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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향 시 모음 27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2.05. 00:06:32   조회: 267   추천: 11
    여명문학:

    김자향 시 모음 27편
    ☆★☆★☆★☆★☆★☆★☆★☆★☆★☆★☆★☆★
    《1》
    가을 바닷가

    김자향
    홍시 하나
    바다 속에서 불끈 솟아오른다
    팔을 뻗어 똑, 따 가슴에 담는 순간
    레이스 주름치마를 입고 온 파도가
    몇 박자 왈츠를 맞추고 있다
    건너편 갈대숲에 숨은 바람도
    덩달아 휘파람소리를 내 지른다

    내 마음이 익은 홍시는
    숫처녀의 성보다 더 붉다
    첫날밤 부끄럼이 바다를 적시고
    울음을 꽃피우던 날처럼
    썰물 따라 간 숨소리만 귓가에 남아
    빈 가슴을 채워준다

    무슨 까닭일까?
    바다가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눈물을
    하늘이 받아 태우고 있다

    모래밭에선 갈매기 떼들의 발자국이
    가을 꽃 한 다발씩 찍어 놓고
    철없는 어린 꽃게들을 불러서
    풍경을 집게발로 오려 붙이고 있다

    붉은 우주 하나가 가슴속에 들어 와
    세상을 꼬옥 끌어안는다.
    ☆★☆★☆★☆★☆★☆★☆★☆★☆★☆★☆★☆★
    《2》
    가출 이력

    김자향


    감옥 속에서인 듯 어둠을
    증오의 시침질로 기웠던
    가출 석 달째

    서둘지 않아도 찾아오는 저녁처럼
    노을이 피를 말리는 마을에서
    한낮의 비린 마음 잠시 내려놓고
    지갑 속에 찔러둔 고단함을 꺼내든다.

    비바람 다 맞고
    무릎 시큰시큰 절망의 비탈길 돌아와
    퍼부어 담는 소주 맛은
    상처를 지글거리고 타오르는
    불꽃의 심술일 게다.

    미움이 족두리 엮던 처음 시간을 달래어
    한 땀, 한 땀 꿰매고 있을 때
    저절로 소리가 되어 나오는 한숨이
    떠나온 길의 낯선 발자국들을
    내 앞에 턱, 부려놓는다.
    ☆★☆★☆★☆★☆★☆★☆★☆★☆★☆★☆★☆★
    《3》
    갈매기의 외출
    김자향

    바람이 고요를 숙성시키고 있을 때
    생의 뿌리가 되었을 많은 말 삼켜버린 바다는
    삶의 허기를 이정표로 세워놓고
    상처의 옆구리를 찌르는 침묵이 무겁다.
    바다의 발톱을 자르고 가는 어선 한 척이
    세상 저 편에 영혼의 무늬 짜 넣을
    곧은 세월 붙잡느라 굳은 허리 굽혔다 폈다
    고단한 땀방울로 흐른다.
    바람의 잔뼈를 쪼아대던 갈매기가
    물결 지느러미 속에서 목숨의 십자가를 찾다가
    경계 밖으로 빠져나가 다급한 울음으로
    우리 집 아랫목에 숨어든다.
    바람의 통로가 부산하게 흔들린다.

    옷장 속에 끼여 있는 파도소리 한 음절
    한 음절 사이를 생살 앓는 걱정으로 털어내 봐도
    승차권 없는 뱃고동소리만 놓고 갔을 뿐
    바람 속에 남겨놓은 삶의 무게는
    삭신이 녹아내리는 메아리로 창가에 와 머문다.
    ☆★☆★☆★☆★☆★☆★☆★☆★☆★☆★☆★☆★
    《4》
    겨울 무렵
    김자향

    갈매기 울음이 묻은 눈보라가
    성성이 가슴을 파고들 때
    아득한 거리에서 파랑의 날들이
    불안한 고저음으로 내려앉는다.

    詩의 몸에 마음을 담았던 날들이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올 때
    내 영혼은 빙점을 지나 결빙되기 시작했다.

    탐착과 집착이 달라붙은 생의 가장자리
    금간 마음 한 줄 읽을 줄 모르는 사랑이었다면
    차라리 아픔이란 걸 잊었을까.

