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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수 글 모음 4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5.24. 17:57:22   조회: 244   추천: 6
    여명문학:

    송영수 글 모음 4편
    ☆★☆★☆★☆★☆★☆★☆★☆★☆★☆★☆★☆★
    《1》
    할머니의 일기

    토요일 하루 작은 손녀를 돌봐달라는 며느리의 요청으로
    이번 주 토요일을 비워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금요일 저녁에
    아들네 집으로 향하였다.
    4학년인 큰애는 캠핑을 가고, 애 아빠는 근무해야하고, 애 엄마는
    광주까지 가서 강의를 들어야 하기에 집에는 1학년짜리
    작은 손녀 혼자 남게 되어 할머니의 도움을 요청받은 것이다.
    작은 손녀는 할머니와 같이하는 일이 처음이어서 친구 집에 가 있을까도
    생각했단다.
    이왕 할머니가 오셨으니 친구 집에 가는 것을 접고 할머니와 같이 있기로
    결심했단다.
    아침식사가 끝난 후 다 각각 제 갈 길로 가고 나와 작은손녀만
    남게 되었다.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 습성이 있어서 커피를 찾았더니 기특하게도
    “할머니 제가 타 드릴게요.”
    “그래? 고맙지.”
    “블랙으로 드릴까요? 맥심으로 드릴까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그래, 할머닌 블랙이 좋은데.”
    했더니 정수기 온수를 틀어 블랙으로 커피를 타다 준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할까 고심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 저와 게임하실래요?”
    하는 것이었다.
    “좋지~”
    아이는 제방에 가더니 게임에 쓸 말판과 말, 주사위를 들고 나왔다.
    게임방법을 내게 설명하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니 내가 선이어서
    주사위를 던졌다.
    다행이 5가 나와 5번에 내 말을 놓고 게임이 진행되었다.
    주사위 나오는 대로 마구 가는 게임이 아니라 가다가 뒤로
    가기도 하고 또 사다리가 나와 올라 뛰기도 하여 주사위 잘 던진다고
    앞서가는 게임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아이보다 상당히 앞서가게 되어 아이가 재미없을까 봐 걱정이 되는 판에
    거꾸로 가는 말이 나와 몇 점을 무르고 보니 아이는 사다리를 타고
    멀리 올라가 버린다.
    아이 이걸 어쩌나 하고 절망의 빛을 보였더니 아이는 할머니도
    사다리가 나와 올라 뛸 수도 있고 꽝이 나와 물러설 수도 있다고
    걱정 말라며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엎치락뒤치락 끝에 내가 이기게 되어 1:0 상태에서 2회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1:1이 되어 무승부로 끝내자는 손녀의 제안으로 게임을 끝내고
    사과를 먹게 되었다.
    내가 사과를 깎는 동안 접시며 포크 등을 챙겨왔다.
    내가 이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주사위, 윷가락 등을 챙겨왔지만
    아이가 먼저 나를 돌보고 있는 것이었다.
    과일을 먹은 후 피아노 치는 걸보고 싶다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고
    방에 가서 피아노 교본을 가지고 나온다.
    바이엘은 다 치고 체르니를 치고 있는 중이란다.
    교본을 펴 보이더니
    “코드로 연주해 드릴까요? 멜로디로 연주해 드릴까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놀라웠다.
    코드, 멜로디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고 그냥 피아노 두드리는
    소리나 들을까 했던 것인데 코드냐 멜로디냐 선택을 하라니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는 멜로디로 연주할 것을 요구하고 아이는 교본을 보고
    멜로디로 연주했다.
    잘 친다고 극구 칭찬을 하면서 만원을 포상금으로 주었더니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할머니 우리 젤리 사러 갈까요?”
    하면서 마트에 가잖다. 그렇 잖아도 뭐라도 사주고 싶은데
    마트도 모르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형편인데 마트에
    가기를 먼저 제안한다.
    길을 가면서 저쪽 길은 위험하니 이쪽 길로 가야하고 이쪽으로 가는 길이
    좀 빠르다며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마트에 도착했다.
