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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대왕과 화성행궁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20.03.21. 14:23:51   추천: 1   글쓴이IP: 175.202.95.171
진안문학: 신팔복

정조대왕과 화성행궁

신팔복

행궁은 임금이 궁궐밖을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처소다.
강화도, 남한산성, 온양 등 여러 곳이 있지만, 수원의 화성행궁이
규모도 크고 짜임새가 제일 좋다고 한다.
봄의 꽃들이 가지마다 매달려 절정을 이룰 때, 진안문인들이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화성행궁을 찾아갔다.
화성행궁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 즉 현륭원에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한 처소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수원부로 사용되었다.

광장에 우뚝 솟은 신풍루(新豊樓)는 행궁의 정문으로 화성이
고향 같다는 뜻으로 정조께서 붙였다고 한다.
누각 밑 대문을 지나 정당인 봉수당(奉壽堂)으로 갔다.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고 옥좌가 놓여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왼쪽에 마련된 진찬례(進饌禮)의 재현이었다.
정조 19년(1795년) 어머니 혜경궁(惠慶宮)의 탄신 60주기
회갑연을 치른 자리다.

병풍을 두르고 적의(翟衣)에 대수(大首)머리를 한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앞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만수무강을 축수하며 절을 올리려고 융복을 입고 주립(朱笠)을 쓴
정조의 모습은 근엄해 보였다.
부모의 회갑연은 자식이면 누구나 기뻐하는 날이다.
그러나 홀로 앉은 어머니 앞에 선 정조의 심정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만 같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돌아가실 때가(1762년) 11살 어린 나이였다.
슬픔과 고독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지 벌써 33년이 되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은 동갑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어머니와 함께 회갑을 맞게 될 테니
얼마나 기뻤을까?
슬픔이 복받쳤을 것이다.
왕가와 내외명부, 문무백관, 사대부, 수원 백성이 함께한 가운데
이곳에서 치러진 회갑연은 특별했을 것이다.
한강주교환어도와 함께 유형문화재로 남아있는 봉수당진찬도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격앙되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그날의 행궁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잘 그려 놓았다.

봉수당 옆 왕의 침소인 장락당(長樂堂)을 둘러보고 어진이 있다는
별궁을 찾아 화령전(華寧殿)으로 갔다.
정조의 어진은 운한각(雲漢閣)에 모셔져 있었다.
융복을 입고 옥좌에 앉은 모습이 무척 인자해 보였다.
절대 권력을 쥐고도 어떻게 참고 참아내셨을까 생각하며 고매한
인격에 경건한 마음으로 목례를 올렸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당쟁에 휘말린 역모로 영조 38년(1762년)
윤5월 13일 뒤주 안에서 8일 만에 죽였다.
조선왕조 역사상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최악의 사건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이다.
28세의 젊은 아버지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정조는 어머니
치마폭을 부여잡고 한없이 통곡했을 것 같다.
정조는 25세에 조선의 22대 왕으로 등극하여 재위 24년 동안
규장각을 설치하고 다양한 서적을 간행했으며, 신진 학자들을
인물 위주로 등용하는 등 준론탕평책으로 선정을 펼쳤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노론을 응징하고 싶은 생각도 남아 있었겠지만,
인명을 중시한 훌륭한 인품은 홀로 되신 어머니에 대한
효도까지 늦추지 않았던 것 같다.

혜경궁은 회갑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화성을 찾아와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했다.
그러나 정조는 재위 기간에 11번이나 화성 행차를 했다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효성이 지극했다.
아버지를 복위시키려는 일념 하나로 너그럽게 문무백관을 제
도(帝道)하지 않았나 싶다.
죄인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주검은 양주 중량포 옆 배봉산
(지금 서울시립대학교 뒷산)에 묻고 수은묘(垂恩墓)라 했다.

정조는 즉위(1776년)하여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존호(尊號)를 ‘장헌(莊獻)세자’로 올리고 묘지명을
영우원(永祐園)으로 격을 높였다.
다시 13년(1789) 뒤에 원침(園寢)을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현륭원(顯隆園)이라 했다.
정조 20년(1796)에는 수원화성을 축조했고 현륭원 참배를 위해
화성행궁도 그때 만들었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용상을 양위하고 나면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에
머물 때를 생각해 이곳 봉수당 뒤편에 장락당도 만들고
누각 이름도 지었다.

그러나 정조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위 24년(1800년)에 갑자기 붕어하셨다.
그의 뜻에 따라 현륭원 옆 건릉(健陵)에 묻혔고 그 뒤 효의왕후(孝懿王后)
김 씨(1753~1821)를 합장하여 아버지 곁에 안장되었다.
훗날 고종(광무 3년, 1899년) 때 장헌세자는 장조(莊祖)로,
혜경궁 홍 씨는 헌경왕후(獻敬王后)로 추존하였다.
비로소 현륭원을 융릉(隆陵)으로 추숭하여 내외가 합장된 능이 되었다.
정조가 이루고자 했던 생시의 꿈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됐다.
저승에서도 근심이 풀렸을 것이다.

정조는 어려운 시기를 공평하고 평화롭게 이끌었으며

조선의 역사상 효성이 지극하고 선정을 베푼 어진 임금이셨기에
대왕이란 호칭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화성행궁을 돌아보고 인(仁)과 효(孝)를 더욱더 깊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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