 대신,
    벵골 호랑이들과 발맞춰 걷는다.

    어린 시절 딱히 변변한 읽을거리도 적었고,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도 없었다.
    그때 세계지도 한 권은 늘 좋은 친구였다.
    무료할 때마다 동무와 지명 찾기 놀이를 했었다.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 미지의 세계를 찾아 끝없는 날갯짓을 했었다.
    그 놀이 덕에 세계의 여러 나라의 수도, 도시, 산, 산맥, 강, 호수, 사막, 섬 등을
    줄줄 기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책을 읽거나 신문 등에서 낮선 지명이 나오면 보물 제1호의
    보좌관인 최신판 세계지도를 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런 연유인진 몰라도 여행 프로그램 <세상은 넓다>같은 부류의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반백년을 같이한 낡아 헤진, 상처투성이의 세계지도를 펼친다.
    그리고 끝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상상은 꼬리를 물고 5대양 6대주,
    두 극지점을 오간다.
    그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경관은 어떨까?
    의문은 상상과 호기심으로 꽉 차 끝없이 이어진다.
    비행기보다 빠르게, 하루에도 세계 일주를 몇 번이고 하곤 한다.
    지도책으로 평면 위치를 확인한다.
    지구의를 돌리며 공간의 위치를 확인한다. 가장 희열과 환희에 찬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같이 눈보라가 휘날려 적막에 휩싸일 때는 동토의 땅 시베리아
    여행을 시작한다. 지도를 펴고 시베리아 설원을 향해 가도 가도 끝없는
    시베리아횡단철도에 몸을 싣고, 한 점 눈송이가 되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무대인 우랄산맥 설원의
    눈보라를 잊지 못한다.
    세계 제1차 대전 한 가운데에서, 삶과 사랑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유리와 라라. 모스코바 크레믈린궁전의 음습함을 느끼며 상트 페테르브르크에서
    러시아문화의 진수를 맛본다.
    ☆★☆★☆★☆★☆★☆★☆★☆★☆★☆★☆★☆★
    《13》
    손 글씨

    김재환

    나는 오늘도 손바닥만 한 사진엽서에 만년필로 편지를 쓴다.
    몇 해 전 흠모하는 J 작가님이 보내준 워터맨(Water Man) 만년필이다.
    서툰 컴퓨터 글 쓰기를 시작한 뒤 멀어진 게 손 글씨다.
    펜촉이 다 닳아버린 손때 짙게 묻은 파커(Paker)와 파이로트(Pilot)
    만년필 몇 자루는 소임을 다하고 책상 서랍 속에서 골동품 대우를 받으며
    편히 쉬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소싯적을 추억하면서…….
    어릴 때 문화연필은 참 좋은 친구였다. 종이가 절대 부족했던
    그 시절, 글 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달력이나 회 포대 등에 글씨 쓰고
    그림 그리며 낙서하기를 무척 즐겼었다.
    우리 고장 전주에서 생산되던 향나무 냄새 그윽한 문화연필은 으뜸이었다.
    그때 동아연필은 내겐 만년 은메달이었다.
    붓글씨에 익숙했던 아버지 세대가 지나고 연필글씨에 정들 무렵, 펜글씨가
    대세인 양 밀려왔다.
    잉크가 부족하면 선친께서 쓰던 벼루에 먹을 갈아 먹물을 잉크병에 담아,
    펜촉이 칼날처럼 다 닳아 종이가 베어질 때까지 노트를 메웠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된 펜글씨는 중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곧바로 만년필시대(파이로트)는 사라지고 모나미시대가 열렸다.
    볼펜이 필기구의 제왕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군림하였다.
    볼펜은 편리성과 경제성을 무기로 필기구의 왕자 자리를 차지했으나
    예술성 높은 글씨와는 거리가 멀었다.
    펜과 볼펜의 장단점을 두루 갖춘 만년필은 버릴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만인들에게, 특히 문인들에겐 보물과 같은 존재였고 연인이었다.
    멋쟁이 신사의 정장차림엔 만년필은 필수 휴대품이었다.
    신사복 윗 주머니에 꽂혀있는 한 자루 만년필은 산뜻한 장식품이고 액세서리였다.
    인기가 영원할 것 같던 만년필도 20세기 문명의 총아, 컴퓨터의
    등장으로 시들해졌다.
