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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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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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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4.17. 23:01:42 추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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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문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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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문해
연분홍 꽃잎 한 아름 물고 나타난 봄 햇살에
실바람 깍지끼고 연둣빛 이파리가 미소 짓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혹여 아픈 곳은 없는지요
도망치듯 사라진 세월처럼 의미 없이 머물다 가버린
사랑일지라도
소란스럽고 현기증 나는 사회 속에서
잘 버티고 계시는지 안녕을 묻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다녀간 부고 소식은
우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기에
오늘은 안녕을 묻고 싶은 겁니다
잘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편지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답니다
돈벌이를 할 때나
잠시 백수로 있을 때나
머리와 가슴이 쉴 사이 없이 움직여야
살아남을 때가 있었던 때문인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도 사서 고생을 즐겨 하는 까닭입니다
한 두 끼 정도는 끼니를 걸러도
서럽지 않은 나이 덕에 느지막이 참 평안과 동거하는 복을
누리고 있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산다는 것이
익숙지 않은 탓에
화려한 입술로 호들갑스럽게 다가온 인연들 또한
붙들지 않고 보낼 때도
침묵으로 삭여온 내 젊은 날에
연민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서글픈 일
늘어난 뱃살만큼 외로움의 길이도 늘어나는 거
늙어간다는 것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거
내 안에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인 거 같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대와 함께했던 주막에나 가볼까 합니다
우리들이 흘리고 왔던 배꼽 잡던 이야기와 웃음소리
막걸릿잔을 부닥친 소리
해물파전 속에 숨어있던 마지막 남은 굴 한 조각
서로의 입에 넣어주려 싸우던 기억을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으려나
아니 어쩌면 이 편지를 받고 우리가 앉았던
오른쪽 벽 세 번째 자리에서 그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빨간 우체통이 사라진 이곳에서
잉크가 마르지 않은 편지를 들고 그대의
안녕을 묻습니다
주름진 입술로 자꾸만 그대의 안녕을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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