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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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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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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2.15. 21:44:31 추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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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이경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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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이경림
머리통이 하얗도록 잤다
식구들이 몽땅 사라지도록 잤다
시뻘건 해가 앞 동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다
이윽고 아침이었다
컴컴하고 구불구불한 어떤 회랑을 따라가니 그랬다
어지러운 생각들이 잡고 가는 컴컴하고 기다란 길이었다
날짜들이 계산 없이 흩어졌다
유리 밖에서 직박구리들이 찌익찌익 웃었다
모르는 노파가 녹슨 무쇠솥을 닦고 있었다
불 꺼진 아궁이에서 뱀 같은 바람이 기어나와 자꾸 치마 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속곳을 들추고 자꾸 뭔가 꺼냈다
끝이 없었다
이윽고 셀 수도 없는 속곳들을 다 들추고 그녀가 불씨 하나를 꺼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머리통이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질 때까지 잤다
생전 처음 보는 식구들이 삭아 없어질 때까지 잤다
일용할 물 한잔을 마셨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무대 한쪽에 놓인 싱크대에서 쌀을 씻었다
가스레인지의 불판은 왜 모두 가운데를 도려낸 X일까?
불길은 왜 X의 가운데서 솟아올라 새파랗게 우거질까?
검은 냄비 속에
별들이 수은색으로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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