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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이기성
세입자인 사내는 한 박스의 비누를 샀다
한 달 뒤엔 거품의 아이들이 마구 날아다닐 걸,
사내는 큭큭 웃었다
딱딱한 비누로 그릴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을 테지만,
사내의 굳은 이마
달력 위에 두꺼운 타일을 쌓는다
여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두운 욕조
입김으로 흐려진 거울
비누는 점점 자라
결국 울적한 구름처럼
최초의 눈물처럼 흩어질 테지만,
오늘도 복도는 아주 고요하고
단단한 허공의 뺨에 비누를 문지르자
정말 거품의 눈동자, 거품의 비명,
거품의 아이들이 그를 둘러싼다
검은 욕조에 흘러 넘치는 어제의 얼굴들 혹은
사방에서 타오르는 흰 불꽃
흩어지는 사내의 얼굴을 움켜쥐고
춤추는 오, 거품의 맨발들
잿빛 타일을 뚫고 얼룩처럼 흘러내리는 미소
어두운 오후 내내 우리는 복도의
마지막 문을 마구 두들겼다
표정을 잃은 시간 속으로 그는 가득 흩날렸다
늙은 세입자를 사랑했으나,
그의 눈에서 피어나는 거품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차가운 눈꺼풀 비벼대며
푸르고 미끄러운 밤에 우린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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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비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