    종탑 멀리 날아가는
    새 떼의 문장만이 검게 물들어 간다,
    구시렁구시렁 종소리를 깨는
    이 거덜 난 저녁에.
    ☆★☆★☆★☆★☆★☆★☆★☆★☆★☆★☆★☆★
    《5》
    겨울 전주천
    김자향

    안락의자 같은 몸이 이끌림에 손목 잡혀
    햇살 한 장 어깨 위에 걸치고
    마음 귀퉁이에 끼여 있는 흙먼지 같은
    어둠 날리려 산책을 나선다

    겨울 한 복판에서도 얼지 않은 전주천
    물속에 머리 처박고 생을 낚는 법 가르치는
    어미 훈육 중에도 천방지축
    물속을 가르는 청둥오리 새끼들
    어디서나 아이들은 오염 없는 우주다

    인내의 시련 단단하게 할퀴던 소한이
    햇살과 내통하는 틈을 타
    하늘 당기는 발길질에 물비늘이 반짝이는 시
    두어줄 써 놓고 사라지는 은빛 피라미 떼들
    따뜻한 마음 얹은 팔짱 낀 사람과
    동화 속을 걸어 나온 듯
    끊어진 시간의 매듭을 엮어내는 산책 길

    더러는 사는 날이 갈증나고
    더러는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빈 영혼에 쉼없이 불을 놓는 그 사람
    등 뒤로 작은 그림자가 길게 발을 뻗는다.

    ☆★☆★☆★☆★☆★☆★☆★☆★☆★☆★☆★☆★
    《6》
    구두 수선

    김자향


    눈 맞아 발바닥을 사랑해 버린 구두가 반질반질 콧대를 세워놓고 있다 지구 몇 바퀴 돌고 왔을 너는 삶의 지문을 찍어 어지러이 발 자국 소리로 남은 것

    첫사랑의 설렘이 뒹굴었던 진달래 언덕과 뼈 으드득 가난이 깨물리는 울음과 살점을 도려내는 상처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을 너, 해진 구두

    지구 한쪽 빼물고는 삐죽이 나온 불만을 틀어쥔 채 구멍 난 가난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구나 오늘 허리 지탱할 굽 하나의 너는 멍든 신앙을 물으면서

    잘라내고 두들겨 짓는 영혼들의 웅크린 침묵이 너무나 혹독하다
    흙탕길에서 걸어 나온 현기증을 끄지 못해 가슴이 불씨로 타는 날

    육신의 아린 결핍을 닦아 고독을 파는 작은 성자, 찢어진 마음까지 꿰매는 손길로 상처 위에 상처를 덮는 너는 환한 꿈을 꾸고.

    ☆★☆★☆★☆★☆★☆★☆★☆★☆★☆★☆★☆★
    《7》

    구천동 파회 단풍 2.

    김자향

    장년기의 구천동 골짜기가 힘이 솟는지
    하늘이 쏟아 부은 비아그라를
    여름내 퍼 마시더니
    단장으로 옆구리를 찔러봐도
    꿀 먹은 벙어리인 채
    붉고 노란 모세혈관이 팽창해져
    막무가내로 구천동 파회에 절정의 불꽃을
    펑펑 터뜨렸다

    야성의 눈매에 홀딱 빠지는
    청솔가지 끝에 걸린 바람도
    산자락을 넘지 못하고 넋을 빼앗겨
    해찰하는 자동차도 구천동 골짜기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관절마다 찬바람이 혈관까지 옮겨 붙어도
    뜨겁게 달궈진 산과 나 사이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근심을
    만개한 그 빛 한 자락 묻혀와
    고단한 세월 씻는다

    그 여백을 안고 날아오르는
    나는 한 마리 철새이고 싶다.
    ☆★☆★☆★☆★☆★☆★☆★☆★☆★☆★☆★☆★
    《8》
    그 한마디

    김자향

    눈의 비늘을 벗겨내자
    어둠의 껍질이 깨지는 순간이다
    상처의 고통에서 외로움의 존재를
    벗어나는 행복이다
    둥글게 익혀서 말아두었던 말,
    어깨 한쪽 기댈 수 있는 숲의 중심에 이른 듯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가
    가장 오래 앓은 마음의 욕창부터 치유 시킨다.
    ☆★☆★☆★☆★☆★☆★☆★☆★☆★☆★☆★☆★
    《9》
    그대에게 묻는 말

