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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시 모음 35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7.09.17. 23:46:55   조회: 570   추천: 22
    여명문학:

    10월시 모음 35편
    ☆★☆★☆★☆★☆★☆★☆★☆★☆★☆★☆★☆★
    1
    10월

    기형도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 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
    2
    음력 시월

    김영천

    음력 시월을 이르는 말에
    소춘 小春,
    양월 良月,
    응종 應鐘,
    방동 方冬,
    상동 上冬,
    이렇듯 여러 말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갑자기 추웠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작은 봄에
    이렇듯 여러 이름이 있는 이유가 있을 터이어서요
    나는 내 아내의 모든 병이 낫고
    새로 찾아온 봄을 두고

    오래 오래 감격해하는 것입니다
    ☆★☆★☆★☆★☆★☆★☆★☆★☆★☆★☆★☆★
    3
    시월의 마지막 날엔

    김용화

    시월의 마지막 날엔
    잎새마다 꽃이 되었다.
    어느 누가 미치도록 그리웠으면
    가을이 되었겠는가
    그리움이 모이면 가을이라 했는데
    어느 누가 미치도록 보고싶었으면
    저리도 절절한 가을 유서를 쓰겠는가
    순희의 가을 낙엽은
    고독한 이의 마른 눈물이라 했고
    순희의 가을은
    잊고 잊는 것이라 했다
    첫눈 오는 날까지
    까마득히 잊는 것이라 했다
    ☆★☆★☆★☆★☆★☆★☆★☆★☆★☆★☆★☆★
    4
    시월의 잠수함

    김지훈

    구름이 입술 위에 달라붙는
    이 자리는 북한산 어디쯤일까. 지닌 것 없이
    숲만 가득 담아둔 나무 그늘에 앉아
    기어이 가져온 새 책에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혈이 탁 트이고서야 내 온몸이 잠망경으로 솟아오를 수 있었다
    작은 물줄기 속에서도 잘 돌아가는 스크루
    사방 가득한 수억 燭의 소리가 큰 닻이 되어
    산봉우리들이 신들의 전함으로 불리었던 그 바다 위에 박혀 있다
    밤낮이 한꺼번에 몰아오는 내연기관의 큰 울림
    그 안에는 칼 대신 나뭇잎 들고 싸우던 날도 있다
    힘줄 선명한 잎 하나가 공기를 잘게 저미며 내려온다
    신들은 어디에서 배를 만드는 중일까
    베어낸 나무 밑동에 그려진 선명한 음파탐지기 자국
    나는 녹슨 쇠를 털며 가라앉고 있는 배들의 그림자를 본다
    나뭇잎을 칼처럼 쥐고 싸우던 시절
    앙상해진 주물기계들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바람이 떠미는 결이 물 속인 줄 알고
    낙엽이 벗었다가 도로 신는 잠수화를 본다
    아직도 능선에는 사나운 기운이 넘친다
    신들의 칼을 나는 나뭇잎이라고 고쳐 부르고 싶다
    이 배를 붙들며 한 자리에서 먼바다를 돌아오는 사계절
    내 고함으로 한 방의 어뢰를 뭉쳐
    사령관의 함교가 있는 백운대를 한 방 때릴 셈이다
    갑판이 낙엽을 털 듯 몸을 털며 다시금 방향을 잡고 나아갈 때
    수리공들이 큰배를 향해 떼지어 몰려가는 항로를 따라
    푸른 위장을 한 잠수함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
    5
    시월의 장미

    나호열

    고고하다
    시월의 장미
    시들어 버리지는 않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을 맞으며
    똑똑 떨구어내는
    선혈
    붉음이 사라지고
    장미꽃이 남는다
    내 너를 위하여
    담배를 피어주마
    야윈 네 가시를 안아주마
    ☆★☆★☆★☆★☆★☆★☆★☆★☆★☆★☆★☆★
    6
    시월의 시

    류시화

    그리고는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아, 그렇게도 빨리
    기억하는가
    시월의 짧은 눈짓을
    서리들이 점령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태양의 영토가 아니다
    곤충들은 딱딱한 집을짓고
    흙 가까이
    나는 몸을 굽힌다
    내 영혼은 더욱 가벼워져서
    몸을 거의 누르지도 않게 되리라.
    ☆★☆★☆★☆★☆★☆★☆★☆★☆★☆★☆★☆
    7
    시월 초사흘

    류제희

    누가 던져놓았나, 길 없는
    하늘중천에
    막내고모 눈썹 같은 초승달

    달빛에 야윈
    미루나무 꼭대기에 서너 장
    봉함엽서 떨고있네.