    요즘 어린애들은 만년필을 알기나 할까? 문명의 흥망성쇠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리둥절해진다.
    지난날 메모장과 일기장, 습작노트를 펼쳐본다.
    연애시절 오고간 수백 통의 연서는 명문이고 명필이다.
    지금 보아도 미소지어지는 참 정성 들여 잘 쓴 만년필 글씨다.
    시나브로 글씨가 흘림체로 변하며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음을 한눈에 발견한다.
    불혹에 접어들면서부터 확연히 눈에 띈다.
    볼펜의 전성시대부터다.
    그동안 만년필 글씨를 꽤나 고집하며 사랑해 왔었다.
    컴퓨터에 맛들인 새 천년을 맞으며 형편없는 난필이 되고 졸필이 되었다.
    집안 대물림인지 필체가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왔다.
    진즉부터 멋들어진 붓글씨를 쓰고 싶었다.
    퇴직 이후 육 년째 서예공부를 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글 한글을 먼저 쓰고 싶었으나 한문 먼저 시작하라는
    주위 분들의 권유를 빌미로 시작한 게 영 개운치 않다.
    전국규모의 권위 있는 서도대전에 얼굴 내밀어 몇 번의 입상경력을 쌓았다.
    유명 비문을 탁본하여 만든 체본을 기초로 서체를 모사하는 과정이다.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그린다는 게 맞을 것이다.
    어쩌면 독특한 자기만의 서체를 이룰 때까지 누구누구 체를 모사하는
    짝퉁 글씨인 셈이다.
    손 글씨를 멀리하고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니 낱말, 맞춤법, 한문,
    사자성어 등을 자꾸 까먹는다.
    독특한 나만의 펜글씨체가 망가지고 품격 있는 글씨를 쓸 수가 없다.
    가끔 보내주는 아이들의 편지를 읽는다. 큰 딸애의 글씨는 뚜렷하고 차분하다.
    둘째 딸의 글씨는 유려하며 정갈하다.
    아들의 글씨는 강건하나 왠지 어설퍼 보인다.
    형제간이지만 손 글씨는 같은 듯하면서도 제각각이다.
    눈여겨보면 그 애들의 미세한 개성이 엿보인다.
    애들의 성격이 잘 담겨있음을 금세 느낀다.
    컴퓨터 세대라 그런가? 요즘 아이들에게 글씨를 보고 읽는 것은 솔직히 고역이다.
    옛 직장 후배 하나는 워낙 악필이라 제가 쓴 글씨도 조금만 지나면
    읽지 못해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글씨란 원래 내림이 있다고 하나 노력이 깃들면 명필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저명 모모 작가들은 수습작가시절 유명작품을 노트에 여러 번 필사를 하며
    문장력과 글씨를 키웠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벼루를 열 개를 닳아 없애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앴다고
    전해진다. 독필禿筆이라 했던가.
    대단한 집념과 의지의 결실, 조선 최고의 서예가, 학자로서 추앙 받고 있지 않는가.
    글씨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 했다.
    그 사람의 정성이며 영혼이다.
    글씨 쓰는 과정이 수양이며 득도이리라.
    가끔 붓을 잡고 자신과 갈등하며 싸움을 한다.
    최소한의 만족을 위하여 몸부림쳐보지만 늘 제자리걸음이다.
    한 평생을 글씨에 매달린 대가들을 부러워한다.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면서 만용을 부려본다.
    남은 인생 즐기며 몇 자 써보는 것을 즐거움이라 생각하면서,
    내 자신의 수련을 위해 손 글씨의 매력에 빠져본다.