    사고 싶은 것을 고르라하니 이것저것 꼼꼼히 둘러보더니
    “아~ 블루베리 맛이 첨가되었네.”
    하면서 젤리봉지를 찾아든다. 전에는 사과 맛, 포도 맛,
    딸기 맛 뿐 이었는데 이번 것은 블루벨리 맛을 더 했단다.
    그래서 본인 것은 그걸 사고 언니 좋아하는 것도 하나 골라가지고 왔다.
    잽싸게 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집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눌러 집으로 들어왔다.
    어느 것 하나 내가 도울 틈을 주지 않고 오히려 할머니를 보살피며
    마트에 다녀와서 젤리봉지를 열더니 종류별로 골라주면서
    맛보라는 것이다.
    젤리를 먹으면서 메모할 것이 있어서 종이를 찾아 메모를 했더니
    내 메모내용을 훑어보고 이리 저리 뒤적이더니 이면에 쓰인 내용 중
    된장을 돤장이라고 쓰인 것을 찾아 주는 것이다.
    컴퓨터로 쓸 때 자판을 잘못 눌러서 생긴 오자였는데 내 눈에는
    띄지 않았었다.
    그게 내가 작성한 계산서였는데 많은 글자 중에 어떻게 그걸 찾았는지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어떻게 그게 오자였는지 알았느냐니까
    “돤”자가 있는 단어는 못 봤다는 것이다.
    그렇다. 정말 “돤”자가 들어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이 엄청난 사실을 8살인 손녀가 70살인 내게 일깨워준다.
    나도 애를 돌보기 위해 상당히 고심을 했고 점심도 근사한데 가서
    사주고 무료하면 동물원이나 꽃잔디 공원에라도 데려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물원이나 꽃잔디 공원에 갈까?”라는 제안을 했더니
    오늘은 바람이 좀 불어 황사현상이 있으니 가까운 동물원에
    가는 것이 좋겠단다.
    동물원에 갈려면 물을 가져가야 한다며 자신의 물통을 챙기고
    옷도 갈아입는다.
    옷이 많이 널려 있기에
    “옷을 잘 정리해야겠네. 할머니도 어렸을 때 이렇게 정리하지 않고
    자랐더니 지금도 정리를 잘 못하거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딱 맞아 어렸을 때 습관이
    잘 못되어 지금도 잘 못하니 말이야.”
    하면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들을 모았더니
    “할머니, 저는 치우는 날이 있거든요. 매주 목요일엔 모두 정리하고
    다 치우고 청소도 해요.”
    “그래? 그 때 그 때 치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면 너무 힘들지요.”
    “우리 지아가 벌써 이렇게 많이 커서 자기 일을 척척하다니
    너무 놀랍다. 엄마가 이제 좀 편하겠다.”
    “그러면 샤워도 혼자 할 수 있어?
    “예, 언니하고 같이해요. 머리도 나 혼자 감아요.”
    “어이구 엄마가 정말 편하겠네. 할머니가 아빠 기를 때 머리를
    엎드려서 감기만 해도 너무 좋던데.”
    동물원엔 할머니하고만 가는 것보다 제 또래 아이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아이 친구가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집 아이들도 토요일이라서 무료하게 지내고 있다며 자기 집으로
    오라한다.
    그 집 두 딸과 어울려서 신이 났다.
    내겐 아이 돌보는 일이 끝난 샘이다.
    때때로 아빠, 엄마한테 현 상황을 전하면서 염려 말라고 안심까지 시킨다.
    점심은 그 집 아이들이 짜장면을 먹기로 예정해놔서 가까운
    중식당에 가서 먹게 되었다.
    오후에도 아이들은 갖가지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고 아빠가
    퇴근을 해서 아이는 데려가고 나는 집으로 왔다.
    모처럼 손녀와의 하루는 이렇게 끝나서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힘드는 일은 없었다.
    힘이 안 든 것은 좋았는데 도대체 내가 손녀를 돌봤는지 손녀가
    나를 돌봤는지 분간이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속 성장을 실감했고 예리한 재치에
    감탄 또 감탄하는 하루였다.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제 엄마 아빠에 매달려 어리광이 만만찮았는데
    제 혼자 있으니 독립심이 발동해서 완벽한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다.
    월에 한번, 아니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이렇게 손녀와 함께 하는
    날을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송영수
    <예술세계> 수필 등단
    전) 인봉초교 교감
    진안문협 4대 지부장
    ☆★☆★☆★☆★☆★☆★☆★☆★☆★☆★☆★☆★
    《2》
    내 삶을 검색한다

