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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언덕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7.12.11. 01:28:30   추천: 32
명시: 배은숙

바람의 언덕

배은숙

그 어떤 격렬함도 없이
풍속보다 느린 길을 내어준다
숲과 사람들이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내는 동안
이미 예정된 너의 울음소리 들리는 순간이다
적막한 언덕 치정 같은 너의 춤사위를 본다
푸른 잎들 멈춰 서지 않는 허공 사이로 균형 잃은 꽃들이 훅 베어진다

푸름의 속도를 가름해 보는 숲은
네가 일군 노동의 시간을 알고 있다
때로 거친 들판을 내달리다가
낮과 밤의 경계에서 스스로 소멸을 생각할 터
마침내 모든 소리의 파동을 불러들여
옹얼거리기도 흩어지기도 한다

제 몸의 빛깔과
제 몸의 절망과
제 몸의 구원에 대하여 증명하려 든다
무성한 숲과 물고기와 풀꽃들을 키웠다고
너는 흰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사방이 환해질 무렵 하늘로 번져간 푸른 물방울
움추렸던 것들의 냉가시가 돋는다
숲과 사람들이 슬며시 너를 흔든다
점점 응석받이가 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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