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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창부수(夫唱婦隨)의 행복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10.08. 12:26:28   추천: 0   글쓴이IP: 175.202.95.184
진안문학: 신팔복

부창부수(夫唱婦隨)의 행복

신팔복

농사는 철이 있다.
매미소리가 작아지고 고추잠자리가 공중으로 날기 시작하면
입추 무렵이니 가을무를 심을 때다.
간식과 물을 챙겨 아내와 함께 밭으로 갔다.
쇠스랑으로 메마른 밭을 팠다. 단단한 흙과 풀 포기가 뒤집혔다.
더운 날씨라 금방 땀이 흘렀다.
풀을 골라내며 일을 돕던 아내가 수건을 가져와
얼굴을 닦아주고 물을 건넸다.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니 갈증이 사라지고 기운이 솟았다.

땅파기는 참 힘든 일이다. 몇 번을 찍어대고 허리를 폈다.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은 맘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은 무척 흘렀다.
시원할 때 끝내려고 일찍 서둘렀는데 아직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해는 중천에 와 있다.
그늘에서 쉬고 싶었지만, 풀을 뽑고 흙을 골라주는
아내를 보며 또다시 용기를 냈다.

농사를 모르고 살았던 아내인데 땀을 흘리며 일을 도와주니 무척 고맙다.
나와 인연을 맺어 살면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운동을 잘해서 학급체육부장을 맡아 배구, 농구, 탁구 등 학급선수로
활약했다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쩌다가 씨름에 나갔고 단체경기인 줄다리기는 참가했었다.
그러나 내가 등산을 좋아해서 함께 가자고 하면 서슴없이 따라주었다.
한라산과 지리산 천왕봉, 가야산과 속리산, 무등산을 올랐었고,
덕유산, 장안산, 운장산 등 가까운 산도 등산했다.
근래에는 서산의 팔봉산과 정선의 민둥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 내외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내는 초등학교
선생을 했던 경험으로 자녀교육에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공무원 월급으로 살림살이가 빠듯했어도 낭비하지 않고 절약해서
아이들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키워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불평 없이 따라 준 아내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이젠 자식들이 모두 결혼하여 제 살림을 차려 나갔고
우리 내외만 한가하게 살고 있다.

가끔 자식들이 집에 온다고 전화가 오면 손주 볼 생각에 무척
좋아하며 시장부터 다녀온다.
잘 먹는 음식을 만들고 보낼 것도 미리 준비해놓는다.
며칠 전에도 물놀이하러 오겠다고 하니 아내는 마음이 부풀어
당장 시장에 다녀왔다.
과일과 고기는 냉장고에 넣어 두고 김치부터 담갔다.
김치는 맛이 좋았다. 아내가 내 입맛에 맞췄는지 아니면
내가 아내의 솜씨에 젖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동화된 습관일 것이다.

손주들이 도착할 시간이면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갔고
하나씩 이름을 부르고 안아주며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가득 차려낸 음식상에 빙 둘러앉아 식사할 때도 좋아하거나
맛있는 음식들을 손주들 앞으로 밀어주며 많이 먹도록 해준다.
이때면 나는 소외되고 말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가족이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진안 부귀면 두남리 앞 냇가로 갔다.
나무 그늘 아래 텐트를 치고 수영복과 구명조끼를 입혀 물놀이를 시작했다.
여러 사람 속에 섞여 손주들이 신나게 놀았다.
튜브를 타고 제 아빠 엄마와 사진도 찍고 재미있게 물놀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나도 멀리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옛날에는 내가 저렇게 해줬는데, 이제는 세대가 달라졌을 뿐이다.
건강하고 활달하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는 이때도 식사 준비를 했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잘 먹는 손주들이 예뻤다.
특히 라면이 맛있다며 좋아했다.
아내는 음식을 나눠주며 칭찬도 해주니 할머니의 사랑을 받은
손주들은 언제나 전주 할머니가 최고라 한다.
손주들이 떠날 땐 용돈을 쥐여 주며 할머니보고 싶으면
전화하고 다음에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자며 배웅했다.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홀가분해서 좋긴 한데 집안이
텅 빈 것 같다고 말할 때는 가족의 정은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다.

외아들 며느리가 되어 해마다 여러 차례의 제사와 명절도 혼자 준비했다.
내가 벌초하러 가면 꼭 따라와 뒷일을 거들었고, 벌에 쏘이지 않게
미리 점검해주었다.
며칠 전 소나기가 왔을 때도 우산을 챙겨와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함께 살아온 반려자로 내 뜻을 헤아려주니
참 고마운 여인이다.
지난날 내가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는 복장에 신경을 써주었고,
친정아버지께 하던 습관대로 내 구두를 잘 닦아놓고 배웅했었다.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 되었을 때도 웃음으로 넘기는 아량을 잊지 않았다.
부족한 남편을 믿고 따라주었고 풍족하지 못한 살림을
알뜰히 살뜰히 꾸려준 아내다.

크게 이룬 것은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온 것은 완전히 아내의 덕이었다.
이제라도 남은 세월 동안 아내한테 받은 큰사랑을 이자까지 쳐서
갚을 날들로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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