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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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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라노의 코 위에 내리는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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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3.23. 05:55:39 추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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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이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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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의 코 위에 내리는 눈
이태윤
눈이 오고 있다
눈이라고 부르기 미안해지는 것들이
그가 걸었던 모든 길들을 몰고 와
코 위에 차갑고 단단하게 멈추었다
도대체 이토록 빨간 것 안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말입니다
사랑에 서툰 무례한 놈들이
비좁은 그 안에 미여 터지게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소
목숨을 걸고 결투하고
다시 결투해 봐도
들리는 건 비웃음뿐이라니
눈이 오고 있다
딸꾹질을 하면서도 굳이
말보로 레드를 피우는 그의 머리 위에만
눈은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현대적으로 눈은 다리가 스무 개이고
수학적으로 나와 그녀의 최단거리일지도 모르지만
이 도시의 눈을 모두 합산해도
녹아내리는 마음 하나를 도출할 수가 없소
눈이 잠시 음악에 묻어있는 얼룩은 아닐까
고민을 해본 적 있지만
당신은 이 붉은 것을 뭐라고 생각하시오?
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눈을 무슨 색이라고 하든
눈은 그를 위해 내리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입을 벌린 채 흘리고 있는 악어의 눈물
같았다고 할까
볼륨 좀 줄입시다
귀가 먹먹할 지경이니까
온 세상에 눈이 쌓이면
꼭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요
언젠가 다른 놈이 그녀의 머리를 열고
시든 장미를 보면서 말하겠지
이봐, 글쟁이 시라노 선생 이 눈이 그치면
당신의 문장도 끝나
눈이 오고 있다
미안해질수록 사랑스러워지는 것들이
결코 사랑스럽지 않은 그의 코 위에서 쌓였다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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