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 시인 김용호의 문학과 인생 - 그도세상 ▒ gudosesang.com

자작시 마당

아이디
암호

회원가입 암호분실

2024. 04. 25.

가장 편안하게 시 읽기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05.10.06. 20:09:28

시란?:

(1)

가장 편안하게 시 읽기

출처 : 문학과 창작 글 : 진영대 / 시인

신미균 「집중호우」 (『문학과창작』, 2003년 3월호)
장석남「얼룩에 대하여」 (『문학수첩』, 2003년 봄호)
윤제림 「어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의견」 (『현대문학』, 2003년 3월호)

1.

“빗쟁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 난리가 나기 전에/ 도망가자”
신미균 시인의 「집중호우」라는 시의 전문이다. ‘빗쟁이’는 빚쟁이가 옳을
것이지만 집중호우를 드러내기 위한 시인의 의도된 조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원문을 인용하였다.
신미균 시인의 첫 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천년의 시작)은 대부분의
첫 시집이 그렇듯이 시인의 다양한 관심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수년에서 수십 년에 이르는 습작 혹은 실험을 거친 시인으로서 첫 시집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욕심이 대부분의 첫 시집을 성공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또다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 시인의 고통은 여기에 있다.
시집을 시인의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독자의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갈등 속에서 첫 시집은 아무래도 시인의 쪽에 무게가 기울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신미균 시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첫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이
막내삼촌, 조카, 어머니 등 가족이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첫 시집으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시인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의욕을 가지고 시도한 작품이면서 시인 자신도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맨홀과 토마토케첩」 연작은 흔히 보아온 시가 아니다.
이 시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시인) 핫도그를 먹으며 걸어가다가 맨홀 속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세하게 묘사한 시다.

(2)

형식이나 내용에서 별다르게 보이지 않는 이 시가 낯설고 새롭게 익히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에 있다.
“맨홀 속에 한 사람이 빠졌다/ 그 사람이 나오지 않자/ 보고 있던 한 사람이
들어갔다/ 그 사람이 나오지 않자/ 지나가던 한 사람이 들어갔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그때 나는 토마토케첩을 바른/ 핫도그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하고 말한다.
“그때 나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려고 했는데” 하고 말한다. 맨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맨홀 속을 들여다보고, 구급차가 맨홀 앞에 멈추어 서더니
방독면을 쓴 사람이 맨홀 속으로 들어가고, 들것이 들어가고, 담요와 생수와
랜턴, 장갑도 맨홀 속으로 들어가는 현실 앞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마치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때 나는 팔 쪽으로 계속/ 미끄러져 내리는 토마토케첩의/ 간지러운 촉감을
느끼고 있었”고 토마토케첩이 손등 위에 말라붙어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왔고,
파리가 친구들을 잔뜩 불러왔다.
걸쭉하던 토마토케첩이 마르니까 바삭바삭 부스러져 떨어졌다. 들것 위에 누운
사람의 위로 말라버린 토마토케첩 가루가 날아갔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나는 이 시의 낯설음에 대해서 어떻게 읽어야할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 시인은 방관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읽는 것은 어렵거나
낯선 것이 아니다.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표현기법에서 이 시는 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의 통일이라는 면에서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이런 기법은 연극이나 영화 등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하여 왔지만 사용 도구가 언어에 한정되고 그 형식이 17~8행에
불과한 시에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이미지의 분산으로 이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시도한 시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 그 앞을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시의 틀에서 변형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표현 기법 면에서 파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균 시인은 첫시집을 낸 이후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3)

『문학과 창작』 3월호에 발표된 작품들은 4행에 불과한 짧은 시를 시도하면서
내용에서도 선문답에 가까울 만큼 보폭을 넓게 하고 있다.

하루종일
땅바닥만 보고 걸어다녔는데
녹슨 못 조각 하나 줍지 못했다

고향으로 가야겠다

신미균 「서울」 전문

빗쟁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난리가 나기 전에
도망가자

신미균 「집중호우」 전문

인용한 시들의 마지막 연은(“고향으로 가야겠다” “난리가 나기
전에/ 도망가자”) 오히려 사족에 불과하다. 시로서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내게는 이런 시도가 별로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신미균 시인의 재능을 믿기 때문이다. 자칫 이런 시도는 시인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보인다.
위에서 장황하게 시인의 첫시집에 대하여 간섭을 하였던 것도 사실은 첫 시집에서
보여준 그의 실험은 아직도 유효하고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자신의 길마저 잃기 쉬운 것이 세상살이 아닌가.
마침 같은 유형의 시를 발견하여 소개한다

낙숫물 소리 진종일
홈통을 울려
영락없는 목탁소리다

(4)

잠꼬대같이
雨家에 누워
물로 지은 冥府殿 생각을 한다.

박중식 「如日」 전문, (『현대시학』 3월호)

2.
흔적을 남기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산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아니, 아주 많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는 일이 그렇고, 흔적을 남기려고 넓적 바위에다 몇날며칠 잘 벼린
정으로 쪼아내서 이름 석자 새겨 넣는 일이 그렇다.

못 보던 얼룩이다 //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천수천안의 구름장들 장엄하다 //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장석남 「얼룩에 대하여」 전문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것이 아니던가. 진솔한
사람을 대할 때, 어린아이의 눈빛과 마주칠 때,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에서 떨어질 듯 흔들거릴 때, 장엄한
자연 앞에서 자신을 뒷모습을 바라볼 때 얼룩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얼룩은 지우려고 할수록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였다.
지우는 일은 만드는 일보다 몇 곱 어렵다. 얼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누가 일삼아 가며 얼룩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봄을 맞아 새로
바른 벽지도 한 철 못 지나서 담뱃진으로 절어 있지 않던가. 어디 얼룩뿐이랴
찢기고 구겨진 상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욕심이 상처를 내고 얼룩을
만드는 것이다.

