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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노 강가에서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9.27. 01:19:13   추천: 2
명시: 윤선

아르노 강가에서

윤선

애인은 그림 같은 베키오 다리 위에서
물 비늘을 바라보며 나를 강물 위로 던졌어요
붐 비는 사람들 웃음소리가 물컹거리며 내 몸을 감았고
박물관 그림자에 누운 푸른 등의 물고기들이
나에게로 몰려들었어요

애인은 낚싯줄을 잡았다 당겼다 하면서
떠있는 내 머리꼭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나는 강물에 발을 담근 버드나무 잎을 당겨
휘파람을 불며 강을 떠 다녔어요

입을 벌려 아가미를 부풀리고 지느러미를 힘껏 흔들면서
물 속을 헤엄치자 애인은 다리 난간에 몸을 위태롭게 걸치고
안간힘을 다해 낚싯대를 들어 올리려 했어요
나는 미끄덩거리는 강바닥을 더듬어 잠시 발을 딛자
애인은 휘어진 낚싯대를 따라 뛰어들 기세였어요

그때 뚝 하고 낚싯대가 끊어졌고
궁전 꼭대기에서 미술관 지붕을 지나고
광장까지 내려꽂히는 비둘기의 날개를 보았어요

날카로운 미늘이 내 입술을 뜯었고
넵튠 분수 다비드의 완만한 엉덩이 곡선 위로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어요

나는 피가 풀어지는 물길을 따라다니며
아파서 울었고 무서워서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한 나의 목소리
베아트리체의 외로운 웅얼거림이 겹쳐지고 있었어요

애인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나는 물살에 몸을 흔들며 아픈 시간을 애써 견뎌야 했어요
언덕의 고독한 지붕들은
석양의 빛을 받아 붉게 빛났고
창에 비친 오후 햇살은 강물 위로 보석처럼 쏟아져 내렸어요

애인의 울음소리는 왜 강물 위에 닿지 않는 걸까요?

멀리 산타 크로체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에
나는 힘이 빠지고 호흡하는 것이 힘겨워서
스르르 숨을 놓아 버렸어요

가볍게 떠올랐어요
애인의 울음소리는 크게 들려왔고
물풀 수런대는 소리와 애인의 발소리가 분주했어요

강물 위로 애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붉은 피렌체 저녁노을에 데워지고 있을 뿐

출처 : 계간 《시와 반시》 (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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