    흰 눈발 서성이면
    덧나던 그리움도, 기우뚱
    헛발 딛는 초저녁

    ☆★☆★☆★☆★☆★☆★☆★☆★☆★☆★☆★☆★
    8
    10월의 시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
    9
    10월

    문인수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
    10
    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11
    시월

    민용태

    하늘에서 걸려오는 전화벨소리
    떼각떼각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소리
    사무실이 바닥보다 창문 높이로 올라서고
    벽에서는 횟가루 대신 구름냄새가 난다.

    먼 구름에서 알밤이 빠지듯
    너는 그렇게 내 품에 떨어진다.
    너의 얼굴을 보면 보석을 머금고 있는 것이
    석류만이 아닌 것을 안다.

    너의 가슴을 보면
    사과나무 가지가 휘어진다.
    서류뭉치들이 연이 되어 나르고
    시계추 끝에선 포도송이가 여린다.

    시월은 하늘과
    하늘의 친척들이 몰려오는 달
    꿈과 기다림이 현금으로 거래되고
    온 도시가 잠깐
    하늘의 식민지가 되는
    ☆★☆★☆★☆★☆★☆★☆★☆★☆★☆★☆★☆★
    12
    10월은

    박현자

    시월은
    내 고향이다
    문을 열면
    황토빛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시는
    어머니

    하늘엔
    국화꽃 같은 구름
    국화향 가득한 바람이 불고

    시월은
    내 그리움이다
    시린 햇살 닮은 모습으로
    먼 곳의 기차를 탄 얼굴
    마음 밭을 서성이다
    생각의 갈피마다 안주하는

    시월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는
    내 고향이다.
    ☆★☆★☆★☆★☆★☆★☆★☆★☆★☆★☆★☆★
    15
    10월의 기도

    박현희

    힘없이 떨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찬란했던 삶의 발자취를 뒤돌아보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맨 처음 하늘이 열리고 생이 시작되어
    유(有)가 생성되기 이전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
    처음 내딛던 첫발 첫걸음을 생각하게 하소서.

    오고 가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만남과 이별
    생성과 소멸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뒤돌아볼 겨를 없이 정신 없이 달려온 고단함에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각오로 힘찬 출발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잎이 떨어지는 아픔의 시간을 겪으면서
    한층 성숙한 나로 거듭나게 하소서.
    ☆★☆★☆★☆★☆★☆★☆★☆★☆★☆★☆★☆★
    14
    10월

    오세영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15
    시월

    오정방

    가을은 쓸쓸하나
    시월은 슬프잖고

    가을은 외로우나
    시월은 고독찮네

    루루루
    풍성한 시월
    노래하며 보낼래
    ☆★☆★☆★☆★☆★☆★☆★☆★☆★☆★☆★☆★
    16
    10월

    이외수

    이제는 마른 잎 한 장조차 보여 드리지 못합니다
    버릴수록 아름다운 이치나 가르쳐 드릴까요
    기러기떼 울음 지우고 떠나간 초겨울
    서쪽 하늘
    날마다 시린 뼈를 엮어서 그물이나 던집니다
    보이시나요
    얼음칼로 베어낸 부처님 눈썹 하나
    ☆★☆★☆★☆★☆★☆★☆★☆★☆★☆★☆★☆★
    17
    10월의 시

    이재호

    왜 그런지 모르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가을비는 싫다

    새파랗게 달빛이라도 쏟아지면
    나는 쓸쓸한 느낌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낙엽이 떨어진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도 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또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잃어버린 것도 없이 허전하기만 한 것은
    군밤이나 은행을 굽는 냄새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얼마나 가난한가
    나는 왜 살부빔이 그리운가

    사랑이란 말은
    왜 나에게 따뜻하지 않은가
    바람이 분다
    춥다
    옷깃을 여민다

    내 둥뒤에는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울음처럼 들린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
    18
    10월 편지 - 대모님께

    이해인

    "눈은 볼수록 만족치 않고
    귀는 들을수록 부족을 느낀다"는
    책 속의 말을 요즘은 더 자주 기억합니다

    진정
    눈과 귀를 깨끗하게 지키며
    절제 있는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시대 탓을 해야 할까요

