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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농부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7.22. 17:00:45   추천: 4
명시: 오탁번

시인과 농부

오탁번

길보다 낮아서
장마 지면 물구덩이가 되는
볼품없는 텃밭에 객토를 했다
장금터에서 전원주택단지 조성하며
산허리를 뚝 잘라낸
왕겨빛 마사토를 대여섯 자 높이로
텃밭에 쏟아 부었다
15톤 덤프 한 차에 3만 원씩
200대에 6백만 원이 들었다
흙을 펴느라고 포클레인도 며칠 썼다
이래저래 돈이 꽤 깨졌다
객토를 하고나니
밭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런데 동네 사람 보기가 좀 민망했다
농사는 쥐뿔도 모르는 놈이
괜한 짓 했다고 흉보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띠동갑 이장이 한 마디 한다
-밭이 아주 똘똘해졌네요!
나하고 동갑내기 우탄치 이형도
객토한 밭을 보더니 한 마디 보탠다
-얼굴이 아주 반반해졌네!
평생 논밭에서 살아가는
농부의 의인화법 말씀이
가슴에 툭 와 닿는
봄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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