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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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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 위의 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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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9.12.01. 16:02:01 추천: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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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이민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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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위의 잠
이민하
산책을 나온 지 천 일이 지났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지난해의 약속에도 도달하지 못했어요
계단을 내려오면 다시 계단이 나타나고
화살표를 따라 계절이 이따금 바뀌고
신발은 오른쪽만 닳았습니다
발이 닳지는 않으니까요
모두가 오른쪽으로 걷고 있습니다
왼쪽의 기억은 선을 벗어났다는 듯이
한 무리의 소년소녀들이 위로 올라가고
나는 기체가 아닙니다
뿌리가 깊은 밤입니다
나는 익을 대로 익었습니다
누군가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요,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러나 낙하산처럼 우산을 펴 든 사람들이 있고
지하 끝에는 강을 건너는 배가 있습니다
한 닢 두 닢 스쳐간 미소를 세다가
바구니처럼 텅 빈 얼굴들이 목을 떨구고
꾸벅꾸벅 환승을 합니다
그러나 계단은 왈츠처럼 흐르고
한 바퀴 돌아 떠내려온 사람들이 다시 호흡을 맞춥니다
다시 인사를 하고 다시 스탭을 익히지만
어떤 날은 시체를 안고 춤을 추고
어떤 날은 시체가 되어 춤을 추고
걸음을 우뚝 멈추고 서서
천국의 암표를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있고
하루치 신도들을 모으는 전단지처럼
나는 구겨질 대로 구겨졌습니다
누군가의 영혼에 기어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요, 뻗기 일보 직전입니다
떨어지는 나를 잡을 수 없어요
다시 싹트는 나를 멈출 수 없듯이
계단을 숲이라 부른다 해도
계단을 우주라 부른다 해도
계단은 철봉이 아닙니다
눈물은 매달려 있지 않아요
그래요. 우리는 켄트의 꽃입니다
떨어지면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갔어요
계단밖에는 아무도 없어요
계단 밖에는 아무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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