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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의 계절
함기석
집을 분양받았다 지느러미 달린 집
비유적 가격 20,000원으로 아가미 달린 집을
거실, 주방, 안방, 서재는 물빛 비늘이 아름다웠다
거실엔 소파와 파도가 노부부처럼 살고
안방엔 설산과 자메이카가 함께 보이는 창이 있고
베란다엔 흰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가끔 새벽 물결에 죽은 향유고래가 떠밀려오고
늙은 폐선 닮은 구름이 찾아와
밤늦도록 울기도 하는,
화장실을 찾다 나는 종종 길을 잃으나
그것 또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지극한 일이라
목련처럼 맘이 아팠을 뿐
지느러미 등줄길 따라가면 능소화 야산이 나오고
상추며 오이며 가지들이 가지가지 웃고 있다
새끼를 밴 어미 고양이 배처럼
둥근 무덤들, 그것 또한
아흔 노모가 죽은 새끼들을 이별하는 아름다운 국경이니
흰 목련처럼 잠이 아팠을 뿐
서재에는 멸종된 고대의 고래 책들이 몇 있고
달이 아내와 나란히 앉아
이영선 선생께서 선물해주신 보이차를 마시곤 하는데
태양의 등 뒤편은 백양나무 숲이고
달의 흉터 난 어깨 너머는 오래전 내가 머물던
이역의 땅이니
나는 왜 집을 분양받은 걸까
집이 없어 집이 그리도 그리웠던 걸까, 미안했던 걸까
거실엔 18쪽 분량의 작은 아이가 새우처럼
한 장 한 장 자고 있다
내 복사기의 꿈, 구름과 지진의 날들이 이어져 있다
식탁엔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아내의 눈물자국이 보이고
나이테에 배인 내 허리가 흘렸던 옅은 핏자국
오래된 연애편지의 마지막 구절처럼 말라버린 꽃잎들
처음의 끝으로 나는 돌아가고 다시
끝의 처음으로 돌아와도
아무리 풀고 풀어도 풀어지지 않는
입주와 퇴거, 암호와 해독, 돌풍과 비바람의 나날들
나는 집을 구름 위에 올려놓았다가 반으로 접어
가방 속에 넣었다가 다시
어항 속에 넣었다가 다시 수족관에 넣었다가
밤마다 잠결에 울리는 집의 울음소리에
다시 먼 바다로 옮기니
집은, 길고 예쁜 지느러미를 흔들며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헤엄쳐간다
나는 또다시 집을 분양받고 싶다
밤마다 사라져도 다시 내 살 곁에 돌아와 잠드는 집
내 거친 잠을 건너 진흙갯벌 꿈속을 성큼성큼 걷고 건너서
나보다 먼저 잠을 깨어 내 눈꺼풀을 여는 집
저것 봐, 우리 집이야! 아내의 아픈 잠꼬대에
나의 귀는 내 두 눈을 끌어다 창턱에 가만히 올려놓는데
어젯밤 비 내리는 숲으로 울며불며 달아났던
집이, 눈동자 까만 집이, 지느러미 날개 달린 집이
아가미 방긋거리며 환하게 돌아오고 있다
비유적 가격 20.000원은 어느 별의 화폐단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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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분양의 계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