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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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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스님과 연화언니의 부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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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1.27. 21:11:30 추천: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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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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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과 연화언니의 부재
박미향
겨울비가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나의 상념들은 예기치 않은 만남으로
인해 술렁이고 있었다.
내가 산사로 온지 거의 한 달이 되어 갈 무렵, 난 완전히 그곳 어색하지
않은 식구가 되어 버렸다.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점심 공양 때 연화언니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보살! 오늘 큰스님과 이곳에서 떨어진 암자에 제를 지내는데
도와드리러 가게 됐어. 저녁 공양과 내일 아침 공양을 보살이 해야 겠어.
선생님과 저 보살 님의 공양을 부탁해도 되겠어?"
그렇게 우리들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모자라는 솜씨로 저녁을 준비했다.
산사의 음식이라고는 채식이니까 별다른 맛도, 특별한 조리법도 없었다.
내가 지은 밥을, 국을, 반찬을 준비하는 그 설렘은 꼭 아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더 행복하게 했다.
그의 과찬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이렇게 정갈한 식탁은 처음인데."
기도하시는 보살 님은 우리의 썸씽을 아시기나 한 듯이 일찍 주방을
나가셨고 불빛아래 우리 둘만 남았다.
그가 어색함을 털어 버리기나 하듯이 "곡차 한번 마셔 보지 않겠어?"
"절에도 술이 있나요?"
"매실주가 있는 곳을 아니까 기다려 봐요."
술 담배를 가리지도 않는 그가 시한부 삶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주전자에 제법 많은 술을 따라 왔고 법당에서 나온 과일을 안주했다.
"술은 마시지는 못 하지만 술 주정이 심하면 부끄러울 것 같은데요.
또 산사의 금기를 깨뜨려 쫓겨나면 갈곳도 없는데."
"시아! 당신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으니 걱정 마."
우린 이렇게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한잔, 두 잔 향에 취하고 그에 취하고 내 주량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의식되었다.
드디어 위험수위에 도달해 그의 품에 쓰러져 울어 버렸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서른 다섯의 비망록을 쏟아 부어 버렸다.
"선생님! 제겐 두 분의 연로하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대단한 집안도 아니면서 가계계승 이라는 명분 하에 저를 낳으신
엄마를 모셔 오셔서 저가 이 험난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겁니다.
사춘기의 열병을 앓을 때 이런 출생이 싫어서 부모님들께 반항을 했죠.
아버지께는 정말 사랑 그 자체인 막내였고 한 분의 어머니가 절 자애로
키우셨음 저를 낳으신 엄마는 온 몸으로 이 막내를 키우셨습니다.
가난했지만 선택받은 부모님들의 사랑이었죠.
그러다가 스물에 정말 사랑했던 남자를 만났습니다.
과묵하고 표현에 인색한 그는 우수의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었고
우린 침묵도 서로를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십대 초반의 그 나이는 자주 만나서 확인도 하고 해야 그게 사랑
인줄 알았지만 우린 가난했습니다.
그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짧은 만남, 긴 이별이 우리들 사랑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의 오해로 인해 정말 남이 되어 버렸구요.
그 주체키 어려운 고독과 그리움 때문에 이 불행한 결혼이라는 굴레에
씌워졌습니다. 너무나 쉽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버렸죠.
사기 극에 가까운 결혼의 후회보다는 그 파괴적인 인간성에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색잡기의 대명사 앞에 물리적인 힘이 없는 관계로 ,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우니까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게 이 무지한 여자의 삶이었습니다."
다 쏟아 붓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무마하기 위해서 눈을 감아 버렸다.
"시아! 괜찮아요. 그게 시아의 잘못도 아닌데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젊은 나이에 그렇게 많은 풍상을 겪었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분명 지난날을 보상받을 만큼 좋은 날이 올 거요.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 그거 알아? 시아가 내 파랑새 같다는 걸!.''
우린 웃었다.
"선생님! 파랑새 고맙습니다. 저 같은 여자가 파랑새라뇨?
다부질 없는 것 아니예요? 어쨌던 운명은 우리의 반대편에서
조롱 할거고 전 또 악마의 소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죽어도 싫지만 여자가 아닌 엄마이기에 말입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든지 또 무서우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시아! 내 인생 끝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는 가슴 벅참을
표현하기에도 너무 아까워. 죄의식 같은 건 가질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시아와 나 뿐 이니까 아쉬워도 맙시다.
같이 할 수 없다는 미래에 대해서도. 당신을 내 가슴에 안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따름이오."
술이 취해서 몸은 흐느적거렸지만 그 순간의 행복은 비수를 꽂는
아픔이었다.
아픔뿐인 그와의 만남을 계속 할 수 없었고 해결되지 않은 남편과의
일 때문에 난 하산을 했다.
또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큰스님과 연화언니의 고마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마치 딴 세상에서 살다온, 아주 행복한 꿈을 꾼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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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5. 전체글: 123 방문수: 72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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