(5)

무엇이든 내걸고 싶어서 벽에 못을 박고 상처를 내는 것이다.
사람만 얼룩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새순을 파릇하게 올려놓았다가 장맛비에
갈기갈기 찢어진 목련잎이 그렇고, 풍 맞아 쓰러진 노인처럼 단풍든 떡갈나무가
그렇고 노화된 참나무껍질이 모두 얼룩이고 상처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이 만든 흔적을 얼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연의
순리라고 받아들인다.
연탄재를 나르는 노인이 얼굴에 묻은 연탄가루를 얼룩이고 말하지 않는다.
삶이라고 정의하여 버린다. 얼룩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말한다.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그 흔적이 얼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이 자연을 닮는 일 뿐이다.
단정지으면 억지가 될까”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서
시인은 얼룩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고 거룩을 느낀다고 말한다.
부디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시인의 장엄한 앞날을 기대한다.

3.

장래에는 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지막 길에 ‘종이로 만든 관(棺)’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시인이 그럴 것이라고 예언을 했으므로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종이로 만든 관’이 가능할 것인지 의심하고 개선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일은
시인의 몫이 아니다.
종이로 만든 관(棺)이 나온다지요.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죽은 친구를 들고
산길을 올라가 봐서 아는데요, 목관은 생각보다 무겁더군요. 값을 물어봐서
아는데요, 보기보다 비싸더군요. 종이로 만들면 가벼워서 좋을 것입니다.
가난한 상주들에게 좋을 것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질(紙質)인데요. 제발, 라면용기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태우면 곱게곱게 하늘로 오르고, 묻으면 고분고분
흙이 되게요. 물에 지면 꽃잎 같고, 바람에 날리면 눈송이 같게요.
적어도 이 “사람의 그릇”만은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게요.

윤제림 「어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의견」 전문

(6)

이 시를 읽다보면 무거운 세상 훌훌 털고 제 온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에도 온갖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돈이 될만한 것은 달이라도, 별이라도 팔아먹겠다는 세상에 시도 상품이니
팔아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팔겠다고 다 팔리고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연극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시를 쓰는 일 또한 그만한 매력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수 백 번도 더 망해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지. 시인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 구멍가게도 차릴 수 있고, 비행기도 만들 수 있고, 그보다 더한 것도
만들 수 있다.
아니 복제인간인들 왜 못 만들까. 영혼을 불러다 앉혀놓고 술 한잔 권해 보아도
좋을 일이다.
시인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상품 중에 돈 될 만한 것이면 물건으로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며, 시인의 말만(상상력) 믿고 한번 가슴에
맞으면 사랑하게 되는 화살을 만들었다가 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에게 배상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에서 아이템을 얻어 돈을 번 사람이 있어도 그 돈은 시인의
몫이 아닌 것과 다르지 않다.
시를 쓰는 매력은 백화점을 차리는 데도 돈이 들지 않고, 그 백화점이 우르르
무너져도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이 세상의 물정에 무어라 시비할 수 있으랴. 그렇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너무 비싸지 않게, “꽃잎 같이” “눈송이 같이” 만들어 달라는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읽혀져 누군가 “종이로 만든 관(棺)”을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정도는 들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최소한 그 정도라도 시인에게 배려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처럼 험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도둑 맞았다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극락이고, 천국이고 바랄 것도 없이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상품이 만들어지고 팔려나가기를 부탁드리는 것이다.
세상은 시인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이 세상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7)

시인은 세상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고, 그 상상력은 시인과 무관하게 상품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결국 시는 상품이다, 라는 말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시인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사십이면 불혹(不惑)이라고 하였던가. 그러나 그것은 공자의 말이다.
성인(聖人)에게나 해당한다.
지천명(知天命)은 아직도 멀다. 우리 같은 무지랭이는 죽어도 지천명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요즘처럼 빠른 변화의 속도에 일일이 개인이 적응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언젠가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서 연예인 둘이서 각자 맡은 오리를 기르는 것을
보았다.
갓 부화한 오리새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출연자들은 갖은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어미를 각인시키는 오리의 실험은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다.
오리에 대한 실험은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발달시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실험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각인기(刻印期)라는 발달시기가 있는데 이때 획득되지 않은 기능은
이후에 획득하기 곤란하고, 교정하기도 어렵다는 내용이다.
세대별로, 개인별로 각인된 내용은 사뭇 다르다.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어머니라고 믿을지 모르고(실제의 어머니는 후에 학습된), 더 아래 아이들은
컴퓨터를 아버지라고 각인되었을지도 모른다.
동시대 시인들의 시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도 그런 내용일 것이다.
아버지가 보내준 문자 메시지를 읽는 것보다 백리 길 버스 타고 자식네 불쑥
쳐들어가는 것이 더 보기 좋은 것은 단순한 향수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개성이고 자기 목소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마다 목소리가 선천적으로 다르다고 믿는 사람이다.
선천적으로 다른 그 목소리 자체가 개성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시대마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기준은 다르지만 시대가 변하면 또 나의 둔탁한
목소리가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8)

변화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원래의 목소리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늘어놓은 푸념이다.
자신이 살아온 대로 단단하게 걸어가는 시인들이 부러워서 투정을
부려본 것이다.

작성 : 여명 문학회 / 김용호

글자 : 6,452자
낱말 : 1,584개
원고분량 : 49.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