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장마 1. 소란속의 고요 그 해, 여름 창틀에 턱 괴고, 바깥 풍경에 취해 있었다. 인적마저 끊긴 거리 세상을 장악한 비. 주룩주룩 내리는 비의 소란스런 모습과 소리 거리는 텅 빈 체 소란속의 고요에 묻혀 있다. 2. 기세등등한 풍경 기세등등하게 하루 종일 퍼붓다 지친 듯 빗줄기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틈을 타 바깥으로 나왔다. 기세등등한 비에 할 킨 자국들이 여기저기 상처자국으로 남았지만 비에 씻긴 거리는 상큼하기까지 하다. 차들이 한강 다리 앞에 뒤엉켜 멈춰있다. 한강을 걸어 건너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선 사람들 한강이 소란하다. 강은 폭군이 되어 세상을 삼 킬 듯 온갖 세상 물건을 모두 빼앗아 싣고 굼실굼실 오히려 성난 듯 붉은 피 머금은 체 긴 열차가 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님을 더 받을 기세다. 3. 현실 앗! 돼지다. 비명에 강물조차 놀란 듯 한 순간 정적이 강을 감싼다. 물위로 고개를 내 민 몇 마리 돼지 승객 강제징용에 끌려가듯 강물 열차에 올랐을 그들 생명을 담보로 한 그들의 여행이 빨리 끝났으면 한다. 마음에 욕심이 일었지만 누구도 선 뜻 나서서 구해 줄 수 없는 처절한 현 실 그냥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욕심쟁이는 모르리. 탄식과 좌절과 허망이 다리 난간 위 현실을 뒤 덮었다. / 몇 날이나 더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름 또한 깊어져만 간다. 나 또한 몇 날을 더 턱을 괸 체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해 여름 장마는 오래도록 세상을 할퀴다 물러났다. 시인 정 상
어느 해 장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