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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초
장석주
비가 내렸지. 새로운 별은 발견되지 않았지.
그저 겨울이 왔다가 사라질 무렵
응달 쪽 잔설이 이야기처럼 쌓여 있고
음악은 어느새 그쳐 있었지.
우리는 궁핍과 망치를 내려놓고
랄라라라 노래를 부르며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지.
바람이 나뭇잎을 쥐어뜯어 공중에 흩뿌렸어.
어린 시절은 빨리 지나갔지.
일곱 사람과 이별을 한 뒤 새 사람을 만났지.
처음에 기린과 코끼리를 보았지.
함부로 침 뱉는 아이들처럼 활기가 없었지.
추방된 동물들도 저마다 하나의 현존,
동물의 내부에서 꺼진 불꽃들이 흐느꼈지.
더 이상 랄라라라 노래를 부를 수 없었지.
우리 안의 식물이 느린 강물을 사랑하고
젖은 흙과 황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비가 내렸지. 태풍 온 다음 날 동물원엘 갔지.
여우와 원숭이와 비단뱀과 늙은 사자를 보았지.
우리가 동물원에서 만난 것은
뜻밖의 영혼들, 상한 별들, 정체 모를 침묵이었지.
유년기를 잃어버린 맹수들,
초목과 대양과 악천후를 잃어버린 초식동물들.
헐벗고 가난한 나의 형제들아.
가뭄과 문맹을 견디던 시간은 쪼개졌지.
향기와 열매가 없으니 노래도 없겠지.
먼 항구를 그리워하는 일도 없겠구나.
너희는 노래하지 않고
너희는 열매도 없이 사는구나.
또다시 동물원엘 갔지. 밤새 비가 내렸지.
도랑에 나뭇잎과 죽은 뱀과 물이 넘쳐흘렀지.
우리는 비에 젖은 채 뼈다귀처럼 울었지.
울적한 호랑이와 표범이 비를 바라보았지.
선량한 형제들아, 달아나라, 시멘트와 강철에서
달아나라,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달아나라, 관습과 적과 가난의 영토에서
달아나라, 바다의 너울로, 저 높은 장벽을 넘어
달아나라, 달아나라, 너희의 존엄으로.
저 초원의 순결한 죽음으로!
우울한 계절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빵을 반죽하는 일과 달리기를 멈추었지.
편지와 입맞춤도 기다리지 않고
풀밭에 떨어진 별도 줍지 않았지.
우리는 최악과 최선 사이에서 방황을 했지.
음악과 연애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가끔 도서관과 극장 근처나 서성거렸지.
동물원의 버려진 형제를 잊은 채
우리는 거듭 연애에 실패하고
젖은 신발로 달리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네.
부엌에서 고등어를 굽던 어머니는 늙고
가을은 붉게 깊고, 바람은 방향이 바뀌었지.
우리에겐 솔직한 화법이 필요해!
우리에겐 피를 흘릴 자유가 필요해!
출처 : 계간 《시와 사상》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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