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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2020. 06. 02.
 난향비蘭香碑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9.01.27. 14:05:18   추천: 2   글쓴이IP: 175.202.95.111
진안문학: 김재환

난향비蘭香碑

김재환

난향은 은은하다.
자태는 고고한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정절 깊은 명기名妓를 연상키도 한다.
이난향비李蘭香碑, 용담댐에 수장된 내 고향 이웃 산정山亭마을앞에 있던
특별한 비석이다.
진안 마이산에서 흘러내리는 금강의 지류 학천鶴川이 휘감아 도는 벼랑
낭떠러지 바위절벽에 서있던, 보기 드문 노비奴婢의 충절이 얽힌
비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비석을 비탈길 300여 미터 떨어진 마을 앞 은행나무아래
큰 바위 앞으로 옮긴 사연이 있다.
병자호란 때 충절의 상징인 삼학사 중의 한사람인 홍익한洪翼漢의
옛 이름은 홍습洪濕이었다.
홍습의 부친은 진사 홍이성이며 백부인 교위 홍대성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홍진사 일가는 지금은 용담댐에 수장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 산정마을 앞 원담들 산록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첩첩산중 진안지방도 임진란을 피할 순 없었다.
1592년 전주성을 공격하려는 왜군은 진안지방에 들이닥쳐 홍진사 일가는
급히 마을 뒷산너머 시향時享골(谷)로 피신하였다.
산 속에서 며칠을 피신하다보니 먹을 것이 떨어져 난감한 처지에 이르렀다.
노비 난향은 양식을 가지러 야음을 틈타 마을로 내려와 집으로 잠입하다
왜군에게 붙잡혔다.
난향은 같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주인의 행방을 끝까지 밝히지 않고
충절을 지켰다.
왜군들은 홍진사의 집을 불태웠고 난향은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 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스스로 혀를 깨물어 말을 못하자
왜군이 젖가슴을 잘라 죽였다 한다.
산정마을 앞 학천 건너 원담들 상부에 우리 집 큰 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 밭에 가면 밭 한가운데 아름드리 큰 향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밑에 사시사철 시원한 물이 솟는 샘터가 있었다.
근방에서 일하던 일꾼들은 우리 밭에 와 목을 축이곤 하였다.
쟁기질을 하면 기와장도 나오고 시퍼렇게 녹슨 놋수저 놋그릇 등
생활용구가 가끔 나오곤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이곳이 남양 홍씨南陽洪氏 홍진사의 집터이었으며, 벼루구석에 있는
난향비의 충절어린 사연을 듣게 되었다.
임란이 끝난 뒤 선조 37년(1604) 조정과 그 후손들이 난향비를
건립한 이야기와 노비 이난향의 충절을 새긴 비석의 내용을 들었다.
내 고향 마을은 금강 상류 강변에 형성된 큰 마을이었다.
강과 마을 사이로 드넓은 벌판이 형성되어 있어 150여 가구 800여명이
먹고살아가는 생명창고였다.
논에서 생산되는 쌀을 주곡으로 생활하는 산촌 속 농촌이었다.
큰 강이 있어 민물고기와 다슬기가 풍부했고 산이 많아 밭작물과
임산물 역시 풍족했다.
봄철 농사철이 시작되면 보洑 역사役事가 시작된다.
논농사가 끝난 뒤부터 방치된 냇물을 막은 보를 보수하고, 십리 가까운
도랑(수로)을 친다.
경작자들은 소 구루마 삽과 괭이 등 연장을 갖고나와 떼도 뜨고 흙짐도 진다.
온 마을사람들이 참여하는 제일 큰 공동작업, 울력이었다.
보주洑主네 집에서 쌀을 걷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아이들은
그릇을 가져가 인근 나무그늘에서 요기를 하였다.
보 역사는 사월 중순경 2~3일간 계속되었다.
군복무를 마친 1974년 봄날, 아버지 대신 보 역사에 참가하였다.
십리 가까운 보도랑 중에 강물이 범람하거나 홍수가지고 장마철이면
보 도랑이 터지는 벼루모퉁이, 난향비가 있는 곳이다.
새마을사업으로 배정된 시멘트를 이용 암벽을 깎고 뚫어 반영구적
수로를 내기로 했다. 난향비를 옮겨야 했다.
남양홍씨 문중과 협의 산정마을 앞 500년 수령의 노거수
은행나무 아래로 결정되었다.
비탈지고 큰길이 없어 장정들이 목도로 옮기는 방법뿐이었다.
비석을 옮기는 제일 나이 어린 목도꾼으로 뽑혔다.
비석은 머리부문인 이수?首, 비문이 새겨진 본체 비신碑身, 받침대
귀부龜趺로 나뉜다.
난향비는 귀부가 없이 바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수는 장정이 지게로 져 옮길 수 있으나 비신은 크고 무거워 장정들이
목도를 하여야 옮길 수 있었다.
비신은 가로 4자, 세로 2자 반, 두께 다섯 치, 무거운 흰 대리석이다.
비석의 전면에는 충비열녀 이성난향지려忠婢烈女 李姓蘭香之閭라 적혀있다.
무게는 어림잡아 약 400근은 넘어 보였다.
그렇게 어렵게 옮겨 은행나무 밑 암반 위에서 난향비는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2010년 수몰로 인하여 또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노비, 관노비가 아닌 사노비의 비문이 벽촌에 400년 넘게 남아 있다는 것은
진귀한 일이다.
역사적 가치와 향토사적 자료로 값지다 할 것이다.
진안 역사박물관에서 보존하여야 마땅하나 행정의 무관심으로 인해
남양홍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게 몹시 안타깝다.
정의가 사라진 난장판인 정치판을 바라보며 서로 반목과 배반 치기와 술수,
믿음과 신뢰가 없는 세상, 난세를 살아가며 우리는 고뇌하고 절망한다.
일개 노비가 주인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뿐인 귀중한 제 목숨을 잃어간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의 목숨은 고귀한 것,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난향은 일개 노비가 아니라 살신성인의 표상 진정한 성녀다.
현재 우리조국 대한민국에 충이란 덕목이 존재할까?
반문 해본다.
충절이란 무엇인가 곰곰이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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