    김자향
    1.
    아들 딸 남겨두고 떠난 이는 뼈에 사무치고
    그 다음 세상 열어 한 살림 차리고자 했던
    연분조차도 연기처럼 모두 잃었을 때
    미칠듯 무너지는 네 안의 고독이
    흙바람 부둥켜안고 텅 빈 하늘에
    얼마나 목을 매였으랴

    독한 소주 비우고 비워낸 당신의
    쓸쓸한 빈 병 같은 나날들
    다시는 후미진 골목에서 퍽퍽 내지를
    울음 없어야 하리
    빈 가슴 부둥켜안고 서러움에 떨어야 하는
    외로움도 없어야 하리
    그대 아픈 자국 쓰다듬는 가슴 또한
    네 안에 뒹구는 동색이거늘
    쓸쓸한 낙엽들 쓸어내고 싶구나
    결삭은 흙이 된 세상은 환할 것이다

    그대의 힘든 어깨위에 어떤 말을
    위로로 내려놓을까
    다만 이 세상 주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감사하다는 말 남기겠네
    들꽃 같은 나의 사람아!
    뼛속까지 사무치게 사랑하는 사람아.

    2.
    피멍울 안쓰러이 닦아내던 너도 나도
    높디높은 정 한 채 짓자
    옹이 된 금빛 사랑 다시 꽃피울 수 있게
    떫은 시간 조심히 닦아내
    수많은 그리움들 쌓아 목 터지게 부르다 가자
    절망 한 귀퉁이씩 갈아엎으면서
    트고 갈라진 가슴에 봇물 가둬
    다시 사는 목숨의 씨 뿌리자

    썩어 문드러진 세월만큼 마음 둔덕에 새 이랑 내고
    햇살, 꽃구름 비벼 넣어 사랑으로 뿌리 내리자
    먼 훗날
    내가 그대의 가슴팍에 적절히 엎질러져
    싱거운 노래 훔칠 때
    그대는 나의 무릎 베고 누워 희미해진 눈길로
    어떤 이 빠진 웃음 주고받을까
    그때 우리 사랑은 어떤 색의 빛깔일까
    마주친 눈빛만으로도 그대 마음 읽을 수 있나니
    지금 진정 어떤 세상이라 말 할 수 있으랴.

    ☆★☆★☆★☆★☆★☆★☆★☆★☆★☆★☆★☆★
    《10》
    기다림

    김자향

    주검이 되어 돌아온 너
    출퇴근하던 버스 정류장에 나와
    너 없는 버스를 기다린다
    내리는 손님을 살피며 네 모습을 찾는다, 행여
    엄마! 함박웃음 보일까
    네가 타지 않은 버스는 아쉬움만 내려놓고
    쓸쓸히 멀어져 가고
    안타까이 바라보는 난
    잘 가라고
    허망한 손짓을 보낸다.

    기둥처럼 남편처럼 너를 의지하고 살았던 내 앞에
    한 줌 흙으로 돌아와 한마디 말도 없이
    내 가슴에 너를 묻고 네 가슴에 한(恨)을 묻어
    너는 내 가슴에 못다 핀 꽃 한 송이
    보고 싶어 뼛속에 사무침이 속절없다

    라일락꽃 같은 며느리 가슴 막막하고
    할미꽃 같은 시어머니 가슴은 먹먹하고

    네 가슴 끝에서 열린 열매, 언제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우리는 무게가 될까
    꽃그늘 아래 뛰놀고 있는 씩씩한 모습
    보여주고 싶은데 너는
    언제나 와서 볼래?
    ☆★☆★☆★☆★☆★☆★☆★☆★☆★☆★☆★☆★
    《11》

    날망새

    김자향

    이제는 저 세상 익숙해져 마음 편하겠거니, 하여
    잊어버리자 했던 사람이 홀연
    구름 헤치고 나타나 보자기 하나 건네준다.
    펼쳐보니 방석만한 책 한권,
    표지에 "날망새" 세 글자가 선명하다

    꿈이었구나! ‘날망새’라니
    국어사전을 뒤지니 날망새는 없고 날망제*뿐이다
    내 절망 딛고 젊은 날 영겁을 재촉해 떠난 사람,
    가슴에 흉터로 남아 이승이 짓무른 지금
    해원解寃을 청하는 걸까, 아니면
    시詩가 빈곤하여 허덕이는 내게
    못다 준 정 시제詩題로 대신하려는 걸까

    어사 박문수의 한양 길 하룻밤,
    청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꿈에서 만난 귀신의 남편이 알려 준 시제 “落照”로
    장원급제했다는 일화도 있지 않던가.

