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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서하
아주 끔찍한 날이야. 오늘에서야 형의 웃음을 알았지.
토성의 표면에는 지구 크기의 육각형이 있다는 사실도
그것이 남극이었는지, 북극이었는지 항상 헷갈리는 것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 크기에 관해서 말이야.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곳이 살이고, 어느 곳이 기계인지 모르지만
자라지 않는다고 부모 탓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제 제법 자연스러워졌다고 할 텐가, 형은 나에게
기계이고 형에게 나는 기후 같은 것이다. 답답하거나
으스스하거나, 쓸쓸하거나,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기후에게도 기계처럼 몸통이 있다면, 형은 미안하다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러면 된다고 말하겠지.
기후에게 감정은 불필요하거나 헷갈리는 것일 테니까
지구가 변했다는 것과 기후가 변했다는 것은 다르니까
내가 형을 기계로 대할수록 형이 변해 가는 것처럼
큰일이 아닌 것을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 큰일이라고
형은 헛헛하게 웃으며 말할 것이다.
토성의 어딘가에
육각형 모양의 지구가, 판게아의 그것처럼 하나로써
웃고 있다, 웃음소리가 커서 죄송합니다, 가끔 울고
나는 그런 형의 버릇이 끔찍해 혼자 두고 나온다
문턱에, 별난 모서리에, 비포장도로가 있는 별나라에
가장 보편적인 형은 팔랑거리는 바지를 걷어올리며
반짝이는 다리를 내놓고 있다 나는 박물관이 될 거다
중얼거리고 있다, 그곳에서 형은 하나씩 전시될 것이다
외로움은 가려질 것이다 박물관은 일상과 단절되었으므로
아무 관련도 없는 곳에서 계속해서 변하는 의미가 있고
인간이라는 실루엣이 있고 아무것도 아닌 나는 형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나란히 있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출처 : 이서하 《진짜 같은 마음》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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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않을 수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