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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남은 활옷 조각
민속학자 석주선 님이 옛 옷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창덕궁 창고 안에서 묵고 있는 활옷을 원형과
꼭 같이 복원했을 때의 일이다.
활옷은 왕비나 공주 옹주가 혼례를 올릴 때에 입던 옷으로
여자들 옷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우리나라에
한 벌밖에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활옷을 만들고 한 달도 채 못 되어서
창덕궁 창고에 불이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집에서 그 소식을 들은 석주선 님은 고무신을 신은 채로
택시를 타고 창덕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돈화문은 굳게 잠겨 있고 창고 쪽에서 연기만
뭉클뭉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돈화문 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창고 속에서 재가 되고 있는 옷가지들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창고 속에 있는 옷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줄도 모르면서
썩였으면 썩였지 민간에 내놓고 전시회 한번 허락하지
않던 일이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불은 꺼졌지만 활옷을 포함한 창고 속의 수많은 옷들이
다 타 버렸다.
그래서 반 년이나 걸려서 만들어 놓은 그의 활옷도 원형이
없어짐으로써 고증을 얻을 길이 막혀 버렸다.
분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그는 옛 옷을 공부하기 위해
매일 집처럼 드나들다시피 하며 알게 된 창덕궁 안 장서각의
책임자로 계시던 황 선생님께 달려갔다.
선생님은 “자네가 그 옷을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다 아는데 걱정하지 말게.
고증은 내가 해 주겠네”라고 하셨지만 역사물의 고증은
말이 아닌 실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어디 갔다 올 때가 있다며 그를 남겨놓고
급히 나가셨다.
한참만에 돌아오신 선생님은 “이거면 충분하겠지” 하시면서
그의 손에 타다 남은 활옷 조각하나를 쥐어 주셨다.
“선생님…” 그녀는 너무 고마워 목이 메여 왔다.
우여곡절이 많은 그의 활옷은 황 선생님이 온 재를 뒤지고
다니며 찾아오신 그 조각 덕분에 고증을 얻었고 하나밖에
없었던 활옷의 원형도 살릴 수 있었다.
출처 : 월간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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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타다 남은 활옷 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