    송영수

    나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려고 했는가?
    뭐라고 결단하여 말하기 힘든 논제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찬찬히 검색해 본다.
    어쩌니, 어쩌니해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세기를 뛰어넘는
    위대한 문학작품이 내 인생을 구상하게 해 주었다.
    내 인생의 푯대가 되고, 내 인생의 설계도가 되고 내 삶을 실행하게 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 너세니시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은
    내 생의 목표를 설정케 했다.
    그리고 『상록수』는 내 삶을 실행케 했다. 그리고 알퐁스 도데의 『별』은
    나의 사랑을 꿈꾸게 했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일생을 살았다.
    어니스트를 이 계곡을 떠나지 못하고 일생을 살게 한 것은 어릴 때
    어머니한테서 듣게 된『큰 바위 얼굴』에 대한 전설 때문이었다.
    하늘만 보이는 계곡에서 일생을 살게 발목을 잡은 것은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큰 바위이며,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이다.
    큰 바위처럼 인자한 웃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니스트의 삶이었다.
    이 작품은 진정 위대한 사람은 거대한 부를 이룬 사람도 아니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도 아니요,
    훌륭한 정치가도 아님을 시사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순응하면서
    겸허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진정 위대한 인물로 지정한다.
    항상 인자한 웃음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바위는 어니스트에게 자연의
    위대함과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 하였으며 큰바위얼굴을 떠나지 않은
    평범한 농부이자 촌부의 삶은 자애와 진실, 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로
    만들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로 단정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전율을 느끼며 공감했고 내 생의 목표로 설정해 버렸다.
    그렇다고 어니스트처럼 큰 바위얼굴을 닮은 자애와 진실 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며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풍요롭고 흐뭇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과 영화를 외면하는
    삶의 목표를 설정케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록수』의 주인공으로 살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될 때의 사회 환경은 굳이 상록수의 주인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기보다는 내 역량이 그렇게 살 수 있을 만큼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주어진 교직에서나마 실행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퇴직을 하고 그냥 사는 것이다.
    또 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이 펼치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뤼브롱 산에서 양치기를 하던 목동의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에 대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프로방스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순수하게 피어난 별처럼 아름다운
    이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 단정하고 그런 사랑을 꿈꾸게 되었다.
    알퐁스도데의 가슴 터질 듯한 프로방스에 대한 향수로
    이 작품이 탄생 된 것인데, 이를 문학작품으로 대하지 못하고 그냥 그 속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중학교 시절에 내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고 삶의 방법이
    설계되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게 되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나는 나의 인생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
    70년을 살아 온 결산서를 내라면 자신 있게 낼 수 없는 것은
    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내 인생 설계가 무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기야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롭게 살았던 솔로몬도 “헛되고 헛되도다.”를
    연발했는데 내가 무슨 수로 헛되지 않게 살 수 있었겠는가!
    지금에 와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내 인생의 설계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멘토링을 받지 못했다.
    물론 어린 나를 멘토링 하기 위해서 중학교 교과서에 그 문학 작품들을 실어
    놓았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픽션(fiction)인줄 모르고 그 속에 매료당할 때
    누구라도 그것은 문학작품일 뿐이라는 귀띔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픽션은 넌 픽션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 당시 책이라도 많이 읽었었더라면 … 책을 많이 읽지 못했던 것도
    오류의 근원이 되었다고 단정한다.
    여러 방면의 여러 가지 책을 읽었더라면 그것이 나의 멘토가 되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넓고 얼마나 다양한 것인가를 모르고 어니스트처럼
    이 좁은 골짜기에서 한 발 짝도 움직이지 않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을 기다리는 삶으로 멘토링 당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
    그러나 지금 내가 솔로몬처럼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할지,
    천상병처럼 “세상은 아름다웠노라”고 말할지 결단하지 못함은
    내 삶에 대해 기대를 아직도 가진 것일까?
    ☆★☆★☆★☆★☆★☆★☆★☆★☆★☆★☆★☆★
    《3》
    여름일기

