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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토리거위벌레의 사랑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10.08. 12:25:38   추천: 0   글쓴이IP: 175.202.95.184
진안문학: 신팔복

도토리거위벌레의 사랑

신팔복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19로 일상이 지루해졌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장마까지 계속되어 집에만 있으려니 따분했다.
책을 뒤적거리다가 텔레비전을 돌려보다가 하늘이 개는 것을 보고
뒷산으로 나갔다.
참나무 사이로 스쳐오는 바람이 무척 시원해 심호흡을 하고
맨손체조로 몸을 풀었다. 기분이 훨씬 상쾌해졌다.

참나무는 크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내가 이곳 삼호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30년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품은 나무들이었다.
나무 중에 단단한 나무로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다.
땔감으로 쓰면 불땀이 좋고 오래 탔다.
잉걸불도 좋아 옛날엔 화로에 담아 방안에 들여놓아 집안을 따뜻하게 했다.
참 숯불에 고기를 구우면 맛도 좋다.
또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나무다.
그 열매로는 도토리묵을 만든다.
도토리는 다람쥐와 멧돼지, 너구리 등 산짐승의 먹이다.

참나무 햇가지가 잎과 도토리를 매단 채 끊어져 길바닥에 내려앉았다.
도토리를 주식으로 살아가는 도토리거위벌레가 잘라놓은 것이다.
요즘 며칠 사이에 나뒹구는 잔가지가 많아졌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쌀바구미 모양으로 길이가 1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곤충이다.
딱딱한 키틴질 껍질에 잔털이 나 있고 약간 회갈색을 띠며
등이 굽어 똥똥해 보인다.
거위의 목처럼 주둥이가 길쭉하여 도토리거위벌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맘때면 전국 어디서나 참나무 잔가지를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다.
여기에 도토리거위벌레의 사랑의 비밀이 숨어있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살펴보면, 새파란 풋도토리가 붙은
도토리 깍정이 중간쯤엔 거무스름한 반점이 하나씩 있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산란한 구멍이다.
기록에 의하면, 도토리거위벌레의 알은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애벌레로 부화하여 연한 도토리를 갉아먹고 자란다.
20여 일 뒤에 땅속 3∼9㎝ 깊이까지 파고들어 가서 흙집을 짓고
나무 수액을 빨아 먹으며 유충 상태로 월동한다.
이듬해 5월 하순경에 번데기가 됐다가 이맘때쯤 성충이 되어
참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몸에 여러 개의 알을 품은 암컷은 본능적으로 도토리를 찾는다.
길고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고 아기 보금자리를 만들면
냄새를 맡고 찾아온 수컷들이 한바탕 싸움을 벌여
결국 힘으로 밀어내어 떨어뜨린다.
반드시 승리한 수컷이 짝짓기를 한다.

암컷은 긴 산란관을 구멍에 넣어 한 개 정도의 알을 낳고
어린것의 겨울나기를 위해 가지를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들의 조상 때부터 전해온
유전설계도(DNA) 때문일 게다.
참 흥미롭다.
자른 면이 꼭 톱질한 것처럼 반듯하다.
암컷은 산란한 도토리 끝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힘겹게 무쩍무쩍 잘라낸다.
거의 잘리다시피 되어 중력에 의해 나뭇가지가 밑으로 처질 때면
꼭 위쪽으로 기어올라가 작업을 마무리한다.
애틋한 마음으로 어린 새끼와 이별을 한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소망하는 것은 여느 어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홀로서기 한 새끼는 그들의 조상처럼 생활사를 잇는다.
자연의 이치는 참 오묘하다.

송충이는 소나무 잎을 먹고, 고추담배나방은 그 맵다는 고추
속을 파먹고 산다.
쌀바구미는 쌀을 주식으로 하며, 나풀거리는 배추흰나비는
배춧잎을 먹고산다.
알록달록 곱고 예쁜 호랑나비는 탱자나무나 산초나무 잎을
먹고사는 것을 보면 생물은 환경에 잘 적응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도 그렇다.
산촌에서 태어난 나는 산채에 길들어있고, 어촌 태생은
생선에 맛들어 살고 있지 않은가?
작은 곤충, 도토리거위벌레의 생활이 삶의 근본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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