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의 편리와 료칸旅館의 별
변윤제
우리의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보인다.
책 등에서 걸어나온 그 사람이 복도의 끝과 끝만 맴도는 게
한 바퀴 돌 때마다 복도가 조금씩 길어지고
멀리서 보면 그 자의 걸음이 복도의 양끝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발 밑에서 나무 바닥이 늘어나는 소리를 읽어내면
바닥의 옹이가 나이테처럼 커다래지고
벽에 걸린 그림 속 사람들의 몸집이 거대해진다
손을 잡은 그림 속 연인에겐 서로의 손이 작은 배로 변하는 게 보일 것이다.
한 척의 나무배 살결로 만든 그것이
너와 있을 땐 불행의 편이고 싶다.
풍경을 보지 않고 듣는 일이 좋다.
세상에 없는 세상이 이쪽에 놓이고. 우리 귓속을 오래도록 걷는 시간
한때 두 귓속엔 벚나무 길이 놓여 있었고
죽은 꽃이 떨어지던 사월이 있었다. 별을 가루로 갈아 귓불에 칠하면
서로의 두 팔 두 다리가 희미해졌다.
에탄올 가스처럼 세상 어딘 가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눈동자 안쪽엔 복도 끝 커튼이 흔들린다.
너머는 어떻게 됐을까.
백조 모양의 욕조가 놓인 대욕탕 회화나무가 가지를 부딪치는 정원이
모두 거대해지는 걸까.
그때쯤에 나는 이어폰을 빼고 다시 복도를 본다.
아무런 일이 없고
아까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네가 어딘가에서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발소리
한 명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의 발소리
불 끄고 함께 옥탕에 눕자. 어둠이 몸에 달라붙는 게 느껴질 거다.
촉감이
허벅지 밑 출렁이는 바다 곁으로
어둠이 흘러 들어올 것이다.
여름의 미묘한 신전 욕탕은 딱 두 명분의 그늘
욕조 모서리에서 물결은 닳아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걸 듣는 일
욕조 마개를 빼며 생각해 세상 모든 물이 연결되어 있다면
이 물이 강으로, 바다로, 심해로 가 닿는다면
물 속에 코를 박고 죽자.
호흡을 졸여 만든 빛으로 심해 어딘가에서 귀신고래에게 말을 보내자.
고래가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건 말 너머의 말
지느러미의 움직임으로 꼬리 끝에 매달린 바람으로
물살에서나 가능할
우리 함께 욕조에서 허우적거린다면
욕탕은 한 자씩 길어져 어느새 바다가 되어 있겠지.
잎 그림자 닿을 때마다 물결치는 부위
내 살갗엔 불릴수록 떨어져나갈 페이지가 많고
나를 만져
나조차 몰랐던 글자가 거기 있다면
책등에서 걸어나왔던 사람은 욕실 유리문에 등을 기대고
지그시 욕실을 보고 있다.
그때 나는 숨기고 싶은 것의 정면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
해안의 절벽은 바다의 책 등
무너지고 있다.
일월, 내가 뱉은 침에서는 꽃차의 향이 났고
시월, 차라리 이어폰 대신 귀마개를 사서하는 건 어때요?
그건 아무 가능성이 없는 귀마개잖아요.
왜 속단합니까?
귀마개에서 오동나무가 자랄 수도 있습니다.
잎맥 끝에서 관현악단이 걸어나올 수도 있고요.
칠월, 이목구비가 나 자신을 배반했고
팔월,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대신 송충이가 일 센티미터씩 자라났고
구월은, 료칸과 달의 아이
이월, 발목의 주름에서는 가지가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사월과 유월, 그것은 모두 햇볕이 잘 밴 까닭이라고 마침내
십일월, 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십이월, 모든 음악은 생활의 편리를 개선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나
출처 : 계간 《문학동네》 (2022년 가을호)
|
|
암호 
음악의 편리와 료칸旅館의 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