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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명상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9.01.27. 14:04:52   추천: 1   글쓴이IP: 175.202.95.111
진안문학: 송영수

가을 명상

송영수

세상의 은행잎들이 노랗게 변했다.
그렇게 무성했던 초록이 어떻게 이렇게 일제히 노랑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간밤에 요정아가씨가 긴 나팔을 들어 세상 곳곳을 나르며 노랑물감을
마구 뿜어냈던 것일까?
그 뿐인가, 옆에 있는 단풍나무 잎도 새빨갛게 물들었다.
단풍잎 새로 반짝이는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코발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랑과 빨강의 풍요로운 색의 향연에
취해 넋이 나가는데 내 가슴속은 왜 이렇게 애잔함이 흐르는 것일까?
한없이 펼쳐진 연두색 들길을 거닐 때나,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 초록 속에
서 있을 때와는 너무도 감정이 다르다.
노랗게 빨갛게 변한 이 잎새들을 향하여
“그 무더위와 폭우도 거뜬히 견디면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노라. 장하다.”고
예찬해 보지만 그들은 이미 낙하를 예정하고 있어 애잔함을 떨칠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엔 노란 은행잎이 일제히 낙하했다.
간밤 무서리에 그만 생의 끈을 놓아 버린듯하다.
다행히 고운 색깔을 지닌 채 혼자가 아니고 모두 함께 낙하하여
덜 외로웠겠다고 위로를 해 본다.
이 낙엽 지는 가을 현상이 이토록 애잔한 것은 나이 탓 일게다.
70을 넘다보니 나이, 세월 이런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나뿐 아니라 나이 든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감정인가보다.
“세월아 가지를 마라”,
“내 나이가 어때서”,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등등의 노래를 부르며 사는 데,
노사연 가수는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노래하며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나는 세월이 흐르는 것을 내심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세월이라는 약을 먹어야만 치유되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모르는데 사람들 모두가 내 병은 세월이 약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세월이라는 약을 한 번에 한 웅큼씩 먹고 싶다.
그래서 이 아픔을 빨리 치유하고 싶다.
그런데 얄밉게도 세월이라는 약은 한 번에 한 웅큼씩 먹도록 처방되지 않는다.
매일 하나씩 장기간 복용하도록 처방되어 있다. 세월을 먹는 것은
내 병을 치유하는 것이니까 세월이 흐르는 것이 고맙다.
그래서 나는 70이 넘는 것이 고맙고 빨리 80이 되기를 기다린다.
아무튼 나는 세월이 빨리빨리 흘러 내 병이 완쾌되고 병색 없는
고운 색깔로 물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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