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겐 일체의 글이 균등한
농도를 씌어진다.
정신의 나형을 오성의 거울에 비추어 보는
자의식의 절차는 언제나 한결같다.
한 통의 편지를 쓰고 나면 피로하고도
허탈해져 편지의 어려움을 절절히
탄식하기 이른다.
일기도 그럴 것이리라.
그러므로 일기의 어려움이 시의 어려움만
못하지 않음을 나는 수긍한다.
농업이나 어업 따위는 어떤가.
운동선수와 운동구의 관계는 어떤가.
악사와 악기의 관계는 어떤가.
그리고 연애는 어떤가.
시를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생기고 있다.
뭐냐면 사실은 시인들이 시를 어려워
하지 않고 있다.
시를 위해 고뇌하고 전력투구로 내달리는
일이 적다.
시로 인한 불면에도 인색하다.
시의 正道(정도)에 반역한다.
시의 영혼에 만장을 씌우고 시의 육체만을
주무르기도 한다.
시의 본질을 망각하고 타성에 편승하여
類似詩(유사시)를 빚는다.
글의 잔재주가 손목에 달라붙는 일처럼
치명적인 타락은 없을 것이다.
시를 대인 관계보다 쉬워하고 심지어는
금전 거래보다 쉬워한다.
시에는 책임감이 마비되어 있다.
계약 문서 등에 비해 시를 너무 만만하게
여긴다.
시를 다른 욕망들의 옆방에 넣어 둔다.
더 마음이 끌리는 일에 달려가는 동안
시는 한낱 유실물에 불과하다.
삶의 다른 문에서 무참히 쫓겨났을 때에만
뉘우치는 탕자처럼 시에게로 온다.
그러나 이때에도 바깥 기척에 여전히
예민하다.
이 시대는 시에 소홀하다.
아니 그 먼저 시관념의 출발부터 애매하다.
시를 덮치는 여러 환난 중에서 가장 많이
시를 훼손하는 건 시에 대한 시인들
자신의 모멸이라고 말할 순 없을는지.
시를 너무 안일하게 대하고,
시의 형성 과정에서 미온적 열정에
머무른다.
나 자신, 근간의 태만은 말이 아니다.
시를 안 쓴 동안 반수면 편안감에
파묻혔으며 시와 멀어져 있는 일쯤으로
별다른 불 합리가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러다가 나태의 지방 과다에 내 정신이
눌려 시들기 시작했고,
야릇한 공복감도 기실 시에의 향수에
연유함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의 여러 성질의 관련성 위에 세워져
있으되 그 중의 하나가 시라고 다시금
통렬히 깨닫게 되었다.
오늘 나는 생각한다.
작가는 시대의 초시대의 조준 앞에 정면으로
서야 하며 인간적 도리의 여러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시인의 좌석에
머무를 수 있다고,
시란 순박한 業(업)이다.
아무쪼록 광택을 죽이고 무광의 진실을
굴착 해 나 갈 일이며 이 때 만상에의
지구력이 그 길잡이를 해줄 것이다.
암호 
시의 반성/김남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