    사흘 지나면 초파일,
    아직껏 구천을 떠돌던 그가
    연등 하나 받고 싶어 내 꿈길
    더듬어, 더듬어 왔는지도 몰라

    잉걸불 켜든 영혼이
    걸어온 무형의 시간들을 태우면서
    재로 지은 옷* 한 벌 걸치고서
    저승에도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면
    미움이라 불렀던 정 합장으로 비나니
    때늦은 영가등靈駕燈하나 들고
    극락왕생 하시기를!

    나,
    이 세상 맨땅에 주저앉아 소꿉놀이하다
    마침내 영겁에 들면 등각等角이 될 것인즉
    결국엔 나, 구름, 하늘 한 몸인 것을.


    날망제 : 사람이 죽은 뒤에 지노귀새남을 하지 못한 혼령을
    무당이 일컫는 말.

    재로 지은 옷: 나희덕 시에서

    ☆★☆★☆★☆★☆★☆★☆★☆★☆★☆★☆★☆★
    《12》
    바람이 사는 외딴 집
    김자향

    창호지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
    번져나는 습한 날씨다
    빈집 마당엔 먼지 자욱한 평상이 하나
    밀린 공과금 고지서 던져놓고 가는 바람소리만
    앉았다 떠나곤 한다.

    은빛 물고기는 적막을 깨려 함일까
    개울 속 훌쩍 커버린 물소리를 제치고는
    쏙쏙 머리 내밀어 더듬대는 입술로 그려놓은
    수묵화 한 점
    파문 속으로 숨은 다슬기도 이 여름
    쫓기는 꿈 잊은 양하고

    산골 민박집
    몇 촉 꽃등이 개울을 밝히니
    소나기 피해 한 생애 쉬고 가려는지
    객들이 도란거리는 이 한 철
    외딴집엔 적막이 한참 성업 중이다.
    ☆★☆★☆★☆★☆★☆★☆★☆★☆★☆★☆★☆★
    《13》
    버섯향기

    김자향

    처서 소매 끝에 설렁설렁한 찬 바람든다
    덤부렁 듬쑥한 숲이 오라고 손짓 까부른다
    목탁소리 처연한 꽃 살문 지나
    인기척 바래고 지워진 숲길에
    그늘 속 경전을 펼친 구름의 씨앗들
    습한 몸을 짜내 풍경소리 자장가로 키워낸
    외꽃 버섯 싸리버섯, 국수버섯과 능이버섯

    너는 나보다 적은 날을 살고도 향기로 남는데
    향기 한 점 없는 난 이 세상 살다간 흔적
    무엇으로 남길까
    먼 후일
    스스로 향기를 낸다는 自香, 고독한
    내 이름 위에 덧씌우고 갈 정표 한 장
    사랑 위해 바친 꽃으로 그립게, 그립게 피어
    당신 가슴에 향기로 머물 수 있다면.

    ☆★☆★☆★☆★☆★☆★☆★☆★☆★☆★☆★☆★
    《14》
    봄을 캐다가

    김자향

    까치 긴 꽁지에서 봄이 깝죽거린다
    햇살이 앉으려다 깜짝깜짝 흔들린다
    냉이, 꽃다지, 구슬쟁이, 벌금자리
    아지랑이 깊은 숨결까지 한 소쿠리 캐 담는다

    씀바귀는 상처마다 피가 맺혀 있다
    아픈 가슴을 견뎌온 터라
    그 피, 젖빛이다
    저 씀바귀 피맺힘이 내 삶인 양 싶어
    쓰디쓴 기억의 뿌리 뽑아 살펴본다.
    응고된 내 사랑의 피 역시 젖빛이다

    현기증 나도록 단물 흘리던
    어린 날의 내 잠 속에 갇힌 아름다운 파문,
    봄 언덕 아련한 엄마의 젖은 목소리를
    종달새가 물고 중천의 한 점으로 박혔을 때

    내 사랑 깊이 묻어두고
    뾰족뾰족 돋아난 그리움 다 캐내어
    한 그루 나무로 서 있고 싶은 봄날에.
    ☆★☆★☆★☆★☆★☆★☆★☆★☆★☆★☆★☆★
    《15》
    비와 시

