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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겨울
김왕노
겨울은 처참합니다. 씨앗과 뿌리는 스스로 봉인하고 봄꿈에 취했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동면을 떠난 곰의 숨소리는 고릅니다. 우리만 깨끗한 흉곽이
불안으로 들썩이고 확진자가 없는 곳을 찾아 헤매며 휘날리던 눈발, 눈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끝없이 내립니다. 전국은 폭설입니다. 끝없이 시려오는
발끝, 망국의 겨울 같습니다.
남하하는 한랭전선으로 자꾸 얼어터지는 계량기의 누수 소리
차라리 울음입니다. 누구나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화톳불처럼 가슴에
피우고 폭설로 사라진 길을 찾는 제설차의 엔진소리를 모국어로 희망이라
말합니다. 대답 없는 날과 오지 않는 날을 찾아 나서려고 새가 접었던 깃을
퍼덕이듯 꿈을 펴고 끝없이 퍼덕입니다. 고도를 향하듯
작년도 봄과 가을 여름이 실종된 겨울 같았습니다. 영하의 바람이 모질다는
시베리아로 유배 온 듯 알 수 없는 추위에 떨었습니다. 문밖에 한 발 내미는 것이
사지로 나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어떤 노래 가사도
우리에게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불임의 시절, 혼수상태와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허연 침묵 위에 죽은 혓바닥이 검게 떠도는 흑백의 나날 같았습니다.
뒤집어버리고 싶은 세상에서 폐어로 숨거나 한 방울 뜨거운 눈물 속에 잠들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믿고 이 또한 지나가버린 세상 뒤에 설렁 깨어나
마음껏 헤엄치리라는 망상주의자가 하나 둘 늘어납니다. 끝내 마스크를
견디지 못한 아이가 발악을 하며 웁니다. 그러나 모두가 견디고 있습니다.
겨울 바다에 그물을 내리며 주문진에서는 광식이가, 꿈을 배달하듯 끝없이
택배하며 의왕에는 정현이, 대형차로 전국을 누비는 종식이는 건재합니다.
어서 가라, 어서 가버려라. 이 시절아, 자식 같은 비대면의 시간과 봉쇄
거리두기와 불신을 데리고 가라는 낙서를 하는 손이 왜 이리 떨리는지. 왜 모든 게
내 잘못인 듯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지. 밤이 깊을수록 질화로의 불씨가
단단히 익어가고 멀리서 우는 밤 부엉이가 우리의 잠을 지키던 그 겨울은
위리안치의 탱자나무처럼 우리를 둘러싼 이 겨울 추위는 언제 사그라지고 겨울을
이겨낸 날이 언제 우리의 신화가 되는지
나는 날마다 지인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현장점검을 하듯 세상 모서리에서 망국의
겨울 같은 나날을 잘 견디고 있는지. 수입이 사라진 주머니의 비애만 만지작거리다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소심한 생각 때문에, 하나 우리 살아있어야 합니다.
어디 있든지 어떤 상황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쭈그리고 울음을 게워내더라도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고철을 줍듯 망한
꿈이라도 주우며 고장 난 꿈도 고치며 성에 낀 창에 손톱으로 오늘도 무사히를
새기며 바닥난 뒤주를 긁듯 밑바닥이 된 세상을 박박 긁으며 우리 살아있습니다.
언젠가 새빨간 장미가 피고 마음껏 만나 한 잔 하며 장미그늘을 즐기자며
한 때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이 내려진지 오래지만 다시 슬로건을 내걸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문밖만 아니라 세상 밖까지 알리며 우리 살아있습니다.
이 세상이 멍석이라면 바람에 탁탁 털어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다시 깔고 앉아
새끼를 꼬듯 희망을 꼴 수 있지만 멍석이 아닌 세상이 분명한 것을, 우리가
항온동물이라 36.5 도로 높지도 낮지도 않는 체온으로 살아가듯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기대로 밀렵에 나서듯 때로는 꿈을 잡으러 나가고 싶습니다.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철새처럼 밀렵에 나섰다 돌아오는
우리 파란만장의 이 시절, 그러나 사람의 겨울인 한철을 사람이기에 종주하는
뜨거운 발걸음이 있습니다. 급하게 끝을 맺는 문장보다 발효의 시간을 지나 끝을
맺는 문장이 향기롭듯이 조금 더디나 끝내 이 세월을 건넌 후 얼은 발을
탁탁 털어 보는 시간은 오고야 맙니다. 파란만장 위로 끝없이 떠돌다가 끝내 해국 핀
푸른 항구, 따개비로 다닥다닥 붙은 그리움 속에 내릴 정박의 닻입니다.
사람의 겨울,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는 겨울 햇살이 오늘은 따사롭습니다.
출처 : 웹진《시인광장》(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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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겨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