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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2021. 10. 23.
 장수사진長壽寫眞/수필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1.07.23. 19:18:31   추천: 1   글쓴이IP: 211.38.243.50
진안문학: 송영수

장수사진長壽寫眞

송영수

방에 있는 스피커가 삐~ 울리더니
마을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일 모래 부귀농협에서 장수사진을 찍어 준다하니 필요하신 분들은
모두 가서 찍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짐작은 하면서도 이장님께 전화를 걸어 장수사진이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지금 찍어 놓으면 장수하는 사진이란다.
사진 찍어 놓고 너무 오래 살면 어떻게 하느냐는 나의 농담에
오래 살아야죠 꼭 찍어두세요 라고 권고한다.
이 방송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이 사진 찍어두면 오래 산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일 테고, 조금이라도
젊어서 찍어 두는 게 보기에 괜찮지 않을까?
임종 후 자식들에게 작은 짐 하나라도 줄여주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 천지인데 사진 없어 장례 못 치르진 않을 테고 에이 뭐
궁상맞게 사진을 찍어 두노 갖가지 떠오르는 망상에
“찍자”반“찍지 말자”반으로 쉽게 결정을 못하고 저녁 식사시간에
남편에게 운을 떼었다.
“ 장수사진 무료로 찍어 준다던데 당신 찍을 거야?”
“ 누가 찍어 준다는데?”
“부귀 농협서 무료로 찍어 준대. 당신 찍을 거야?”
“찍어두지 뭐. 농협서 좋은 일 하는구먼.”
“당신 장수 사진이 뭔지 알아? 영정사진이야.”
“알아.”
남편은 별 감정 없는 듯 무심히 말하지만 내 감정은 상당히 착잡하다
내 생이 70년을 넘게 살다보니 그 동안 여러 관문을 통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굵직한 것만 곱아 보아도 어머니와 분리되어 세상에 첫발을 디딘 일이
가장 큰 일이겠으나 그 일은 기억치 못하고 제일 뚜렷한 것은 학교 입학이다.
학교 입학의 문을 들어서면 엄청난 세상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당연히 가야하는 길로 여겨 초등학교 6년을 한결같이 걸었으며
그 후 또 중학교, 고등학교 의 과정을 당연히 가야하는 길로 여기며
충성을 다해 걸었고, 대학의 문을 들어설 때는 이 세상 최고의 영광이
나를 휘감아 줄 것을 기대하는 감격과 감동으로 숨 가쁘게 정상을 향하여
내딛다 보니 결혼이라는 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문에 들어서니 이제까지의 여정과
그 성질이 좀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생이라는 진미를 만끽하는 무대였던 것 같다.
씨를 맺고 씨의 튼실한 결실을 위하여 진액을 쏟아붓는 숙명을
완수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지고 이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힘은 다 빠지고 몰골이 초췌한 채로 다음 문을 기다리게 되었다.
다음 문은 죽음이라는 문인데 사람들은 黃泉대학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제까지 여러 문을 지나왔지만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갖가지 준비를 해야 했고 이력서나 증명서 등을 제출했다.
특히 시험이라는 것을 거쳤다.
매 관문마다 운 좋게도 낙방하지 않고 잘 통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黃泉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력서를 어떻게 준비하며 무슨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걸까?
혹 낙방은 하지 않을까?
매번 입시요강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준비했었는데 이제 죽음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요강이 있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그 첫째가 영정사진인 듯싶다.
영정사진 없이도 통과는 될 것이라 생각은 되는데, 그 어떤 사람도
영정사진 만큼은 준비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것만이라도 준비하고 싶어하며 어떤 이들은 입고
갈 옷도 준비한다.
일차적으로 영정사진을 준비할 기회가 내게도 왔다.
준비 없이 나중에 허둥대느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우리 부부는 영정사진을 찍으러 예정된 장소에 갔다.
제법 치밀한 준비기 되어있었다.
미용사도 2명이나 와서 머리를 곱게 만져주고 한복도 몇 벌 남자
신사복도 몇 벌 구비해 놓았다.
다 들 친절하게 대해 준다. 마치 이별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친절을 베푸는 듯하다.
내 얼굴은 사진에서 한 번도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만은 예쁘게 찍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미소를
머금은 인자한 얼굴을 상상하며 표정을 좀 만들었다.
옷은 요즘 입고 다니는 핑크빛 상의와 검은 치마를 입었고
칠순 생일 때 시누이가 선물한 금목걸이도 걸었다.
며칠 후 남편이 사진을 찾아다가 화장대 앞에 세워 두었다.
남편은 웃는 얼굴로 곱상하게 찍혔다.
그런데 내 사진은 맘에 안 들었다.
옷과 금목걸이는 잘 찍혔지만 입을 앙다물고 있어서 어색했다.
한마디로 남편은 실물보다 좋게 찍혔고 나는 실물보다
안 좋게 찍혔다는 판단이 나왔다.
사흘간 장례식장에 놓여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야 할 사진이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아주 긴요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태어나서 이 문에 서기까지 살았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 생의 이력서인가? 아마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읽을 것이다.
내 생의 이력이 이 사진 한 장으로 증명이 되어 무사히 통과되는 걸까?
혹시 病歷증명서를 제출하라 할 것 같다.
그 병력의 과중이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데 기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병력 증명서를 준비할 일이 참 난감하다 다만 短期병력을
제출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다
그런데 그 문턱을 넘은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隨時에도 많이
통과되고 定時에도 많이 통과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서울대학교 입학상황이 수시합격이 70%라는 보도가 있는데
우리 죽음의 문에도 수시 통과자가 느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도 수시보다 정시에 통과되기를 소망해 본다.
아무튼 우리는 2박 3일 여행을 가더라도 준비를 많이 하고
큰 가방을 준비한다.
그런데 영영 돌아오지 않을 긴 여행길을 떠나려는데 준비 없이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항간에서 유언장 등을 준비하라 하고, 모든 걸
내려놓으라고 하는 등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원요강이
확실히 나와 있지 않으니 준비하기 참 어렵다.
난 막연히 앞으로 10년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준비할 시간이 10년이 주어질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짧아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바빠진다. 내 앞에 그 문이 열리는 시간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니 좀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일단 영정사진은 준비했으니 한 가지는 준비한 셈인가?
이젠 무얼 어찌해야 하나! 아직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대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과
좀 서둘러야 한다는 것, 거기에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이것까지 만은 알겠다.
차차 준비요강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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