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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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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의 신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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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10.21. 15:05:28 추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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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백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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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신명
백무산
문지방에 놓인 징을 힘겹게 들어올린다
다른 노인이 마당에서 푸르고 붉은 복색띠를
구부러진 허리에 두르고 있다
대문 계단에 앉은 또 한 노인이 장구의 부전을 죄고
궁채를 든 손아귀에 힘을 주어 본다
징을 들고 대문 앞으로 나섰으나
자꾸만 무릎 아래로 처진다
두둥, 여의치가 않다 북채를 놓고
손바닥에 침을 뱉는다
개들만 멀뚱거리다 귀찮아 고개를 처박는다
상쇠는 대문 밖 저만큼 거리에 서서
말없이 손짓도 없이 기다린다
열두발상모도 털상모도 없다
갱개, 첫박을 틔워보지만 북은 끈을 놓치고
장구는 채를 떨구고 징채는 징에 닿지도 않는다
상쇠는 다시 저만큼 더 걸어가서는
힘을 다해 가락을 더듬는다
길굿가락이 배를 맞추니 헛가락으로 돌던 장단이
천천히 짝을 짓고 열을 짓는다
정월이라 대보름이라고
이제 또 일어나야 할 때
늘어진 육신에 신명을 붙일 때라고
가락은 점점 가쁜 호흡을 붙이고
땅의 신명을 불러와야 한다고
뿌린 씨는 땅의 신명을 거두어
사람의 가슴에 생명을 키워준다고
빈 마을 고샅길 버려진 흉가를 지나
당산목 가까이 이르러 노인들 허리는 곧추서고
사지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땅의 신명을 버리고는 살 수 없는 거라고
못둑에 쌓인 잔설을 밟고
바람에 울긋불긋 복색띠 날리며
들을 가로질러 사람 없는 마을을 지나
힘찬 노인들 가쁜 호흡을 붙인다
들이 천천히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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