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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남정아 너만은 기억하거라/수필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1.07.23. 19:18:22   추천: 1   글쓴이IP: 211.38.243.50
진안문학: 윤재석

학남정아 너만은 기억하거라

윤재석

학남정(鶴南亭)이 잊히지 않는다.
정자가 무수히 많지만, 나에게는 남다르다.
어른들의 유지가 귓전에 맴돈다.
“사람은 언제나 한 번은 가는 것이다.
오래도록 학남정 유계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 말을 따르지 못하고 지키지 못했다.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학남정아 너만은 오래 기억하거라.
학남정은 1927년도에 건립된 정자다.
현판은 반송마을에 거주한 박연창씨가 썼다.
행서로 썼으며 자획이 해정하다.
서여기인이란 말이 있다.
박연창씨는 깔끔한 외모에 용모가 매우 단정한 분이다.
아버지와 친구분으로 백운면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남정을 주제로 지은 많은 편액이 걸려있다.
정자는 사방 한 칸으로 지어졌다.
지붕은 기와로 덮여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로 높이 되어있다.
백운에서 장수로 넘어가는 도로가 학남정 옆을 지나고, 정자 앞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학남정 옆에는 구남각이 있다.
구남각은 고려 말 충신 만육 최양 선생의 기록을 적은 비각이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었다.
정몽주의 생질이며 그에게서 글을 배웠다.
벼슬은 보문각 대제학을 지냈다.
포은이 피살되고 고려가 망하자 백운면 팔공산자락
바위굴에서 숨어 지냈다.
나중에 태종이 벼슬을 여러 번 권해도 충신은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끝내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구남각은 담장으로 둘려있다. 비문은 순창 출신 노사 기정진이 지었다.
만육의 본관은 전주 최씨로 문중의 대표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옆에 개안정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개안정은 1896년에 건립되었다.
경관이 좋아 마을 사람들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한 정자다.
누대와 달리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다.
대들보 등이 자연목 그대로 사용됨이 특이하다.
개안정(開眼亭)이란 “섬진강 물에 눈이 열린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안정은 눈을 열고 세상을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의 욕심보다 공익을 위한 삶을 권하는 옛 선현들의
마음가짐을 말해 주고 있다.
이 교훈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 없는 진리로 알고 있다.
학남정과 어울려 형제처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가 쟁반 같다 해서 반송리라 불렀다 한다.
이 마을에는 한때 반송초등학교가 있었다.
인구의 감소로 인해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학남정을 찾아가면 비스듬히 누운 모양의 소나무를
돌기둥으로 받쳐 준 모습이었다.
학남정과 어울려 보기가 좋았다.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어느 하루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하더니 벼락으로 소나무가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반송의 대를 잇기 위해 심어 놓은 소나무가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다.
얼른 자라서 반송을 이루어 학남정과 어울린 모습이 되었으면 한다.
학남정은 경치가 아름답다.
앞으로 팔공산 데미샘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물결이 맴도는 자리는 깊은 물이 맑은 연못을 이루고 있다.
시냇물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볼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족대와 낚시로 고기 잡는 모습이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지금은 볼 수 없어서 아쉽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란 생각도 든다.
주위에는 오래된 정자나무가 우거져 있다.
여름이면 휴식을 즐기러 찾아온 사람에게 시냇물과 어울려
시원함을 주고 있다.
가을이면 낙엽은 물 위에서 유유히 흘러간다.
잔잔한 물결 따라 잘도 간다. 멈추지 않고 하염없이 간다.
낙엽이 물결 따라가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학남정 유계(鶴南亭遊契)가 있었다. 경치 좋은 학남정에서 하루를 보내며
정을 나누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계는 단기 4293년 경자 6월에 만들어졌다. 계원은 48명이다.
백운면, 마령면, 성수면, 진안읍 등에서 모인 분들이다.
나의 아버지가 이 계의 계원이었기에 이 계의 계칙을 보관하고 있다.
계칙은 23조 부칙 1조로 되어있다.
계장은 가장 연장자인 최학현(崔學鉉)이시다.
간사에 아버지[尹義燮]가 실려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인연이 서린 학남정이다.
계원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친구 분들이라서 거의 아는 분들이다.
때로는 우리 집에 찾아오시기도 하는 분들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분들이다.
학남정의 경치가 수려해서 시심이 떠오르면 시 한 편 쓰고,
술 한 잔 권하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갖고자 한 어른들의 뜻을
이제야 조금 알려니 싶다.
멀리 기억 속에서나 아련히 그려보는 분들이 되고 말았다.
계칙 18조에 계원이 불행이 사망 시는 자손이 승계하게 되어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기에 19살로 승계하여 이 모임에 참석했다.
학남정 마루에 엎드려 인사와 함께 나의 소개를 올렸다.
그분들의 부탁 말씀이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하다.
이 글을 쓰려니 그때의 일이 되살아난다.
“사람은 언제 가도 한 번 가게 되어 있어서 우리도 가게 되어 있다.
자네와 같이 승계하는 사람끼리 모여 우리의 우정을 나누듯
이어 가기를 바란다.”는 말이 하염없이 생각난다.
어른들의 기대에 따르지 못한 것이 참으로 송구스럽다.
가슴에 고동으로 남아 있다.
세상이 변했다. 사람의 주거 환경이 바뀌고 사고의 방식도 바뀌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많이도 변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지금은 하루면 변하는 듯하다.
농촌에서 도시로 생활 근거지를 옮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만나는 기회가 적어지게 되니 자연 관계도 멀어졌다.
학남정유계의 승계 회원들도 세상 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때 유지를 주시던 분들은 한 분도 계시지 않는다.
승계한 계원도 70대 후반이다.
승계한 계원을 만나면 호형호제하며 지냈는데 나이가 들어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많다.
어른들의 숭고한 뜻을 따르지 못함에 죄송한 마음이다.
어른들은 가시고 정자만 남았다.
바람에 두루마기 펄럭이고 갓끈이 나부끼던 그분들을 예전에는
한 해 한 번은 만났는데 이제는 만날 수 없다.
만날 때 인사드리면 당신의 자식인 양 두 손을 꼭 잡고 살아가는
근황을 자상히 물어보시던 일들이 생생하다.
농담을 건네시며 같은 회원이니 막걸리 한잔하라며 권하면
공손히 받아 들었다.
다시 술을 권해 드리면 즐거이 웃으시던 모습이 영상으로 돌아온다.
고희가 넘었으니 언제인가는 이 영상도 끊기려니 싶다.
주거니 받던 그분들은 안 계신다.
학남정아 너만은 모든 사연 기억하고 간직하였다가
뒷사람에게 말해 주거라.
세태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어도 섬진강물은 학남정 난간 밖에서
유유히 흐르기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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