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24. 04. 25. |
 |
|
 |
|
|
|
|
|
 봄밤 |
|
|
|
 |
|
|
|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3.20. 04:53:03 추천: 3 |
|
|
|
명시: 정복여 |
|
|
|
|
|
|
|
|
|
|
|
|
|
봄밤
정복여
길이에요
하얀 오얏꽃 융단, 두근두근 집을 나섰지요
꽃잎들 허공을 얼마나 마셨는지
허파가 터지게 웃다가 그만 떨어졌다나요
발이 동동 꽃길이 조금씩 떠올랐어요
입술이 마르는 것도 모르고
아직도 웃고 있는 오얏꽃과
비누방울 놀이를 했었나요
앞서가던 오솔길이
발 그림자를 받아안고 재촉했지요
밤바람도 살랑 뒤를 따라온
길의 막다른 곳에서 만난 숲
아 글쎄 그 키 크고 시커먼 어둠이
오얏 흰 꽃잎의 집이었다나요
나는 슬몃 열고 들어갔지요
새들의 숨이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집안은 이상하게도 환했어요
별이 보내준 오색실이
창문에 걸려 서로 반짝이다
눈부셔 그냥 몽땅 은빛이 되어버렸다나요
왜 내 꽃들이 환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지붕 위의 달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꽃 떨어진 둥지 달콤해지기 시작하고
그 자리에 어둠은 조심조심 젖을 물리고 있었죠
여긴 너무 조용해
날개가 돋으려는 듯 내 겨드랑이에서
자꾸 웃음이 터졌는데 그 기척은 송곳처럼
고요의 말주머니를 터뜨렸어요
말들이 풀밭에 와르르 쏟아졌지요
나는 이상한 둥근 알 모양의 말들을
밤새도록 주워 담았어요
내 커다란 고동색 앞치마가
그렇게 불룩해져 돌아온 후
요즘 내 뜨락은
그때 주워온 풀물 든 말들이 깨어
막 날갯짓을 배우느라 왁자하답니다
그런데 음, 그 숲에서요
사실은 줍다 놓쳐버린 말이 있었는데
오늘 내 뜰에 아직도 말문을 못 여는 한 가지
아무래도 그때 그 일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서두르다 덤불 숲 속에 빠뜨린 숨 찾으러
다시 그 길 가봐야겠어요
이제 너무 늦어 오얏꽃잎들도
길을 지우고 떠난 그믐밤
그 숲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
|
|
|
|
|
|
|
|
|
|
| 전체글 목록 |
2024. 04. 25. 전체글: 40196 방문수: 4877994 |
|
|
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