    올해엔 유난히 더위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3월부터 기온이 급상승하면서 봄꽃들이 피는 순서 없이 마구 피었다.
    매화, 개나리, 목련, 벚꽃, 진달래, 싸리 꽃 이런 순서로 앞에 핀 꽃이
    진 후 다음 순서에 있는 꽃이 피었는데 몇 년 전부터인가
    순서가 없더니 올해엔 유난히 한꺼번에 다투어 피어 온 세상은
    꽃 대궐로 만들었다.
    봄꽃이 진 후 그 더위는 계속 기승을 부려 봄옷 입을 겨를도 없이
    여름옷을 입고, 5월부터 해수욕장이 문을 열고, 사방에서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산천도 연록의 매력을 뽐낼 겨를 없이 초록으로 무성해 버렸다.
    이런 현상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변화라는데 이 원인을 오존층 파괴 등
    여러 가지 과학적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원래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지축이 좀 세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우리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현상이라
    생각할 진데 인간은 이 자연 변화에 순응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은 이해가 된다.
    다만 정신 없이 앞으로 질주하는 생활을 하는 내게는 더위라는 것이
    상당한 고달픔을 주고 있어 생활에 지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더위를 원망하며 피해 다니는 것은 현명치 못한 것 같아
    더위를 즐기는 방안을 생각해 봤다.
    맨 처음 이 더위 동안에 멋진 시를 한 수 외우기로 하고 이왕이면
    여름 시를 찾다가 이해인 님의 여름일기를 찾게 되었다.
    여름을 주제로 4편이나 되는 시를 여름일기라는 제목으로 묶어 놓았다.
    여름일기1의 첫 연은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 속까지 태울 듯 한 태양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빨래를 빨아 마당을 가로지른 빨래 줄에
    가득 널어놓으면 빨래들은 신나게 춤을 추었다.
    마치 온몸이 개운하여 날아갈 것 같다는 듯이 말이다.
    더구나 이불 호청 등은 삶아 빨아 널어서 유난히 희게 빛났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간간이 불어오는 산들바람으로 펄럭이는 빨래는
    기묘한 청량감으로 내 마음까지 깨끗하게 했음을 경험했다.
    이 빛나는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면 저렇게 희어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어렸을 때의 감동을 이렇게 명쾌하게 대변해 줄 시가 있었다는 게
    너무도 감동 스러워 시를 외우며 여름을 즐긴다.

    얼마 전 남편을 도와 콩밭을 좀 맸다. 시원할 때 얼른 해치울 양으로
    새벽부터 시작했는데 마음대로 시원할 때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흐린 날이었지만 온 몸에 물에 담근 것처럼 땀이 흐른다.
    얼굴에서는 유난히 방울진 땀이 뚝뚝뚝 떨어진다.
    이 땀을 그릇에 받으면 금방 한 공기가 될 것 같다.
    농작물은 하늘에서 주는 비와 바람과 땅에서 솟는 영양만으로
    자라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의 땀도 섭취해야 하는가보다. 사람들이 땀을 구슬 같은 땀이라 하는데,
    땀이 그만큼 값지고 귀한 것임을 새롭게 깨닫는다.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는 이해인 님의
    여름일기1의 가운데 연을 새기면서 이왕 흘리는 땀 열심히 흘리기로 했다.
    구슬 같은 땀, 향기로운 땀, 땀은 진정 귀한 것임을 채득하면서
    땀과 싸우느라 팔다리 아픈 것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일하며, 사랑하며,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다”는
    여름일기3을 외우면서 열심히 땀을 흘렸다.
    이런 때 간간이 찾아주는 산들바람의 매력은 대단하다.
    산들바람이 땀방울을 스치고 지날 때에 느끼는 이 쾌감은 땀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맛볼 수 없다.
    오로지 땀을 흘린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이 상쾌함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땀 흘리기를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땀을 많이 흘릴수록 체내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체내
    노폐물이 배출되고 신선한 물로 새로 채워져서 기운이
    왕성해지는 것을 체험한다.
    올 여름 유난히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노동으로 왕성하게 솟구친 땀은
    연중 체류된 체내 노폐물을 말끔히 배출해 주어서 신선한 새 생명수를
    내 체내에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
    《4》
    이 가을에 읽는 시

    처서를 기점으로 하여 태양의 고도가 살짝 기울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폭염은 자리를 뜨고 산들바람이 밀려온다.
    그 위풍당당했던 초목은 기세를 접고 겸허히 옷깃을 여미며
    결실을 준비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찬란했던 생을 한 개의 꼬투리에 고이 접으면서
    오로지 자손 번성의 염원만을 안고 고개 숙인다.