    김자향

    마른 땅에 시의 씨앗을 파종했다
    비는 내려 가뭇없이 사라졌으나
    싹은 돋아났다
    비가 오고나면 그 곳엔 詩가 무성해진다
    시가 뿌리내린 곳엔 빛의 설렘이 있다
    우주 속에 깊고 높은 사랑 하나 피어
    탐스럽게 열리는 토요일의 詩,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그것은 너와 나의 생명의 꽃이다
    두근거림이고, 우루루 쿵쿵 마음을 흔드는
    지상의 천둥소리다.
    ☆★☆★☆★☆★☆★☆★☆★☆★☆★☆★☆★☆★
    《16》
    뻐꾸기 울음소리

    김자향


    뻐꾸기도 목이 타는지
    자욱이 비구름 타는 산자락 쓸어
    오월의 바다를 건너온다.

    선지피 쏟아내고 조문 맞던 뻐꾸기가
    하관의 눈물 뼈 마디마디
    목울음 천둥소리 풀어내어
    먼 길 떠나는 어둠 향해
    오늘 응혈이 된 말들을 깨문다.

    잡새들이 떨어뜨린 소식,
    보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범종소리 여운 같은 그 떨림 사이로
    더 세세히 몰고 오는 울음을 삼키며
    영원을 꽃피워 후루루 사르는
    그대 뒷모습.
    *노무현대통령 서거 소식 듣고.
    ☆★☆★☆★☆★☆★☆★☆★☆★☆★☆★☆★☆★
    《17》
    사랑

    김자향

    자동차도 헉헉대는 모래재
    산날망에서 개구리 떼 울음소리 붉다
    붉디붉게 달아올라 뜨겁다
    뜨거운 사랑 피 토하듯 격렬해
    골짜기를 들었다 놨다
    연기 없이 타오른다
    타오르는 저 불꽃이
    사랑이라면
    그와 나,
    그 불꽃 속에 타도 좋으리.
    ☆★☆★☆★☆★☆★☆★☆★☆★☆★☆★☆★☆★
    《18》
    삭발

    김자향


    졸음에 지친 바람이 고욤나무 배꼽에 내려 앉아
    고요를 베고 눕자 흰나비 날개 뒤로
    어머니 모습이 얼비친다

    세월이 훑고 지나간 상처의 하늘 덮으실 요량으로
    칡 넝굴 잡아 당겨 나의 무심을 꾸짖는 것일까

    뼈와 살 흘러든 길,
    등줄기 뻐근하도록 우거진 근심을 자르는데
    대출이자 밑둥이나 쳐 내라고
    불효의 손길 더듬어 어머니 함박웃음이
    그늘 가지를 흔들어 보듬어 주신다

    목까지 치렁대는 애정을 휘감고
    바람보다 낮게 내려앉은 외로움 떨치시려고
    눈 감으신 평안

    가슴에 한 바작 퍼 담고 내려 온
    칡꽃 향기는 산골짝 언덕 아래까지
    그리움으로 번져 있다.
    ☆★☆★☆★☆★☆★☆★☆★☆★☆★☆★☆★☆★
    《19》
    송별

    김자향

    단꿈 놓지 못한 졸음이 간이버스정류장에서
    첫차를 기다린다
    여명은 너무 일러 눈꺼풀도 떼지 못한 채
    차디찬 가로등이 맑은 영혼을 흔드는 새벽
    팽팽한 시간을 당기는 먼데 종소리가
    가볍게 날아오른다

    말문 닫고 있어도
    사랑의 향기가 출렁이는 시간의 뒷덜미를 잡아매어
    끌고 가는 발차發車가 밉다

    만나면 따뜻한 악수에서부터
    꽃이 피어나고
    이미 꽃물이 베인 가슴속에서
    그대를 찾아 헤매는 나의 투정
    주말에 다시 오리라 강물처럼 속삭이며
    생의 파도를 가르는 사람,
    차창 밖으로 목을 빼 아쉬움 달래며
    기다림을 건네는 손짓 속엔
    햇살 같은 시간들이 알알이 몰려와 반짝인다

    여울지는 삶 그 너머로
    가슴 한 쪽 떼어놓고 가는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그대 언 발 녹여 줄
    뜨거운 가슴이고 싶다.
    ☆★☆★☆★☆★☆★☆★☆★☆★☆★☆★☆★☆★
    《20》
    아름다운 시절