    몰입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선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이 나이에 또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우둔함을 탓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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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한숙자 글 모음 23편 김용호2018.05.24.1824
    162 김상영 글 모음 5편 김용호2018.05.24.2145
    161 임숙현 시 모음 71편 김용호2018.04.22.6367
    160 조경희 시 모음 6편 김용호2018.04.22.4927
    159 배혜경 시 모음 17편 김용호2018.04.22.42610
    158 최영복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8.04.22.4567
    157 양광모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8.02.25.47012
    156 배은미 시 모음 21편 김용호2018.02.25.3799
    155 류경희 시 모음 35편 김용호2018.02.25.3776
    154 김성림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8.02.25.4256
    153 안희선 시 모음 30편 김용호2018.02.25.37815
    152 백재성 시 모음 11편 김용호2018.02.25.3219
    151 이세송 시 모음 21편 김용호2018.02.25.3027
    150 정재석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8.02.25.29810
    149 이정화 시 모음 7편 김용호2018.02.25.2898
    148 김영배 시 모음 38편 김용호2018.02.25.32511
    147 이성부 시 모음 9편 김용호2018.02.07.47011
    146 이종승 시 모음 38편 김용호2018.02.07.42910
    145 김민자 시 모음 6편 김용호2018.02.07.36612
    144 최명운 시 모음 31편 김용호2018.02.07.33811
    143 김홍성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8.02.07.36310
    142 서동안 시 모음 19편 김용호2018.02.07.3129
    141 조은주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8.02.05.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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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임우성 시 모음 49편 김용호2018.02.05.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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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0 김용호2018.02.05.2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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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최한식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8.01.19.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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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이정애 시 모음 56편 김용호2018.01.09.60513
    124 김수열 시 모음 26편 김용호2017.12.31.66115
    123 정재영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7.12.26.58417
    122 도지현 시 모음 82편 김용호2017.11.20.112620
    121 10월시 모음 45편 김용호2017.09.17.61024
    120 9월시 모음 59편 김용호2017.09.17.59921
    119 기도시모음 65편 김용호2017.09.12.69024
    118 김수향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7.09.02.68726
    117 조미경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7.02.05.84040
    116 이필종 시모음 21편 김용호2016.12.13.101549
    115 이점순 시 모음 75편 김용호2015.12.31.2451100
    114 전근표 시 모음 85편 김용호2015.06.12.2192201
    113 최학 시 모음 10편 김용호2015.06.12.1431107
    112 임경숙 시 모음 90편 김용호2015.02.15.1770303
    111 임경숙 시 모음 53편 김용호2015.01.25.1685170
    110 12월시모음 73편 김용호2014.12.07.1560260
    109 홍해리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1.10.1554166
    108 복효근 시 모음 60편 김용호2014.11.10.1652299
    107 강해산 시 모음 60편 김용호2014.11.10.1599179
    106 이시영 시 모음 35편 김용호2014.11.10.1280194
    105 안현심 시 모음 21편 김용호2014.11.10.1046181
    104 신동엽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1.10.1644329
    103 오태인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1.10.1118233
    102 박경리 시 모음 70편 김용호2014.11.01.1398245
    101 이효녕 시 모음 65편 김용호2014.11.01.1043331
    100 오세영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1.01.1494317
    99 이정록 시 모음 27편 김용호2014.10.23.160090
    98 이은상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23.1020220
    97 정채봉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4.10.23.1642130
    96 성진명 시 모음 45편 김용호2014.10.23.995168
    95 우덕희 시 모음 22편 김용호2014.10.23.1358135
    94 황인숙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4.10.23.1036220
    93 곽재규 시 모음 34편 김용호2014.10.23.1191190
    92 이병주 시 모음 50편 김용호2014.10.07.1071130
    91 오세철 시 모음 87편 김용호2014.10.07.1171270
    90 김동원 시 모음 79편 김용호2014.10.07.828103