    저녁으로 산들바람이 이는 오늘이 음력 칠월 이십이일인가 이십삼일인가.
    하현달이 하얗게 빛나는 이 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데,
    따끈한 국화차 한 모금 입을 축이고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
    「가을 사랑」을 듣는다. 왜 이렇게 가을을 서두는 것일까.
    못마땅한 생각이 들어 “나는 가을 사랑은 싫어” 라고 답장을 보내고
    생각하니 싫어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는 걸…….
    나도 여름은 접고 가을을 맞이해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적막하기만 한데
    귀또리 한 마리가 깡총 문덕을 넘어든다.
    그 찬란한 여름, 마음껏 풍요를 만끽하고 벌써 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 안을 엿보는 귀또리의 신세가 가엽다 생각하니
    “이 밤 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조지훈 님의 『승무』가 떠오른다.

    내 심장을 휘어 감는 시
    나는 가을이면 이 시에 취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바람 한 점 없는 밤,
    하늘은 청명하고 별은 빛나는데 이지러진 하현달은 하얀빛을 발하며
    서쪽을 향하고, 황촉 불을 밝힌 조촐한 법당. 앞마당은 하얗게 빛나고
    뜰 뒤뜰엔 오동나무가 큰 잎을 펼치고 있고, 까맣게 짙은 그림자는
    동쪽으로 드리워 있고, 앞뜰에는 이러저러한 가을꽃들이 찬이슬에
    숨죽이고, 법당 처마 끝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풍경, 댓돌엔
    스님의 흰 고무신이 두어 켤레…….
    법당 안엔 빈대에 황촉불이 밝혀 있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얇은 사 하이얀 고깔에 감추오고 긴소매 도포를 입고 하얀 버선을 신고
    춤을 추는 미모의 여승, 서럽도록 고운 빛이 흐르는 가냘픈 얼굴,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까만 눈동자를 어쩌다 한 번씩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을 응시할 때 복사꽃 고운 뺨, 그 고운 얼굴에 맺힌 눈물 두 방울.
    긴소매를 휘어 감았다 다시접어 뻗으면서 날아갈 듯 돌아서며
    살포시 스치는 작은 버선 발 세속의 번뇌를 긴소매 자락에 실어
    먼 하늘에 날려보내고 온몸을 휘돌려 대자대비의 은총을 염원하는
    여승의 춤사위는 미의 극치를 넘어 천상의 향연으로 펼쳐진다.

    이 시는 이 밤을 정적으로 몰아넣는다.
    산천의 잎 하나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
    그 큰 오동잎도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 없이 한 잎 수직으로 떨어뜨린다.
    법당 추녀 끝의 풍경조차 울리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법당 안
    황촉불도 말없이 녹게 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잠들게 하고 오로지 승무를 추는 여승의
    춤사위만을 펼쳐낸다.
    한기에 몰린 귀또리도 울지 못하고 온밤을 지새울 뿐 오로지
    여승의 춤사위가 바뀔 때마다 옷깃 스치는 소리만 은은할 뿐이다.
    온 세상을 잠들게 해야 승무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은 시인의 시적 기교에 감탄하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을 지새운다.

    적막한 이 가을 밤, 세상이 잠들어야만 들을 수 있는 춤사위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듣노라니 조촐한 법당 앞마당에 진하게 드리운
    오동나무 검은 그림자가 달빛이 희면 그림자는 더욱 검고
    짙어지는 이치를 가르쳐 준다.
    번뇌가 클수록 대자대비의 은총이 더욱 두터우리라는 깨달음으로
    고요한 이 밤 춤추는 여승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조지훈 님의 시 『승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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