    김자향

    눈비음

    탁월한 선택의 만남이라고
    행운이길 바란다고
    정이 넘치면 외로움도 커지는 것일까
    그대의 사랑은 내가 아닌 저 하늘의 뭇별
    내 안의 슬픔을 큰소리로 듣던 사람

    가슴속에 숨겨둔 혹 하나 불끈 솟았네
    남의 것을 훔쳐 포만감을 느끼는 부패된 영혼
    알고 보니 폭삭 썩은 시궁창이었네
    한 치 가책에서도 악취가 풀풀 나고
    시詩로 사랑을 고백하는 제스처

    황금의 찌로 밀월을 낚는 가정 파괴범
    명예를 매수하고
    눈속임으로 시詩를 짓고
    부적절의 위선과 거짓이 탱탱한 육십 고개
    M지부를 이십년이나 이끌어 왔다고 뻐기던
    가증스런 바람난 음모다

    인생은 씁쓸한 단맛이네
    비움도, 체념도 슬기로움인 것
    뼈 추스리는 일
    묵언 수행도 요번만큼은
    진실의 말 아니겠나.


    눈비음 : 남의 눈에 좋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겉으로만
    슬쩍 꾸미는 일

    은행잎 지는 날

    ☆★☆★☆★☆★☆★☆★☆★☆★☆★☆★☆★☆★
    《21》
    아버지의 봄

    김자향

    봄이 주름진 시름 지고 와서
    유채 밭 언덕에 부려놓으니
    젖은 허기 골라내시던
    아버지는 소고삐 잡고 반음계의 봄을
    갈아엎었다

    마른 땅 가난을 쟁기질하는 동안,
    방문 돌쩌귀나 비틀던 햇살 잡아끌고는
    찌들었던 봄 일구면
    명치끝 울화통은 저절로 삭아버리고

    황소울음 가둔 다랑논에서
    태양의 꿈 실팍하게 자란 세월을
    촘촘히 익혀 공출하고 나면
    닳아진 백발의 뼈가 삭아 펄럭거렸다

    불임의 땅에서 솟는
    어지럼증은 뜨거운 삶 태우고 간
    아버지의 한 생이 품은 슬픔일지니

    조팝꽃 간드러진 들녘에서 돌아오시던
    저녁 휘파람 같은 수염은
    지금쯤 어디서 하얗게 날리고 있을까.

    ☆★☆★☆★☆★☆★☆★☆★☆★☆★☆★☆★☆★
    《22》
    은행잎 지는 날

    김자향

    오거리 소슬바람 몸짓 따라
    은행잎 발뒤꿈치를 살짝살짝 밟는다
    감미로운 러브스토리가 비단안개처럼
    거리에 깔리고
    여린 심장 뜯어내는 소리의 날개들이
    유리창을 흔든다

    샹들리에 불빛 아래 앉아
    몇 잔의 쓰디쓴 절망을 타 마시며
    세상의 짐 바윗돌로 눌러놓고 나온 내가
    바람의 등뼈에 기대어 생각을 잠재운다.

    그 해, 겨울은 몹시 어두웠다
    혹독한 추위에 쫓기던 그는
    기다려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묵시의 시간이 몇 굽이 통화로
    위스키 한 병 잔잔한 웃음으로 비웠던 날은 가고
    삼십 년을 기다린 그 찻집에서
    메모지에 낙서한 세월 참 길었구나

    창 밖 은행잎 하염없이 떨어지는 날.

    ☆★☆★☆★☆★☆★☆★☆★☆★☆★☆★☆★☆★
    《23》
    핸드폰

    김자향

    아득한 날
    새되어 떠난 그의 안부가 궁금하네
    무수히 다른 길 날아와 앉는
    충혈 된 그리움
    슬픔에 찔린 칩은 이미 녹슬어버려
    전할 눈물도 닿을 수가 없다네
    저승 길 열지 못하는 안부 듣고 싶어
    꾹꾹 눌러보면
    바람은 설핏 그의 숨결 몰고 와
    들리는 듯 나타났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마는 애절한 메아리
    마음과 마음이 닿지 못한 거리에서
    핏빛 가슴이 감잎 노을로 물드는 저녁
    부재를 알리는 응답만이
    영원을 기다리는 목마른 대답일 뿐
    생채기만 아날로그로 전송 되네

