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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깍두기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11.10. 06:52:18   추천: 2
명시: 이운룡

깍두기

이운룡

통무가 차디찬 칼날을 피해
작은 네모로 몸을 줄이고는
제가 설자리 찾아 허틀비틀 줄을 선다.

한 생애의 주사위처럼
도마 위
풋내 절은 운명이 던져지고 나면
두 말 없이
제 집을 내어주고 제 속살 줄여
몸과 꿈을 키워주던 흙

깍두기가 새콤상큼시큼 익고 나면
누구도 발설하지 못할 비밀이
사랑니를 감돌아
담 넘어 들 건너 파다하게 번져간다.

사랑은 가슴으로 버무려
한참 익혀야 향내가 풀풀 날린다고
알쏭달쏭한 말 대신 깍두기는
살과 뼈 토막 난 제 몸을 남김없이
성스럽게 내어줄 뿐….

출처 : 《한국문학예술》 (201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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