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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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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위들의 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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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7.10. 14:05:39 추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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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최금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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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들의 귀가
최금진
가위를 흉내내며 새가 난다
하늘을 반쪽으로 가르고 낙태한 해를 꺼낸다
핏줄과 태반이 쏟아진 자리에 장미꽃이 자란다
경계심을 잔뜩 머금은 장미는 어려서부터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녹슨 가위들이 흙 속에 박혀 있다가 알로에처럼 자란다
당근처럼 자란다
사람의 손바닥처럼 생겼다
물 속에서 기어 나온 인류가 진화의 단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증거
지렛대의 원리, 근육 발달의 쾌거
가위는 커다란 부리를 열어 절단의 업적을 칭송한다
가위들이 수술대를 점령하고
미용실을 점령하고
싹둑, 원하는 것을 잘라냄으로써
가위는 인간이 소중히 기르는 동물이 되었다
집에선 가족들이 입으로 가위질을 하며 저녁을 먹는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장미꽃은
싹둑 허리를 끊어내 기꺼이
가위를 기념한다
간판에 걸린 붉은 탯줄들이 거리에 나부낀다
빛들이 까놓은 어린 새끼들이 어둠 속에서
검은 머리카락처럼 길게 풀려 날아간다
한 떼의 가위들이 돌아오고 있다
까옥까옥, 커다란 부리로 시커먼 울음을 잘라내면서
사람의 집마다 한 마리씩 혹은 서너 마리씩
가위들이 둥지를 튼다
가위는 인간 아이들의 손에서 돋아나 가위바위보를 한다
모든 가위들이 가위를 낸다
게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가위를 흉내 내며 새들이 날고, 아이들이 높이뛰기를 하고……
출처 : 월간 《시인동네》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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