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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거지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11.07. 06:22:31   추천: 1   글쓴이IP: 175.202.95.184
진안문학: 신팔복

설거지

신팔복

아내가 손목이 아파 물건을 놓칠 때가 많아졌다.
떨어지는 물건에 다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꽃다운 시절에 나와 인연이 되어 가정을 이룬 지 46년이나 되었다.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며 집안 살림을 하느라 고생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밖으로만 돌았지 집안 살림은 남의 일 보듯 했다.
요즘 손목뼈가 닳아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병이 악화하지 않게 일하지 말고 손을 쓰지 말라고 했단다.
살림을 하는데 어찌 놀 수만 있을까?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아 권했는데 파스만 붙이고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싱크대로 갔다.
몇 개 안 되는 그릇이었다.
수세미를 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가 코치를 해주었다.
수세미에 세제를 몇 방울 떨어뜨려 기름 접시를 닦아야 한다고 알려줬다.
주방대학을 다녔는지 역시 주방의 고수였다.
누렇던 기름방울이 깨끗이 씻겨나갔다.
지저분하던 접시가 뽀얀 얼굴을 드러내니 예뻤다.
수세미가 청소부였다. 닦는 대로 빛이 났다.

다음부터 차츰 요령이 생겼다.
대나무 젓가락을 먼저 씻어내고 다음엔 수저 끝을 돌려가며 닦아
수저통에 꽂았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물방울이 흘러내려 아래 칸에 있는 그릇이 젖었다.
마른 행주로 닦고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닦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지나면 마를 테니까.
일을 마쳤어도 분명 초보자의 어설픈 설거지였다.

한번은 아내가 찌개를 만들다가 깜빡 잊어 냄비가 탔다.
걱정하는 아내를 도와 강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없앴다.
힘이 들고 손목도 아팠다.
단순하게 보였는데 허리까지 아팠다.
여자들의 집안 살림은 쉬운 줄만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는 일도 많다.
설거지뿐만이 아니었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물건 정리하는 등 잡다한 일들이 나를
집안에 묶어 놓았다.
그래서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생겼는가 싶었다.

지금은 주방에서 전기밥솥에 밥 짓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니 힘이 덜 든다.
부엌이 따로 있는 단독주택에 살 때는 장작불에 밥을 짓고
군불도 지폈다.
밥상을 차려 안방까지 날라야 해서 힘도 들고 일도 많았다.
아내도 신혼 시절에 그렇게 살았다.
그때는 또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부정탄다는 말로 금기시 했다.
시집온 며느리가 부엌일을 모두 맡았다.

요즘 가정 살림은 버는 돈보다 씀씀이가 커져서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다.
아침이면 출근하기 바빠 여자는 화장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설거지하는 집이 느는 것 같다.
내 아들네도 그런 모양이다.
가족이 서로 돕는 게 집안 살림이다.
하물며 퇴직하고 매일 백수 생활인 내가 설거지를 못할 게 뭐 있겠는가?
늦었지만 작은 일이라도 아내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철이 든 것 같다.

설거지하면서 그릇이 깨끗해질 때마다 내 마음도 맑아진다.
아내의 아픔을 덜어주고 그동안 살림을 잘해준
고마움에 대한 보답의 길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반려자를 위해 협조하는 일이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볼 때 결국엔 나를 위한 일이다.
아내가 건강해야 내가 행복할 테니까.
남은 시간이라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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