    89 구연배 시 모음 36편 김용호2014.10.07.994242
    88 김영화 시 모음 30편 김용호2014.10.07.962183
    87 선미숙 시 모음 40편 김용호2014.10.07.851157
    86 이병율 시 모음 43편 김용호2014.10.07.1224208
    85 박현숙 시 모음 15편 김용호2014.10.07.858170
    84 이승하 시 모음 16편 김용호2014.10.07.817152
    83 김옥자 시 모음 열편 김용호2014.10.07.978151
    82 최봄샘 시 모음 9편 김용호2014.10.07.878138
    81 김명우 시 모음 열 다섯편 김용호2014.10.07.1028244
    80 한선미 시 모음 열 한편 김용호2014.10.07.862208
    79 김예성 시 모음 55편 김용호2014.10.07.850203
    78 전병윤 시 모음 81편 김용호2014.10.07.92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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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김옥준 시 모음 75편 김용호2014.10.07.975124
    75 마종기 시 모음 38편 김용호2014.10.07.1195312
    74 심성보 시 모음 20편 김용호2014.10.07.992186
    73 박재삼 시 모음 27편 김용호2014.10.07.1213166
    72 반칠환 시 모음 20편 김용호2014.10.07.1197311
    71 황지우 시 모음 41편 김용호2014.10.07.1295178
    70 조지훈 시 모음 25편 김용호2014.10.07.2213315
    69 임 보 시 모음 김용호2014.07.05.1656328
    68 이생진 시 모음 37편 김용호2014.07.05.2027227
    67 이양우 시 모음 48편 김용호2014.07.05.2873202
    66 허소라 시 모음 열편 김용호2014.03.01.1840208
    65 이운룡 시 모음 34편 [1]김용호2014.03.01.2000335
    64 허호석 시 모음 23편 김용호2014.03.01.1684169
    63 김지향 시 모음 61 ∼ 131까지 김용호2014.03.01.1871154
    62 김지향 시 모음 1 ∼ 60편 김용호2014.03.01.1766294
    61 강은교 시 모음 40편 김용호2006.08.09.6485723
    60 천상병 시 모음 20편 김용호2006.08.09.5737558
    59 나희덕 시 모음 30편 김용호2006.08.09.5081640
    58 박두진 시 모음 37편 김용호2006.08.09.5764658
    57 홍윤숙 시 모음 23편 김용호2006.05.27.4074680
    56 이외수 시 모음 34편 김용호2006.04.22.2451354
    55 함석헌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10.16.3070289
    54 김수미 시 모음 41편 김용호2005.10.16.2404253
    53 노래가 된 시 34편 김용호2005.10.16.2817260
    52 고은 시 모음 59편 김용호2005.08.20.3556523
    51 김용택 시 모음 29편 김용호2005.08.20.2615369
    50 김후란 시 모음 9편 김용호2005.08.20.2126243
    49 기형도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8.20.2219299
    48 피천득 시 모음 23편 [1]김용호2005.07.29.3370448
    47 양현주 시 모음 21편 김용호2005.06.18.2300331
    46 이육사 시 모음 17편 김용호2005.03.12.4010263
    45 박병순 시 모음 20편 양력 김용호2005.01.31.2707335
    44 이현옥 시 모음 85편 김용호2005.01.25.2301261
    43 김소월 시 모음 30편 [2] 김용호 2005.01.05.6761318
    42 김춘수 시 모음 25편 김용호 2005.01.05.3017224
    41 김영랑 시 모음 25편 김용호 2005.01.05.2640206
    40 이형기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2843224
    39 김수영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5.01.05.3937274
    38 신석정 시 모음 65편 김용호 2005.01.05.2326268
    37 윤동주 시모음 스무편 김용호 2004.12.29.2946225
    36 천양희 시 모음 77편 김용호 2004.12.29.2055279
    35 허영자 시 모음 18편 김용호 2004.12.29.1926255
    34 황금찬 시 모음 34편 김용호 2004.12.29.1988299
    33 양현근 시 모음 21편 김용호 2004.12.29.1952313
    32 김지하 시 모음 52편 김용호 2004.12.29.211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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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홍수희 시 모음 33편 김용호 2004.07.07.2358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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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서정윤 시 모음 26편 김용호 2004.03.12.2506265
    23 김용호 시 모음 85편 김용호 2004.03.12.3907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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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박노해 시 모음/15편 김용호 2004.03.12.2549293
    20 류시화 시 모음 14편 김용호 2004.03.12.2537262
    19 정두리 시 모음 15편 김용호 2004.03.12.2718211
    18 도종환 시 모음 40편 [1] 김용호 2004.03.12.2370381
    17 정호승 시 모음 39편 김용호 2004.03.12.244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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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시습 시 모음 65편 김용호 2004.02.24.2375446
    8 박목월 시 모음 30편 김용호 2004.02.24.2042245
    7 고정희 시 모음 38편 김용호 2004.02.10.2152478
    6 서정주 시 모음 41편 김용호 2004.02.09.2491443
    5 노천명 시 모음 23편 김용호 2004.02.08.1845399
    4 정지용 시 모음 24편 김용호 2004.02.08.1914337
    3 김현승 시 모음 35편 김용호 2004.02.03.4224512
    2 주옥같은시어모음 김용호 2004.02.03.2258390
    1 여명 문학 회칙  여명문학2004.01.25.196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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