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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희 시 모음 6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4.22. 20:20:47   조회: 432   추천: 5
    여명문학:

    조경희 시 모음 6편
    ☆★☆★☆★☆★☆★☆★☆★☆★☆★☆★☆★☆★
    《1》
    구슬을 꿰다

    조경희

    아침부터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나는 구슬을 꿰기 시작한다
    둥근 상심들을
    모조리 한 곳에 끼우고 있는 시간
    처마 끝을 타고 똑똑 떨어지는 투명한 구슬들은
    무슨 상심이 그리 많은 지
    꿰어도 꿰어도 끝이 없다
    한알 두알 구슬은 무게를 더해 가는데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툭,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절로 실이 끊어진다
    도르르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구슬들
    저것들을 다시 꿰어야하는 일상들이
    장롱 밑으로 숨는다.

    ☆★☆★☆★☆★☆★☆★☆★☆★☆★☆★☆★☆★
    《2》
    단추를 달면서

    조경희

    윗옷을 걸치고 단추를 잠그려는데
    단추 하나가 덜렁덜렁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옭아맨 실을 풀고
    제자리에서의 이탈을 꿈꾸고 있었나 보다
    손으로 쥐고 당기면
    툭,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단추를 여미지 않은 빈자리가
    어색하다 단지,
    자리 하나 비었을 뿐인데
    옷매무새가 단정치 못하다
    삶의 어느 강가, 징검다리를 건너다
    돌덩이 하나가 비어 황당했던 기억처럼
    자리를 비운다는 건, 균형을 깨뜨리는 일
    生의 거대한 물살을 거스르는 일
    그 어느 것도 단추의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없음을 알겠다

    홀로 떨어져나간 단추가 아무런 쓸모 없듯이
    잠시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실로 꽁꽁 묶어 둔다

    다시 팽팽한 일상이다
    ☆★☆★☆★☆★☆★☆★☆★☆★☆★☆★☆★☆★
    《3》

    발바닥으로 읽다

    조경희

    찌든 이불을 빤다
    무거운 이불 한 채, 물에 불린다
    모란 잎, 때 절은 이파리
    고무통에 담그니 발바닥에 풋물이 든다
    모란꽃이 쿨럭쿨럭 거품을 토해낸다
    고무통 수북히 거품이 솟는다
    맥을 짚듯 두 발로 더듬는다
    삶에 찌든 내가 밟힌다
    먼 기억 속 부드러운 섬모의 숲을 거슬러 오르자
    작은 파문 일렁인다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행간
    지난 날 부끄런 얼굴, 밟히며 밟히며
    자백을 한다
    좀체 읽히지 않던 젖은 문장들
    발로 꾹꾹 짚어가며
    또박또박 나를 읽는다

    눈부신 햇살 아래 모란꽃 젖은 물기를 털어 낸다
    어디선가 날아든 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꽃을 읽고 날아간다
    ☆★☆★☆★☆★☆★☆★☆★☆★☆★☆★☆★☆★
    《4》

    발의 본분

    조경희

    발은 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발바닥이 지면과 맞닿아
    땅을 딛고 서 있을 때
    발은 발다웠다
    걸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깁스에 결박당해 있던 지난 며칠 동안
    발은 발이기 보다는 한낱 석고에 지나지 않았다
    걷는 일이야 말로 발의 본분이며 진보이고
    또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깁스를 풀고 오른쪽 발을 바닥에 내딛는 순간
    묵직한 지면이 발바닥을 자극하며
    발에 힘이 실렸다
    중력을 받들어
    꾸욱, 바닥에 바닥을 포갰을 때
    지구를 들어올리는 힘의 중심이 되었다 발은,
    멈췄던 길을 다시 부른다
    눈 앞에 지도가 펼쳐지듯 걸어서 가야 할 길들이 어서오라 그의 발을 끌어당긴다
    왼발, 오른발, 왼
    발은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는 것도
    발바닥에 지문처럼 새겨두었다
    새들이 먼 하늘을 날 때 희열을 느끼듯
    발은 먼 길을 여행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때 걸음이 가벼웠다

    ☆★☆★☆★☆★☆★☆★☆★☆★☆★☆★☆★☆★
    《5》
    사과나무 정원

    조경희

    내 마음의 뜰에 자라는
    한 그루 사과나무
    봄부터 이제까지 싹을 틔우고
    맑은 햇살 끌어당겨 수화 나누네
    가지와 가지 사이를 오가는 새들이
    허공 속에 푸릇한 알을 낳아 품으면
    탐스럽게 익어가는,
    소슬한밤 뜰을 서성이노라면
    끼리끼리 붉은 사과열매 사이에
    조용히 맺히는 희고 둥근 달
    누군가의 은밀한 그리움처럼
    환하게 떴다가
    어둠과 함께 숨어버리네
    요절한 형제의 얼굴처럼,
    혹은, 이루지 못한 풋사랑의 얼굴처럼
    채 익기도 전에

    떨어져버리네

    사과를 깎다보면 느낄 수 있네
    사과 껍질 속 희고 시큼한 눈물
    보일 듯 말듯 달빛 배어있네.

    ☆★☆★☆★☆★☆★☆★☆★☆★☆★☆★☆★☆★
    《6》

    아픔이 되어

    조경희

    속없는 한마디의 말이
    비수가 되어

    사랑하는 이 마음에
    생채기 하나 내었습니다

    후회 속에 도리질 치며
    애써 변명 하여도

    아물지 않고
    아로 새겨질 것 같은 아픔

    무엇으로도
    어루만져 줄 수 없는 지금

    깊은 나락의 끝까지
    마음 담아 두게 됨이 서글퍼지는 시간

    그의 상처가
    내게 더 큰 상처 되어

    이대로 견딜 수 없음에 눈물방울 같은
    한잔 술에 마음 달래 보건만

    잠 못 이룰 그대 생각
    죄스러움에

    나약한 여심 불면의 늪에서
    스스로 반추의 길을 걸어 봅니다

    날이 밝으면
    싱그러워진 사랑을 꽃피워

    진심 맑아진 나를 던지며
    행복으로 안겨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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