    집착을 버릴수록 맑아지고
    욕심을 버릴수록 자유로움을 모르지 않으면서
    왜 스스로를 하찮은 것에 옭아매는지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하려고 하는지

    오늘은 숲속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처럼 단순하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저도 그분의 흰 구름이 되도록
    꼭 기도해주십시오, 대모님
    ☆★☆★☆★☆★☆★☆★☆★☆★☆★☆★☆★☆★
    19
    10월의 기도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더욱 넓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게 하시고
    조금 넉넉한 인심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 주소서
    ☆★☆★☆★☆★☆★☆★☆★☆★☆★☆★☆★☆★
    20
    10월의 엽서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주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
    ☆★☆★☆★☆★☆★☆★☆★☆★☆★☆★☆★☆★
    21
    시월 이야기

    이향지

    만삭의 달이
    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
    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

    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
    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
    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
    모로 누운 달에게
    ˝엄마˝
    라고 불러봅니다

    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가야아가야 부르는 소리
    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

    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
    ☆★☆★☆★☆★☆★☆★☆★☆★☆★☆★☆★☆★
    22
    시월

    임보

    모든
    돌아가는 것들의
    눈물을
    감추기 위해

    산은
    너무 고운
    빛깔로
    덫을 내리고

    모든
    남아 있는 것들의
    발성(發聲)을 위해

    나는
    깊고 푸른
    허공에
    화살을 올리다
    ☆★☆★☆★☆★☆★☆★☆★☆★☆★☆★☆★☆★
    23
    10월

    임영준

    혹시
    다 마셔버렸나요
    빈 잔을 앞에 두고
    후회하고 있나요
    옆구리가 시리고
    뼈마디가 아린가요

    차분히 지켜보세요
    저 깊은 하늘소(沼)에서
    붉은 술이 방울져 내릴 겁니다
    다시 잔을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남은 날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
    24
    시월

    임정현

    햇살이 저렇게 눈부신 날엔
    내 방이 누구에게 엿보이나 보다.

    억새풀 채머리 흔드는 지금
    누가 맨발로 오고 있나 보다.

    한 사흘 벌써부터
    산은
    울듯한 얼굴
    도대체 말은 없이
    얼굴만 붉어
    밤은 꿈이 길고
    마음이 산란히 흔들리나 보다.
    ☆★☆★☆★☆★☆★☆★☆★☆★☆★☆★☆★☆★
    25
    그 해 시월

    전병조

    파란 하늘에
    차가운 낮달 떠 있고
    구름이 물살에 밀리는
    수초처럼 나부끼는데

    바람은 없다

    그 해 시월
    먼 산 노루들도
    계절의 예감을 타고
    한번쯤
    고향생각 했을까
    ☆★☆★☆★☆★☆★☆★☆★☆★☆★☆★☆★☆★
    26
    시월서정

    정세훈

    다시, 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나무 가로수야

    나는 며칠 전 추석 명절을 맞이해
    고향마을 선산을 찾아 성묘를 하고
    다시, 이렇게 서울로 돌아왔단다

    홀로 지내던 팔순 노인 상수 할아버지
    지난겨울 문상 길에 낙상하여
    객사한 개울가를 지나서
    장가 못간 지천명의 나이 민구가
    지난봄에 목을 맨 산모퉁이를 지나서
    지난여름 공장에서 돌연사를 한
    마흔 한 살 석민이 고향집 마당을 지나서
    다 익은 벼 포기를 뿌리째 갈아 엎어버린
    논배미를 어기어기 지나서
    ☆★☆★☆★☆★☆★☆★☆★☆★☆★☆★☆★☆★
    27
    시월 비

    정소슬

    우수수
    지는 낙엽은
    나무의 한쪽 밑동에만
    쌓이고

    뚝- 뚝-
    떨구는 빗방울은
    내 한쪽 가슴만
    적시운다
    ☆★☆★☆★☆★☆★☆★☆★☆★☆★☆★☆★☆★
    28
    시월의 다짐

    정연복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가리

    산들바람에 춤추는
    코스모스 따라

    나의 몸도 나의 마음도
    가벼이 춤추리.

    한세상 거닐다 가는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인생은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한 것

    코스모스의 명랑함으로
    즐거이 사랑하며 살아가리.
    ☆★☆★☆★☆★☆★☆★☆★☆★☆★☆★☆★☆★
    29
    10월이 오면

    진의하

    자연은
    비우는 법을 알아
    토실토실 가꾸어온 결실
    미련 없이 훌훌 털어 주네.

