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렌의 노래
장혜령
1.
부서지는 골목이 있다
영원히 부서지고 있는 나의 골목, 입구에는
이곳이 미로임을 알아볼 수 없도록
오래된 병원이 있고
휠체어 끄는 병든 여인, 볕을 찾아 서성이기도
한낮 그늘 아래 졸기도 하고
골목에 들어서면
깨를 볶고 선지를 끓이고, 어느 집에선가
빨래 삶는 냄새
다정, 애수, 신세계, 은하수…
불 꺼진 간판 아래
흥얼거리며 흰 수건을 널고 있는 절름발이 여인이 있고
아가야, 아가 어디 갔니
쉰 목소리로 여인이 부르면
저기 길모퉁이에서 숨차게 달려오는
계집애 하나
2.
밤이면
집집마다 붉은 등을 켜던 골목
어느 날 철거반원이
붉은 글씨로 O를 새겨 넣던 골목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무서운 소리로부터
나는 도망치고 또 도망쳤지만
웅덩이마다
날벌레가 들끓던 여름, 그 절름발이 여인의 음성은
반드시 나를 찾아왔고
어디서 시궁창 냄새가 났다
3.
밀실의 복도,
불길한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낯선 손에 이끌려 오래된 호텔에 들어설 때
보았다
붉은 카펫과 침침한 조명
사내는 샤워 중이고
선물한 속옷을 입을 여인을 갈망하고
쓰다 버린 수건 위에
웅웅거리며 알을 까는
다른 세기로부터 온 벌레들
4.
부서지는 골목이 있다
영원히 부서지고 있는 나의 골목, 골목 끝에는
이곳이 미로임을 알아볼 수 없도록
희고 높고 빛나는 교회가 있고
그 속에
신을 가두고 찬송하는
사람들의 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인어의 운명을 지닌 여인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비가 내리고
모든 것이 꿈처럼 흐른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전부를 껴안아다오
발이 없는
나의 벌거벗은 여인은 노래한다
|
|
암호 
세이렌의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