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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시대를 아내와 함께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9.12.15. 20:49:57   추천: 1   글쓴이IP: 119.206.120.196
진안문학: 하광호

100세 시대를 아내와 함께

하광호

꽃들이 자태를 뽐내는 봄, 지금 눈앞에는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꽃들이 온 산과 들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그 꽃들이 빨리 오라고 우리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다.

주변을 보노라면 그 풍광에 도취되어 행복노래를 부르고 싶다.
마을입구의 목련나무 아래에서 각시붓꽃을 보았다.
모두들 목련꽃만 바라보며 예쁘고 향기롭다며 법석을 떨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각시붓꽃이 정말 예쁘다.
남들이 몰라주고, 보는 이가 없어도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이 몹시도 아름답다.
꽃의 자태도 아름답고 순수하여 좋다. ‘야, 멋지고, 아름답다!’
어쩌면 저토록 예쁜 자태를 뽐낼까?
내 마음을 유혹하는 꽃을 감상하노라 나는 시간의 흐름조차도 잊고 있다.

요즈음 아내가 다니는 일터에서 평가가 있나 보다.
한 달 전부터 평가에 대비한다며 늦게 퇴근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업무에 시달리고 야근이 지속되어서인
지 피곤이 역력해 보인다.
늦게 오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젯밤에도 자다가 깨어보니 옆에 아내가 자고 있었다.
측은해 보였다.
야윈 얼굴의 눈가와 이마에는 주름살이 늘었고, 흰 머리카락도 많아졌다.
나와 한 이불 속에서 지낸 지도 어언 30년이 되었다.
시어머니와 두 명의 자녀 뒷바라지를 하며, 온갖 살림살이까지 한다.
게다가 직장까지 다닌다.
일인다역(一人多役)의 생활을 하니 한없이 고맙다.
‘여보, 정말 고마워!’ 내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 또 보며’ 살며시 안아주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아내이니 끝까지 책임지고 잘 해주어야 할 텐데,
늘 미안할 뿐이다.
아내의 주름살과 흰머리가 고단한 삶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석 달 전에 약속한 나들이 날이다.
따뜻한 햇볕, 신선한 바람, 벌써 여름이 오나보다.
얼굴에는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힌다.
아내와 함께 오붓하게 나들이를 하니 마음은 하늘을 날 것 같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하고 바닷가의 비린내는 코를 찌른다.
지난여름에도 이곳 격포를 다녀왔지만 오늘은 유달리 정겹다.

당초 모임은 3월에 제주도에 가기로 했으나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지 못해
부안 격포에서 1박2일을 보내기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오랜만에 회원들과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즐기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과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 그리고 바닷가의 야경은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아내와 함께 방파제를 걸으니 어둠 속에 불빛만 반짝였다.
함께 한 세 부부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어쩐지 어색했다.

나는 부부끼리 손을 잡고 연애시절처럼 등대 밑까지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나부터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함께 한 부부들도 손을 잡고 걸었다.
아내의 손을 잡는 순간, 지나온 나날들이 생각났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들녘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이었다.
냇가의 버들강아지는 움이 텄고, 물은 차갑다 못해 발끝이 시릴 때였다.
어디선가 피아노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은구슬처럼 흐르는 피아노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창문사이로 훔쳐보았다.
예쁜 아가씨가 연ENT빛 원피스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가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나는 직장에서 근무하거나 잠을 자면서도 항상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곤 했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다.

바닷가에서 잡은 그녀의 손은 정말 따뜻하고 포근했다.
고생한 손 같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여보, 정말 고마워!’ 하며
아내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첫아기를 낳고 한 달만에 일터로 나가노라 몸조리도 제대로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할 뿐이다.
바람 끝이 차가워서 내 웃옷을 벗어 아내에게 입혀주었다.

돌아오는 길은 모처럼 둘만의 여유시간이었다.
바다는 은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산에는 나무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추억을 나누며’란 커피숍에 잠시 들르니,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입구에는 17년 경력의 도예가가 빚었다는 컵과 접시 등이 진열되어
눈길을 끌었다.
창가에 앉아 아내와 함께 쌍화차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였다.
옆 벽면에는 ‘노년의 지혜’란 글이 붙어 있었다.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 불평일랑 하지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편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말고,
적당히 저주구려.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친구여,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을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을 놓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며,
손주를 보면 용돈 한 푼 줄 돈이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친구여,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 체 자랑일랑 하지 마오.
우리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세월은 잡을 수가 없다오.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아가시구려. 멍청하면 안 되오.
아프면 안 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부디 오래오래 사시구려.”

내 나이 벌써 두 해만 지나면 육십이다.
하지만 마음은 40대가 아닌가. 벌써 세월이 흘러 이렇게 되었다.
모처럼 우리 부부가 여유롭게 나들이를 하며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지 생각해 보았다.

내소사의 울창한 숲을 뒤로하고 돌아온 1박2일의 여유 있는 나들이였다.
기회가 된다면 삶의 일상에서 가끔 탈출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더 큰 욕심 갖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살면 좋을 듯싶다.

누가 그랬던가?
아파서 병원에 치료비를 내는 것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좋다고.
아내에게 근무 끝나면 헬스장이나 수영장에 다니도록 복지카드로 예약해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걷는 등 소소한 것도 배려해 주고 싶다.
또 가진 것이 있으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며 행복을 쌓아가고 싶다.

병원은 어느 병원이나 대개 만원이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세대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볼 때나,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100세 시대라는데 연애시절처럼 달콤하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아직도 할 일이 있어서 마음이 가볍다.
올 봄부터 시작한 수필공부에 더 열중해야겠다.
수필이 나에겐 최고의 보약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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