    허공에 놀다가는 구름자락처럼
    임자가 따로 없는
    세상살이의 윤회
    출렁거리는 메아리의 의미는
    선회하는 빈잔.

    채우고 마시고
    비우고 채우는 동안
    홍안의 붉은 넋
    때묻은 온갖 시련 미련 없이 털어내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10월은
    비움으로 넉넉한 잔치마당이라네.
    ☆★☆★☆★☆★☆★☆★☆★☆★☆★☆★☆★☆★
    30
    시월이어서 좋다

    최명운

    시월!
    누구는 시월이 쓸쓸하다는데
    난 시월이라서 참 좋다
    들녘 산
    넉넉하고 풍성하게 가득 차지 않은가
    초록빛 이파리
    붉거나 노란색으로 물들어
    저녁놀처럼 불거지면
    거룩하고 성스러워 환희롭다
    밤이슬에 눅눅히 젖으면 어떤가
    바람결에 떨어지면 어떤가
    일 년 절반을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지 않았던가
    시월이어서 좋다
    가을이라서 좋다
    간절히 바랐던 그 무엇
    중단할 수 있으니 가볍지 않은가
    실수가 있었다면
    눈감아 줄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내려놓고 비우고
    빈 그릇 채우듯 기다리면 되지 않던가.
    ☆★☆★☆★☆★☆★☆★☆★☆★☆★☆★☆★☆★
    31
    시월

    피천득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
    32
    10월의 뜰

    홍금자

    칸나, 바이올렛
    꽃들의 어지러운 웃음도
    종막을 내린
    이젠
    불기 없는 빈 방 같은
    응어리진 삶이
    계절의 끝에 서
    밤은 내린다

    덩치 큰 여자의 엉덩이처럼
    시새움마저 사라져간
    빈 뜰의 한 모퉁이에
    허공처럼 남아 있는
    풀잎 바람

    쭈그러진 뱃가죽으로
    헛구역질하는 임산부 마냥
    바람 바람에
    떠밀리는 잎새들

    그 날의 화사한 웃음과 색조는
    가고 없어
    나는 낙엽처럼
    소리 없는 절규로
    가을을 보낸다.
    ☆★☆★☆★☆★☆★☆★☆★☆★☆★☆★☆★☆★
    33
    10월에는

    박재성

    10월
    결실의 달
    햇살 아래 익어가는 결실을 만나러
    벌판으로 나가보렴

    황금벌판 한가운데서
    벼 익어가는 소리를 들어보렴

    농부의 땀으로 일구어 놓은
    벼이삭과
    포근한 가을 햇살과의
    진솔한 가을 이야기

    감사와 응원 속에서
    솟구치는 환희를
    가슴에 새겨보렴

    네가 일구어갈 내일의 소리
    가슴 벅찬 그 환희로
    너의 오감을 간질여 보렴
    ☆★☆★☆★☆★☆★☆★☆★☆★☆★☆★☆★☆★
    34
    10월의 가을 아침

    이세송

    새벽이슬 한 방울 한 잎 모아서
    어둠을 보내기 아쉬워하는 새벽 별과 함께
    10월의 첫날 향기 곱게 옷을 입은
    국화잎을 따서 차를 우려 봅니다.

    그윽하게 허공을 가르며 피어오르는 국화 향기
    별빛은 살포시 미소 머금은 차를 따르고
    나는 고운 향기를 가슴 깊이 담으며
    마음은 찻물로 몸을 적시고
    잔잔하게 흐르는 Ralf Bach 에 건반 위 고운 손길은
    정겨운 담소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찻잔 속에서 10월의 가을 아침이 어우러지고
    창문을 두드리는 노란 옷 갈아입은 단풍잎은
    가을 국화향기에 서서히 물들여 지면서
    기다리던 그리운 님 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
    35
    10월이 떠나갑니다

    이정순

    화려하고
    곱게 물든 가을
    10월이 가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랑과 설렘의 가을을
    가슴에 안은 채
    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10월을 이렇게 보내고
    곱게 물든 잎새에
    10월의 편지를 쓰겠다.

    편집 : 그도세상/김용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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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강은교 시 모음 40편 김용호2006.08.09.644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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