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메일이
오래 전부터 퇴물 취급받고 있다.
대신에
문자메시지나
카톡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그들이 이메일을 기피하는 것은
광고성메일이 많고
답장이 바로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이유는
고민하고 기다리는 것을 꺼려하고,
자기 생각을
길게 쓰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이것은 젊은이들뿐 아니라
현대인의 특성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현대인은
왜 기다리는 일을 죽는 일만큼이나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을까.
기다림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지혜요,
인간과 짐승을 구별시켜주는
기초적 문화 요소임에도
기다리는 일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기다림은 이제
미덕이 아니라 어리석음이
되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효율이라는 이름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순리는 다 깨지고
먼저 선착하려고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에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코웃음
치게 만든다.
어릴 적 읽었던
<모모>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그가 하는 일
때문이었다.
모모는 남의 말을 가만히
들어만 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곤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바로 모모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일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시간과 싸우는 모모의 과업이다.
그는 시간을 도둑질하는
회색당과 맞서 싸우면서 잃었던 시간을
되찾기 위해
시간의 꽃을 찾아가는데
그 방법은
세상법칙과 정 반대였었다.
빨리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왔던 길로 다시 되 돌아가고
천천히 가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상한 원리가
항상 급하게
서두르고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에겐
모모의 이러한 가르침이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언어보다도
줄 서는 일이라고 했다.
빨리 빨리 서두르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우리에겐
기다림이란
실로 감당키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서 이탈리아 사람만큼
느리고
여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서방 선진 7개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찬란한 문화유적과
예술을 창조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저력은
기다림 속에 바르게 일하는 데
있었다.
우리문화는
수 없이 바뀌는 농사주기에
맞추다보니
빨리 빨리를 외칠 수밖에
없다하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일하다 보니
꼼꼼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이
우리 문화가 되어간다는데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돈의 유무를 갖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다림의 여유가
척도가 되고 있었다.
여유는
지식이 아니다.
여유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여유란
기다림의 진리를
아는 자만이
누리는
하늘의
은총임을 알아야만
행복한 생을 살 수 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루 동안에도
밥을 기다리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차를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린다.
군대 간 자식을 기다리고
첫 눈을 기다리고
결혼을 기다리고
그 날을 기다린다.
그 일을 기다린다.
알고 보니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퍼즐을 연결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기다림 속에는
외로움과
설렘이 교차되기에
우리가
그리도 힘들어하지만,
기다림은
오늘을 이기며
내일을 바르게 준비하게 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보편적인
그의 선물임을
알게 되면서 나이가 들어도
두렵지가 않다.
처음엔
기다림이 막연한 줄 알았다.
아니 할 수 없이
기다리는 줄 알았다.
물론 기다림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그 과정이 고통스럽기에
가슴 조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기다림은 삶의 빈 여백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허 속에
꿈을 보게 된 것이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그 빈 공간 안에
세상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값진 보석들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써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토끼를 이긴
거북이 이야기는
이제 고전이 되었지만
이렇게
어려울수록 거북이의
지혜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알아가기에
기다림 속에
내일을 보게 되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40년을
기다릴 때
그의 이름까지 희미할 때
그가 나타나셨다.
알고보니
모세가 약해질 때까지 그가 더
기다리셨다.
그의 때를 알고
그의 음성을 듣을 수 있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그보다 앞서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셨다.
모든 것을 보셨기에
모든 것을 들으셨기에
모든 것을 아셨기에
이제
그를 들어 사용할 때가
되었기에
나타나셔서 신을
벗으라했다.
주여,
많은 것을 소유하므로
편리하고 명령하는
누림보다는
당신의 때와
인생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와 여유가 있게 하소서.
한번 사는 인생,
쉽고
간편하게만 살려고 하지 말고
생각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고
그래서
내일을 천천히 그러나
바르게 준비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2013년 8월 19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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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락작가ꁾ이요셉님, 우기자님, 포남님
^경포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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