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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2019. 06. 24.
 물 위에 쓴 편지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9.01.27. 14:06:54   추천: 1   글쓴이IP: 175.202.95.111
진안문학: 이용미

물 위에 쓴 편지

이용미

「부모도 나이도 몰랐습니다.
고향도 몰랐습니다.
커다란 집에 살며 감사한 줄도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기억도 없어 추억할 것도 없고 고민할 일도, 아니 고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술래가 되어 숨은 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집 밖에 서 있는 나이 지긋한 부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저 평범한 모습의 부부였는데 왠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부끄럽다는
생각에 얼른 자리를 피하자 부부가 제게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부와 인연이 되어 같이 살게 된 저입니다.
작은 집에 넉넉한 생활은 아니라도 항상 저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눈길이 좋았습니다.
금자(金子)라고 지어준 조금 오래된 이름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금자야? 금자~” 때로는 “어, 금자” 하고 부르는 부부의 목소리는
항상 부드럽고 정겨워 이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저보다 먼저 와서 사는 친구 금석이가 있어서였습니다.
그는 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온순하고 차분해서 비슷한 나이로는
보이지 않게 의젓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저를 먼저 챙기며 절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그런 행동이 답답해서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어도
“금자야, 금자야” 부부가 나무라듯 부르며 “저 점잖은 금석이 좀 봐”
할 때도 못 들은 척 제 할 일만 했습니다.
부부싸움을 엿들은 제가 그 흉내를 내며 깔깔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얘기를 꺼내는 일도 없고 제 얘기를 귀담아듣지도 않았으니까요.
나들이하기 좋은 날들, 부부는 노상 외출 중이라 집에는 항상 금석이와
저 둘만 남았습니다.
창밖에는 하얗게 피어난 돈나무 꽃이 그 향기를 맘껏 뿜어대고
그 옆 남천은 줄기에 잎사귀를 붙이고 꽃봉오리 키워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아래 철쭉과 천리향도 고개를 젖히고 발돋움을 하며 부지런을
떠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금석이를 부추겨 봐도 본분을
잊지 말라며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제 본분이란 게 무엇일까요? 항상 예쁜 모습으로 부부를 기쁘게 하며
고마워하는 것이요?
날마다 되풀이되는 그런 일상이 지겨워 금석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슬쩍 다가가 뽀뽀라도 할라치면 죽어라고 도망쳐버리는 바보 같은 금석이.
발을 동동 구르며 투덜대면 그때야 슬그머니 다가와 제 볼에 살짝 입을 대고는
쏜살같이 달아나는 금석이. 전 그런 금석이가 정말 좋았습니다.
부부가 자주 하는 말 “선비 같은 금석이 옆에서 방정 떠는 저 금자 좀 봐.”
그랬습니다.
말끔한 생김새에 성격까지 진득한 금석이는 누가 봐도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에 어울리려면 날씬한 몸매에 우아한 모습이어야 맞는데 그 반대의
모습인 저지만 타고난 상냥함으로 미움은 받지 않았습니다.
부부도 자주 “금자는 생긴 것 하고는 달리 정말 부지런하고 삽삽해” 하면
금석이 표정이 활짝 피어나는 것이 기분 좋았습니다.
표현만 안 할뿐 속정은 깊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제 등에 종기가 났을 때였습니다.
어떡해, 어떡하지? 걱정하는 부부 옆에서 금석이 또한 안쓰러운 눈길로 저보다
더 아파하는 모습이 절 얼마나 설레게 하던지요.
바람이 몹시 불며 꽃이 지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부부는 집을 비워 금석이와 둘이 남았는데 금석이가 갑자기
매우 어지럽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뱅뱅 맴만 얼마를 돌았을까요?
금석이를 돌아보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원인도 모르고 혼자서는 어찌해 볼 수도 없어
그냥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돌아온 부부는 한숨과 함께 혀를 몇 번 차고는 금석이를 들어내더니
화분에 꽃삽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흙을 고르는 것 같은 소리가
몇 번 난 뒤 집안은 조용했습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금석이가 없는 집이 너무 커서 무섭다는 생각뿐 무엇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금석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토록 꼬드겨도 꿈쩍 않더니 바깥세상 구경을 하러 갔을까요?
금석이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찰랑이는 이 물결 넘으면 금석이를 만날 수 있겠지요?
만나서 나란히 잠들고 싶습니다. 나란히 잠들게 해 주세요.
금자 올림」

거실 한쪽 둥근 도자기 어항이 텅 비었다.
금석이가 떠난 다음 날 어찌된 영문인지 어항 밖으로 떨어져 있는
금자를 발견했다.
물 위에 쓴 금자의 편지만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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