    언제이련가 애틋한 이 마음,
    치자 꽃향기 메시지로 날아와
    풀잎 같은 마음 다독여 주고 갈까.
    ☆★☆★☆★☆★☆★☆★☆★☆★☆★☆★☆★☆★
    《24》
    조개구이

    김자향


    조개를 숯불 먹은 적새
    위에 가지런히 눕힌다

    찰싹이는 꿈속 파도 깨워
    삐죽이 문 열고
    행선지를 묻고 있는 조개가
    뜨겁게 구워지고 있다

    심해의 적막이 지글지글 끓고
    낯선 세상 입 다물고 있다가
    속 타는 버큼을 비죽비죽 토할 때
    나는 바다를 송두리째 삼키며
    목젖에 감긴 파도소릴 풀어 놓는다

    조개는 꽃잎으로 날아와
    입안에 묻히고
    환장하게 땡기는 술맛에
    무량하게 깊어만 가는 사랑도 취해
    가슴은 벌겋게 꽃물이 든다

    생의 목쉰 울음이 졸아들고
    내 육신의 아린 상처를 치유하면서.
    ☆★☆★☆★☆★☆★☆★☆★☆★☆★☆★☆★☆★
    《25》
    조금과 사리
    김자향

    파도가 파래같이 풀어진다.
    생의 고단한 내력 휘몰아
    임자도 썰물의 그림자가 서서히 뒤따라간다.

    바다에 푸른 음계 파종하는 갈매기들은
    맨발이 시린 것인지 깃털 속에 묻고는
    서쪽으로 등이 휜 엷은 햇살 건지려고
    제 몸 반짝반짝 날개를 젓는다.

    오늘은 무거운 상처 기우려는지
    달무리 같은 후회만 떠오르고
    거역할 수 없는 삶의 닻마저 놓쳐버린 채
    하루의 종착역에 행선지를 내려놓자
    출렁이는 바다 가운데 떠오른 길 하나
    조금과 사리로 열린다.

    ☆★☆★☆★☆★☆★☆★☆★☆★☆★☆★☆★☆★
    《26》
    창밖엔 봄날

    김자향

    가을이 속달 엽서 한 장 들고
    한달음에 달려와
    녹슨 빗장을 빠꼼히 열어 보네
    꽃진 잎 속에 머무는 햇살이
    영원을 수태한 향그런 씨앗 물고
    새 봄을 꿈꾸고 있네

    마음 휘감아대는 창밖 휘파람 소리
    보글보글 찌개 끓여 찬을 들면
    이 세상 따뜻한 눈길인 걸
    그 사람,
    경건한 안부만 동백꽃잎처럼 물어오네
    뜯지 못한 포장속의 그대야,
    동백꽃 같은 목숨 바쳐서 눈 마주치는 순간
    만이라도 해처럼 달처럼 살다 가자
    고드름 낀 처마에 네 입김 금빛 온기로 차오른다면
    얼음꽃 혈관도 꽃불로 타올라
    이 세상 아름다운 노래로 사랑하겠지

    들풀과 들풀이 만나
    고운 손짓만으로도 어우러져
    봄날처럼, 꼭 봄날처럼만
    백 년 꽃밭에 머물다 가지 않으련.
    ☆★☆★☆★☆★☆★☆★☆★☆★☆★☆★☆★☆★
    《27》
    창밖엔 봄날

    김자향

    가을이 속달 엽서 한 장 들고
    한달음에 달려와
    녹슨 빗장을 빠꼼히 열어 보네
    꽃진 잎 속에 머무는 햇살이
    영원을 수태한 향그런 씨앗 물고
    새 봄을 꿈꾸고 있네

    마음 휘감아대는 창밖 휘파람 소리
    보글보글 찌개 끓여 찬을 들면
    이 세상 따뜻한 눈길인 걸
    그 사람,
    경건한 안부만 동백꽃잎처럼 물어오네
    뜯지 못한 포장속의 그대야,
    동백꽃 같은 목숨 바쳐서 눈 마주치는 순간
    만이라도 해처럼 달처럼 살다 가자
    고드름 낀 처마에 네 입김 금빛 온기로 차오른다면
    얼음꽃 혈관도 꽃불로 타올라
    이 세상 아름다운 노래로 사랑하겠지

    들풀과 들풀이 만나
    고운 손짓만으로도 어우러져
    봄날처럼, 꼭 봄날처럼만
    백 년 꽃밭에 머물다 가지 않으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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