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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밑에서 뿌리가 자란다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7.05. 13:02:13   추천: 2
명시: 전형철

물밑에서 뿌리가 자란다

전형철

머리카락을 뽑는다
마른 잡풀처럼 윗부분에서 끊어진다
뿌리는 힘이 세다
소실점으로 달려가는 궤도를 되짚어가듯
이 이정표도 내가 처음 한 점이었던 곳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모래 거푸집에 부운 쇳물이
뜨겁게 끓어올랐을 때도 있었지만
집을 나온 아이가
오래 한 곳을 골몰했듯
접어둔 마음이 주섬주섬 식어가는 자리들이 있다
하찮은 저녁과 딱딱한 베개 사이
타버리고 재만 날리는
나로부터 자라는 모든 것들이
마른 뼈를 드러낸 날
다시 채워지는 숲
눈을 가리고 물밑으로 가라앉은
수척한 얼굴 대륙이
남아 있겠다

출처 : 격월간 《현대시학》 2020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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