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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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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빛 속에서 / 글 : 오정희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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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고현자 날짜: 2004.04.15. 01:54:05 추천: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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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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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속에서
오정희 / 소설가
산하에 봄빛이 가득하다.
밝고 화사한 햇살아래 폭죽처럼 현란하게 꽃들이 피어난다.
어디선가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귓전에서 찰랑대는 듯하고
새소리 한층 드높고 날갯짓 또한 분주하다.
베란다 창문을 활 짝 열고 밖을 내다보는 내 등뒤로
어머니가 다가와 나란히 서신다.
거동이 불편하여 대체로 집안에만 계시는, 구십을 바라보는
노모는 이즈음 부쩍 더 봄빛 가득한 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시며 이 봄이 가기 전 에 그만 돌아가고 싶다고,
오래 살고 있음을 민망해하며 쓸모 없는 노년의 나날들을
탄식하시고 나는 그때마다 누구에게나 잉여의
삶이란 없는 것이라고, 생명이란 그것이 다할 때까지
효용성으로서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변하곤 한다.
또한 어떤 상황, 어떤 입장에서도 자기 생의 주역이지
결코 엑스트라일 수는 없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지난겨울의 끝머리에 어머니는 조그맣게 줄어든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짐 가방 하나와 함께 내 집에 오셨다.
크지 않은 짐 가방에는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앨범 한 권, 성경책 그리고 몇 벌 안 되는
옷가지들이 들어있었다.
여생을 보내러 오신 것이니 그것들은 이제 어머니가 지닌 것의
전부일 것이다.
그 간소한 소유물들을 보며 나는 어느 정도 무상감과 함께
인간 삶의 본연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 을 맛보았다.
한때 어머니의 전세계였던 가정, 어머니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던 자식들과 그 많던 살림살이,
관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문득 익숙하여 습관적으로 영위되어지던 사람살이가
낯설어지며 목숨 가진 것들의 숙명이 가슴 서늘한
깨달음으로 닿아왔던 것이다.
모든 정들이고 길들여진 것과의 작별은 이렇게 오는 것일 게다.
늙어가면서 점점 몸이 줄어든다는 것은 더 이상
긴치 않거나 불필요한 것들이 걸러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종내 정신도 육신도 식물성의 섬유질만을 남기고
태어날 때처럼 혼자가 되어 마침내 한줌의 재로 혹은
반평의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
육신은 사라지고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다가
마침내 묵 은 사진의 빛이 바래듯 희미해지고 소멸한다.
그때야 비로소 창조의 완성에 이르는 것이리라.
그러나 지상에서 사라진 존재는 맺고 있던 관계
그가 헌신했던 것들에 스미어 다른 질료와 형상으로 피어난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이라는 같은 현상을 두고 영원성이나 부활,
소멸이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는가 보다.
인생의 끝머리에서, 더욱 찬란하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봄을
한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어느 결에 실존이 아닌
추억의 눈으로, 그리움으로 바라보며 나 또한 마음이
수수롭게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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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0. 전체글: 123 방문수: 72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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